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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따르려면
1984.01.01. 김준호 선생
31절부터 말씀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살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절대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34절. 말씀만 제가 읽고 따라 읽어주십시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가복음 8장 34절 말씀.
저는 제가 조금 말씀드리고요. 오늘 밤에는 설교 듣는 시간 보다는 먼저 가신 이 선생님의 회상을 좀 같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선생님이야기를 제가 한자리 끝내시면 여러분은 송가로 시로 노래로 찬송으로 그렇게 화답하시고 찬송이 끝나면 제가 이야기 계속하고 그렇게 시간 보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이들이 많으시고 아직은 살아계실 때 옛날 듣고 아시고 혹은 글로 보고 아시지만 살아있는 증인들이 살아계실 때 여러분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에 혹시 들어두시면 좋을까 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도암면 눈이 많이 오는 꼭 정월 초하루 금일 이지요. 그해 거기 총회로 모이셨습니다. 제가 그때 도암을 들어갔을 때는 방은 좁고 손님이 오시기 때문에 가서 막을 치시고 덕석을 깔고 이렇게 남자 어른들은 모여 있고 이 선생님은 막도 아니고 허술한 짚을 둘렀는데 조그마하니 들음에 예수님이 말구유에 나셨으니까 말구유를 만드셨다는 말이 아니고 말구유를 생각하셔서 거기 계신다고 그때 얼마나 눈이 많이 왔던 지요. 참 많이 왔었어요. 참 요즘 추위같이 추웠을 때입니다. 거기 가 막이 아닌 가 막보다 허술한 짚을 가렸지 그냥 바람이 술술 들어가는 막에 계셨습니다. 그 막에는 저는 안 들어가 봤지요 그때 이렇게 예배시간이 알려지시면 여기서 사무실 가기만큼이나 모임이 있지요. 모임 장소가 있는데 거기를 걸어가실 힘이 없으셨습니다.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올만한 거리인데 힘이 없으셨기 때문에 아마 여기 계신 분인지 아닌지 자매가 업고서 그 조그만 지금 예배당 이라고 쓰신 집이지요. 거기까지 업어 오시면 이제 본인이 무릎을 꿇을 힘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 다리가 무릎에 힘이 없기 때문에 손으로 무릎을 고이십디다. 이렇게 그러니까 다리 힘으로 무릎을 꿇을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무릎을 꿇어가지고 앉으십디다. 그리고 숨소리는 쉬 쉬 나시고 이제 그렇게 계시고 그런 시절에 총회를 모인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모임이 일주일인지 5일인지 끝났습니다. 그럼 지금 오늘밤에 안 오셨습니다. 곡성 김 장로님이 이 선생님께서 조금 오시라 해서 그 막에 들어가셨답니다. 그때는 김 공이십니다.
‘김 공, 내 소원하나 이루어 주십시오.’‘아 선생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순종하겠습니다.’ ‘그러시면 며칠 후에 이 모임이 끝날 텐데 꼭 김 공님만 아시고 저를 업고 지리산으로 업어다 주세요.’이건 절대 비밀을 지키시겠지요? 그러니까 아주 참 김 장로님 충성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생명을 걸고 비밀을 지키고 업어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총회가 끝날 무렵에 늦게야 결혼하신 형제들, 그때는 결혼하신 분들은 빗감을 안 했지요.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그런데 여기 오늘밤에 오신 김 준 선생님 또 김 승명 선생님 그 밖에 결혼하신 형제님 몇 사람이 들어오시더랍니다. 그러니까 이 모임은 본원의 모임이기 때문에 이 모임이 끝나면 우리들을 위해서 한 3일 꼭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요청을 했답니다. 김 공님 말씀이지요. 이 선생님이 수양회가 끝나고 밤중에 둘이 업고 탈출할 계획을 했기 때문에 다시 들어가 뵈니까 ‘김 공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꼭 이번에가 기회입니다. 꼭 이번에 가야겠는데 저 사람들이 저렇게 어린양들이 찾아 왔는데 그 사람들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내 개인의 형편이라면 꼭 오늘이 기회입니다. 오늘 내가 꼭 여기를 떠나야겠는데 저 분들이 안쓰러우니까 사랑스러우니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김 공님 약속한 것을 내가 못 지키게 되었으니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아니 선생님 제게 무엇이 미안합니까? 선생님 소원대로 하세요.’그리고 한 3일인지 금식들을 하시고 모이셨더라. 그래요.
저는 그때 감기가 심해서 한 이틀 참석하고 병원차가 와서 실려 나와 버렸으니까 후문을 들으니까 그 형제간들이 우리가 이렇게 밥 해먹고 우리 자매들이 해 준 밥 먹을 수 없고 우리 죄인들이 우리가 밥을 해 먹던지 굶던지 그럴 랍니다. 그렇게 해서 며칠 모이셨다고 그러시면서 한참 후에 아 그때 내가 꼭 기회인데 그때 내가 김 공님 등에 업혀가지고 지리산으로 탈출 성공 했더라면 꼭 그것이 내 소원이었는데 그러나 형제들에게 유익했다면 못 간 것도 용서 하시라고 그런 결론을 이야기하시더라고 이제 내일이나 오신답니다. 그 김 장로님이, 그 말을 제게 깊은 밤중에 아무도 없는 깊은 밤중에 일어나서 눈물을 글썽글썽 하시면서 목 메인 소리로 그 이 선생님이 그때 하시던 말씀이 자기 일이 아니라 이 나 김 광섭 장로님,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데 내가 그 뜻을 모르고 이렇게 잠자고 있었소. 그리고 말씀을 아주 가슴에서 피가 나는 소리로 제게 해 주십시다 요. 여러분 준비하신 노래를 불러 주십시오.
