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하우스 5회 (2~3화). 너 자체가 바로 폭탄이다! 미국 꼬맹이 휴. 2024 10 03
내 룸메이트 광고를 보고 다음과 같은 메일이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휴에요.
미국에서 온 언어학생입니다. 지금 영등포구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 수업을 다니고 있어요. 저는 김가적께서 한국에 만든 콤퓨타를 드릴 수 있어요, 대답하십시오. (외국인이 잘 못 말한 것 그대로 옮겨 이상함)
유일하게 한국어로 보내온 메일이었다. 컴퓨터를 준다는 건 무쓴 뜻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온 휴는 키가 작고 귀여운 십대 후반의 미국 소년이었다. 휴의 첫인상은 상당히 독특했다. 발목까지 닿은 까만 바바리에 역시나 어울리지 않는 까만 배낭을 메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한국에 왔어요. 지금… 연세어학당 다니고 있는데 한국에 있는 대학에 다닐 거예요.”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휴는 영등포에 있는 어느 집에 서 몇 달 동안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다음 달부터 문화센터에 나가기 때문에 자신을 챙겨주지 못하게 되어서 새집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방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들어오자마자 자기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음…. 아주 깨끗하고 좋아요. 한 달에 5달러 어때요?”
나는 그가 하루에 5달러를 한국말이 서툴러 잘못 말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한 달에 150달러냐고 물었다.
“그럼, 150 dollars a month?”
“No, 한 달에 5달러요.”
5달러면 당시 우리 돈으로 7,500원 정도였다. 도대체 이건 무슨 경우인지 황당했지만 아그네스를 제외하고 외국인과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우습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얼핏보니 그의 손에는 <Negotiation>이라는 책이 들려져 있었다. 그 당시 나도 <협상의 법칙>이란 책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기에 휴가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한 달에 7,500원을 내고 살겠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공짜에요. 만약 그 금액이 너무 적으면 한 달에 7달러 줄게요.”
한 달에 만 원이라, 그는 인심을 쓰듯 말했다. 내 눈치를 보며 아이같이 협상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 달에 만 원을 좀 곤란하고 하루에 만 원 해서 한 달에 30만원 어떠니? 그것도 싸다. 아그네스는 40만 원에 있으니까,”
“좋아요!”
그는 바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살게 될 방으로 달려가 다시 한번 들뜬 얼굴로 방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참나, 협상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한 달에 만 원 주겠다는 말을 금방 자기 입으로 단호하게 뱉었으면서 30만 원 달라는데 바로 오케이 하고 좋아 죽으려고 하다니…. 그래도 결과적으로 내가 10만 원을 깎아준 셈이니 결국 휴의 협상이 성공한 건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나를 힐긋 쳐다본 휴는 곧바로 방구석으로 가더니 미국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제가 협상을 너무 잘해서 절반 가격으로 방 계약을 마쳤어요.”
이렇게 내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여우 같은 게…. 집 밖에 나가서 걸어도 될 전화를 왜 내 눈치를 보면서 할까? 아아, 정말 이상한 미국 꼬맹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불안한 예상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다음 날 그가 전화를 했다. “누나 짐 옮겨놓고 미국 가서 크리스마스 보내고 다시 와도 될까요?”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는 바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짐을 옮기는 그 꼬맹이는 과연 정상이 아니었다. 아그네스처럼 택시로 한꺼번에 옮기면 편할 텐데 휴는 자기 키만큼 큰 배낭 속에 짐들을 쑤셔 넣고 와서 자기 방에 풀어놓고 다시 짐을 가지러 가는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큰 배낭을 짊어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10분 거리의 아파트 언덕길을 몇 번씩이나 오르내리다니…. 정말 알 수 없는 놈이다.
“휴, why don’t you take a taxi?”
보다 못한 내가 “택시를 타지 그러니?”라고 하니까 휴는 “괜찮아요. 누나”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발목까지 끌리는 까만 바바리를 입고 자기 덩치만 한 커다란 배낭을 메고 그 추운 겨울에 땀을 뻘뻘 흐리며 짐을 옮겨다 놓았다. 배낭에서 쏟아놓은 물건들도 역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컴퓨터 본체, 두꺼운 옥편, 국어사전, 영한사전, 일본어사전, 잡다한 책들, 옷가지들, 세면도구, VCR… 등등. 오만 것들이 방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근데 컴퓨터에 모니터가 없기에 “컴퓨터 모니터는 없니?”하고 물었더니 이 꼬맹이 녀석이 하는 말. “TV에 연결하면 돼요.”
뭐라고? 거실에서 다 같이 보는 TV를 컴퓨터에 연결해 모니터로 쓰겠다고? 아무래도 내가 단단히 실수한 것 같다. 이런 놈이랑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 이건 다른 나라 사람이라서 다른 게 아니고 확실히 정상이 아닌 것 아닐까.
내가 불안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마지막 짐을 쏟아놓고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파란 눈을 깜빡이면서 한국말로 더듬거렸다.
“누나 음… 메리 크리스마스 하세요. 음… 나중에 음… 뵙겠습니다.” 하고는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얘, 휴야! 방 정리는 안 하고 그냥 가니? 한숨이 나온다. 정말…. 어휴~.
글로벌 하우스 5회 (2~4화). 새봄이의 어드바이스
외국 룸메이트와 함께 살기, 어떻게 시작할까?
누구나 한 번쯤 외국인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과 함께 살기에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마음의 벽만 없다면 외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것은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나는 외국인과 함께 살겠다는 결심이 서자 우선 원룸에서 방 세 개 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대학 다닐 때 친구와 같이 살았던 것처럼 외국인 친구들과도 그렇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용은 살던 원룸의 전세 보증금을 그대로 아파트의 월세 보증금으로 사용했다. 월세가 부담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외국인 룸메이트들과 나눠서 냈기 때문에 오히려 얼마간의 월세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월세로 집을 임대할 계획이라면 방 두 개짜리보다 세 개짜리가 좋다. 방 두 개와 세 개는 월세에서 그리 차이가 나지 않고, 임대비를 두 명에게서 받을 수 있어 더 경제적이다. 그리고 둘이서 사는 것보다 세 명이 사는 게 훨씬 재미있다. 보증금은 자신이 내고, 월세는 입주하는 외국인에게 부과하고, 관리비는 세 명이 공평하게 나눠서 내면 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방을 구할 때 애로사항은 지나치게 보증금이 많다는 점이다. 보통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보증금 개념이 아니라 한 달이나 2주 치 정도의 선불을 낸다. 그리고 이사 갈 때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달 전기, 수도세와 그동안 살면서 파손된 것들을 주인이 체크한 후 그 금액을 제하고 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방을 구할 때 한 달 치 월세보다 많은 보증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 보통 외국인들은 1년이라는 계약기간이나 보증금, 생활 도구를 전부 구입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의 조건에 맞게 보증금을 줄이고 기본적인 가구를 들여놓은 형태로 방을 임대한다면 외국인들과 함께 살기가 훨씬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