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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김진규의 봄날의 오언율시 8편(9首)의 구조적‧문학적 고찰>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미 앞서 거제도 유배객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거제유배문학 중에, 초가을(新秋·早秋) 오언율시(五言律詩) 6편을 고찰한 바가 있다. 이에 이번 편에는 그 뒤를 이어 김진규(金鎭圭)의 봄날(新春·春日)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오언율시(五言律詩) 8편(9首)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의 봄철의 시(詩) 8편은 숙종 시기 치열한 당쟁 속에서 유배와 소외를 겪었던 유배 문인의 내면을 최고조로 보여주는 명작들이다. 지금부터는 이 8편의 구조적 특징과 시의 정서, 그리고 김진규 오언율시의 전반적인 문학적 특징 등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먼저(1) 김진규의 봄날의 한시 8편(9수)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줄거리와 정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어느덧 남쪽 변방의 외로운 유배지에 또다시 화사한 봄이 찾아왔다. 눈앞의 들판에는 파릇파릇 풀이 돋아나고 꽃이 만발하며, 따스한 햇볕 아래 새들이 새롭게 지저귀는 등 온 대자연이 생명력과 기쁨으로 가득 차 흐른다. 시인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병들고 늙어가는 몸으로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본다. 찬란한 봄 풍경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불효의 안타까움과 임금이 계신 한양 조정을 향한 그리움을 더욱 짙게 자극한다. 시인은 기약 없는 유배 생활과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막막한 현실에서 잠시 절망하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선비로서의 지조와 의지를 다지며 자연 속에서 정신적인 평온을 얻고자 노력한다.“
두 번째(2) 작품들에 담긴 공통적 정서가 있다. 첫째① 절해고도(絶海孤島)의 고독과 절망감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화사한 봄날의 풍경과 대조적으로, 자신은 멀고 먼 변방에서 병들고 가난하게 늙어간다는 사실에서 오는 쓸쓸함과 자기연민이 깔려 있다. 삶의 막바지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고 느끼는 절망감을 드러냈다. 둘째② 간절한 효심(孝心)과 연군지정(戀君之情)이다. 봄풀을 키워내는 햇볕을 보며 부모님의 가없는 은혜를 떠올리고,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임금이 계신 조정을 그리워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식과 신하로서의 애타는 정서가 녹아 있다. 셋째③ 역경을 극복하려는 선비의 강인한 의지와 지조를 담았다. 현실은 비록 처절할지라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다. 시련(곤궁과 병고)을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담금질하는 기회로 삼으며, 계절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꼿꼿한 선비 정신을 보여준다. 넷째④ 안분지족(安分知足)과 철학적 달관이다. 오랜 유배 생활 속에 주변의 바다와 산을 오랜 벗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가난하게 살지언정 대자연이 주는 맑은 기운을 통해 정신적인 즐거움을 얻으며 마음의 평화(安分知足)를 찾으려는 초연한 태도가 돋보인다. 결국 김진규의 봄날 연작 한시는 이처럼 외로운 현실의 슬픔과 이를 정신적으로 초월하려는 선비의 기개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 [김진규(金鎭圭)의 봄날 오언율시 8편(9首)의 구조적·문학적 특징과 시편별 정서]
이번에 소개하는 오언율시(五言律詩) 8편(9首)은 죽천 김진규가 거제도 유배 시절(1689~1694년)에 고단한 귀양살이 심경을 '봄'이라는 매개체로 투영한 명작들이다. 이에 이 작품들의 구조적·문학적 특징과 시편별 정서를 비교해 살펴보자.
첫 번째로(1) 구조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다. 먼저① 전형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미학이다. 율시의 전반부(수련·함련)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봄날의 자연 경물(풀, 꽃, 새, 따스한 햇볕)을 시각적·청각적으로 먼저 묘사한다. 이어 후반부(경련·미련)에서는 이를 시인 자신의 비극적 처지(유배, 병고, 가난, 단절)와 연결하여 내면의 정서를 표출했다. 다음으로② 대구(對句)를 통한 정서의 극대화다. 율시의 핵심인 함련(3, 4구)과 경련(5, 6구)에서 철저한 대구를 구사한다. 특히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과 인간(시인)의 유한함·무기력함을 대조적인 시어로 나란히 배치하여 슬픔과 고독을 시각적으로 도드라지게 만든다.