‘주님 가신 길이라면’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똑같은 말씀이지요. 똑같은 뜻은 같은 말씀이지만 경우가 다르지요. 그런 일이 있고 2-3년 후에 삼밭 실, 때는 가을입니다.
그때 후문을 뒤에 들었지만 밤에 각혈을 많이 하셨답니다. 그 날 밤에, 각혈을 많이 하실 때 이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피를 토하셨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런 밤새도록 간호하시던 자매님들이 철야를 했기 때문에 낮에 윗집에 가서 좀 쉬라. 그래서 윗집에 가서 잠이 들었습니다. 밤새도록 잠 못 잔 자매들 이니까 때마침 함평에 사시던 삼채 형님께서 삼밭 실을 들렸는데 인사하니까 아 잘 왔소. 참 감사합니다. 지금 나를 간호하는 사람들이 밤새도록 간호하고 윗집에서 자고 있습니다. 셋째 형제, 저 사람들이 잠을 깨면 기회가 없으니까 지금 저 좀 업고 나를 업고 지리산 쪽으로 가는 차를 타려면 어디로 갈까? 포천 쪽으로 거기서 한 30 리 되지요. 나를 업고 그 버스에만 태워 주십시오. 평소에 항상 원하던 것인데 때는 지금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른이 참 순박하고 깨끗하신 형제는 너무 황공하고 감사해서 탁 업고 한 백 미터나 퉁 퉁 퉁 업고 내려왔는데요. 때마침 가을 소나기가 몰아 닥쳐 가지고 그냥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니까 한참 업고 업혀 가시다가 물론 형제가 숨이 가프지 않아요?
사람을 업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북 바쳐 가지고 나는 좋지만 이 형제한테 이것은 못할 일이오. 비가 오는데 아니 되겠습니다. 꼭 기회는 좋지만 나는 형제에게 이렇게 고생시킬 수 없소. 올라갑시다. 그래 이 순박하신 형제는 예, 그러고 그냥 다시 올라와서 그날 못 떠났다. 이 말씀은 본인이 하신 것 제가 들은 것 같아요. 본인 입으로요, 내가 그때가 기회가 또 있었는데 아 내 마음이 약해가지고 그 형제만 안쓰럽게 생각하고 형제의 고생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내 소원을 그때 못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때 기회였습니다. 자 그렇게 말씀을 해야 하던 그 심정, 그 영혼 상태, 예수님과 그 선생님 관계, 그런 것은 이제 우리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먹어가니까 설명이 없지만 영과 영으로 알 수 있는 말씀인줄 압니다. 영과 영이,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하면 죽으리라. 성령을 쫒고 자 하면 육이 희생되어야 하고 육을 쫒고 자 하면 영이 희생이 되지 않습니까? 사도바울 말씀같이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그렇게 살고파서 영혼이 그렇게 갈급할 때는 그 피를 토하고 죽어가는 몸이지만 더욱 채찍을 가해가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그 영혼이 얼마나 그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불이 탔을까 싶어요. 예수님을 사랑하고픈 열정이 그냥 가다 죽더라도 예수님만 사랑하고픈 마음 안가고 있으면 간호를 받고 모든 자매들한테 따뜻하게 대접 받지요. 육신은 좋아하지만 영혼이 슬퍼하니까 그래서 그 영혼이 그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에 불이 나서 목말라하던 그런 것이 아닌가? 그렇게도 생각해 보고요.
또 예수님의 제자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려면 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라.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던 그 분부에 충성하시던 제자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짐작이 가는 것이 있지요? 그러나 직접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도 있고 못한 사람도 있지만 그 선생님이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중병, 그 시절에 그렇게 철저히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역시 우리에게 또 한 번 편지입니다. 우리가 그런 선생님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고 또 회상함으로 또 다시 우리 마음에 어떤 빛이 될 것으로 생각 합니다. 그런 뜻이지요. 그런 뜻인데, 병환이 그렇게 중하기 전에요. 오늘밤 여기 와서 무슨 말씀을 해야 하나? 자기가 깨달을 말보다는 이 선생님을 사모해서 모인 형제자매들 이니까? 그때 말씀을 자기가 아는 대로 말씀 드리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싶어서 깜박 잊었는데 여기 종소리 들을 무렵에 생각을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이엉이 짚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붕 위에 옛날 강당 앞에 조그만 막이 있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이 선생님이 계셨지요. 여름에, 그 무렵에는 하루에 세 번씩 예배를 봤습니다. 참으로 천국 같았지요. 모든 식구들이, 우리 자매들이 병원에 근무하기 전 날마다 무등산에 가서 나무 해다 때고 또 보리죽 먹고 피죽 먹고 쑥 죽 먹고 똥 구루마 끌고 그렇게 살던 그때가 참 영혼의 고향이지요.
