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인스턴스 중 하나는 티리스팔 숲에 위치한 붉은십자군의 주 요새인 붉은십자군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붉은십자군은 아제로스에서 언데드 스컬지의 뿌리를 뽑겠다고 맹세했으나 그들의 성스러운 맹세와는 달리 점차 광기 어린 집단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 강력한 빛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에는 과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요? 이 인스턴스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구역마다 별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인스턴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붉은십자군 수도원 역시 다른 던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를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디자이너 제프리 카플란(Jeffrey Kaplan)에게 던전의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 보겠습니다.

붉은십자군 수도원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새로운 지역이나 던전에 대한 주제와 아이디어는 주로 제작 감독이자 스토리 작가인 크리스 멧젠(Chris Metzen)이 제시합니다. 크리스 멧젠은 팀원을 만날 때 지도를 그려서 가지고 오거나 제작에 대한 대략적인 아이디어와 그 지역에 대한 배경과 스토리를 제시하곤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팀을 구성해서 토론을 시작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던전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나요?
던전 제작의 첫 단계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크리스가 던전의 배경과 스토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던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의 스토리 및 메인 테마와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팀원 전체에게 크리스의 배경 그림과 스토리를 나누어 준 다음 미술 팀이 던전의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개념도를 작성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던전의 대략적인 2D 레이아웃을 설계합니다. 레이아웃이 완성되면 이 레이아웃을 디자인 과정에 추가합니다. 레이아웃을 잘 이용하면 던전을 제작하는 동안 부딪히게 되는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레이아웃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고 개념도를 통해 던전의 스타일과 모양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 나면 레벨 디자이너가 레이아웃에 살을 붙여서 3D로 만듭니다. 이제부터는 미술 팀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던전의 텍스처를 만들고 음영을 넣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느낌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우리가 `장식`이라고 부르는 과정으로 무기 진열장이나 책꽂이 같은 장식품을 배치합니다.

던전의 레이아웃을 설계하고 완성된 레이아웃을 3D로 만든 다음에 할 일은 몬스터와 아이템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몬스터도 없고 아이템도 없다면 아무리 멋진 던전이라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디자이너는 몬스터의 형태와 수, 이동 경로, 생성 간격 등을 결정합니다. 물론 보스급 몬스터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보스전은 우리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회의를 거친 후에야 보스급 몬스터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이 일은 계속 반복되는 단체 작업으로 무엇보다도 협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퀘스트 디자이너가 몬스터의 형태를 결정해 주고 몬스터의 난이도와 아이템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연계된 연속되는 작업은 없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테스트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반복을 거듭하는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던전의 레벨 범위는 어떻게 결정하나요?
프로젝트 초반에 아주 큰 화이트보드에 모든 지역을 적어 놓고 각 지역의 레벨 범위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인스턴스를 디자인할 때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가 모든 레벨의 플레이어가 각자 자신이 탐험할 던전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각 레벨 범위마다 선택할 수 있는 던전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초보자용 스컬지 인스턴스인 붉은십자군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완성되어 좀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즐길 수 있도록 붉은십자군 수도원의 레벨 제한을 높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붉은십자군 수도원이 처음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그 모습에서 어떻게 발전한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새로운 던전을 만들 때 우선 대략적인 레이아웃을 설계한 다음 이 레이아웃에 살을 붙여서 3D로 완성합니다. 왜 이렇게 하는지는 붉은십자군 수도원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붉은십자군 수도원을 처음 디자인했을 당시에는 특별한 짜임새 없이 길쭉한 직선형의 인스턴스였습니다. 다양한 레벨 범위의 플레이어가 참가할 수 있는 던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초창기의 붉은십자군 수도원을30대 레벨의 플레이어를 기준으로 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디자인 막바지에 이르러서 30대 후반에서 40레벨의 플레이어까지 즐길 수 있는 던전으로 변경했습니다. 여기서 발생한 문제는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는 자신의 레벨보다 던전의 난이도가 낮아 항상 새로운 지역으로만 이동해야 했고,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는 던전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제대로 된 모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을 때는 이미 레이아웃을 3D로 완성하고 난 후였습니다. 3D를 수정하는 것은 레이아웃 단계에서 수정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붉은십자군 수도원의 레이아웃을 다시 설계하고 던전 전체를 각기 다른 네 개의 구조로 나누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권이 훨씬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어는 네 개의 구조를 연속으로 도전할 수도 있고, 하루에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플레이어의 경우 한 번에 하나씩 따로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던전을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눈 결과 각 구역마다 차별화된 내용을 적용해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인스턴스를 디자인할 때와 인스턴스 외의 지역을 디자인할 때 특별한 차이점이 있나요?
가장 큰 차이점은 던전의 경우 특정 시간에 던전의 어떤 지역에 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있게 될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잠긴 문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일반 지역에서는 문을 닫아 놓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플레이어가 닫힌 문을 열면 다른 플레이어에게도 열린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문을 통과해서 도전하는 사람은 맨 처음에 문을 열었던 플레이어뿐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인스턴스에서는 플레이어가 문을 통과하면 다른 플레이어는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스턴스에서는 우리가 미리 설정해 놓은 대로 몬스터를 등장시키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붉은십자군 수도원을 테스트할 때 기발한 전략을 구사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나요? 설계상의 허점을 이용한다거나 하는 그런 플레이어말입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어떻게 발견했는지 플레이어들은 여러 가지 허점을 정확하게 찾아냈습니다! 베타 테스트 기간 동안 붉은십자군 수도원은 게임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던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수도원이 게임의 최종 목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여기서 얻은 교훈은 게임을 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부 플레이어들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을 봤습니다. 예를 들어 몬스터는 플레이어에게 접근할 수 없지만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공격할 수는 있는 지형을 이용해서 몬스터를 도발한 다음 사냥하는 방법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격을 당하지 않는 위치에서는 몬스터를 공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또 던전 내부를 왔다갔다 하다 보면 아이템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획득할 수 있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급 아이템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귀속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이 몬스터가 죽은 후 다시 생성될 때까지의 간격이 길다는 점을 이용해서 특정 지역을 지키는 몬스터를 해치울 때까지 수백 수천 번을 죽어가며 결국 그 몬스터를 해치우고 원하는 지역까지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끈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은 이 방법을 사용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베타 테스트 기간 동안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각양각색의 플레이어들을 보았습니다. 영리한 플레이어들은 항상 최소한의 희생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 기발함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던전을 제작할 때 어떤 부분이 가장 재미있나요?
저는 디자인의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던전 디자인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하나로 모으는 흥미로운 과정입니다. 크리스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몬스터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부터 플레이어들이 던전을 정복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모든 것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붉은십자군 수도원과 관련해서 플레이어들이 놓치고 지나간 재미있는 부분은 없나요?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몇 년 전 E3에서 WOW를 경험해 본 플레이어라면 E3 전시회 동안 붉은십자군 수도원이 그늘숲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실 것입니다. 그 당시 티리스팔 숲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내부가 외부보다 더 넓었습니다. 인스턴스를 위한 나름대로의 배려였습니다. 만약 이 때 플레이어들이 붉은십자군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면 종교재판관 페어뱅크스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붉은십자군 수도원의 지도자를 지냈던 자이지만 스컬지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인물입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죠.
출처: 공식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