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국내> ㅡ 경기도 廣州다! ㅡ
(우리가 우리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ㅡ 사적 문화재 314호 "광주조선백자 도요지" ㅡ(댓글주시면 교정하겠습니다)
우리 너른 고을 광주에 이런 곳이 있다고 연재로 <컬럼>을 쓴 바 있다(17년-20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슬픈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최고의 예술고장으로서 남한산성과 왕실도자기축제, 취고수악대, 조송자 줄타기, 퇴촌휴양림, 天眞庵聖地, 직리생태하천, 海公, 허난설헌 등 등,
특히 [뮤지컬 허난설헌]도 공연을 한다기에 기획ㆍ제작서를 작성해준 바 있다.
그동안 참 바쁘게 중앙에서 활동했다 ㅡ 1977년 미국 30개 주립대학 순회와 78년도 유럽일주와 79년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순회, 정부기관에서 남북한동시문화교류를 위해 85년 9월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을 하면서 바쁜 세월을 보냈지만 그래도 내가 거주하는 곳이기에 이곳에서 무엇인가 내 지역을 위해 일해보고 싶었다.
전국 유초중고 교사 잠실체육관에서 1회 3천명씩 국민건강 탈춤체조를 특강도 했다.(사진 자료참고 ㅡ우리 국민보건 체조가 덴마크 식 국민체조이기 때문에)
위의 훌륭한 문화재를 소개할 겸 필자는 이곳 廣州의 거주자로서 너른 고을 광주에서 당시 한국민속예술축제(前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추진위원장 및 심사위원장으로서 국고지원금을 지원 제시하고ㆍ유치하려고 하였으나, 前시장 때, 행사를 진행을 못하여 너른 고을 광주의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지금도 만나면 아쉬워 하고 있다.
그래도 광주문화원에서 "덩쿵네 조송자 줄타기 복원" 학술세미나(아래 사진 참고)를 필자를 비롯하여 전문학자들을 초청하여 개최한 바 있다.
유랑예인의 맥을 잇는 유일한 여자 어름산이로 광주 초월읍 무갑리에서 1991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指定)되어 복원공연까지 했지만 그 명맥이 끊어 진지 오래 되었다.
국고(國庫)지원금을 제공한다면 마다하지 말고, 큰 틀에서 이제 너른 고을 광주의 훌륭한 전통적 문화예술을 제대로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얼마전 "광주조선백자 도요지"를 필자가 <컬럼106> 에 간단하게 소개한 바는 있지만, ㅡ 자세하게 올리지 못해 ~
이곳 분원은 세계적인 문화유산 자원으로 너른 고을 광주의 <문화관광특구>로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아울러 연재 차원에서 우리 너른 고을 광주시민에게 분원(分院)을 또 홍보차원에서 제시하고 싶다.
분원리(分院里)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마을 동네이름이고, 분원사옹원(司饔院 : 조선시대 왕실과 궁궐에 필요한 음식과 제사관련 업무 관장의 명칭)은 관아였다.
가마유적지 30개 마을에 340개가 있었다는 기록은 우리 고을의 대단한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분원백자료관이 되어 국가지정 문화재 314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도 조선백자의 기반으로 너른 고을 광주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 기록의 내용을 보면 ㅡ 다음과 같다.
조선건국이후 왕실에서는 필요한 자기를 수급하기 위하여《경국대전》에 명시한 바와 같이 사옹원에서 왕실자기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관요를 운영토록 하였다.
사옹원은 왕실에서 소용되는 자기와 공납자기 제작을 감독하는 업무를 맡았고, 경기도 광주에 자기제작소인 분원(分院)을 두었다.
분원이 광주에 설치된 이유는 한양과의 거리가 가깝고 한강을 통한 운반이 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광주는 경상도 고령 1곳, 상주 2곳과 함께 상품자기소(上品磁器所)가 있었던 곳으로, 이미 백자제작지로서 여러 장점을 지닌 곳이었다.
본래 분원은 사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연료를 충당하기 위해 나무가 많이 자란 장소를 찾아 옮겨다녀야했는데, 이를위해 광주일대 6개면이 분원시장(分院柴場) 절수처(折受處)라하여 국가로부터 지급되었다.
퇴촌면∙실촌면∙초월면∙도척면∙경안면∙오포면 등이 그곳이다. 그런데 이일대가 분원의 연료채취 뒤에는 화전으로 개간되면서 시장이 줄어들고 연료부족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17세기말 경에는 분원을 교통이 편리한 곳에 고정해두고, 번목을 옮겨쓰면서 시장안의 화전민으로 부터 세를 거두어 번목을 충당하는데 쓰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처음 고정 분원이 설치된 곳은 지금의 남종면 금사리였으나, 금사리는 강변에서 10리 정도 떨어져 나무운반이 어려웠다. 이에 교통이 편리한 경안천(慶安川 : 牛川) 강변인 지금의 남종면 분원리에 분원을 고정시켜두고 번목을 옮겨쓰기에 이르렀다.