우리 동광원을 존경하는 분들은 그때 와보신 분들이 흠모합니다. 그때 그 피나는 희생, 피나는 자기부인, 피나는 십자가 그때 지켜 가신 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흠모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천국같이 기뻐했는데 이 선생님의 마음에 젊은이들의 장래를 이제는 염려한 것 같습니다. 나이 한 스무 살, 23세 25세 아주 젊은 사람들 그래서 그 영혼들을 훈련시키고 예수님 앞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는 생소한 남 장로회 울타리 그 병원 울타리로 파송해서 신앙훈련을 받도록 하시는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하루에 세 번 예배 보는 것은 식구가 모였을 때 가능하지. 예배 참석하는 자매들이 거의 근무를 해버렸습니다. 병원 근무를 해버리니까 낮에 종을 치면 노인 한 세 분 한분 모이고 모일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어요. 형편이 말씀입니다. 낮에 모이는 기도회를 없애는데 모두 울었습니다. 그리워서요. 하루에 세 번 예배 올리는 순간 시간인데 낮에 예배를 못 본다. 안 본다. 그게 섭섭해서요. 그래서 예배는 못 보더라도 시간 맞춰 종만이라도 치자. 그래서 계명산에 살던 사연언니라고 젊은 자매가 그 계명산은 문화혜택이 없지요? 그러니까 병원에 다닐 수 없고 이 본원에서 종만 좀 쳐달라. 그래서 내려오신 것으로 기억이 되요. 그런 무렵이고, 나이들은 젊고 병원에 다니고 몰랐던 세상 풍속이 들어오고 치마가 땅에 끌렸는데 치마가 자구 짧아질 때 엄마들이 울었지요. 딸이 병원에 다니는데 치마가 올라갈 때 어머니가 선생님한테 항의했지요. 내 딸 버린다고 나는 이런 단체에 내 딸 못 맞기겠습니다. 내 딸을 이렇게 보호해 달라고 맡겼는데 왜 치마가 짧아집니까? 왜 종아리가 보입니까? 그리고 엄마들이 통곡했습니다.
그래도 앞을 내다보시고 선생님은 나 개인은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로서 죽게 되면 생명을 볼 수 있겠지만 저 사람들은 철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믿어서 따라온 것 아니고 부모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따라왔는데 저 사람들의 길은 저 사람들이 자기들이 자원해서 이 극 생활을 해야지,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현대 문명을 구경하고 보편 신앙을 배워가지고 이 거친 세상을 갈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하겠다. 그렇게 해서 그 어머니들이 그렇게 눈물로 간하고 충고하고 선생님 타락했다. 그래도 어머니들 말씀에 참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젊은이들을 해방을 한 것이 사실이었지요. 확실히 그랬습니다. 그때 그런 걸 조금 알았지요. 저는요. 그러니까 선생님으로서는 앞길이 캄캄해요. 조금 우리 믿음이 제일 좋다. 칭찬하면 모두 좋아하는데 우리도 믿지만 저렇게 장로교 선교사도 잘 믿으니까 사람 거기 보내도 괜찮다. 그렇게 말하면 싫어해요. 어머니들 신앙이 말씀입니다. 단조로우니까 어떠한 뜻으로 그게 달라진다는 거 옛날같이 믿지 않고 이렇게 문화가 들어온다는 거. 그때 참 큰 선생님께서는 밤새워 잠을 못자고 고민이 컸겠지요. 그렇게 하시던 무렵, 그 막에 지금 옛날 있던 그 막에 계시면서 병원에 다니지 못한 자매들, 또 병원에 다니다 말다한 자매들 또 낮에 기도회 있으면 보련만 기도회도 없고 또 그렇게 조석예배라도 보시니까 의지하고 살던 식구들인데 마저 떠날 수 없다고, 정오 예배만 없어도 허전해서 모두 그랬는데 아침저녁 예배도 선생님이 인도해 주지 않고 자기가 어디 가면 어쩌냐 고 물어 보시드만요. 자매들 내가 여기를 떠나서 좀 있다와야겠는데 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니까 순진한 자매들이 뭐 대답을 합니까?
