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13
그 시절엔 운동장 조회를 하든 교외로 소풍을 가든 제일 키 큰 분이 선생님이셨다. 중1 때까진 대개 그랬다. 아이는 교복, 선생님은 사복 차림이시니 금세 눈에 띄기도 했다. 요즘은 초6·중1 학교 행사에 따라갔던 학부모가 깜짝 놀란다. 담임은 반에서 키 작은 아이와 비슷한 '높이'일 때도 있다. 키 큰 아이가 신체적으로 선생님을 내려다본다.
▶ 교사가 학생을 때리면 뉴스가 아니었다. 행여 학생이 선생님을 밀치면 뉴스였다. 요즘은 복잡하다. 지난달 TV에서 이런 뉴스를 들었다. "한 중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의 뺨을 수차례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나운서는 분명 '사건'이라 했다. 천안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이걸 '사건'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면 꼰대다.
▶ 맞은 학생, 학부모, 때린 교사, 3자 대면을 하면 잘잘못 가리기가 쉽진 않겠으나, 이유 불문 체벌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폭행은 너무 흔해졌다. 학부모가 교장실에 난입해서 선생을 불러다 무릎 꿇리고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그 탓일까. 학생도 스스럼없이 선생님 몸에 손을 댄다. 학생의 교사 폭행은 2014년 86건, 작년엔 165건이다.
▶ 급기야 아이가 친구에게 돈 줄 테니 담임을 때려 보라 제안한 일까지 벌어졌다. 한 중학교의 과학수업 중에 학생이 느닷없이 선생님의 뒤통수를 두 차례 때렸다. 맞은 교사는 20대 초반 여성이었는데, 폭행을 당한 뒤 병가를 냈다고 한다. 가해 학생은 "친구가 담임을 때리면 2만원을 준다기에 장난으로 그랬다"고 했다. 더구나 폭행을 당한 교사는 담임도 아니고 부임한 지 몇 년 안 된 선생님이었다. "담임은 때리기 무서워 연차가 낮은 여교사를 때린 것 같다"고 했다. 학생은 '정학 10일' 처분을 받았는데 "너무 가볍다"는 여론이 일었다.
▶ '스승님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먼 옛날 말이다. 요즘은 젊은 여교사가 교실 문 열고 들어가기 겁난다고 고백한다. 오죽하면 교권 침해 보험도 나와 있다. 아이는 '학교 교사'보다 '학원 선생님'을 더 존경한다. 새로 생긴 학생 조례 때문에 겁낼 필요도 없다. 예전에도 선생님 별명을 부르고 짓궂은 얄개 짓을 걸기도 했다. 선생님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요즘 중학생에겐 '돈 2만원'쯤, '선생님 뒤통수'쯤은 장난거리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며 조기 은퇴를 했던 교사 친구가 생각난다.
김광일 논설위원 kikim@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