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등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정의와 인간의 평등을 부르짖고 있다. 정의와 평등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이래로 인간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막상 정의가 무엇이냐 또는 평등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우리는 당장 답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정의와 평등이 문제되는 것은 사회에서 부정과 부패 그리고 인간의 불평등이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현실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란 바로 질서있는 사회를 말한다. 질서있는 사회란 합리적인 사고가 실현되고 따라서 합리적 행동이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사회를 말한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평등이 가능하다.
불의가 판치고 정의가 설 곳을 상실할 때 우리는 당연히 인간성을 상실한다. 극도로 혼란한 사회를 보면 정의와 평등이 망각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독재국가는 물론이고 저개발 국가들을 보면 그러한 곳에서는 정의와 평등이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부 특정 계급, 군인이나 독재자 또는 재벌이 모든 권력을 기미쥐고 있는 곳에서는 정의의는 고사하고 평등도 무의미하다. 그러한 곳에서는 질서는 물론이고 조화로운 사회라는 개념이 존립할 수 없다.
희랍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의에 관하여 상세히 논하였다. 그는 정의를 최고의 덕으로 보았다. 플라톤에 의하면 가장 바람직한 국가(이상국가)는 질서와 조화를 갖춘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국가는 이상적 인간을 확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여러가지 덕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지혜와 용기와 절제, 이 세가지 덕이다. 지혜는 합리적으로 전체를 생각하는 능력이요, 용기(또는 기개)는 어떤 일에 과감히 직면하거나 물러날 줄 아는 의지의 힘이며, 절제는 생활의 씀씀이를 알맞게 조절하는 태도이다. 이들 세 가지 덕을 조화롭게 갖출 때 한 인간은 의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이다.
이상국가 역시 인간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다. 플라톤은 국가를 구성하는 계급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본다. 그들은 각각 통치자, 무사 및 생산자이다. 국가가 이상국가이기 위해서 통치자는 지혜를 가진 철인통치자라야 하고, 무사는 용기의 덕을 소유하여야 하며 생산자는 절제의 덕을 가져야만 한다. 이렇게 세 계급들의 덕이 서로 잘 조화되는 국가는 정의로운 국가이다.
우리가 덕만 놓고 본다면 지혜, 용기, 절제는 서로 각각 분리된 부분적인 덕임에 비하여 정의는 이들 세 가지 덕을 통일한 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혜와 용기 및 절제 중 한 가지 덕만 결여되어도 정의는 성립하지 않으며, 또한 세 가지 덕 중 한가지만 그 정도가 미약하여도 정의는 의미를 상실한다.
지혜, 용기 및 절제는 각각 선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들은 부분적인 선이고 종합적인 완전한 선은 정의가 아닐 수 없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통치자, 무사, 생산자는 서로 상하의 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아직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현실적인 인간평등사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계급이 자신에게 알맞는 역할을 최선으로 행할 때 각각의 덕이 실현되며, 각각의 덕이 통일될 때 국가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하는 플라의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의란 어디까지나 질서와 조화를 전제로 할 때만 의미있다.
그러나 현대에 들이와서는 현실적인 사회를 떠나서 정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정의론은 다분히 이상적이면서 관념적인 면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의 정의이든 사회의 정의이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관연 정의인가 하는 물음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중요한 것으로 되었다.
예컨대 존 롤즈 같은 철학자는 분배의 정의를 가장 중요한 정의로 여긴다. 현대의 자본주의사회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모순은 공평하지 못한 분배이다. 가진 자는 언제난 넘칠 정도로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늘 가난에 쪼들리기 쉬운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기 때문에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교육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없는 자는 어쩔 수 없이 불이익을 받으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극소수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오렌지족들의 형태는 가진 자의 횡포를 여실히 입증해준다. 수천만원짜리 고급 자가용을 타고 몇만원 하는 저녁을 먹고 밤을 낮처럼 술과 춤과 여자에 묻혀 지내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상황은 확실히 사회적으로 분배가 잘못 된 현상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싼 땅을 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땅값을 올려서 팔고 그렇게 해서 빈 돈으로 흥청망청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또한 사회분배의 모순이 크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여 준다. 그런가 하면 매우 가난한 집의 자녀나 아니면 고아 출신의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비록 잠재적인 능력은 있다고 할지라도 등록금을 비롯해서 하다못해 참고서 한 권 사기도 어려운 실정에서 어떻게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는가? 현재 사회의 각계 각층에 부정과 부패가 케케묵은 때처럼 끼어 있는 것은 공정한 분배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인간성, 곧 인간다움을 발휘할 정치, 경재, 사회, 교육 등 각 분야의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때 비로소 사회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산한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사고방식은 단지 상상이나 공상에 그치고 만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또한 처한 상황이나 위치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회가 특정인들에게만 주어진다면 그러한 사회는 공정성을 상실한 사회다. 인간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하는 것은 생긴 모습이나 가문 또는 재력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인격'을 보고 바로 인격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남녀평등에 있어서의 평등 역시 남자의 인격이나 여자의 인격이나 모두 인간으로서 '자발적 존재'인 인격이 똑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공정한 분배는 각 인간의 '인격'실현을 초점으로 삼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의감에 대한 사고가 상당히 부족하며 이와 아울러 인간평등사상도 매우 약하다. 그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유교전통이 하나의 원인이다.