좋다. 궂다. 대답을 안 하니까 설명을 이렇게 하세요. 봉사가 봉사를 손잡고 갈수 있을까요? 물어보니까 또 아무 대답이 없어. 그렇지요? 봉사가 봉사를 인도하면 인도자도 허공에 빠지고 봉사손에 잡힌 봉사도 허공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봉사입니다. 제가 요사이 깨달은 것은 내가 봉사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무리 조금 섭섭하더라도 나를 좀 보내주십시오. 이 선생이란 놈이 봉사니 이 선생이 눈을 떠서 보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같이 바른길을 가야지 선생이 봉사니 여러분도 다 바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헛길을 가고 여러분도 길을 잘못 가고 있으니까 이제도 늦지 않으니까 저를 좀 보내주시면 제가 가서 눈이 떠진 다음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들 제가 가도 좋겠습니까? 자꾸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 줘요. 눈물이 글썽글썽하고 엎드려서 그런데 여기 그 질문 하는걸 들어보신 자매님들 계신지 몰라도 제가 기억하는 몇 사람은 벌써 시집들 다 가버렸어요. 그때 눈물 글썽글썽하고 선생님 가지 마세요. 그 말도 안하고 가십시오. 허락도 못하고 그리고 저를 좀 보내주세요. 가면 괜찮겠지요? 제가 눈떠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대화 하시던 광경이 눈에 섬섬해요. 그러면 선생님이 아니면 젖을 먹는 어린애기 같이 하루도 못살 것 같던 식구들인데 그 사랑하는 제자들을 어린양들을 떼어놓고 젖을 떼고 행방불명이 되어야겠다는 급박한 그 소원이 깊은 선생님의 심경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을까요? 그때 그 목말라 하는 그 괴로운 마음, 이렇게 따뜻하니 천국같이 조석으로 찬송 부르고 편히 사는데 이 철없는 사람들 동산에 남겨두고 자기는 행방불명이 되어야겠다고, 어디 가서든지 눈을 떠가지고 내가 돌아올 테니 보내주십시오. 애원하던 그 심정, 그래서 한말로 제가 결론을 미리 내려서 안 됐는데요. 결론이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들었습니다. 지금 수도원에 들어가서 10년 20년 30년 근 30년 수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워서 예수님 고향 찾아가 계십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쉬던 동산에 가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평생 수도를 하고 흰머리가 났는데 거기 와서 배우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고 제가 들었는데요. 거기 예수님이 살던 동산이라고 찾아와서 배우고 깨닫고 마음이 이렇게 부닥친 말씀은 천국을 가보고 온 사람의 이야기랍니다. 천국을 가보니까 내가 자기가 살아생전에 모두 죄인이라고 미움당한 사람들이 와있더라 그래요. 가사 우리 식구들 가운데 죄가 많이 있다고 그냥 미움당하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만 천국 와있고 자기가 알 때 덕이 높고 선생님 말 듣고 존경받고 우러러보이고 덕이 높다고 성인 말 듣던 분들이 지옥가보니 그 분들이 다 왔더라고, 그 소식이 왔어요. 제가 오늘 오전에 들었거든요. 이 말씀 이왕 들은 복음이니까 저도요. 어떻게 희망이 생기던지. 그러니까 참 이상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천국 가겠다고 오늘날까지 5천년 역사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 예수 안 믿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방 사람들이라고 죄인이라고 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20세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깨달은 분들이 생각 했겠지요. 그 이야기도 깊이 명상하고 깨닫고 보니 현세에서 덕이 높다. 믿음이 좋다. 존경받는 분들은 다 지옥 갈 것이고 현세에서 죄 지었다고 꾸지람 듣고 미움당하고 버림당한 사람들은 다 천국 갈 것이 훤히 눈에 보여요.
그런데 지금이야 그걸 누가 알아줍니까? 이 시간에는 존경받고 예수 잘 믿는다고 그리고 덕이 높다고 칭찬받는 것이 좋지. 지금 타락했다고 모두 싫어하고 상대도 안 해주고 서러움 당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 말씀은 예수님 증거는 다 그런 말씀뿐이지요? 누가복음 15장을 보나 바리새교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를 보나 예수님 말씀이 그렇고 현 20세기에 수도한 분이 그렇게 깨닫고 그런 말씀을 전해준다고 해서요. 참 희망이 생겼습니다. 희망, 그러시면 다시 아까 마가복음 8장 4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나 불러 주십시오. 예수께서 군중과, 따라 한번 해 보실까요?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 (찬양)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다 아시는 말씀인데요. 그 목이 후두결핵이 만연이 되셔서 물이 안 넘어 가시고 그랬지요. 밤에 돌아가셨는지 모르니까 새벽에 자매님들이 들여다보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때인데 제가 오 장로님 살아계시니까 이야기 해 드리겠는데요. 하루는요. 이제는 여자들이 해주는 밥 안 먹겠습니다. 밥을 해드려도 못 잡수십니다. 그때는 물도 안 넘어갈 때인데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저를 간호하지 말고 남자가 해 주십시오. 그래서 오 장로님이 간호해 주십디다. 