두 번째로(2) 문학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다. 먼저① 물아(物我)의 역설적 대비와 동화다. 단순히 자연을 찬미하는데 그치지 않고, ‘만물의 소생(봄)’과 ‘나의 쇠락(유배·병고)’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거나(「춘상」, 「춘회」), 오랜 유배 생활 끝에 주변의 바다와 산이 나와 친해졌다는 식의 동화(物我一體)를 시도했다(「춘일」). 다음으론② 전고(典故)의 세련된 수용이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시나 위응물(소주자사)의 풍격, 『시경』의 구절 등을 작품 속에 녹여내어, 개인의 유배 슬픔을 선비들의 보편적인 정신적 수양과 지조의 영역으로 승화시켰다.
세 번째로(3) 김진규의 봄날 한시 8편(9수)의 정서를 비교해 보자. 이 작품들은 모두 '봄'을 배경으로 하지만, 시인이 마주한 감정의 결은 조금씩 다르다.
① 「감춘(感春)」 (봄을 느끼며)에선, 봄의 도래에 대한 서글픔과 연군(戀君)의 정(情)이다. 만물은 때를 맞춰 피어나는데, 자신은 귀양지에서 늙어가는 처지를 한탄하며 임금과 조정을 향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② 「사춘(謝春)」 (봄을 보내며)에선, 시간의 무상함과 은거의 염원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봄을 배웅하며, 정치적 풍파를 뒤로하고 전원으로 돌아가 안식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했다.
③ 「춘일감회 효소주」(봄날의 감회, 위응물을 본받아)에선, 맑고 담담한 고독이다. 당나라 시인 위응물(위소주)의 한적하고 맑은 시풍을 본받아, 유배지의 고독을 담담하고 은연하게 다스리는 선비의 내면을 표현했다.
④ 「견춘초유감」(봄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에선, 간절한 효심과 양육의 은혜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자라는 봄풀을 보며, 고향에 계신 부모님(고당)의 가없는 은혜를 생각하고 보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읊었다.
⑤ 「신춘와병」(새봄에 병으로 누워)에선, 시련을 이겨내는 강인한 지조다. 병들고 가난한 처지에서 새해를 맞았으나, 이 곤궁함을 기회 삼아 내면의 의지(일촌철)를 더욱 단단하게 단련하겠다는 기개를 보인다.
⑥ 「춘일」(봄날)에선, 안분지족(安分知足)과 자연 친화다. 오랜 유배로 이제는 바다와 산이 나를 알아본다며, 곤궁한 삶 속에서도 봄 경치가 주는 정신적 즐거움을 누린다.
⑦ 「춘상」(봄을 감상하며)에선, 비장한 철학적 달관이다. 꽃이 만발한 봄날에 "내 마음은 이미 죽은 듯하다"라며 고독의 극치를 달렸다가, 자신은 자연물과 달라 계절의 영고성쇠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⑧ 「춘회」2수 (봄날의 소회)에선, 절망감과 외로움의 극치다. 유배지에 갇혀 날개가 꺾인 솔개(墮鳶) 같은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고, 삶의 막바지에서 헤어날 길(無津)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을 가장 솔직하게 토로했다.
*결국 저자 김진규에게 봄은 단순히 아름다운 계절이 아니라, 자신의 꺾인 신세를 비추어보는 거울이자 그 속에서 효심, 지조, 달관을 길어 올리는 정신적 수양의 장(場)이었다.
● 이에 이번 지면에는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의 오언율시(五言律詩) ①「감춘(感春)」, ②「사춘(謝春)」, ③「춘일감회 효소주(春日感懷 效蘇州)」, ④「견춘초유감(見春草有感)」, ⑤「신춘와병(新春卧病)」, ⑥「춘일(春日)」, ⑦「춘상(春賞)」, ⑧「춘회(春懷)」 2수(首) 등 총 8편(9首)를 소개한다.
1) 다음 ‘眞’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감춘(感春)」 ‘봄을 느끼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고향을 떠나 타향(유배지)에서 맞이하는 찬란한 봄날의 풍경과, 그와 대조되는 나그네의 깊은 슬픔을 노래한 시다. 화자는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봄의 자연을 보며 자신의 처량한 처지를 더욱 강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감춘(感春)」**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愁眼難收淚 시름겨운 눈에는 눈물 거두기 어렵고
他鄕忍見春 타향에선 차마 봄을 마주하기 어렵구나.
