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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경주 오악잇기 스탬프 챌린지 (감은사지, 토함산, 석굴암, 불국사, 불리단길, 남산 금오봉, 삼릉, 포석정) 두 번째 이야기
●산행일:2026. 08. 08 (토요일)
●산행코스:문무대왕수중릉~감은사지~불리단길~불국사~석굴암~토함산~통일전~남산상사바위~사자봉~금오봉~약수계곡마애불상~약수계곡~뒷비파버스정류장~삼릉탐방지원센터~포석정매표소
전체시간:09시간 00분
운동시간:06시간 00분
휴식시간:03시간 00분
운동거리:15.0km
평균속도:3.0km/h
경주 명산 오악잇기 스탬프 챌린지 투어는 경주 명산 오악5곳과 불국사 등 관광지 10곳, 전통시장 5곳, 총 20곳 중 주제별(오악, 관광지, 전통시장) 각 1곳 이상을 포함하여 10곳 이상을 방문하면 기념품을 제공한다.
경주 명산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북 배부처는 경주국립공원사무소:경북 경주시 천북남로 12 (054-778-4100)
삼릉탐방지원센터:경북 경주시 배동 708 (054-772-7616)
스탬프 투어 주의사항
본(경주 명산 오악잇기)스탬프 투어 여권은 인증장소에서 확인된 스탬프만 유효하다. 스탬프 인증장소의 휴무일 및 운영시간은 변동 가능성이 있으므로 방문 전 반드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문의 경주국립공원사무소 054-778-4100
경주 명산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장소 안내
신라 오악:토함산, 선도산, 남산(금오봉), 소금강산, 단석산
전통시장:불리단길, 성동시장, 교촌마을, 황리단길, 중앙시장
광광지:불국사, 석굴암, 감은사지, 무열왕릉, 포석정지, 양동마을, 옥산서원, 분황사, 용담정, 삼릉
경주 명산 오악은 삼국통일 이전에는 경주 평야를 중심으로 한 경주 주변의 산악(동악:토함산, 서악:선도산, 남악:남산, 북악:소금강산, 중악:단석산) 있었으며, 통일 신라 이후에는 신라의 중앙과 사방의 산악으로 확대되었다. 신라 사람들은 이러한 산악에 신적인 존재가 거주하는 것으로 믿는 산악승배사상을 가지고 산신에 대해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경주 명산 오악잇기는 2022년 시즌1을 시작으로 2024, 2025년, 2026년 네 번째 시즌인데 저는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작년에는 온라인으로 "경주on"이나 "워크온" 인증만 진행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중요한 한가지는 경주시에서 진행하는 행사인데, 공직선거법 기부행위에 포함되어 경주시민은 참여해도 기념품을 받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경주 오악잇기 두 번째 스탬프 투어를 하기위해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첫 버스(06:20) 탑승해 약 50분 후에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한다.
함께한 분들이 새벽에 나오면서 아침을 그런 분들이 있기에 경주에 계신 조문환님이 주먹밥을 준비해 주셔서 맛깔나게 식사를 하고서 07:35 경주 동해 바다에 위치한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봉길1리 문무왕릉.봉길해수욕장(02057번)에 약 1시간 후에 도착을 하면서 오악잇기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하늘에 소나기 구름이 끼어 있지만 우리가 위치한 이곳은 비는 내리지 않을거 같기도 하다. 바다 바람과 파도가 거세게 물보라를 몰아치고 있기에 그냥 잠시만 바라보다 길을 감은사지 방향으로 향한다.
봉길해수욕장에는 설렁한 분위기로 해수욕을 즐기는 피서객들은 한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봉길리마을회관은 규모가 상당히 큰 건물이기도 하다. 봉길리마을을 벋어나면 대종천을 가로지르는 대종교를 지나 대본삼거리에서 좌측에 감은사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횡단보도를 건너 감은사지 방향으로 진행한다.