그날 밤에요. 그런데 오 장로님은 윗집에 계셨지요. 여기 감나무 동산 선생님은 벌통 집에 계셨고 그날은 여자들이 빗감을 안했지요. 그날부터 여자들은 절대 여기 안 온다. 남자가 간호한다. 오 장로님 내려가셨어요. 그래 제가 조금 옆에 있었지요. 저도 몸이 약하니까 조금 있어봤는데 이렇게 일어나고 싶을 때는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러시더만요. 오 장로님이 서툴러요. 이렇게 조심해서 일으켜야 할 때 무서워서 벌 벌 떨고 손을 대니까 픽 쓰러져버리고 또 여기 이렇게 일으켜 주십시오. 일으키다 벌 벌 떨면 툭 쓰러져. 그럼 오 장로님이 쩔쩔매세요. 한 몇 분 동안을 도저히 불가능해. 서툴고 조심만 하시지. 그러니까 전혀 숨도 쉬시고 운동을 해야 피가 도는데 피가 안도는 때니까 주물러주고 어쩌고 해야 하는데 장로님이 너무 그냥 벌벌 떠시고 조심만 하시지 간호를 못하시더고만요. 그래 그날 아마 24시간도 못하고 쫓겨 오셨어요. 윗집에 도저히 안 되겠어. 그 원, 소원은 절대 남자들이 간호해 주기를 그렇게 열망하셨어요. 몸은 말을 안 듣고 남자들이 이렇게 나를 좀 보호해 주면 쓰겠는데 우선 숨을 쉬어야 하루를 살지요. 숨을 쉬게 해서 일으켜 주시오. 내 몸을 좀 구굴려 주시오. 그걸 못하니 어떻게 해. 그렇게 소원하던 소원을 못 이뤄 드렸습니다. 결국은 자매들이 또 가서 간호했지요? 그런데 본인 생각이 아마 다음에 들었지만 임종이 며칠 안 남았다. 본인이 알았다. 이 몸이 이렇게 가면 며칠 후면 세상을 떠나겠다 싶어서 자매들 손에서 안 죽으려고 자매들이 간호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안 되기 위해서 물론 그 뜻은 아니겠지요? 황송해서 그 깨끗하고 거룩한 자매들이 간호하는데 내가 죽지 않도록 되어야 되겠다. 간호를 받으면서 안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끊김)
그날은 두 분이 보듬다 시피 하십디다. 기차에서 보니까 숨도 다그고 앉지도 못하고 기운도 없으니까 두 분이 서로 애기 보듬듯이 이렇게 두 분이 보듬고 서울 가셨습니다. 서울서 딱 내려가지고 행방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전혀 행방이 없지요. 역에 내리니까 원장님 들어가세요. 원장님 가실 곳으로 가시라고, 또 그런데 옛날에 들었던가 봐요. 셋째 형님이 삼채 형님이 살던 신촌 걸인굴이 있다는 말 들었던지 그리 나를 좀 보내주십시오. 그래 수소문해가지고 당도한 것이 해가 질 무렵이에요. 원장님은 현 동완 선생님을 만나가지고 조금 편리를 받아 보실까하고 가시고 그랬던 것 같아요. 거기를 갔는데 산비탈인데 일정시대 기차 폭발탄 안 맡기 위해서 기차를 넣기 위해서 굴을 뚫다만 굴이에요. 굴이 이 강당보다 더 큽니다. 큰 굴입니다. 거기에 들어서니까 걸인들이 4-5명이 살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아프신 분이고 예수 잘 믿는 분이신데 우리가 좀 들어가도 괜잖으냐 고. 그러니까 그 참 기적이지요. 걸인들이 자기 막 양보 않습니다. 뭐 사람이 죽냐사냐 박이 터지게 싸울 판인데요. 예, 우리들이 비워드리겠습니다. 하고 그 걸인들이 자기들의 숙소를 싹 비워주고 다른 데로 가요. 그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때가 육이오 후 라지만 걸인들 무서울 때입니다. 사람들 죽일 때 아닙니까? 아 저 걸인들이 그렇게 양보하고 갈수 있을까? 아침에 보니까 저 다른 굴속에 있어요. 셋째 형님이 옛날에 알았겠지요. 걸인얼굴도 알고 그러는데 그 형제가 주워 다 놓은 사람이 칠성판 있지요? 무덤에서 쓰고 내버린 것을 주워 다 놓았어요. 사람이 죽으면 내버린 요대기 같은 거 좋은 것 아닙니다. 떨어진 담요 같은 것 몇 개 있습디다. 그러니까 칠성판을 깔고 거기다 가마니 썩은 거 하나 깔고 그리고 그 위에 아무것도 가져간 거 없으니까 주워 다 놓은 담요 빨아놨겠지요?
홑이불 같은 거 그런 걸 덮고 누우셨는데 얼굴이 파래져요. 핏기가 없으니까 몸에 아무것도 없지요. 피가 그런데 임종이 가깝지요. 거기서 임종 하시려고 그러면 왜 그렇게 자원하는가 여기서 돌아가시면 그 자매님들이 따뜻하게 임종해 주실 텐데 따뜻한 방에서, 이 수도하고 예수님 사랑하는 정배들 손에서 어찌 이 죄인이 죽을 수 있냐? 나는 죄인으로서 소리 없이 어디 가서 피해 끼치지 않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임종을 해야겠다. 예수님 한분 의지하고 떠나지 않았겠어요? 그런 순간에도요. 그런데 이야기 들으면 쉬워도 건강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임종이 가깝고 숨이 막히는데 식구들 몰래 혼자가 죽어야겠다고 떠나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요? 우리한테 저는 천 번 다시 낳아도 없을 것 같아. 천 번 다시 살아도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생명에 충성하지 않으셨습니까? 진리에 충성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그렇게 했으나 그때는 임종 안하셨지요? 그렇게 다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신 일이지만 다시 회상하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 따라서 형제를 아끼기 위해서는 자기 혼자 고난을 담당하겠다는 그 참 넓은 사랑, 그런 것은 우리가 본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말씀을 제가 드리면서 그 선생님이 현재 살아계시면 장로님과 원장님과 이렇게 늙어 가시겠지요? 현재쯤 살아계시면 어떻게 되셨을까 그 점입니다. 몸이 건강하셨고 현재까지 살아계셨으면 그토록 자랑하는 자매들을 남겨놓고 예배시간이 아니면 그렇게 서러워하고 그리워하던 자매들을 동산에 남겨놓고 혼자 눈을 뜨러가고 싶었던 그 소원, 어디 가서 눈을 뜨셨으면 오셨을까? 또 현재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갈급 하셨을까? 그 무엇을 그 분이 소원했을까? 그 점입니다.
