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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방(2019) - 이태준
이태준 李泰俊 (1904- ?)
강원도 철원 출생. 호는 상허(尙虛). 도쿄 상지 대학 예과를 중퇴했다.
별명은 한국의 모파상이다.
* 단편소설
〈오몽녀〉 (1925)
〈복덕방〉
〈가마귀〉
〈밤길〉
〈영월영감〉
〈토끼 이야기〉
〈달밤〉
〈산월이〉
〈고향〉 (1933)
〈불우선생〉 (1933)
《패강랭》 (1938)
〈농군〉 (1939)
〈돌다리〉 (1943)
〈해방전후〉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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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소설의 향취
일반적으로 우리 소설의 주류를 단편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사실상 김동인과 현진건, 그리고 염상섭과 이효석 등으로 이어지면서 전개되어온 우리 소설사에 있어서 단편소설은 비단 개별 작가들의 개인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시대의 사회적 삶의 제반 양상들을 진솔하게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단편소설은 1930년대에 들어 비로소 제 궤도에 올라서게 되는데, 바로 이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해낸 작가로 일반적으로 이태준을 꼽거니와,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그를 근대적인 우리 단편소설의 한 완성자로 평가하는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태준이라는 작가는 분단으로 인한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의도적으로 망각되어져 왔으며, 그런 까닭에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작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태준이라는 작가는 우리의 소설이 어디에서부터 발원하였고 또 어떤 경과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다소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거쳐가야 하는 1930년대 소설계의 거봉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몫은 앞서 말했듯 한국적인 단편소설의 확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당대의 시인 정지용이 자신의 운문과 상허(尙虛)의 산문을 나란히 놓고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상허 이태준의 작품활동은 1925년 《시대일보》에 발표된 <오몽녀(五夢女)>에서부터 비롯하지만 현재 우리가 그의 절편으로 꼽는(그리고 이 책에도 수록되어 있는) 거개의 작품들은 대개가 1930년에서부터 1937년 사이에 씌어진 작품들이다. 그리고 비록 적지 않은 장편들을 남기고 있기는 하지만, 이태준 문학의 본령은 역시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동시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그만이 가지고 있었던 소설에 대한 견해 및 삶을 바라보는 생래(生來)적으로 따뜻한 그의 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상 이 책에 수록된 <복덕방> <가마귀> <불우 선생> <달밤> <색시> <꽃나무는 심어놓고> 등의 작품에서 독자들은, 정녕 아무런 사심없이 주어진 시대를 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삶에 좌절하고 마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삶의 모습을 목격한다. 가령 <불우 선생> <복덕방>과 같은 작품에서는 옛적의 기개를 간직한 노인의 삶의 조락(凋落)과 자식들에 얹혀사는 노인들의 애환을 보는가 하면 <달밤> <색시> <꽃나무는 심어놓고> 등과 같은 작품에서는 가난하지만 순수한 마음씨를 지닌 인물들을 통해 잔잔하게 우러나는 삶의 애환을 내 것처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재서가 이태준의 단편의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아주 정확히 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태준의 단편을 한 번 읽은 사람이면 그 작품의 인물들을 잊지 못한다. 인물 자체로 보면 하잘것없는 존재들이지만 읽고 난 뒤에 언제까지나 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야릇한 매력을 가진 것이 이씨의 작품인물들이다. 낙백(落魄)한 유자(儒者), 누항(陋港)에 침면하는 퇴기(退妓), 불우한 소학교원이나 혹은 유랑하는 농민, 어리석은 신문배달부, 생에 희망을 잃은 노인 등 말하자면 인생의 그늘 속에서 움직이는 희미한 존재들이 이태준의 예술 세계 안에선 선명한 인간상으로서 나타나 있다.