들판에는 벼들이 푸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만 봐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결실의 나날이 다가오나 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감은사지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앞에는 오악잇기 스탬프 함이 비취되어 있기에 인증과 함께 스탬프도 받는다. 그리고 블랙야크 문화탐방 감은사지 발도장과 함께 인증을 올린다.
감은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사찰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이 창건하였다. 682년(신문왕 2)에 신문왕이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 창건하였으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성전사원으로 기능하였다. 현재는 동서 삼층 석탑이 남아 있다.
감은사지 탐방을 마치고 다음목적지는 경주 불국사에 있는 불리단길과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 인증을 하기 위해 감은사지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 150번은 우리가 타고 왔던 코스로 되돌아 가서 보문관광단지 버스정류장에서 환성하여 불국사로 가는 방법과 감은사지에서 기다렸다가 700번 버스는 불국사로 직접가기에 기다렸다가 타기로 하고서 약 1시간 30분을 기다려 11시 50분에 불국사 불리단길 관광안내소 앞에 도착을 한다.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전통시장 마지막 남은 경주 불국사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스탬프 찍인을 마치고 함께한 분들과 단체사진을 담는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 불국사 일주문 옆에 위치한 토함산탐방지원센터로 이동해 주요 관광지 10곳 중 한곳인 불국사 스탬프를 받고서 석굴암 가는 버스가 12:40에 있기에 서둘러 불국사 앞 식당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서 석굴암으로 향한다.
경주에는 예전에 관광지의 관광객은 지금은 내국인 보다는 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석굴암 가는 시내버스에는 대부분 외국인들이 탑승해 있으며 대부분 다니는 모습도 익숙한 모습들이다.
더 넓은 석굴암 주차장 일주문 좌측에 있는 토함산공원지킴터 앞에는 관광지 10곳 중 석굴암 스탬프 투어 챌린지 인증용 스탬프 박스가 위치하고 있다.
석굴암은 인도와 중국,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반도에는 조각 난이도가 높은 돌인 화강암과 청석류가 많고 기후도 달라 저들 나라만큼 석굴사원이 많이, 크게 지어지지는 않지만 이 시기 신라에서는 석굴암뿐만 아니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등 한국사에서 손꼽히게 석굴사원이 많이 지어졌다. 그 중에서도 석굴암은 가장 정교하게 제작된 곳이다.
석굴암 인증을 하고서 배낭을 이곳의 적당한 곳에 두고서 1.4km 떨어져 있는 토함산으로 향한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다음 차 시간은 약 1시간의 여유가 있기에 서둘러 토함산으로 향하고 13:34에 정상에 닿는다.
토함산은 경주 단석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다섯 곳의 오악 중 한 곳이다. 바다 가까이에 있어 산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안개를 산이 마시고 토해 내는 듯한 모습에서 [토함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국사, 석굴암 등의 신라 불교 미술의 찬란한 유산을 볼 수 있는 산이다. 그리고 토함산은 험하지 않은 산으로 가볍게 등산하기 좋은 산으로,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일출 또한 장관이다.
인증을 마치고 약 20분의 시갸이 있기에 함께한 분들과 서둘러 석굴암 주차장으로 향하고 주차장에 내려서자 불국사로 내려가는 버스가 도착을 한다. 1.4km를 15분에 주파한 셈이다. 버스는 불굴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면서 이곳에서 통일전으로 가는 10번 버스를 환승을 한다.
경주 남산 금오봉으로 오르는 들머리 통일전 좌측의 남산동 마을의 길을 따라 국사곡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포석정에서 올라오는 임도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표지목은 금오봉까지 1.3km이다. 가는길 좌측에 상사바위도 만나고 또다시 사자봉을 스쳐지난다. 금오봉 아래에 있는 공원지킴터 자측의 데크계단이 있는 곳으로 진행하여 금오봉 정상에 닿는다.
