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넬카의 레블뢰 히스토리]
ⅲ 98 월드컵 우승
유로96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자케의 프랑스 대표팀은 10%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제 신예 발굴에 총력을 다한다. 특히 도메네크 감독이 이끌었던 96애틀란타 올림픽 팀은 로베르 피레스, 실뱅 윌토르, 파트릭 비에라, 올리비에 다쿠르, 클로드 마켈렐레, 뱅상 칸델라, 비카슈 도라소 등이 속했던 초호화 군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 팀의 에이스는 파팽의 후계자라 평가받았던 '리옹의 킬러' 플로리앙 모리스였다. 프랑스는 황금 미드필드진과 모리스의 연이은 득점포에 힘입어 8강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준준결승전에서 포르투갈에게 패하여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1997년 여름에 펼쳐졌던 프레-월드컵 대회는 개최국 프랑스, 전우승국 브라질, 축구 종가 잉글랜드, 그리고 프랑스의 천적 이탈리아가 참가하여 내년 월드컵 우승국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빅 이벤트였다. 개막전인 프랑스-브라질 전은 1:1 이란 스코어에 상관없이 축구 역사상 가장 신기한 프리킥이 탄생한 날이었다.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먼 거리에서 엄청나게 휘는 왼발 아웃프론트 프리킥으로 선취골을 넣었다. 카를로스의 왼발 발등 바깥쪽에 강타당한 공은 프랑스 수비벽을 피해가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력한 회전에 의해 프랑스 골문의 니어포스트 쪽으로 골대를 살짝 맡고 골라인을 통과했다. 카를로스의 이 프리킥은 후에 'UFO슛'이라 불리게 되었다. 2차전 잉글랜드 전에서는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과하고 종료 4분전에 골키퍼 파비앙 바르테즈가 테디 셰링엄의 단순한 땅볼 크로스를 잡았다가 놓쳤고 이를 알란 시어러가 손쉽게 득점하여 0:1 패배를 기록했다.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 전에서는 2골씩 주고받은 끝에 2:2 무승부에 머물러 총합 2무 1패로 4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되었던 모리스, 우에덱, 뒤가리, 로코 이 4명 모두 득점포를 침묵하여 프랑스는 유로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확실한 킬러를 발굴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어 벌어진 97말레이시아 세계 20세 이하 청소년 대회는 한국 축구와 프랑스 축구 간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같은 B그룹에 속했던 한국과 프랑스는 1997년 6월 19일에 숙명적인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는 골키퍼 미카엘 랑드로, 수비수 윌리엄 갈라스, 미카엘 실베스트르, 빌리 사뇰, 필립 크리스탕발, 미드필더 페테르 뤽생, 다니엘 모레라, 공격수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니콜라 아넬카 등이 포진, 현재 네임 밸류가 상당히 높은 스타들이 즐비한 공포의 팀이었다. 박이천 감독은 프랑스의 핵심 전력인 3톱 앙리, 트레제게, 무레를 막기 위해 미드필더 김도균을 수비수로 내렸는데 그를 우측 스토퍼로 배치하여 '경계대상 1호' 인 앙리를 막게 했다. 항상 3백을 써왔던 대한민국은 프랑스가 3톱이기에 대응전술로 4백 전술을 채택했다. 하지만 일자 수비가 아닌 1스위퍼에 3스토퍼를 두는 극단적인 수비전략이었다. 1-3-3-3의 한국은 사실상 중앙 미드필더에 서기복 1명만을 두게 되어 완전히 프랑스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게다가 10분 만에 앙리와 트레제게에게 각각 2골과 1골씩을 허용하여 전반전을 0-3으로 마쳐야 했다. 특히 총알같이 빠른 앙리를 김도균이 전혀 따라잡지 못한 것이 대량 실점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후 박이천 감독은 11초대의 준족 수비수 심재원에게 앙리를 전담마크하게 하여 한국은 수비 쪽에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스위퍼 박진섭을 이관우와 함께 공격수로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중앙으로 위치를 변경하여 트레제게를 마크한 김도균의 치명적인 헛발질 실수로 트레제게에게 4번째 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한국은 박진섭 혼자 2골을 넣는 분전 끝에 간신히 체면치례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의 첫 번째 골은 프랑스 우측 풀백 사뇰의 어이없는 백패스 미스를 이관우가 가로챈 상태에서 랑드로 골키퍼와 맞서게 됐다. 그는 바로 옆의 자유로운 상태의 박진섭에게 땅볼패스를 했고 박진섭은 이를 주워 넣기로 득점에 성공했다. 두 번째 골은 중앙 수비수 실베스트르가 박진섭에게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파울을 범하여 한국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고 이를 박진섭 본인이 직접 차 넣었다. 참고로 실베스트르는 그 전 경기인 브라질 전에서도 자책골을 기록한 바 있다. 결국 경기는 2-4라는 스코어로 결말이 났다. 이 대회에서 프랑스는 8강에서 우루과이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앙리와 트레제게라는 거물급 신성들을 낳아 기대감에 충만해 졌다.