花濃禽語軟 꽃은 흐드러지고 새소리는 부드러우며
草暖蝶飄頻 풀밭이 따스하니 나비는 자주 하늘거린다.
物色乾坤滿 봄기운은 온 천지에 가득 차 있는데
離懷歲月新 떠나온 시름은 세월이 갈수록 새로워지네.
欣欣動植樂 기뻐하는 저 모든 동식물의 즐거움이
可復及羇人 어찌 다시 이 외로운 나그네에게 미치겠는가.
[주1] 물색(物色) :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경치나 기운을 뜻하며, 여기서는 찬란한 봄 풍경을 말한다.
[주2] 이회(離懷) : 고향이나 임(임금)을 떠나온 외롭고 슬픈 이별의 마음.
○ 내용인즉, 이 시는 선경후정(先景後情, 앞에는 풍경을 제시하고 뒤에는 정서를 표현함)의 구조를 변형하여,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과 화자의 슬픈 내면을 팽팽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1~2구]에선, 시는 시작하자마자 눈물과 시름(愁眼)으로 가득 찬 화자의 눈을 보여준다. 온 세상에 봄이 왔지만,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맞이하는 봄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차마 보기 힘든(忍見)' 고통으로 다가온다. [3~4구]에선, 대조적으로 3구와 4구의 봄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꽃은 짙게 피어났고, 새들은 부드럽게 지저귀며, 따뜻한 풀밭 위로 나비가 날아다닌다. 시각(꽃, 나비)과 청각(새소리), 촉각(따스함)이 어우러진 완벽한 봄의 표상이다. [5~6구]에선, 천지에 봄의 물색은 가득 찼지만, 역설적으로 고향을 떠나온 화자의 '이별의 정(離懷)'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기는커녕 날마다 새로워진다. 자연의 순환(봄)과 인간의 고통(유배)이 대비된다. [7~8구]에선, 대비가 극에 달한다. 봄을 맞아 '흔흔(欣欣, 기쁘고 활기찬 모양)'하게 즐거워하는 세상 모든 동식물과 달리, 외로운 나그네(羇人)인 자신은 그 자연의 즐거움에 결코 동참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토로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결국 이 시는 자연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함으로써 화자가 가진 '고독과 슬픔'을 더욱 깊고 처절하게 부각한 명시다.
2) 다음 ‘灰’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사춘(謝春)」 ‘봄에 감사하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앞서 소개한 「감춘(感春)」과 같은 공간(유배지)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봄을 대하는 화자의 정서가 전혀 다르게 표현된 작품이다. 「감춘」이 찬란한 봄날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슬퍼했다면, 「사춘」은 외로운 처지임에도 자신을 찾아와 준 봄의 생명력에 위로를 받고 감사(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사춘(謝春)」**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孤客誰相顧 외로운 나그네를 그 누가 돌아보겠는가만
新春獨遠來 새 봄은 홀로 먼 길을 나를 찾아와 주었네.
窮荒還不陋 이 거칠고 궁벽한 변방도 도리어 누추하지 않으니
景物漸看催 자연의 경치들이 어느새 재촉하듯 피어남을 보네.
蜂採花鬚落 벌이 꿀을 따니 꽃수술이 떨어지고
鸎呼柳眼開 꾀꼬리가 지저귀며 버들눈을 틔우는구나.
厚情無以謝 봄이 베푼 이 두터운 정을 달리 보답할 길 없어
佳句爲頻裁 좋은 시구를 지어 자주 바치노라.
[주1] 궁황(窮荒) : 멀고 거친 변방의 땅, 화자가 머물고 있는 척박한 유배지.