그러면 광주에 사람이 모이기 전에 남원에 모이기 전에, 오 장로님과 이 선생님 두 분이 사귀신 시절에 제가 해방 후에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거기가 큰골 작은골 그러지 않아요? 도구박골 도구박 골은 수레기 어머니가 한 가족 사시고 그 넘어 큰골에는 오 장로님 가족이 한집 사시고 그 무렵이에요. 그런데 그때 장로님께서 그때 육이오 후니까 생활이 없지요. 뭐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시킬 사람이 없어요. 삯을 줄 사람도 없으니까 목수 일을 하시면 겉보리 한말이나 쌀을 누가 주겠습니까? 보리 한말이나 그렇게 받고 일을 할 때, 시기니까요. 소재 지금 소재마을 있지 않습니까? 소재 그 부자할머니가 계명산에 와 사셨지요? 윗집에서 주무시고 그 부자 할아버지가 제일 부자니까 장롱을 짜 달라 해서 장롱을 짜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장로님 뵈었어요. 이 선생님 따라가니까 장로님께 가서 인사를 시키고 거기서 목수일 배워라. 그러십디다. 거기 장로님이 목수일 하실 때 제가 거기 부쳐 가지고 부잣집에서 쓰지 않는 쓰러져가는 집 한 칸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목수 간하시고 밤에 그 방에서 자지요. 여름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한 일주일 만에 찾아오셨습니다. 오시면 밤에만 주무시고 해가 뜨면 수레기 어머님한테 가시지요. 왜? 장로님이 잡수시고 남은 밥이 있으면 다 남긴 것을 모아가지고 갖다 드리러 가십니다. 한 오리 십리나 가깝지요. 밥 갖다 드리고 또 밤에 오시고 한 며칠 그렇게 계셨습니다. 밤중에 그 어른들이 제가 보기에는 잠을 안 자시는 것 같아요.
그 때는 등불을 안 쓰시니까 등을 준비도 없고요. 해가 지면 캄캄하고 해가 뜨면 일을 하고 그런 형편 이니까 불을 켤 수도 없지 않습니까? 새벽 세시나 두시나 될라는지 몰라도 제가 자다가 이렇게 잠을 깨 보니까 캄캄한 밤인데 이 선생님 음성이 들려요. 장로님은 지금도 그러시지만 그때는 참말로 그것 이상이시지요. 한 달을 살았어도 말하는 것 못 들어봤어요. 전혀 말씀 안하셔요. 이 선생님 말씀해도 대답도 안하십니다. 가만히 듣고만 계시지 전혀 혼자 일 하세요. 그러니까 밤중에 캄캄한 밤중인데 선생님은 앉아서 혼자 말하시겠지요? 안보이지만 그럼 말하는데 장로님은 그때 누워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때 누워 가만있으니까 두 분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 선생님이 이런 말씀 하시더고만요. 한 사람은 양을 지키고 한 사람은 꼴을 뜯어오면 좋겠습니다. 그 말하시고 십분 이십분 말이 없지요. 그 말 뿐이에요. 그러니까 잠결에 들어보니까 뭔 말씀 하시는데 한 사람은 양을 지키고 한 사람은 꼴을 뜯어오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때 이 선생님을 순사보다 무섭고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안들은 듯이 듣고 있으니까 아무소리가 없어요. 그 말만 하시고 한참이나 이십분이나 흘러갔는데 그때 한 골짝에는 남자들이 있고 한골채기에는 여자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양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 생각하면 문바우는 지금 자매가 와 있었지요? 한 자매가 출가해서 와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남원에서요.
그러니 인제 그쪽은 여자들이 있고 장로님이 계신 그 골채기는 큰골 아닙니까? 거기는 남자들이 있는 것이 어떨까? 그런 의향인지 몰라도 한골채기는 여자들이 있고 한골채기는 남자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이 너무나 엄숙한 말씀이지요? 제가 이렇게 전하는 것 같지 않지요? 하늘에서 말을 떨어지는 것 같지요? 엄숙한 말이에요. 그런데 들으신지 안 들으신지 짐작으로 들으신다고 생각하지 숨도 숨소리도 안 들려요. 오 장로님 지금도 오 장로님 제일 이 선생님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때도 숨을 안 쉽니다. 이 선생님 옆에 오면 가만히 자는 듯이 앉아있지, 전혀 꿈지럭도 않으세요. 그때요, 물론 장로님도 들으셨겠지요? 한 사람은 양을 지키고 한 사람은 꼴을 뜯어오면 좋겠습니다. 한 골채기에는 남자들이 살고 한 골채기에는 여자들이 살면 좋겠습니다. 그 말이에요. 그 말이 너무나 엄숙하고 아주 심각하게 들렸지요. 그때 제 나이가 23살인가? 그 뭔 소린가? 지금이니까 조금 생각이 나요. 요렇게 나타났으니까 지금은 그때 무슨 동광원이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때 우리가 수도원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때 태동하신 것 요렇게 모임이 남반 있고 여반 있고 이렇게 살고 그것이 잉태되는 순간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때 생각은 이 선생님은 정신지도를 하시고 경제, 먹고사는 밥은 오 장로님이 이렇게 장롱을 짜시니까 그 수입으로 생활비를 하면 쓰겠습니다. 그런 뜻도 되겠지요? 간단히 생각하면요. 어찌되었든지 그런 말씀을 들은걸 생각하고요. 그럼 그러던 분이 모여서 살다보니 자기가 눈이 어두웠다. 그걸 깨달았다. 내가지도 능력이 없다. 스승 자격이 없다. 큰일 났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요.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랬어요. 여기서 서울 가시기 전에 혼자 앉아서 저는 교육에 실패했습니다. 제가 한 거 전부 잘못했습니다. 그 선언 하셨습니다. 왜 이 말씀을 제가 드려야 합니까? 선생님을 잘 못 가르쳤습니다. 실패 했습니다. 하고 떠났는데 우리는 선생님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면 안 되지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살았으면 많이 고쳤을 겁니다. 눈을 떠가지고 훨씬 더 지금보다 더, 더 겸손하게 지금보다 더 자비롭게 더 따뜻하게 더 부드럽게 성령이 충만하게 지금 말고 훨씬 더 잘 인도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계실 때 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이거 우리가 눈 떠야 하겠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겸손해서 그랬겠지요. 