《문학과 지성》 중에서
최재서의 위의 말은 사실상 이 책에 수록된 그의 단편의 전 세계를 요약하고 있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최재서가 이야기한 인물들은 모두 이태준의 단편에 등장하고 있는 그렇고 그런 인물들의 구체적인 면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물들을 다룬다고 해서 그의 시선이 안이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러한 작품을 통해서 의도하는 것은 결국 동시대 주변인들의 삶에 대한 환기, 그리고 그것을 통한 독자와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복덕방>이라든가 <불우 선생>, 그리고 이책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영월 영감>과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 앉아야 하는 노인들의 의식과 삶이 얼마나 애처로운가를 생각하게 되고, 시대의 추이가 평범한 뭇 인간들의 삶에 어떻게 간섭하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하는 등등의 장면들을 눈에 보듯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허가 그의 많은 단편들에서 일관되게 공적인 사회적 삶의 현장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삶으로부터 외면당한 주변적인 인물들을 그리는 것은 비단 옛 것, 사라져가는 것들과 그런 존재들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수필에서 보여주듯 옛 것에 대한 완상취미가 자칫 건강한 생활에의 의욕을 나태하게 할 수 있음을 스스로 경계해왔던 작가다. “소설은 인물의 발견이다”라고 상허 자신이 자신의 수필에서 쓰고 있듯이, 변두리적인 인물군상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시선은 결국 당대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포착하는 것을 목적했던 그의 투철한 소설관의 소산임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근래의 짜임새 있고 그 다루는 바 주제도 중후한 단편들에 다소라도 친숙해 있는 독자들의 경우엔 아마도 이와 같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태준의 단편들이 다소 힘없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물들의 면모도 그렇지만, 작가·서술자가 그 인물들의 삶을 형상화해내는 기법도 그다지 치밀하지는 않고, 더러는 마치 작가가 자기 생활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삽화들을 소재로 한 일종의 에세이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태준의 작품은 풀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태준의 작품은 바로 그 에세이다운 면모로 인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인생의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고 또 그로부터 다시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상허의 이런 면은 그가 친숙해 있었던 동양적인 정신에 대한 경도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명제 기타>라는 수필에서 하고 있는 진술 또한 그의 단편소설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소설의 구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소설에서는 삼국지류의 무용전(武勇傳)이기 전에는 서양에서처럼 고층건축과 같은 입체적 설계는 어렵다. 생활형식이 저들은 동적인데 우리는 정적이요, 저들은 입체적인데 우리는 평면적이다. 점잖은 인물이면 저들과 같이 결투를 청하거나 경마나 골프를 하지 않고 정자에 누워 반성하고 낚시질이나 바둑을 둔다. 이렇게 조용한 인물과 생활을 가지고 변화를 부린댔자 작자의 뒤스럭만 보이기가 십상팔구다.
《무서록》 중에서
위의 글을 자세히 보면 우리는 상허가 자신의 소설을 사소설이라고 폄하(貶下)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관되게 자유분방한 에세이와 같은 회고담, 혹은 에피소드의 제시와 같은 소품들을 쓰게 된 이유는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서 그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작법까지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수필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문방사우라든가 민예품 등에 대한 그의 진지한 해석도 결국은 위와 같은 동양적 미의식에 대한 믿음 및 경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옛 것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일관된 맥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대두되고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간 묻혀졌던 이태준의 작품이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렇게 문고판으로 묶여져서 독자들에게 쉽사리 전달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하나는 그의 면모가 독자에게 보다 쉽게 드러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에서고, 다른 하나는 문고판의 형태가 상허의 책에 대한 지론과 그대로 부합한다는 의미에서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책 판형의 낭비가 왕왕 거론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도 그렇고 또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주옥 같은 글(수필 <책>)이기에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며 기꺼이 인용하고 싶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 된다. 가볍고 얄팍하고 뚜껑도 예전 능화지(菱華紙)처럼 부드러워 한손에 말아 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
金慶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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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덕 방
철썩,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버리는 소리가 났다. 주먹구구에 골똘했던 안 초시에게는 놀랄 만한 폭음이었던지, 다리 부러진 돋보기 너머로 꼭 먹이를 쪼으려는 닭의 눈을 해가지고 수챗구멍을 내다본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개비해 버린 녹두 껍질.
‘녹두 빈대떡을 부치는 게로군.’
5,6년째 안 초시는 말끝마다 “젠장……”이 아니면 “흥!” 하는 코웃음을 잘 붙였다.
“추석이 벌써 낼 모레지! 젠장…….”
안 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었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하던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래윗니가 송곳 끝같이 날카로워짐을 느끼었다.
안 초시는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빈 입인 채 빠드득 소리가 나게 한 번 물어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 빛이 눈이 부시다. 안 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거기는 한 조각의 녹두 반자나 한 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슬픔과 더 고적함이 품겨 있는 것 같았다.