프랑스는 기존 유로96 4강 멤버를 주축으로 올림픽 대표팀의 스타 피레스, 비에라, 칸델라, 청소년 대표팀의 중추인 앙리, 트레제게, 그리고 한동안 배제되었던 에마뉘엘 프티가 막차에 합류하였다. 이에 따라 레블뢰 군단은 막강의 전력을 갖춘 상태에서 자국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록 호마리오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호나우도-베베토 투톱에 히바우도, 둥가 등이 미드필드를 이끄는 브라질을 우승후보 0순위에 두었다. 그리고 유로96 우승팀 독일은 위르겐 클린스만-올리버 비어호프 투톱에 더블 플레이메이커 안드레아스 묄러, 토마스 해슬러가 미드필드에 포진한 강팀이다. 비록 '당대 최고의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이 공백을 노장 로타르 마테우스가 대신하게 된 막강의 전력을 갖춘 팀으로 브라질 다음으로 우승이 점쳐진 국가였다.
프랑스는 첫 경기에서 남아공을 맞아 지단의 코너킥을 이어받은 뒤가리의 헤딩 선제골에 힘입어 3-0으로 손쉽게 이겼다. 다음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 전에서는 '프랑스의 희망' 앙리가 두골을 넣는 맹활약 끝에 4-0으로 완승을 거뒀다. 하지만 에이스 지단이 상대 우측윙백 알-힐라위에게 보복행위로 그의 허벅지를 밟아 퇴장 당했고, 2경기 출장정지 조치를 당하였다. 사실상 후보들을 대거 기용했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덴마크 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프티의 중거리슛 결승골 덕택에 2-1의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특히 이 경기에서 골키퍼 바르테즈는 덴마크 중앙 미드필더 퇴프팅의 상당히 묵직한 프리킥을 다른 골키퍼라면 반드시 펀칭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보디 밸런스에 이은 점프력을 선보이며 여유롭게 잡아내는 명장면을 연출해 냈다.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 프랑스는 지단의 공백을 대신한 조르카에프의 부진과 상대 수비수 카를로스 가마라의 철통 방어에 상당히 고전하였다. 후반전 중반에 파라과이 골키퍼 칠라베르트는 전매특허인 멋진 곡선을 그리는 직접 프리킥을 찼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골키퍼가 득점에 성공하는 장면이 될 뻔 했으나 바르테즈의 선방에 아쉽게 막히고 만다. 드디어 연장전에 앙리 대신 들어온 피레스가 오른쪽 진영에서 수비수 2명을 제치고 크로스를 올렸고, 트레제게가 머리로 떨궈 준 공을 '골 넣는 수비수' 로랑 블랑이 가볍게 밀어 넣어 대회 첫 골든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와의 8강전은 남아공 전부터 파라과이 전까지 사용했던 4-2-3-1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한명을 더 추가한 유로96때의 4-3-2-1로 전환하였다. 막상막하의 경기양상이었으나 돌아온 '마에스트로' 지단 만큼은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디노 바지오, 루이지 디 비아지오 등을 마음껏 유린하였다. 프랑스는 조르카에프와 기바르쉬가 한차례씩 결정적인 상황을 날려버렸다. 반면 이탈리아는 교체 투입된 로베르토 바지오가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파 포스트를 향해 절묘한 오른발 아웃프론트 발리슛을 쐈으나 몇 인치 차이로 아깝게 빗나가고 말았다. 0-0에서 승부를 가르지 못한 양 팀은 승부차기까지 갔다. 여기서 이탈리아는 마지막 키커 디 비아지오가 실축하여 프랑스가 운 좋게 준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은 릴리앙 튀랑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킨 경기였다. 