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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명물' 장내 아나운서 '투맨'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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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리그에 던져진 화두 중 하나는 '상품으로서의 축구를 얼마나 잘 포장해 소비자에게 제공할 것이냐?'라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우승만이 유일한 지상 과제였던 K리그 클럽들이 시민 구단의 출범과 법인화를 계기로 재정의 독립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갖기 시작한 뒤, 기업 속의 축구단이 아닌 축구단 그 자체로서의 기업이라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슈는 직접적인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관중들에 대한 서비스다. 그것을 위해선 단순히 필드 위에서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력 외에도 많은 흥미 거리와 즐길 거리를 발생시켜, 경기장을 찾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K리그의 적지 않은 클럽들이 관중을 경기장으로 그러모으고 잠재적인 팬층을 수면으로 부상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은 시행착오가 거듭 되는 과도기에 놓이다 보니 성과를 누리기보다는 수정, 보완이 더 많지만 미래의 K리그를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관중들을 위한 서비스는 그라운드 안 뿐만이 아닌 밖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장내 아나운서를 활용한 팬들의 흥미 유발이다. 기존의 축구, 야구에 농구, 배구 등이 프로스포츠로 정식 출범하며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장내 스포츠 아나운서는 흥을 돋우게 하는 유려한 말솜씨로 스포츠에 대한 팬들의 재미를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K리그에서도 이러한 장내 아나운서들을 본격 도입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수원 삼성이다.
수원의 홈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수원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축구 팬이라면 다른 경기장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시작전 전의를 불태우게 하는 선수와 팀 소개, 서포터즈 그랑블루와의 절묘한 호흡으로 경기장 분위기를 이끄는 코멘트, 골이 나오면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긴 호흡의 환호까지. 경기장 전체를 뒤덮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팬들로 하여금 축구에 대한 집중력과 흥미를 배가 시켜주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수원의 장내 아나운서 '투맨'이다. 동환수(37)씨와 한기환(37)씨 두 명의 엠씨로 구성된 투맨은 이제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즐겨 찾는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할 정도로 익숙한 존재들이다. 2003년 수원을 위해 처음 마이크를 잡은 두 사람은 기존의 딱딱하고 규격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경기장 분위기를 돋우는 진행과 코멘트, 경기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 선곡 등으로 많은 수원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이 '투맨'이라는 팀을 꾸려 호흡을 맞춘 지도 벌써 10년. 이제는 눈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 정도라는 수원의 명물 두 사람이 말하는 장내 아나운서로서 자신들의 삶, 그리고 축구에 대한 생각들을 대한축구협회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다음은 지난 6일 대구전을 앞두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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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목소리로만 듣다가 직접 만나게 되니 신기하다. 현재 경기장에서 하고 있는 이 일을 정확히 어떤 명칭의 직업으로 불러야 하나?
동환수(이하 동): 특별한 명칭은 없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장내 아나운서라고 한다. 과거엔 없었던 직업인데 96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물론 예전에도 경기 진행을 위해 장내 방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지금의 역할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 현재 수원 삼성에서만 활동하고 있나?
한기환(이하 한): 우리는 원래 이벤트 진행자다. 외국계 기업들의 이벤트나 스키 대회, 골프 대회 등을 주로 담당해 왔는데 96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서울 삼성 썬더스(당시 수원)와 일하면서 스포츠 분야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일반적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종목마다 시즌이 다르니까 여러 일을 병행한다. 우리도 작년까지는 농구와 같이 하다 지금은 수원 삼성 일만 하고 있다.
- 남자 엠씨 두 명으로 구성된 팀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어떻게 팀을 조직하게 됐나?