혹혹 소매 끝을 불어보고 손끝으로 튀겨보기도 하다가 목침을 세우고 눕고 말았다.
“이사는 팔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가만…… 천이라? 사로 했으니 사천이라 사천 평…… 매 평에 아주 주려잡아 오 환씩만 하게 돼도 사 환 칠십 오 전씩이 남으니 그럼…… 사사는 십육 일만 육천 환하고……”
안 초시가 다시 주먹구구를 거듭해서 얻어낸 총액이 1만 9000원, 단 1000원만 들여도 1만 9000원이 되리라는 심속이니, 1만 원만 들이면 그게 얼만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마가 화끈했다. 도사렸던 무릎을 얼른 세우고 뒤나 보려는 사람처럼 쭈그렸다. 마코 갑이 번연히 비인 것인 줄 알면서도 다시 집어다 눌러보았다. 주머니에는 단 돈 10전, 그도 안경다리를 고친다고 벌써 세번짼가 네번째 딸에게서 4, 50전 얻어가지고는 번번이 담뱃값으로 다 내어보내고 말던 최후의 10전, 안 초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집어내었다. 백통화 한 푼을 얹은 야윈 손바닥, 가만히 떨리었다. 서 참의(徐參議)의 투박한 손을 생각하면 너무나 얇고 잔망스러운 손이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따금 술잔은 얻어먹고, 이렇게 내 방처럼 그의 복덕방에서 잠까지 빌려 자건만 한 번도, 집 거간이나 해먹는 서 참의의 생활이 부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제든지 한 번쯤은 무슨 수가 생기어 다시 한 번 내 집을 쓰게 되고, 내 밥을 먹게 되고, 내 힘과 내 낯으로 다시 한 번 세상에 부딪혀보려니 믿어졌다.
초시는 전에 어떤 관상쟁이의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주먹을 쥐어야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늘 그렇게 쥐노라고는 했지만 문득 생각이 나 내려다볼 때는, 으레 엄지손가락이 얄밉도록 밖으로만 쥐어져 있었다. 그래 드팀전을 하다가도 실패를 하였고, 집까지 잡혀서 장전을 내었다가도 그만 화재를 보았거니 하는 것이다.
“이놈의 엄지손가락아 안으로 좀 들어가, 젠장”
하고 연습삼아 엄지손가락을 먼저 안으로 넣고 아프도록 두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그리고 당장 내어보낼 돈이면서도 그 10전짜리를 그렇게 쥔 주먹에 단단히 넣고 담배 가게로 나갔다.
이 복덕방에는 흔히 세 늙은이가 모였다.
언제 누가 와, 집 보러 가잘지 몰라, 늘 갓을 쓰고 앉아서 한길을 잘 내다보는 얼굴 붉고 눈방울 큰 노인은 주인 서 참의다. 참의로 다니다가 합병 후에는 다섯 해를 놀면서 시기를 엿보았으나 별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럭저럭 심심파적으로 갖게 된 것이 이 가옥 중개업(家屋仲介業)이었다. 처음에는 겨우 굶지 않을 만한 수입이었으나 대정 8, 9년 이후로는 시골 부자들이 세금(稅金)에 몰려,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만 몰려들고, 그런 데다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貫鐵洞), 다옥정(茶屋町) 같은 중앙 지대에는 그리 고옥만 아니면 1만 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그 판에 봄 가을로 어떤 날에는 300원 내지 400원의 수입이 있어, 그러기를 몇 해를 지나 가회동(嘉會洞)에 수십 간 집을 세웠고 또 몇 해 지나지 않아서는 창동(倉洞) 근처에 땅을 장만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중개업자도 많이 늘었고 건양사(建陽社)가 생기어서 당자끼리 직접 팔고 사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가기 때문에 중개료의 수입은 전보다 훨씬 줄은 셈이다. 그러나 20여 년 간 집에 학생을 치고 싶은 대로 치기 때문에 서 참의의 수입이 없는 달이라고 쌀값이 밀리거나 나무 값에 졸일 형편은 아니다.
“세상은 먹고 살게 마련이야…….”