[주2] 류안(柳眼) : 봄에 처음 돋아나는 버드나무 새순을 눈(眼)에 비유한 시적 표현
○ 내용인즉, 이 시는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발견한 자연의 포용력과 이에 대한 시인의 문학적 보답을 노래하고 있다. [1~2구]에선, 화자는 자신을 세상에서 잊힌 '외로운 나그네(孤客)'로 인식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적막한 곳이지만, '새 봄(新春)'만큼은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홀로 자신을 찾아와 주었다고 표현한다. 봄을 의인화하여 자신에게 찾아온 유일한 손님으로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3~4구]에선, 유배지는 본래 '궁황(窮荒)'이라 불릴 만큼 거칠고 쓸쓸한 곳이다. 하지만 봄이 찾아오자 이 척박한 공간조차 '도리어 누추하지 않게(還不陋)' 느껴진다. 겨울의 황량함을 밀어내고 자연의 경치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역동적인 모습을 관조하고 있다. [5~6구]에선, 벌이 꽃을 찾아 날아들어 꽃수술이 떨어지는 모습(시각)과, 꾀꼬리가 울어대며 마치 버들눈을 깨워 꽃을 피우는 듯한 모습(청각+시각)을 대칭적으로 선명하게 그렸다. 자연이 완전히 활기를 되찾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7~8구]에선, 자신처럼 버림받은 처지의 인간에게도 차별 없이 아름다움을 선사한 봄의 마음을 '두터운 정(厚情)'이라 느낀다. 물질적으로 보답할 길이 없는 유배객이기에, 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방법인 '좋은 시(佳句)'를 짓는 것으로 봄에게 감사와 인사를 건넨다. 결국 「감춘」이 봄의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의 고독을 극대화했다면, 「사춘」은 봄의 아름다움을 통해 고독을 치유하고 절망을 희망과 문학적 승화로 바꾸어 낸 따뜻한 명시다.
3) 다음 ‘刪’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춘일감회 효소주(春日感懷 效蘇州)」 ‘봄날의 감회, 소주(蘇州)를 본떠 짓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따스한 봄날, 고향과 가족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제목의 '효소주(效蘇州)'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소주자사(蘇州刺史) 위응물(韋應物 735~786)의 시풍을 본받아(效) 지었다는 뜻이다. 위응물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애절한 정서가 잘 녹아 있다.
**「춘일감회 효소주(春日感懷 效蘇州)」**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悠悠對春日 아득히 먼 마음으로 봄날을 마주하니
惻惻念鄕關 슬프고 슬프게 고향 땅이 생각나네.
芳樹漢城陌 한양의 거리에는 꽃나무가 무성할 것이고
蔓草廣陵山 광릉의 산에는 풀덩굴이 우거졌겠지.
兩地空遠夢 두 곳 모두 부질없이 먼 꿈속에서나 맴도는데
幾日定生還 어느 날에나 정녕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人生風裡花 인생이란 바람 속에 흔들리는 꽃과 같아서
榮悴斯須間 번성하고 시드는 것이 잠깐 사이에 달렸구나.
[주1] 향관(鄕關) : 고향. 여기서는 화자가 살던 한양(서울)을 의미한다.
[주2] 광릉산(廣陵山) :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조선 세조의 능) 주변의 산. 김진규의 가문 선영이나 연고지가 있던 곳으로, 가족들의 자취가 남은 공간을 의미한다.
[주3] 양지(兩地) : 한양과 광릉, 즉 화자가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 하는 두 고향 땅.
[주4] 영췌(榮悴) : 꽃이 피어 화려한 것(榮)과 시들어 말라 죽는 것(悴)을 뜻하며, 인간의 부귀영화와 고난(유배)을 비유함.
[주5] 사수간(斯須間): 아주 잠깐의 시간, 찰나를 의미함.
