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감정
이주언
기분은 씻어 쓰기도 하지요
외출 후엔 버블 핸드워시를 구름처럼 갖고 놀아요 생일축하 노래를 두 번 부를 동안 케이크 생크림 두 손에 얹어놓아요 꼼지락꼼지락 시작된 노래, 오물을 따라 지하로 흘러들면 동그란 아이들 뿔난 아이들 파티는 시작이지요
잊기로 해요 지상의 삶이란
폭우가 몰아치는 숲길, 마차에 앉아 손톱 물어뜯으며 왔다갔다 반복하지만 매니큐어 칠하는 기분으로 숨을 잠시 멈춰 봐요
진창에 빠진 바퀴처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마음일 때, 반지 낀 손가락을 치켜들어 봐요 중력을 배반하려는
그의 마지막 생을 바라보아요
글씨가 예뻤어요 글씨에 담긴 일생의 고뇌도 예쁠 수 있다면 생의 마감일을 끌어오진 않았을 테죠
손가락 사이에 만년필 끼우고 몸의 연주를 마지막 받아 쓸 때, 속에 우글거리던 그의 노예들은 어땠을까 아이처럼 노래 부르며 옷자락 날개로 춤추며 날아올랐을까
−『애지』2020년 가을호
첫댓글 한번도 생각 못했는데 일상에서 손가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일들이 있네요. 그때마다 갖고 있을 손가락 기분,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