서 참의가 흔히 하는 말이다. 칼을 차고 훈련원에 나서 병법을 익힐 때는, 한 번 호령만 하고 보면 산천이라도 물러설 것 같던, 그 기개와, 오늘의 자기, 한낱 가쾌(家僧)로 복덕방 영감으로 기생, 갈보 따위가 사글셋방 한칸을 얻어달래도 네 네 하고 따라나서야 하는, 만인의 심부름꾼인 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눈물이 아니 날 수도 없는 것이다. 워낙 술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남몰래 이런 감회(感懷)를 이기지 못해서 술집에 들어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호반[武人]들의 기개란 흔히 혈기(血氣)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인지 몸에서 혈기가 죽음에 따라 그런 감회를 일으킴조차 요즘은 적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집에서 점심을 먹다 듣노라니 무슨 장사치의 외우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귀에 익은 목청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인데 제법 무엇을 사라는 소리가 아니라 “유리병이나 간장통 파시오―” 하면서 가마니 두어 개를 지고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중노인이나 된 사내가 지나가는데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어디서 알았으며 성명이 무엇이며 애초에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가 캄캄해지고 말았다.
“오오라! 그렇군…… 분명…… 저런!”
하고 그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유리병과 간장통을 외우는 소리가 골목 안으로 사라져갈 즈음에야 서 참의는 그가 누구인 것을 깨달아낸 것이다.
“동관(同官) 김 참의…… 허!”
나이는 자기보다 훨씬 연소하였으나 학식과 재기가 있는 데다 호령 소리가 좋아 상관에게 늘 칭찬을 받던 청년 무관이었다. 20여 년 뒤에 들어도 갈데없이 그 목청이요 그 모습이었다. 전날의 그를 생각하고 오늘의 그를 보니 적이 감개에 사무치어 밥숟가락을 멈추고 냉수만 거듭 마시었다.
그러나 전에 혈기 있을 때와 달라 그런 기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반인 둘째아들이 학교에 갔다 들어서는 것을 보고, 또 싸전에서 쌀값 받으러 와 마누라가 선선히 시퍼런 지전을 내어 세는 것을 볼 때 서 참의는 이내 속으로
‘거저 살아야지 별 수 있나. 저렇게 개 가죽을 쓰고 돌아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에헤’
하였을 뿐 아니라 그런 절박한 친구에다 대면 자기는 얼마나 훌륭한 지체이냐 하는 자존심도 없지 않았다.
“지난 일 그까짓 생각할 건 뭐 있나. 사는 날까지…… 허허.”
여생을 웃으며 살 작정이었다. 그래 그런지 워낙 좀 실없는 티가 있는 데다 요즘 와서는 누구에게나 농지거리가 늘어갔다. 그래 늘 눈이 달리고 뾰로통한 입으로는 말끝마다 젠장 소리만 나오는 안 초시와는 성미가 맞지 않았다.
“좀보야, 술 한잔 사주랴!”
좀보라는 말이 자기를 업신 여기는 것 같아서 안 초시는 이내 빨끈해 가지고
“네깟놈 술 더러워 안 먹는다”
한다.
“화투패나 밤낮 떼면 너희 어멈이 살아온다던?”
하고 서 참의가 발끝으로 화투짝들을 밀어던지면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쌔근쌔근하다가 부채면 부채, 담뱃갑이면 담뱃갑, 자기의 것을 냉큼 집어들고 안 올 듯이 새침해 나가버리는 것이다.
“저게 계집이면 천생 남의 첩 감이야”
하고 서 참의는 껄껄 웃어버리나 안 초시는 이렇게 돼서 올라가면 한 이틀씩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은 안 초시의 딸의 무용회(舞踊會) 날 밤이었다. 안경화(安京華)라고, 한동안 토월회(土月會)에도 다니다가 대판(大阪)에 가 있느니 동경(東京)에 가 있느니 하더니 5, 6년 뒤에 무용가라고 이름을 날리며 서울에 나타났다. 바로 제1회 공연날 밤이었다. 서 참의가 졸르기도 했지만, 안 초시도 딸의 사진과 이야기가 신문마다 나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서 공표를 얻을 수 있는 대로 얻어가지고 서 참의뿐 아니라 여러 친구를 돌아 줬던 것이다.
“허! 한가운데서 지금 한창 다릿짓하는 게 자네 딸인가?”