○ 내용인즉, 이 시는 유배객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인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봄날의 경치를 보며 느끼는 '인생무상'이 결합해 있다. [1~2구]에선, 봄날의 해는 길고 아득하다(悠悠). 온 세상이 따뜻해지는 봄이 왔지만, 화자의 마음은 오히려 슬픔과 통증(惻惻)으로 가득하다. 그 이유는 멀리 떨어진 고향(鄕關)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3~4구]에선, 자신이 머무는 유배지뿐만 아니라, 자신이 떠나온 '한양의 거리(漢城陌)'에도 꽃나무가 화창하게 피었을 것이고, 조상과 가족이 있는 '광릉의 산(廣陵山)'에도 푸른 풀들이 자라나고 있을 것임을 먼 곳에서 짐작해 봅니다. 가보지 못하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고향의 봄 풍경이다. [5~6구]에선, 한양과 광릉이라는 두 곳(兩地)은 너무나 멀어 오직 '꿈속(遠夢)'에서나 부질없이 오갈 뿐이다. 유배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처지에서 시인은 "도대체 어느 날에야 내가 정녕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定生還)"라며 깊은 탄식을 뱉어낸다. [7~8구]에선, 마지막으로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바람 속에 피어 있는 꽃(風裡花)'에 비유한다. 어제는 조정의 높은 관직에서 영화(榮)를 누렸으나, 오늘은 바람 한 번에 유배지에 떨어져 초라하게 시들어가는(悴) 자신의 신세가 마치 봄꽃의 운명과 같다고 느낀다. 이 모든 변화가 고작 '잠깐 사이(斯須間)'에 일어났다는 깨달음은 깊은 허무감을 남긴다. 결국 이 시는 앞서 소개한 「감춘」, 「사춘」과 연결되면서도, 고향에 대한 구체적인 지명(한성, 광릉)을 언급하여 향수(鄕愁)의 실체를 더 명확히 드러내고, 나아가 권력의 무상함과 인생의 유한함을 절절하게 탄식한 명작이다.
4) 다음 ‘陽’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견춘초유감(見春草有感)」 ‘봄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봄날의 따스한 햇볕을 받아 자라나는 봄풀을 바라보며,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의 어머니(부모님)를 그리워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는 애타는 효심을 노래한 작품이다.
**「견춘초유감(見春草有感)」**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杲杲春陽遍 밝고 밝은 봄 햇살이 두루 비치니
茸茸野草長 풀이 무성하게 들판에 자라나네.
芽柔含暖煦 부드러운 싹은 따스한 기운을 머금었고
葉茂汎晴光 무성한 잎은 맑은 빛 속에 넘실거리네.
和澤那能報 따사로운 (햇볕의) 은택을 어찌 다 갚으리
芳心秪不忘 꽃다운 마음(봄풀의 마음)으로 다만 잊지 못할 뿐.
離人歸未得 떠나온 이 몸은 아직 돌아가지 못해
感歎戀高堂 감탄하며 고당(부모님)을 그리워하네.
[주1] 고고(杲杲) : 햇빛이 매우 밝은 모양
[주2] 용용(茸茸) : 풀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무성하게 돋아나는 모양을 묘사한 의태어.
[주3] 화택(和澤)과 난후(暖煦) : 봄날의 따뜻한 은혜와 햇볕. 시의 맥락에서는 '부모님의 크고 가없는 사랑(양육의 은혜)'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비유다.
[주4] 방심(芳心) : '꽃다운 마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햇볕을 향해 피어나는 '봄풀의 마음'이자, 부모님을 향한 '자식의 효심'을 뜻함.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명한 시 「유자음(遊子吟)」에 나오는 "누가 말했나, 한 마디 풀 같은 마음(寸草心)으로 석 달 봄날의 햇볕(三春暉) 같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 한다.
[주5] 고당(高堂) : 높이 지은 집을 뜻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부모님(특히 어머니)'을 높여 부르는 말.
○ 내용인즉, 이 시는 전반부(1~4구)의 시각적 자연 묘사와 후반부(5~8구)의 내면적 정서 표출이 긴밀하게 연결된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봄 풍경은 매우 따스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밝은 햇살 아래 부드러운 풀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은 지극히 평화롭다. 그러나 시인은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 처지와 대비되는 슬픔을 발견한다. 봄풀은 대지의 따스한 햇볕을 받아 아무런 제약 없이 자라나지만, 자신은 고향을 떠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햇볕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풀의 마음(芳心)처럼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은혜(和澤)를 잊지 않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고향에 돌아가 직접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절절한 그리움이 '감탄연고당(感歎戀高堂)'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5) 다음 ‘陽’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신춘와병(新春卧病)」 ‘새봄에 병으로 누워’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새해, 새봄을 맞이했음에도 타향에서 병을 얻어 누워 지내야 하는 처량한 처지와 가난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역경을 기회 삼아 마음을 더 굳세게 단련하겠다는 선비로서의 강인한 의지와 기개를 노래한 작품이다.