그러나 확실히 그 분은 실패했다. 그렇게 자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더듬어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가르치고 성령의 지도를 받도록 미처 못 했다. 그런 뜻도 있는 것 같아. 직접 성령이 영으로 지도하도록 인도했어야 하는데 사람이 앞서가지고 사람이 가르쳤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고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런 뜻도 있었는지 몰라요. 그렇고 사람이 가르치다 보니까 편정이 흘러가버려 친한 사람은 친해지고 또 멀어지는 사람은 멀어지고 편화가 와요. 불평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고 낙심 자가 생기고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지도할 수 없다. 그걸 깨달은 것이 확실해요. 성령이 영혼을 지도하는 것이어야지 사람은 심부름만 하고 사람이 그 사이에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그때 교회서는 빗발치게 이 단체를 고발했습니다. 성자숭배해서는 안 된다. 여기 들어왔던 오 목사님도 그 충고를 했어요. 형님 성자숭배하는 것 예수 아닙니다. 이 선생을 숭배 말라. 그 뜻이지요. 아, 예수를 믿지. 왜 형님은 이 선생님을 믿소? 그 충고지요. 그때 우리가 섭섭히 생각 했지요. 왜 직접 예수를 가르치지 사람을 가르치는가? 거기에 흘러가서 잘못되면 안 됩니다. 그런 충고를 늘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본인도 사람이 사람을 지도할 수 없다. 성령께서 영혼을 지도하도록 내가 맡겨드려야겠다. 그런 생각이 아닌가? 짐작이지요. 그분이 설명한적 없어요. 또 우리 경험으로 선생님이 그런 뜻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는 것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달리 생각해 보셔야지요. 그 뭔 뜻이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우리는 그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오늘날 장로님한테 이 책을 얻어왔어요. 침묵 속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엄률 수도회 수도생활 이라는 글을 보니까 아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렇게 사셨겠구나. 그겁니다. 이 책을 결국 이렇게 살고 계셨겠다. 사진을 보면 여자들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남자들이야. 이렇게 살고 싶었어. 선생님이 또 사진을 보면 남자 하나도 없고 여자들뿐이야. 그렇게 평생 소원하던 영성 지도하시기를 성령께 의지하시지만 지금 20세기에서 이렇게 책이 나온 이렇게 모아 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짐작이 간다는 말씀이고요. 책은 여러분이 사 보셔야 하겠지만 장로님이 아침에 조금 말씀 했지요. 이제 몇 구절 읽어 드리지요.
어느 신부가 미국에 있는 수도원을 방문하고 자기 소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로 하고요. 조금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신학생 때 토마스 모턴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토마스 모턴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가 살았던 테라피스 수도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나도 테라피스 수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사제가 된 후 나는 사목생활에 깊이 투신했고 사제로서 생활도 참으로 기쁘고 보람 있었다. 그러나 사제 생활을 하면서 내면적으로 깊이 요구되는 것은 깊은 기도생활 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사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신학생 때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 욕망은 날이 갈수록 커갔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용기를 주셨고 미국에 어느 테라피스 수도원과 관계를 맺어주셨다. 그런데 마침 그 수도원은 한국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말을 시작한 자기 탐방기인데요. 자기가 다녀와서 글을 썼는데요. 다 읽을 수 없어요. 조금만 몇 마디 더 읽겠습니다.
도착한 다음부터 나는 정식 수도생활을 시작하였고 예외 없이 다른 수도자들과 똑같이 생활 하였다. 어려운 일이 이 생활을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으나 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단순한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기상은 새벽 두시 일어나자 즉시 성당에 가서 새벽기도가 시작되었다. 모든 기도는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아름다운 전례였다. 이것도 우리가 참고해야 합니다. 빡빡하니 이렇게 앉아있지 마시고 막 들어서서 한분 두 분 노래 시작하면 이십 명, 삼십 명 노래 부르다가 끝나는 거지요. 왜 이렇게 꼭 설교를 해야 합니까?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런 거 다 연구해서 달라질 것 같아요. 새벽에 긴 독서를 들을 때, 나는 줄 곳 졸음과 싸워야 했다. 새벽기도의 각자 독방에 가서 묵상 시간을 갖으며 아침 기도 전까지 각자 혼자 식당에 가서 빵 몇 조각과 커피로 식사를 한다. 수도자들은 혼자 식사를 하면서 책을 들고 영적 독서를 하거나 아니면 깊은 묵상 중에 식사를 한다. 아침 기도는 새벽 5시에 시작되고 기도 중에 미사가 봉헌된다. 사제 8명과 평 수사를 합쳐 50여명 되는 미사는 이곳 전례의 정점이다. 둥그런 제대에 모여 함께 미사를 봉헌할 때 이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같은데 몇 사람 앉는데 둥그렇게 앉아서 예배를 본다. 이 말씀입니다.