남은 다 멍멍히 앉았는데 서 참의가 해괴한 것을 보는 듯, 마땅하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무용이란 건 문명국일수록 벗고 한다네그려.”
약기는 한 안 초시는 미리 이런 대답으로 막았다.
“모르겠네 원…… 지금 총각놈들은 모두 등신인가봐…….”
“왜”
하고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탄하였다.
“우린 총각 시절에 저런 걸 보면 그냥 못 배기네.”
“빌어먹을 녀석…… 나이 값을 못 하고, 개야 저건 개…….”
벌써 안 초시는 분통이 발끈거려서 나오는 소리였다.
한 가지가 끝나고 불이 환하게 켜졌을 때다.
“차라리 도로 여배우 노릇을 다니라고 그래라, 여배운 그래도 저렇게 넓적다린 내놓고 덤비지 않더라.”
“그자식 오지랍 경치게 넓네. 네가 안방 건넌방이 몇 칸이요나 알았지 뭘 쥐뿔이나 안다고 그래, 보기 싫건 나가렴”
하고 안 초시는 화를 발끈 내었다. 그러니까 서 참의도 안방 건넌방 말에 화가 나서 꽤 높은 소리로
“넌 또 뭘 아니? 요 쫌보야”
하고 일어서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안 초시는 거의 달포나 서 참의의 복덕방에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 걸 박희완(朴喜完) 영감이 가서 데리고 왔었다.
박희완 영감이란 세 영감 중의 하나로 안 초시처럼 이 복덕방에 와 자기까지는 안 하나 꽤 쏠쏠히 놀러 오는 늙은이다. 아니 놀러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와서는 공부도 한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代書業) 운동을 한다고 《속수국어독본(涑修國語讀本)》을 노상 끼고 와서 《삼국지(三國志)》 읽던 투로
“긴상 도코니 이키이 마수카.”
어쩌고를 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수국어독본》 뚜껑이 손때에 절고 또 어떤 때는 목침 위에 받혀 베고 낮잠도 자서 머리 때까지 새까맣게 절어 ‘조선 총독부 편찬(朝鮮總督府編纂)’이란 잔 글자들은 보이지 않게 되도록, 대서업 허가는 의연히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나 나나 다 산 것들이 업은 가져 뭘 하니. 무슨 세월에…… 흥!”
하고 어떤 때, 안 초시는 한나절이나 화투패를 떼다 안 떨어지면 그 화풀이로 박희완 영감이 들고 중얼거리는 《속수국어독본》을 툭 채어 한길로 팽개치며 그랬다.
“넌 또 무슨 재술 바라고 밤낮 화투패나 떨어지길 바라니?”
“난 심심풀이지.”
그러나 속으로는 박희완 영감보다 더 세상에 대한 야심이 끓었다. 딸이 평양으로 대구로 다니며 지방 순회까지 하여서 제법 돈냥이나 걷힌 것 같으나 연구소를 내노라고 집을 뜯어고친다, 유성기를 사들인다, 교제를 하러 돌아다닌다 하노라고, 더구나 귀찮게만 아는 이 아비를 위해 쓸 돈은 예산에부터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얘? 낡은 솜이 돼 그런지, 삯바느질이 돼 그런지 바지 솜이 모두 치어서 어떤 땐 홑 옷이야, 암만 해도 셔츠 한 벌 사입어야겠다”
하고 딸의 눈치만 보아 오다 한 번은 입을 열었더니
“어련히 제가 사드리지 않겠어요”
하고 딸은 대답은 선선하였으나 셔츠는 그 해 겨울이 다 지나도록 구경도 못하였다. 셔츠는커녕 안경 다리를 고치겠다고 돈 1원만 달래도 1원짜리를 굳이 바꿔다가 50전 한 닢만 주었다. 안경은 돈을 좀 주무르던 시절에 장만한 것이라, 테만 5, 6원 먹는 것이라 50전만으로 그런 다리는 어림도 없었다. 50전짜리 다리도 있지만 살 바에는 조촐한 것을 택하던 초시의 성미라 더구나 면상에서 짝짝이로 드러나는 것을 사기가 싫었다. 차라리 종이 노끈인 채 쓰기로 하고 50전은 담뱃값으로 나가고 말았다.
“왜 안경 다린 안 고치셨어요?”
딸이 그 날 저녁으로 물었다.
“흥…….”