왕 중심이며 또한 양반 중심의 사회는 인간의 평등사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문이 가치의 기준이며 가문 좋은 것은 또한 옳은 것(정의)의 기준이기도 하다. 과거의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사상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유교에서도 인성과 인정을 나누고 인성은 하늘과 닮은 것으로서 완전히 선하다고 하였으며 인정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고 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해명하기도 하였다. 이점에서는 불평등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사정은 전혀 달랐다. 현실적으로 특히 이조시대는 계급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양반가문은 선과 정의의 기준으로 여겨졌다.
정의와 평등에 대한 생각 및 행동이 우리에게 희미한 것에는 유교뿐만 아니라 일제하의 식민지생활과 6`25가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잠복하여 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목숨을 각오한 소수의 독립투사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량한 백성들은 굴욕적으로 일본인이 시키는 대로 하지않을 수 없었다. 항상 불안에 떨고 눈치를 보매 커다란 불이익을 보지 않을까 조바심하였다. 우리 백성은 원래 그렇게 눈치빠른 백성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눈치보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내가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서 같은 백성끼리 밀고하고 확대하기까지에 이르렀다.
6`25를 돌이켜 볼 때 분명히 요구되는 것은, 6`25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우리들이 남김없이 파헤침으로써, 과연 우리 민족의 어떤 요인에 의해서 그처럼 불행한 사건이 벌어졌는지 모든 것을 밝히는 일이다. 우리는 6`25를 전후하여 이승만 정권과 그 이후 오랜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불행한 삶을 이끌어 왔다. 일제 식민지시대 이래로 지금까지 우리는 한번도 냉정하고 철저하게 과거의 잘못을 걸러내지 않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냈기 때문에 아직도 여전히 정의와 평등이 구현된 사회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6`25 한 가지만 놓고 보아도 우리 민족의 자발적 의식이 전혀 결여된 결과 발생한 것이 6`25이다. 물론 세계 제2차 대전이후 국제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남한과 북한의 분단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완용등에 의해서 일본의 식민지로 들어갈 때 이미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8`15 해방과 함께 남북분단이 된 것에는 국제열강의 책임과 아울러 우리들 자신의 책임이 있다. 민족이 굳게 단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소련이 자기들 멋대로 남과 북을 쪼갤 수 있었다.
6`25는 비극 중의 비극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민족의 어리석음이 담긴 비극이었다. 같은 민족끼리 원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이 자기네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들 형제 보고 서로 싸우라고 하여 죽기 살기로 싸운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6`25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는가? 총과 칼 앞에서 단지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것만을 가르쳐 주었다. 6`25는 우리에게 모든 가치를 버리도록 했으며 정의와 평등마저 팽개치고 가능한 한 아부하거나 도망쳐서 그저 살아남는 기술만을 가르쳐 주었다. 일제 식민지와 6`25를 거치면서 우리는 눈치가 빨라졌으며, 정의나 평등보다는 우선 남을 누르고, 나만 그리고 내 가족만 살아남는 기술을 체득하였다.
불교에 불각이 시각이고 시각이 본각이니 각이란 묘각이라는 말이 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깨닫기 시작하게 되고, 깨닫기 시작하면 근본적으로 깨달을 수 있으니 깨달음이란 묘한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퍼져 있어서 생각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오랜 기간 정의와 평등에 대하여 희미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도처에서 그리고 각계 각층에서 정의와 평 등에 대한 갈구가 싹트고 있다.
정의와 평등의 여린 싹을 잘 키우기만 한다면 우리도 가까운 장래에 훌룡한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도 고구려, 신라시대에 민주주의의 싹을 키운 경험이 있으며, 삼국시대와 고려 및 이조를 거치면서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경험이 있다. 그와 같은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 각 구성원이 정의와 평 등을 각성하고 현실적으로 그것들을 구현하려는 의지만 강하다면, 비록 시간은 걸리더라도 우리도 더 이상 부정과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 인간평등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곧 창조하게 될 것이다.
@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