동: 둘이 중학교 때 동창이었는데 그때 말들을 잘하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소위 죽도 맞았고. 이후에 사회로 나와서 각자 이벤트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스키대회를 같이 진행하게 됐다. 그때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의외로 반응들이 좋았고 우리끼리도 만족했다. 이후 의기투합해 10년째 '투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한: 원래 장내 아나운서는 여자들이 많다. 실제로 K리그에서도 대부분의 팀이 여자 아나운서를 쓰는 걸로 안다. 우리처럼 남자 두 명이 함께 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오히려 반응들이 좋은 것 같다. 사실 우리가 발음이 아주 정확하거나 구단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듣는 편은 아니지만 신선한 기획을 많이 하고 경험적으로 유리한 편이다. 그리고 축구가 또 상당히 남성적인 스포츠 아닌가? 축구장 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남자 아나운서들이 더 잘 맞을 듯싶다.
- 수원 삼성과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게 된 것인가?
동: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 쪽에서 경기 중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구단에 건의를 했다. 마침 수원의 홍보 담당자 분이 98년 월드컵을 방문했을 때 경기장에 장내 아나운서가 있었는데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는 얘길 꺼내셨고 그랑블루에서도 그런 아이디어에 동의했다 이후 우리와 접촉이 됐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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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농구도 진행했었다고 하는데, 축구와는 큰 차이점이 있을 것 같다.
동: 농구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내 아나운서와 응원 단장이 리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축구는 우리가 특별히 나설 필요가 없다. 서포터즈들이 관중들의 응원을 자발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축구가 다른 스포츠와는 달라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니까 경기 중에는 선수 교체 상황이나 골이 터졌을 때 필요한 말들만 하면 된다. 그 밖에는 가끔 팬들의 손뼉을 유도하는 정도가 전부다.
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수를 유도하면 누구나 빠짐없이 손뼉을 친다. 그러나 그런 일도 경기 중 계속 언급하면 팬들이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억지 춘향 식으로 짜내기가 싫다. 멋진 플레이가 나오고 감격스런 장면이 나오면 자연스레 두 손이 모이게 되는 거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계속 유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을 때는 유도도 해야 되지만 대부분 경기 중 한 번 정도다. 그런 걸 경기 중 끊임 없이 유도케 하려면 응원단장을 불러야 한다.(웃음)
- 축구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는 실수도 하지 않았을까?
동: 그리 큰 실수는 아니었는데, 내가 전혀 의도치 않았던 부분이 잘못 받아들여져 힘들었던 적이 있다. 2003년에 경기 중 선수들끼리 충돌해 넘어진 적이 있었다. 부상인지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기에 힘을 실어줘야겠다 싶어 “관중 여러분, 최선을 다하는 두 선수에게 응원의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라고 말했었다. 그냥 농구장에서 하던 대로 한 것이다. 그랬더니 서포터들이 난리가 났다. 막 욕도 들리더라.(웃음) 그런 과정을 통해 축구는 경기장에서 상대와 우리의 구분이 확실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 경기가 없는 날을 이용해 다른 경기장 분위기는 어떤지 확인하는 편인지?
한: 거의 보러 가지 않는다. 남의 걸 보게 되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좋은 부분을 따라 하게 된다. 이 친구와 항상 하는 말이 “우리가 하는 걸 남들이 따라 할지언정,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지는 말자”다.
- 수원의 경기 시작 전 선수 소개는 항상 박진감이 넘친다. 경기에 대한 전의를 불타오르게 한다는 느낌이다.
동: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의 승부에 대한 욕심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비장한 표현과 코멘트들로 그런 소개를 하게 됐다. 그래서 배경 음악도 주로 웅장한 영화음악, 예를 들면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 워즈에 나오는 음악을 쓴다. 그게 효과가 있는지 팬들도 반응이 좋은 것 같다.
- 선수들을 표현하는 코멘트들도 독특하다. '전설이 될 사나이, 곽희주'라든지 '승리를 이끄는 레인메이커 김동현' 같은 식으로.
동: 그런 코멘트 같은 경우는 되도록 기존 언론에서 쓰는 표현들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폭주기관차, 김대의'의 경우는 워낙 그 이미지가 강렬하지만 그 밖의 것들은 다소 진부하다. 전에는 그랑블루 홈페이지를 통해 서포터들에게 공모한 적도 있고, 경기장에 걸리는 걸개에 있는 표현들을 쓰기도 했다. 안효연 선수 같은 경우는 '맨발의 청춘'인데 서포터즈데이 때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걸 보고 활용했다.