초시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은 며칠 뒤에 또 50전을 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버지 보험료만 해도 한 달에 3원 80전씩 나가요”
하였다. 보험료나 타먹게 어서 죽어달라는 소리로도 들리었다.
“그게 내게 상관 있니?”
“아버지 위해 들었지 누구 위해 들었게요 그럼.”
초시는 ‘정말 날 위해 하는 거문 살아서 한 푼이라도 다오. 죽은 뒤에 내가 알게 뭐냐’ 소리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50전이면 왜 안경 다릴 못 고치세요?”
초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좋고 나쁜 것을 가리실 처지예요?”
그러나 50전은 또 마꼬 값으로 다 나갔다. 이러기를 아마 서너번째다.
“자식도 소용 없어. 더구나 딸자식…… 그저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초시는 돈의 긴요성을 날로 더욱 심각하게 느끼었다.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
심심해서 운동삼아 좀 나다녀 보면 거리마다 짓는 것이 고층 건축(高層建築)들이요, 동네마다 느는 것이 그림 같은 문화 주택(文化住宅)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물에서 막 튀어나온 미역처럼 미끈미끈한 자동차가 등덜미에서 소리를 꽥 지른다. 돌아다보면 운전수는 눈을 부릅떴고 그 뒤에는 금시계 줄이 번쩍거리는 살찐 중년 신사가 빙그레 웃고 앉았는 것이었다.
“예순이 낼 모레…… 젠장할 것.”
초시는 늙어가는 것이 원통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더 늙기 전에 적게 돈 1만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내 손으로 다시 한 번 이 세상과 교섭해보고 싶었다. 지금 이 꼴로서야 문화 주택이 암만 서기로 내게 무슨 상관이며 자동차, 비행기가 개미 떼나 파리 떼처럼 퍼지기로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냐, 세상과 자기와는 자기 손에서 돈이 떨어진, 그 즉시로 인연이 끊어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면 송장이나 다름없지 뭔가?’
초시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지가 이미 오래였다.
‘무슨 수가 없을까?’
또
‘무슨 그루터기가 있어야 비비지?’
그러다가,
‘그래도 돈냥이나 엎질러본 녀석이 벌기도 하는 게지’
하고, 그야말로 무슨 그루터기만 만나면 꼭 벌기는 할 자신이었다.
그러다가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관변에 있는 모 유력자를 통해 비밀리에 나온 말인데 황해 연안(黃海沿岸)에 제2의 나진(羅津)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관청에서만 알 뿐이나 축항 용지(築港用地)는 비밀리에 매수되었으므로 불원하여 당국자로부터 공표(公表)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럼 거기가 황무진가? 전답들인가?”
초시는 눈이 뻘개 물었다.
“밭이라네.”
“밭? 그럼 매 평 얼마나 간다나?”
“좀 올랐대, 관청에서 사는 바람에 아무리 시골 사람들이기로 그만 눈치 없겠나. 그래도 무슨 일로 관청서 사는지 모르거든…….
“그래?”
“그래 그리 오르진 않았대…… 아마 평당 25전씩이면 살 수 있나보네. 그러니 화중지병이지 뭘 하나 우리가…….”
“음…….”
초시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리었다. 정말이기만 하면 한 시각이라도 먼저 덤비는 놈이 더 먹는 판이다. 5, 6전 하던 땅이 한 번 개항된다는 소문이 나자 당년으로 5, 6전의 100배 이상이 올랐고 3, 4년 뒤에는 땅 나름이지만 어떤 요지(要地)는 1000배 이상이 오른 데가 많다.
“다 산 나이에 오래 끌 건 뭐 있나. 당년으로 넘겨도 최소한도 5환씩이야 무려할 테지…….”
혼자 생각한 초시는
“대관절 어디란 말이야 거기가?”
하고 나 앉으며 물었다.
“그걸 낸들 아나?”
“그럼?”
“그 모씨라는 이만 알지. 그러게 날더러 단 1만원이라도 자본을 대주면 자기는 거기서도 어디 어디가 요지라는 걸 설계도를 복사해낸 사람이니까, 그 요지만 산단 말이지, 그리고 많이도 바라지 않아, 비용 죄다 제치고 순이익의 2할만 달라는 거야.”