남산(南山)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탑동, 배동, 내남면에 걸쳐있는 한국의 화강암 산이다. 북쪽의 금오봉(金鰲峰, 468m)을 금오산(金鰲山),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494.6m)을 고위산(高位山)으로, 각각 독립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남산 금오봉 정상에서 하산은 약수계곡에 있는 약수계곡 마애입상불이 있는 곳으로 진행하여
처음 약수계곡마애입상불과 약수곡 석조여래좌상을 둘러보고 경주 남산 약수곡제4지와 제2사지 터가 있는 곳을 둘러보고 도로에 내려서면 우측에 경원문(景源門)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월성대군단소는 신라 박혁거세의 29대손인 경명왕의
8번째 아들인 월성대군 박언의를
시조로하는 월성 박씨의 후손 11위를 모신제단으로 2005년 월성 박씨 대종회가 조성 즉, 월성박씨 시조인 월성대군 박언의와 그 후손들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다
도로를 따라 삼릉 방향으로 향한다. 뒷비파 버스정류장을 지나 경주교도소가 있는 곳도 통과한다. 삼릉(三陵) 표지판이 있는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삼릉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경주 남산에는 많은 소나무들이 제선충으로 고사되어 가고 있지만 이곳에는 노력의 결실로 아직도 우리들에게 기쁨으로 다가온다.
도로를 따라 가는길 우측에 배리 삼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횡혈식석실분이다. 1971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린다. 서쪽으로부터 각각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다.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다. 신덕왕릉에서는 북벽과 동서 양벽의 일부에 마치 병풍을 돌려세운 것처럼 채색된 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경주 일원의 신라고분에서 확인된 유일한 채색벽화이다.
삼릉탐방지원센터에서 관광지 10곳 중 한곳인 삼릉 인증을 하고서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포석정지로 향한다. 포석정지로 가는길 북쪽으로 검은 비구름이 덮혀 있는데 잘못하면 비를 맞을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포석정지는 조성 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주로 통일신라 시대의 기록에 등장한다. 관련 기록은 극히 부족하지만, 묘사에 따르면 대체로 국왕들이 유흥을 즐기던 놀이 공간이었던 듯하다. 헌강왕 때 기록에 다음과 같이 처음 언급되어 남북국시대인 8-9세기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포석정지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경주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챌린지를 마무리하고서 시내버스로 시내로 이동을 하는데 모처럼 단비가 내린다. 많은 비가 내렸으면 하지만 스쳐지니는 비구름에 일부가 아닌가 싶다. 시내 식당가에서 하산식을 마무리하고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 부산으로 무사히 귀가를 하면서 경주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챌린지 두 번째 투어를 마무리한다.
경주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챌린지 감은사지 근처에 있는 문무대왕릉 앞에서 두 번째 탐방에 나선다.
문무왕릉은 사적 제158호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물길을 터놓았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82년 감은사를 지어 불력에 의해 왜구를 막으려 했는데,
<삼국유사>에는 감은사의 금당 아래를 깎아 동해로 구멍을 내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종천을 가로지르는 대종교
대종교 위에서 바라본 좌측에 이견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종교 위에서 바라본 대본삼거리
대본삼거리에서 좌측에 감은사지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가면은
감은사지 문화관광해설사의집 앞에서 오악잇기 스탬프 투어 챌린지 오늘의 첫 인증을 담는다.
1929년에 감은사지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때 감은사는 찰주까지 온전하고 금당지는 일부 매몰되었으나 기단의 일부 구조 파악은 가능하였다.
1959년 발굴 조사를 통해 가람 배치 전반이 파악되었으며, 서탑의 해체 수리 과정에서 사리 장엄구가 일괄 발견되었다.
1979년 2차 발굴 조사를 통해서 회랑지를 포함해 건물지 전체 윤곽과 서쪽 건물지 유구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또 금당지 동쪽 기단을 관통하는 작은 구멍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정지(正至) 11년명 금고(金鼓), 금동 풍탁, 금동여래입상 2구 등이 출토되었다.