**「신춘와병(新春卧病)」**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歲往人猶滯 세월은 흘러가는데 사람은 여전히 머물러 있고
春生體未强 봄은 찾아왔으나 몸은 아직 건강하지 못하네.
空囊支旅食 텅 빈 주머니로 나그네 먹거리를 겨우 버티며
伏枕度流光 베개에 엎드린 채 흘러가는 세월을 보내누나.
有病何須惡 병이 있다고 해서 어찌 싫어만 하겠는가
居貧固是常 가난하게 사는 것은 본래 선비의 상도(常道)인 것을.
窮來一寸鐵 곤궁함이 닥쳐오니 (내 마음속) 한 치의 철을
淬礪要逾剛 담금질하고 갈아내어 더욱 굳세게 만들고자 하네.
[주1] 인유체(人猶滯) :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歲往) 새해가 되었는데,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타향(유배지)에 묶여 있는 처지를 뜻한다.
[주2] 복침(伏枕) : 베개를 베고 엎드려 있다, 병으로 누워 지내는 와병 상태.
[주3] 거빈고시상(居貧固是常) : 공자가 『논어(論어)』 위령공 편에서 말한 ‘군자고궁(君子固窮, 군자는 모름지기 궁함을 굳세게 견딘다)’의 정신과 연결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선비로서 당연히 겪고 지켜야 할 도리이므로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는 초연한 태도다.
[주4] 일촌철(一寸鐵) : ‘한 치의 쇠붙이’, 여기서는 시인의 내면에 품고 있는 ‘선비의 지조’나 ‘단단한 의지’를 비유함.
[주5] 수려(淬礪) : 쇠를 불에 달구어 물에 담그는 ‘담금질(淬)’과 숫돌에 ‘갈고닦는 것(礪)’을 말함. 즉,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정신을 단련하는 행위를 뜻함.
○ 내용인즉, 이 시는 크게 전반부(1~4구)의 처량한 현실 인식과 후반부(5~8구)의 정신적 초극과 의지로 나뉜다. 새봄이 오면 만물이 활기를 띠어야 마땅하지만, 시인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타향에 머물러 있고(1구), 봄의 생명력과 대조적으로 몸은 병들었으며(2구), 주머니는 비어 나그네살이가 고달프고(3구), 누워서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다(4구). 신년의 화사함과 대비되는 시인의 고독과 곤궁함이 전반부에 씁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5~6구]에서 "병과 가난은 선비에게 늘 있는 일"이라며 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더니, 마지막 [7~8구]에서, 처지가 곤궁해질수록(窮來) 내 마음속의 작은 철 한 조각(一寸鐵)을 시련이라는 불과 숫돌에 담금질하고 갈아내어(淬礪) 더욱 단단한 강철로 만들겠다(要逾剛)고 다짐한다. 병고와 가난이라는 외부적 시련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정신적 단련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선비의 꼿꼿한 기상과 의연함이 돋보이는 명작이다.
6) 다음 ‘眞’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춘일(春日)」 ‘봄날’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오랜 타향 생활(유배 생활) 속에서 다시 맞이한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조망하며, 비록 처지는 곤궁할지라도 자연이 주는 위로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려는 선비의 태도를 담아낸 작품이다.
**「춘일(春日)」** 1691년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迢遰長爲客 멀리서 와서 오랫동안 나그네 신세로 지내며
慇懃再見春 어느덧 이곳에서 다시 봄을 맞이하네.
海山應識我 바다와 산은 이제 나를 알아볼 것이요,
花竹又宜人 꽃과 대나무는 또 사람 마음에 꼭 맞는구나.
日暖波光媚 날이 따스하니 물결치듯 반짝이는 빛이 아름답고
天晴野色新 하늘이 맑으니 들판의 풍경이 새롭구나.
窮居亦有樂 곤궁하게 살아도 또한 즐거움이 있으니
時物况怡神 하물며 계절의 경물이 내 정신을 기쁘게 하누나.
[주1] 초체(迢遰) : 길이 아득하게 먼 모양.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주2] 의인(宜人) : 사람 마음에 마땅하다, 사람을 기쁘게 해준다는 뜻. 꽃과 대나무가 시인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3] 파광미(波光媚) :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의 빛이 곱고 아름답다는 뜻.