“그럴 테지…… 누가 그런 자국을 일러주고 구경만 하자겠나…… 2할이라…… 2할…….”
초시는 생각할수록 이것이 훌륭한, 그 무슨 그루터기가 될 것 같았다. 나진의 선례도 있거니와 박희완 영감 말이 만주국이 되는 바람에 중국과의 관계가 미묘해지므로 황해 연안에도 으레 나진과 같은 사명을 가진 큰 항구가 필요한 것은 우리 상식으로도 추측할 바라 하였다. 초시의 상식에도 그것을 믿을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피죤’을 사서, 거기서 아주 한 대를 피워물고 왔다. 어째 박희완 영감이 종일 보이지 않는다. 다른 데로 자금 운동을 다니나보다 하였다. 서 참의는 점심 전에 나간 사람이 어디서 흥정이나 한 자리 떨어져서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안 초시는 미닫이 틀 위에서 낡은 화투를 꺼내었다.
‘허, 이것봐라.’
여간해선 잘 떨어지지 않던 거북패가 단번에 뚝 떨어진다. 누가 옆에 있어 좀 보아줬으면 싶었다.
“아무래도 이게 심상치 않아…… 이제 재수가 티나부다!”
초시는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한길로 내던졌다. 출출하던 판에 담배만 몇 대를 피고 나니 목이 컬컬해진다. 앞집 수채의 뜨물에 떠내려가다 막힌 녹두 껍질이 그저 누렇게 보인다.
‘오냐 내년 추석엔…….’
초시는 이 날 저녁에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하였다. 실패는 했을지라도 그래도 십수 년을 상업계에서 논 안 초시라 출자(出資)를 권유하는 수작만은 딸이 듣기에도 딴 사람인 듯 놀라웠다. 딸은 즉석에서는 가부를 말하지 않았으나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내 잊혀지지는 않았던지 다음날 아침에는, 딸이 먼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고, 초시가 박희완 영감에게 묻던 이상으로 시시콜콜이 캐물었다. 그러면 초시는 또 박희완 영감 이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소상히 설명하였고 1년 안에 청장을 하더라도 최소 한도로 50배 이상의 순이익이 날 것이라 장담하였다.
딸은 솔직했다. 사흘 안에 연구소 집을 어느 신탁 회사(信託會社)에 넣고 3000원을 돌리기로 하였다. 초시는 금세 발복이나 된 듯 뛰고 싶게 기뻤다.
‘서 참의 이놈, 날 은근히 멸시했것다. 내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 난 집을 살 테다. 네깟놈이 천생 가쾌지 별 거냐…….’
그러나 신탁회사에서 돈이 되는 날은 웬, 처음 보는 청년 하나가 초시의 앞을 가리며 나타났다. 그는 딸의 청년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손에 단 1전도 넣지 않았고 꼭 그 청년이 나서 돈을 쓰며 처리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팩 나오는 노여움을 참을 수가 없었으나 며칠 밤을 지내고 나니, 적어도 3000원의 순이익이 5, 6만 원은 될 것이라, 1만 원 하나야 어디로 가랴 하는 타협이 생기어서 안 초시는 으실으실 그 이를테면 사위 녀석 격인 청년의 뒤를 따라나섰다.
1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3000원어치 땅을 사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가 축항이 된다는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龍塘浦)와 다사도(多獅島)에는 땅 값이 30배가 올랐느니 50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캄캄 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하였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돈을 쓸 때는 1원짜리 한 장 만져도 못봤지만 벼락은 초시에게 떨어졌다. 서너 끼씩 굶어도 밥 먹을 정신이 나지도 않았거니와 밥을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 밑 도리듯 하는 건가?’
탄식할 뿐이었다. 밥보다는 술과 담배가 그리웠다. 물론 안경 다리는 그저 못 고치었다. 그러니 이제는 50전짜리는커녕 단 10전짜리도 얻어볼 길이 없다.
추석 가까운 날씨는 해마다의 그때와 같이 맑았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 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 빛이 눈이 부시다. 안 초시는 이번에도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매 끝을 불거나 떨지는 않았다. 고요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 더러운 소매로 닦았을 뿐이다.
여름이 극성스럽게 덥더니, 추위도 그럴 징조인지 예년보다 무서리가 일찍 내리었다. 서 참의가 늘 지나 다니는 식은 사택(植銀舍宅)에는 울타리가 넘게 피었던 코스모스들이 끓는 물에 데쳐 낸 것처럼 시커멓게 무르녹고 말았다.