나는 이 수도원이 바로 이 세상의 불이며 전 생명력의 핵심이며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힘임을 알고 실천하였다. 아침기도가 끝난 후 즉시 새벽부터 각자 맡은 지역에서 2-3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모든 작업지시와 연락 사항은 게시판을 통해서 알려진다. 작업복을 갈아입은 수도자의 모습은 말단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머리는 삭발하고 외모는 모두 기도와 단식으로 단련된 검소한 모습뿐이다. 작업 중에도 절대 침묵이다. 필요할 때는 수화로 대화하고 더 필요할 때는 말로 통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 수화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사랑에서 모두가 깊은 침묵 중에 일을 한다. 이들은 일 하면서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일하며 기도하고 있다. 나는 빵 공장에서 빵을 하나한 담으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 죄인들,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바쳤다. 이상하게도 일하면서 하는 기도는 부심 없이 잘 되었다. 또한 자신을 새롭게 해 주었다. 일하는 도중에 작업복 차림으로 8시경에 모여서 삼시화를 바친 후 또 작업장으로 가거나 또 각자 기도의 시작을 갖는다. 다시 낮기도 육시화를 하기위해 모이고 기도와 함께 모여서 침묵 중에 독서를 들으면서 식사를 한다. 점심 후 잠깐 쉴 수 있고 한시에 모여 구시화를 바친 후 즉시 오후 일을 시작한다. 이곳은 수십만 평 되는 큰 수도원이라서 밖의 일도 많다.
농장 목장 공장 등, 오후 노동이 끝난 후 수도원에 돌아와서 저녁기도를 마치고 각자 묵상시간에 오전과 같이 식사를 하고 끝기도를 할 때까지 또 기도시간을 갖는다. 기도를 마친 후 7시 이후에 각자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결국 이들은 하루생활을 침묵에서 시작하여 침묵으로 끝난다. 하루에 일곱 번씩 주님께 찬미를 드리고 시편 120편, 하나님의 일 성무일도 영적독서 하루일과가 균형 있게 짜여 져 있으며 오락 시간도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없다. 단 신문은 필요한 세상 뉴스만 읽을 수 있도록 가위질을 하여 매일 도서관에 놓여진다. 도서관은 수도자들의 영적 지도를 위해 많은 책과 잡지들이 있고 수도원 곳곳에 관상과 묵상을 하기 편리하게 방들이 꾸며져 있으며 수도원 밖은 온갖 새들과 아름다운 대자연이 펼쳐져 있고 노루까지 와서 수도자들과 함께 노는 지상낙원이다. 수도자들의 유일한 휴식은 주님 안에서의 휴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24시간 항상 휴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말씀을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 수도원 수도자들은 수도원 안에 그대로 머무름으로써 혼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하나님의 증인들이요.
24시간 항상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것을 철저히 다 버리고 이 지상에서 저 천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생활하면서 줄 곳 깊이 느낀 것은 이 수도원은 이 세상의 불이라는 것이었다. 이 수도원은 이 세상에서 성령의 불을 지르는 불이다. 이 세상에서도 그 누구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은 이 수도원은 이 세상을 지탱하고 떠받혀주고 있다. 이 수도자들은 이 생활을 철저히 끊어버리고 이 세상을 철저히 끊어버리고 은둔생활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 세상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서 안고 있으며 이 세상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느끼며 함께 나누고 있다. 이 말씀은 이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신 상문 장로님이 꼭 이렇게 한번 말씀하셔 깊은 산중에 선생님은 계셔도 세상을 철저히 지탱하고 있다.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모임이라고 그렇게 예찬 하시더만요. 사실 우리 한국이 망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깊은 산중에서 기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 많이 들었지요. 그 시절이에요.
사실 내가 이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놀란 것은 이들이 이 세상을 버렸는데도 그토록 이 세상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 세상의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 그 사랑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들은 하루 종일 기도를 하지만 자기 자신들의 기도는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가 세상을 위한 기도 남을 위한 기도였다. 이것은 곳 수도자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을 닮은 봉사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들 수도자의 생활은 덜 바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활동세계의 사람들보다. 더 바쁘다. 하나님을 찾기에 바쁘고 기도하기에 바쁘고 자기를 정화하기에 바쁘고 이 세상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에 바쁘다. 이들은 일분일초도 낭비 없이 철저히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온 정열을 쏟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 수도원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하루에 몇 바퀴씩 세계 일주를 하는지 모른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내려지기를 기도로 만민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이들이다. 이들 수도자는 특별히 이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형제들에게 얼마나 예민한지 모른다. 이 세상을 철저히 끊어버렸기에 이렇게 깊이 침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수도원은 세상의 도피처가 아니다. 이들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거룩한 삶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거룩한 것과 같이 너희고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르는 생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찬송 부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