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사과가 말했다 / 조인정
"사과가 되고 싶어."
나는 여름의 사과
나는 사과일까
아직 익지 않은 연두 사과는 사과가 아닌 것 같아
꽃을 피우는 햇빛이 말했어. "너는 사과야."
작은 잎을 두드리며 소나기가 말했어. "너는 사과지"
지나가는 바람도 말했어. "안녕, 너는 사과구나."
나는 사과일까
언제부터 사과이고 언제까지 사과일까
"사과가 되고 싶어."
나는 사과가 되고 싶은 여름의 사과
심장이 뛴다
사과가 되고 싶으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사과인 채로
언젠가 사과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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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 일기 / 박소이
현관문 손잡이에 까만 비닐봉지가 걸려 있는 거야
민서네 상추도 아니고
지유네 토마토도 아닌
꽃봉오리가 들어 있었어
어쩌면
저녁에 먹을 뻔한
삼겹살도
토마토 스파게티도
다 날아가
실망스러웠지
엄마가 꽃병에 꽃으며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갓집 작약밭을 떠올려 보고
묶은 꽃봉오리 함지박에 담아이고
시장에 팔러 간 외할머니 기다리던
아홉살, 엄마 얼굴을 그려 봤어
츄파춥스를 꽂아 둔 것처럼
동글동글한 봉오리가
앙다문 입을 벌리고
꽃을 피우자
엄마는 잘 쓰지 않던 즉석 사진기를 꺼냈어
찍은 사진
일기장에 붙여 놓고
작약이 피고 지는 이야기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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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고양이 / 김기은
너무 계속
보진 말라고
인사하고 나면 제발
더 축축해지기 전에
놓아 달라고
그게 아니면 평생
내가 밥 먹을 때나 잘 때나 오줌 눌 때나
손잡고 있으라고
아주아주 오래 잡아서
땀도 섞이고 침도 섞이고
손끝에서 자란 핏줄이 심장까지 타고 올라
우리 서로 하나가 될 게 아니라면
(안녕.)
접 하나씩만 찍자고
잊지 말고
점 하나만큼만
다정하자고
잊지 말고
모르는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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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만두 전쟁 / 박정섭
주문한 왕만두가
접시 위에서
모락모락
어쩔 줄 모르는
너와 나의 눈알이
이리저리 구른다
5개의 홀수 만두
그것이 문제로다
아마도 책상 위에
우리 둘뿐이어서 그럴지도
친구가 가위로 만두를
절반 나누니
10개의 짝수 만두
완만두 전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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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새들 / 박해정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뾰족뾰족 떠들다 왔지
은행나무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왔지
오동나무 잎에서
너울너울 춤추다 왔지
오솔길 풀, 꽃, 잔나무
이름 다 불러 주며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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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고마운 격월간지!!!
동시인들에게 힘이 되는 동시마중!!!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