다보르 수케르에게 선취골을 빼앗긴 프랑스는 우측 풀백 릴리앙 튀랑의 연속골로 2-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게 되었다. 튀랑의 첫 번째 골은 사실상 상대 수비수에게 파울을 범하여 공을 낚아챈 뒤 슬라이딩 슛으로 득점한 것이었으나 홈 어드밴티지에 의해 묵인되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이 장면만큼은 세인들에게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이어 튀랑은 상대 미드필더 즈보니미르 보반의 실수를 틈타 그것을 가로채어 절묘하게 파 포스트를 향한 멋진 왼발 감아차기 슛으로 역전골을 넣어 관중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과장이 심하긴 하겠지만 이날의 튀랑은 86월드컵 잉글랜드 전에서 신의 손 반칙 골 이후 신기의 드리블에 이은 골로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의 상황과 유사해 보일정도였다. 이날 튀랑의 2득점은 현재까지도 그의 전무후무한 A매치 득점 기록으로 남고 있다.
역사적인 날인 1998년 7월 13일, 프랑스와 브라질과의 결승전은 막상 막하의 대결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브라질 에이스 호나우도의 컨디션 난조로 프랑스가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였다. 프랑스는 전반전에만 지단이 프티, 조르카에프의 코너킥을 모두 헤딩으로 득점하여 2-0으로 달아났다. 게다가 지단은 후반전에 허를 찌르는 킬 패스로 기바르쉬와 뒤가리에게 각각 두 차례와 한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두 선수 모두 상대 골키퍼 타파렐의 선방에 막히거나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브라질은 호나우도가 바르테즈와 한차례 맞선 상황만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공격도 못했다. 이 경기는 사실상 5점차 이상의 스코어가 날 만 했다. 급해진 브라질은 벤치의 데니우손과 에드문도까지 투입하여 공격수 자원 4명을 전방에 배치하는 4-2-4 포메이션으로 총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브라질은 오히려 수비 숫자가 부족해진 것이 프랑스에게 그들의 틈새를 허용하였다. 프랑스의 교체 멤버 파트릭 비에라는 전방으로 달려나가는 미드필더 프티에게 절묘한 패스를 했고 그는 타파렐과 맞선 상황에서 반대편 구석을 향한 절묘한 땅볼 슛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프랑스는 드디어 월드컵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시상식에서 주장 디디에 데샹이 FIFA컵을 치켜 올리자 파리 시내의 샹젤리제 거리는 온통 열광의 도가니이자 흥분의 용광로가 되었다. 지단은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고 골키퍼 바르테즈는 야신상을 수상 받았다. 물론 지단이 결승전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넣는 활약으로 프랑스가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하긴 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레블뢰 우승의 일등공신은 왼쪽부터 리자라주-드사이-블랑-튀랑으로 이어지는 7경기 2실점의 '철의 4백'에게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반드시 따라다니는 법. 팀의 주전 원톱 스테판 기바르쉬의 연이은 '삽질'은 프랑스 대표팀의 '옥의 티'였다.
98월드컵 프랑스 스쿼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