분원리로 분원이 고정되자 10년마다 분원을 옮길 때 생기는 공사의 허비를 막을 수 있었고, 특히 남한강과 북한강으로의 편리한 수운 덕택에 번목의 조달은 물론 백토와 진상자기의 운반이 수월해졌다.
분원의 주된 역할은 어기번조(御器燔造)이다.
번조된 자기는 1년에 두차례 봄가을에 진상하는데, 춘번(春燔)하여 6월에 진상하는 것을 춘등진상(春等進上), 추번(秋燔)하여 10월에 진상하는 것을 추등진상(秋等進上)이라 했다. 또한 1년 중에 통상 필요로 하는 수요를 진상하기 위한 번조를 예번�燔이라 하며, 경우에 따라 번조하는 것을 별번(別燔)이라 하였다. 별번품은 주로 갑발(匣鉢)에
넣어번조하였으며, 진상은춘추진상 때 함께 하였다. 진상자기의 소용(所用)은 왕궁의 일반생활 용기와 봉상시(奉常寺)의 제기(祭器), 내의원(內醫院)의 제약용기 등이었으며, 외국사절 접대용등으로도 공급되었다. 1년동안 만들어진 자기의양은 매해일정하지 않았으나, 1867년간행된『육전조례�典條例』에 따르면 1, 372죽竹=10개, 1만 3,720개의 자기가 봄가을에 진상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춘번의 경우 6월에 자기가 서울에 당도하면, 사옹원직장이 입직하여 검사와 공정을 마친뒤 진상되었다. 대전(大殿)에 소용되는 자기는 분원에서 직접 번조하여 사옹원에 납입하는 형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공장(工匠)의 생계를 보조하는 의미에서 분원의 사경영이 일부 허용되었고,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상인자본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에는 상인자본의 규모가 점차 늘어 결국 분원은 1884년 고종21상업자본가에 의해 민영화 되었고, 1910년이 후로 점차 쇠퇴하였다.
이후 이곳은 역사 속에 잠들어 있다가 가마가 폐쇄된 후 버려진 도편들로 이루어진 언덕에 1923년 분원소학교가 설립되어, 이후 분원초등학교로 이어졌고, 이곳은 2001년 첫발굴조사를시작으로 그 실체가 비로소 드러났다.
분원리 백자는 특유의 맑은 청백색을 띠는것이 특징이며, 양각陽刻∙투각透刻∙면취面取와 같은 상형(象形)기법의 순백자는 물론이고 청화靑畵∙진사辰砂∙철화鐵畵의 백자도 많이 제작되었다. 기종(種)은 사발∙접시∙잔과 같은 음식용기를 비롯하여 병∙항아리∙등잔∙베개와 같은 생활용구, 제기(際器)와 각종 문방구류 등이 제작되었다. 특히 선비들의 생활과 정신을 잘 보여주는 문방구로, 두꺼비∙잉어∙복숭아와 같은 동식물 또는 금강산∙원통형∙사각형∙팔각형의 형태를 응용한 연적과 필통∙필가筆架∙필세筆洗 등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문양으로는
운룡雲龍∙산수山水∙파초芭蕉∙화조花鳥∙사군자四君子 이외에도 민화풍의십장생十長生∙모란∙칠보七寶∙박쥐∙수복壽福문자 등이 그릇가득히 표현되는 특징을보인다.
광주일대는조선백자(朝鮮瓷)의 핵심이며 조선도자연구(朝鮮陶瓷硏究)의 기반이 되는 곳이다.
이제 이것을 홍보하는 계기로 너른 고을 광주가 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합치되어 슬픈 궁궐의 역사교육과 문화관광특구가 되었으면 하는 큰 바램으로 협력해서 善을 이루고 연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광주 관내 각 분야 예술인 간담회 (전통문화, 연극, 음악, 무용, 뮤지컬, 오페라 등)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코로나19로 하여금 닫힌 문을 열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후로 전문가들에 의해 세미나(포럼)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싶었다.
건강캠페인입니다. 제일의 富는 健康입니다. 건강이 있고 난 다음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세종문화회관 뮤지컬기획담당(실장)
전 한예종 교수 연희학과장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차관급) 대행
☆ 사진설명/ 광주문화원 및 다움에서 유럽순회 축제 페스티벌, 조송자줄타기 복원 세미나, 초중고교사 건강탈춤체조 특강(잠실체육관), 예술위원회의 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