참의는 머리가 띵! 하였다. 요즘 와서 울기 잘하는 안 초시를 한 번 위로해주려, 엊저녁에는 데리고 나와 청요리집으로, 추어탕집으로, 새로 두 점을 치도록 돌아다닌 때문 같았다. 조반이라고 몇 술 뜨기는 했으나 혀도 그냥 뻑뻑하다. 안 초시도 그럴 것이니까 해는 벌써 오정때지만 끌고 나와 해장 술이나 먹으리라 하고 부지런히 내려와 보니, 웬일인지 복덕방이라고 쓴 팻말이 아직 내걸리지 않았다.
“이 사람 봐…… 어느 땐 줄 알고 코만 고누…….”
그러나 코 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닫이를 밀어젖뜨린 서 참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안 초시의 입에는 피, 얼굴은 잿빛이다. 방 안은 움 속처럼 음습한 바람이 휭 끼친다.
“아니……?”
참의는 우선 미닫이를 닫고 눈을 비비고 초시를 들여다보았다. 안 초시는 벌써 아니요, 안 초시의 시체일 뿐, 둘러다 보니 무슨 약병인 듯한 것 하나가 굴러져 있다.
참의는 한참 만에야 이 일이 슬픈 일인 것을 깨달았다.
“허…….”
파출소로 갈까 하다 그래도 자식한테 먼저 알려야겠다 하고 말만 듣던 그 안경화 무용 연구소를 찾아가서 안경화를 데리고 왔다. 딸이 한참 울고 난 뒤다.
“관청에 어서 알려야지?”
“아니에요, 하지 마세요.”
딸은 펄쩍 뛰었다.
“하지 말라니?”
“저…….”
“저라니?”
“제 명예도 좀……”
하고 그는 애원하였다.
“명예? 안 될 말이지, 명예 생각하는 사람이 아빌 저 모양으로 세상 떠나게 해?”
“…….”
안경화는 엎드려 다시 울었다. 그러다가 나가려는 서 참의의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절 살려주세요.”
소리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다.
“그럼, 비밀은 내가 지킬 테니 나 하자는 대로 할까?”
“네.”
서 참의는 다시 앉았다.
“부친 위해 보험 든 거 있지?”
“네, 간이 보험이에요.”
“무슨 보험이든…… 얼마나 타게 되나?”
“380원이요.”
“부친 위해 들었으니 부친 위해 다 써야지?”
“그럼요.”
“에헴 그럼…… 돌아간 이가 늘 속 셔츠를 입고 싶어 했어. 상등급 털 셔츠를 사다 입히고 그 위에 진품으로 수의 일습 구색 맞춰 짓게 하고…… 선산이 있나, 묻힐 데가?”
“웬 걸요, 없어요.”
“그럼 공동 묘지라도 특등지로 넓직하게 사고…… 장례식을 장하게 해야 말이지 초라하게 해버리면 내가 그저 안 있을 거야. 알아들어?”
“네”
하고 안경화는 그제서야 핸드백을 열고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았다.
안 초시의 소위 영결식(永訣式)이 그 딸의 연구소 마당에서 열렸다.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갔다. 박희완 영감이 무얼 잡혀서 가져왔다는 부의(賻儀) 2원을 서 참의가
“장례비가 넉넉하니 자네 돈 그 계집에게 줄 거 없네”
하고 우선 술집에 들러 거나하게 곱배기들을 한 것이다.
영결식장에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요, 무용가 안경화를 보아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느라고 끽끽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하였다. 그 뒤를 따라 한 20명이 관 앞에 와 꾸벅거렸다. 그리고 무어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하였을 때,
“에헴”
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 참의도 한 마디 없을 수 없다는 듯이 나섰다. 향을 한 움쿰이나 집어넣어 연기가 시커멓게 치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 번 쓸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헴”
하더니 조사(弔辭)를 하였다.
“나 서 참의일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면 이 호살 해보겠나? 이전 안경 다리 고칠 걱정도 없고…… 아무튼……”
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
“이 사람 취했네그려”
하며 서 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하였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 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보았으나
“으흐흑……”
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으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193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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