[주4] 시물(時物) : 철따라 변하는 자연의 경치나 만물. 여기선 화사한 봄날의 풍경.
○ 내용인즉, 이 시는 고향을 떠나 외롭게 지내는 나그네의 처지(1~2구)에서 시작하여, 자연과의 친화(3~6구)를 거쳐, 곤궁함 속에서도 정신적 즐거움을 찾는 달관의 경지(7~8구)로 시상이 전개된다. 시인은 멀고 먼 타향에서 어느덧 두 번째 봄을 맞이했다. '장위객(長爲客)'이라는 표현에서 묻어나는 쓸쓸함도 잠시, 시인의 시선은 주변의 자연으로 향한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바다와 산은 이제 자신을 알아봐 주는 오랜 친구 같고, 마당가의 꽃과 대나무는 지친 마음을 다정하게 위로해 준다. [5~6구]에선, 봄날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시각적으로 펼쳐진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波光)과 맑은 하늘 아래 새롭게 돋아나는 들판의 색채(野色)는 나그네의 어두운 마음에 밝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마지막 [7~8구]에선 시인은 선비로서의 긍지를 드러냈다. 비록 처한 환경은 '궁거(窮居)', 즉 유배로 인해 곤궁할지라도 정신적인 즐거움(樂)은 잃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평소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봄의 경물들이 내 정신을 이토록 맑고 기쁘게(怡神) 해주니 더할 나위가 없다는 안분지족의 태도로 시를 매듭지었다.
7) 다음 ‘虞’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춘상(春賞)」 ‘봄을 감상하며’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온 세상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날, 생명력 넘치는 대자연의 풍경과 대조적으로 마치 죽은 것처럼 가라앉은 외로운 시인의 내면(감정)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작품이다. 나아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섭리를 비교하며 슬픔을 초월하려는 철학적 달관을 보여준다.
**「춘상(春賞)」**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擧目迷春賞 눈을 들어 둘러보아도 봄 경치 감상에 아득하기만 하고
行吟賴杖扶 길을 걸으며 시를 읊조릴 땐 지팡이에 겨우 의지하네.
草生心已死 풀들은 돋아나는데 내 마음은 이미 죽은 듯하고
花滿意還孤 꽃들은 만발했는데 내 뜻은 도리어 외롭기만 하구나.
欝欝時方好 울창하고 무성하여 계절은 바야흐로 좋은데
欣欣物各娛 기쁘고 활기차게 만물은 저마다 즐거워하네.
自知非卉木 내 몸이 풀이나 나무가 아님을 스스로 아노니
那復變榮枯 어찌 다시 (자연처럼) 피고 지는 영고성쇠를 따르겠는가.
[주1] 미춘상(迷春賞) : 봄 경치를 감상하려 하나 마음이 어지럽고 아득하여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상태.
[주2] 뢰장부(賴杖扶) : 지팡이(杖)의 도움(扶)에 의지한다(賴)는 뜻, 병고나 유배 생활 중의 지친 심신을 암시한다.
[주3] 울울(欝欝)과 흔흔(欣欣) : 봄날의 자연이 푸르고 무성한 모양, 그리고 만물이 기쁨에 차서 활기차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묘사한 의태어다.
[주4] 영고(榮枯) : 초목이 우거지는 것(榮)과 시들어 말라 죽는 것(枯)
○ 내용인즉, 이 시는 앞서 감상하셨던 「춘일(春日)」이 봄날의 자연에서 위로를 얻었던 것과 달리, 자연의 풍요로움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고독과 슬픔이 더 깊어지는 역설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세상은 온통 기쁨(欣欣)과 무성함(欝欝)으로 가득 차서 저마다 즐거워하고 있지만, 시인은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활짝 피어난 꽃과 풀은 시인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죽은 듯한 마음'과 '외로움'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대비체로 작용한다. 그러나 마지막 [7~8구]에서 "나는 저 풀과 나무(卉木) 같은 식물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풀과 나무는 봄이 오면 피어났다가 가을이 되면 시드는 영고(榮枯)의 법칙을 정직하게 따르지만, 인간인 자신은 그러한 자연의 물리적 순환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즉, 지금 당장 내 처지가 시든 나무처럼 곤궁하고 외로울지라도, 그것은 봄이 왔다고 해서 억지로 기뻐해야 하는 초목의 삶과는 다르다는 선비로서의 주체적인 철학적 달관을 보여주며 시를 마무리했다.