1995~1996년에 걸쳐 복원 작업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동탑의 사리 장엄구 일괄을 발견했다.
2005~2008년에는 동 · 서 두 탑을 해체 · 수리하였다.
감은사는 연대산을 등지고 대종천을 바라보는 방향에 입지하고 있다.
문무왕의 산골처로 알려진 경주 문무 대왕릉(사적 158호)이 대종천을 따라 가면 이르는 근처 바다에 있으며,
신문왕대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고사와 관련 있는 경주 이견대(사적 159호)가 문무 대왕릉 가까이에 있다.
감은사지는 우리나라 고대 쌍탑 가람 배치의 전형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 두 탑에서 발견된 사리 장엄구는 석탑 내에서 일괄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사리 장엄구의 구성과 사리 봉안 방식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감은사지 버스정류장에서 불국사로 가는 700번 시내버스
먼저 불국사 버스정류장에 하차를 하면서 석굴암 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본다.
불국사 버스정류장에서 석굴암 가는 버스 운행 시간표
불국사 불리단길 관광안내소 앞에서 스탬프 투어 챌린지 인증을 담는다.
불국사 관광안내소 앞에서
불국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서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이다.
『삼국유사』에는 751년 김대성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경덕왕이 즉위한 742년 불국사의 두 탑 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하여 창건 연대가 정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주요 전각이 불타 없어져 17세기에 중창하였으며, 1970년대의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두 탑과 석조물은 창건 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복원된 목조건물의 시대양식은 혼재되어 있다. 1995년에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국사고금창기』에는 법흥왕 대부터 18세기 중반에 이르는 불국사 중창의 역사가 연대기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
이에 따르면 김대성이 건설한 후 불국사는 모두 아홉 차례 중창되었다.
신라 하대인 887년, 고려 현종 때인 1024년의 중수를 거쳐 조선시대 들어서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기록만으로는 상세한 중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나, 억불숭유 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도 끊이지 않고 중수가 계속될 만큼 불국사가 그 명맥을 잃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불국사 일주문에서 석굴암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면
불리단길 식당가
우주의 원리를 응용하여 아름다운 비례의 극치를 이루는 석굴암은 우리나라 불교 미술을 대표한다.
자연 암벽을 직접 뚫지 않고 크고 작은 돌을 쌓아 만든 석굴암의 독특한 건축법은 세계의 자랑거리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은 모두 자연의 암벽을 뚫어서 내부 공간을 만들었고, 또 긴 세월에 걸쳐 같은 장소에 여러 개의 석굴을 완성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석굴암은 크고 작은 화강암을 차례차례 쌓아 올려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립하였다. 바로 이 점이 석굴암 건축사의 특색이다.
토함산은 경주 단석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다섯 곳의 오악 중 한 곳이다.
바다 가까이에 있어 산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안개를 산이 마시고 토해 내는 듯한 모습에서 [토함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국사, 석굴암 등의 신라 불교 미술의 찬란한 유산을 볼 수 있는 산이다.
그리고 토함산은 험하지 않은 산으로 가볍게 등산하기 좋은 산으로,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일출 또한 장관이다.
경주 국립공원은 남산, 토함산 등 여러 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토함산지구는 그중에서도 가장 면적이 넓고 불국사와 석굴암이라는 두 개의 세계유산을 품은 핵심 지구다.
젊은 세대들이라면 토함산이라는 이름을 난생 처음 들어본다 싶을지도 모르나,
사실 대부분의 경주 현지인 외엔 한국인이라면 평생 한 번 이상은 토함산을 찾은 적이 있을 것이다.
불국사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10번 버스로 환성하여 통일전 앞에서 하차해 좌측 서출지 앞에 정자쉼터가 있는 곳에서 남산 금오봉 산행이 시작된다.