- 음악 선곡에도 굉장히 신중을 기울이는 것 같다. 보통 다른 경기장에 가면 들리는 댄스곡은 없는데?
한: 현재 소장 중인 음악 CD만도 1000장이 넘는다. 축구관련 음악도 유럽 현지에서 가져온 게 상당히 많다. 그걸 고르고 또 골라서 선곡하지만 실제 경기 중에 쓰이는 건 그 중에서도 일부다. 일반적으로 록계열의 음악을 쓰는데, 축구와 잘 맞는 것 같다. 영화 음악도 괜찮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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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홈경기에서는 언제나 '투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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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하는 편인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지는 않나?
한: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전에는 기타 반주만으로 연주된 애국가를 준비해서 튼 적이 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아 다시는 하지 않고 있다. 수원컵 때도 주변의 추천으로 경기 진행을 봤는데 그때는 상당히 제약이 많았던 편이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너무 튀려고 하지 마라'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랑은 조금 안 맞는 일이었던 것 같다.
- 경기 진행 중 축구에 집중할 수 있나?
동: 물론이다.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집중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경기 중에는 짧은 순간 몇 번을 제외하면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언제 골이 터질지 모르니까 항상 긴장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 중 실수를 했던 적은 없다.
- 보통 한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나?
한: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일주일을 꼬박 준비해야 했다. 축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3년째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노하우도 있고 미리 세팅이 돼 있으니까 전날에 검사, 당일날 일찍 와서 맞춰보면 끝난다.
- 계속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애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한: 물론이다. 이 일을 하면서 축구에 완전히 빠지게 됐다. 예전에 스키, 골프,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진행했지만 그건 일이었을 뿐이지 지금의 축구만큼 애착이 가지는 않았다. 경기장의 특별한 분위기 때문이랄까? 골프장은 너무 경직되어 있고, 농구장은 경기는 어떻든 다들 즐기기만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축구장은 사람들이 모두 그라운드에 집중하고 있다.
동: 특히 서포터들의 열정이 부럽다. 자기들이 좋아서 저렇게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며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모은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나도 수원 서포터들의 그런 모습에 반해 수원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얼마 전에 수원이 서울에 0-3으로 졌을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 친구랑 함께 서울로 올라가 계속 술만 마셨다.(웃음)
- 조금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 애정이 있다면 그런 부분도 보일 것 같다.
한: 구단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팬들한테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은 항상 관중수가 비슷비슷하다. 결국, 오는 사람만 온다는 얘기다. 한번 찾은 사람이 다시 찾을 수 있게, 오지 않는 사람을 끌어올 수 있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아직 한국의 스포츠 구단들은 경직되다 보니 그런 게 부족한 모습이다.
동: 우리도 구단들과 의견 차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축구만이 아니다. 예전에 농구를 할 때도 서로 간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다 보니까 안 좋게 끝났다. 그래도 우리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좋지만 기본은 지켜야 한다. 무리한 걸 요구한다면 우리가 아닌 다름 사람을 쓰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동: 오랫동안, 이 경기장에서 활동하며 구단과 팬들의 가교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사실 우리가 벌어들이는 총 수입 중에서 스포츠 장내 아나운서가 차지하는 건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애착이 가고 욕심이 생긴다. 유럽 축구나 메이저리그 같은 곳을 보면 60세가 넘는 할아버지 진행자들이 화제가 되지 않나? 우리도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은 수원 삼성의 일부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진행자들이 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기장 꼭대기에 앉아서 그라운드를 지켜보면 마음이 편하다. 우리만큼 아내들끼리 사이가 좋은데, 이제 우리를 보고 축구에 반 미쳤다고들 한다. 텔레비젼에서 K리그 경기가 중계되면 자연스레 눈이 가고 귀가 쫑긋거린다. 우리가 이 자리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설령 떠난다고 해도 축구를 계속 좋아할 것 같다. 매 경기가 즐겁고 보람찼던 시간이었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 드린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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