8) 다음 ‘眞’과 ‘先’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춘회(春懷)」 ‘봄날의 소회’ 연작 2수(首)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이 두 편의 시는 화사한 봄의 경치를 바라보면서도, 고향과 임금에 대한 그리움, 유배지에서의 노쇠해가는 처지, 그리고 기약 없는 귀양살이에 대한 쓸쓸함과 절망감을 깊이 있게 노래했다.
**「춘회(春懷)」**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浦樹枝枝變 갯가 나무들은 가지마다 (푸르게) 변해가고
園禽語語新 동산의 새들은 지저귀는 소리마다 새롭구나.
春天千里目 봄 하늘 바라보며 천 리 밖(고향과 한양)을 멀리 눈에 담는데
炎海百年身 이 더운 바닷가(유배지)에서 평생의 이 몸이 늙어가는구나.
謾憶西疇事 부질없이 서쪽 이랑(고향의 전원)의 농사일을 추억하며
長爲北戶民 오랫동안 북호(남쪽 변방의 오지)의 백성이 되어 있네.
流光那有繫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매셔 묶어둘 수 있으랴
末路轉無津 삶의 막바지(인생의 말로)에 갈수록 나루터(헤어날 길)가 없구나.
[주1] 서주(西疇) : '서쪽 이랑' 혹은 '고향의 농토'를 뜻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지으며 안온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유함.
[주2] 북호(北戶) : 해가 북쪽에서 비치는 먼 남쪽 변방. 자신이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끝 유배지에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주3] 무진(無津) : 나루터가 없다는 뜻으로, 현실적인 곤경에서 벗어날 구원의 길이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심경을 비유한 표현이다.
又 (其二)
山海長深阻 산과 바다는 길게 가로막혀 아득히 깊고
光陰幾換遷 세월은 몇 번이나 바뀌고 흘러갔던가.
春生久客裡 오랫동안 나그네로 지내는 중에 또 봄이 찾아왔고
日落獨吟邊 해가 질 무렵 홀로 시를 읊조리는 곁에 서 있네.
北極遙歸鴈 저 멀리 북극(한양)을 향해 돌아가는 기러기 바라보며
南天暗墮鳶 남쪽 하늘 아래선 솔개가 아득히 떨어져 내리는구나.
羈心與時物 나그네의 외로운 마음과 철따라 변하는 경물이 어우러져
索寞又今年 올해도 또다시 쓸쓸하고 삭막하게 흘러가누나.
[주1] 심조(深阻) : 산이나 바다 등이 가파르고 깊게 가로막아 왕래하기 어려운 상태.
[주2] 북극(北極) : 북극성을 뜻하지만, 한시에서는 대개 임금이 계신 곳(한양/조정)을 상징한다.
[주3] 타연(墮鳶) : 솔개가 떨어져 내린다, 『시경』의 '솔개는 하늘을 날고 고기는 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는 만물의 자유로운 소생과 대조되어, 유배지에 갇혀 날개가 꺾인 듯 무기력하게 추락해 있는 시인의 초라한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주4] 기심(羈心) :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의 외롭고 서글픈 마음.
○ 내용인즉, 이 시는 앞서 감상하셨던 시들에 비해 유배객으로서의 슬픔과 막막함이 가장 짙게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두 수(首) 모두 봄이 와서 나뭇가지가 푸르게 변하고 새들이 새롭게 지저귀는 대자연의 생동감(其一)을 보여주거나, 계절이 또 한 번 바뀌는 시간의 흐름(其二)을 묘사하지만, 이는 오롯이 시인의 '외로움'과 '절망'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쓰였다. 특히 북쪽(한양)으로 돌아가는 기러기와 남쪽 바닷가로 툭 떨어지는 솔개를 대비한 구절이나, 인생의 막바지에서 헤어날 구멍(나루터)이 없다고 한 탄식은 시인이 겪었던 정치적 좌절과 유배 생활의 깊은 고독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슬픔을 의연하게 이겨내려던 다른 시들에 비해, 이 연작시는 인간 김진규가 가졌던 솔직하고 쓸쓸한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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