서출지 가장자리에 연꽃과 함께 주변으로 배롱나무꽃이 예쁘게 핀 모습을 담아본다.
경주에는 손두부 식당가가 많이들 보이고
예쁘게 단장된 카페
집뜰에 핀 능소화
1000년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품은 경주는 우리 민족 문화의 발자취와 삼국 통일의 웅장한 기상이 어려 있다.
가는 곳마다 명승고적과 전설, 고유 민속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한 대표적인 문화 관광지다.
훌륭한 사적과 문화·역사적 유물이 집중돼 있고 국보급 고고품이 쏟아지며 불교문화와 예술을 확인할 수 있는 경주는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벽 없는 박물관’이다.
이런 독특한 문화 유산을 보기 위해 해마다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경주를 방문한다.
경주에는 특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경주국립공원으로, 설악산국립공원이나 한려해상국립공원처럼 산이나 바다의 자연경관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이루어진 사적형 공원이다.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불교문화의 백미인 불국사, 석굴암을 품에 안은 토함산과 ‘불교 노천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을 비롯해 8개 지구의 면적이 136.55㎢에 달한다.
잘 보존된 신라 문화 유적과 조화로운 자연경관 때문에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197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10대 유적지 중 하나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주국립공원에 포함된 남산에서는 희로애락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경주의 시가지 남쪽에 있는 남산은 옛 신라인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를 필두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이 뻗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절터 100여 곳과 석불 80여 구, 석탑 60여 기가 있어 ‘노천 박물관’이라 불린다.
옛 신라는 경주를 수도로 하며 불교를 국교로 한 이후 남산을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했다.
그래서일까 신라의 역사의 모든 것이 남산에 남아 있다.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가 깃들고,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 등도 있다.
신라의 1000년 역사가 막을 내린 포석정도 함께 볼 수 있으며,
한국적 아름다움과 자비가 가득한 보리사 석불좌상을 비롯한 미륵골 석불좌상, 국보 칠암불 마애불상군 등 다양한 보물, 사적,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는 특별한 곳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산에는 안타까운 비화도 존재한다. 버려진 유물들과 목이 잘린 불상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과거의 영광과 아픔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터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훼손된 불상은 신라를 지나 고려말, 조선을 거치면서 불교의 세를 약화하려는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흔적의 일부다.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상당히 손실됐다고 보기도 한다. 목이 없는 불상과 목에 선을 그어 놓은 모습의 석상 등을 보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등 한반도 아픈 역사의 상흔이 느껴져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신앙을 떠나 우리의 역사로서 앞으로라도 보존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커진다.
남산 정상까지의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산행 난도는 낮지만 샛길마다 다양한 문화재를 보면서 만감을 느끼다 보니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남산은 유적만 아니라 자연경관으로도 훌륭하다.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즐비해 있고 괴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룬 듯 장엄하게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 서는 경주를 보았다 말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칭찬한다. 그만큼 자연의 아름다움과 오랜 역사가 자연스레 녹아 예술로 승화한 곳이 경주의 남산이다. 가장 쉽게 남산을 느낄 수 있는 등산코스는 삼릉코스로 문화재가 많고 경치도 좋으며 난도가 낮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 서는 경주를 보았다 말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칭찬한다.
그만큼 자연의 아름다움과 오랜 역사가 자연스레 녹아 예술로 승화한 곳이 경주의 남산이다.
가장 쉽게 남산을 느낄 수 있는 등산코스는 삼릉코스로 문화재가 많고 경치도 좋으며 난도가 낮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포석정은 조성 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주로 통일신라 시대의 기록에 등장한다.
관련 기록은 극히 부족하지만, 묘사에 따르면 대체로 국왕들이 유흥을 즐기던 놀이 공간이었던 듯하다.
헌강왕 때 기록에 다음과 같이 처음 언급되어 남북국시대인 8-9세기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