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방송가를 떠났다. 그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그가 고민했던 5일간의 시간을 따라가봤다.
그는‘잠정’이라고 단서를 붙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동의 은퇴는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세무 조사를 받고 수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그는 추징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지 닷새 만에 돌연 기자 회견을 자처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강호동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가 세금으로 구설수에 오른 후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에 대한 자책감이 그를 짓눌렀다고 했다. “웃음과 행복을 주는 의무를 가진 사람인데, 어찌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 수 있겠나”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고통은 짐작되었다. 은퇴 이후, 그와 절친한 사이인 한 연예계 관계자를 만나 기자 회견 전후 일주일의 시간 동안 강호동의 공개되지 않은 시간들을 들어보았다.
대중의 비난은 처음, 강심장은 무너졌다
강호동은 탈세 의혹과 관련해 며칠 동안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자신과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PD, 동료, 지인들을 만나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밝혀왔다. 국민 MC로 큰 사랑을 받던 그는 지난 며칠간 자신을 향해 쏟아진 의혹과 공격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는 기자 회견을 하기 전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해피선데이-1박 2일’의 나영석 PD, 유재석의 매니저와 여의도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나영석 PD는 강호동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가 무척이나 심란해해서 큰 결정을 내릴 것 같다는 짐작은 했지만, 바로 다음 날 ‘잠정 은퇴’를 선언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 PD는 일적인 관계를 떠나 그를 오랫동안 곁에서 봐온 동생으로서, 그의 막막한 심경을 그저 들어주기만 했을 뿐, 어떤 조언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지난 7일, ‘무릎팍도사’의 촬영도 취소한 상태였고, 8일에는 ‘강심장’의 녹화에 임하며 박상혁 PD에게 은퇴를 고려 중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녹화 중에는 다른 연예인들이 전혀 눈치를 차리지 못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던 그였지만 대기실에서 박 PD와 만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했다. 박 PD는 “다 지나갈 것이다. 조금 더 버티자”라며 은퇴를 만류했지만 강호동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듯, 그는 굳은 표정으로 방송국을 나갔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녹화가 되었다.
강호동은 세금과 관련된 소문이 퍼진 직후, ‘1박 2일-같이 가자 친구야’ 편에도 출연한 적 있는 친한 동생인 박광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몇 시간이 지나 강호동을 데리러 간 매니저는, 주인도 없는 집 거실에 불도 꺼놓고 혼자 TV를 보고 있는 강호동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TV를 보니, 그는 한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 중이던 ‘무릎팍도사’를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고 매니저 또한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옆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며칠간을 잠도 못 이룬 채 고민에 빠졌던 강호동은 추석 연휴를 앞둔 9일 오후, 매니저 2명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오늘 저녁에 기자 회견을 해야겠으니 빨리 호텔을 예약하고, 언론사에 이 사실을 공지하라고 했고, 은퇴 결정에 놀란 매니저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자 회견 준비를 했다고 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큰일을 준비해야 했던 탓에, 경호업체에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강호동의 매니저들은 친한 동료들에게 연락을 해서 도와달라고 했고, 기자 회견장에는 유재석, 이수근, 윤종신, MC몽 등의 매니저들이 달려와 현장 진행을 맡게 되었다.
직접 심경을 적은 글을 발표한 후, 잠정 은퇴를 선언한 그의 선택에 언론은 술렁였다. 회견장을 빠져나간 후 강호동은 자신을 방송가로 이끈 선배 이경규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고 울음을 참으며 이 사실을 알렸다. 당시 ‘붕어빵’을 진행 중이던 이경규는, 강호동의 전화를 받고 거의 ‘패닉’에 빠졌다고 한다. 녹화를 서둘러 마치고 강호동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지친 그를 위로했다.
강호동에게 가는 내내 매니저에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더 빨리 운전할 수 없느냐고 재촉을 한 이경규는 그날 밤 강호동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강호동을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이수근 또한 그의 은퇴 결정에 큰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매년 추석 때마다 비행기를 이용해 부모님이 있는 마산에 내려갔던 강호동은 기자 회견 직후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워 고향을 찾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추석인데 마산까지 운전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레 부탁을 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그냥 서울에 있겠다고 한 것이다. 아버지 또한 그의 은퇴 선언에 많이 놀랐는데, 강호동은 자신의 힘든 심경과 상황을 아버지에게 전하며 고향에 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박 2일’의 나영석 PD
“솔직히 은퇴까지 할 줄은 몰랐다”
지난 9월 19일, ‘1박 2일’의 멤버들과 제작진이 모여 회의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호동의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던 시각, 충북에서 ‘1박 2일’의 촬영 답사를 마치고 오후 늦게 KBS로 돌아온 나영석 PD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늘 모임에 강호동도 오는 건가
아니다. 이수근, 이승기, 김종민, 은지원만 온다. 엄태웅은 부산에서 영화 촬영 중이라 오기 힘들다고 했다. 이번 주 금요일에 강호동 없이 촬영을 하는데, 잘 해보자는 의미로 식사를 하는 자리다.
은퇴 기자 회견 새벽까지 같이 있었다고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나
많이 심란해하는 것 같아서 그냥 이야기만 들어줬다. 며칠 동안 많이 힘들었는지 수척해졌더라. PD를 떠나 그냥 친한 동생으로서 응원밖에 해줄 게 없었다. 큰 결심을 한 것 같긴 했는데, 은퇴를 선택할지는 솔직히 예상을 못했다.
기자 회견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나
이미 일어난 일은 할 수 없고 안타깝지만 어쨌든 PD로서 ‘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박 2일’에서는 이별 여행을 추진한다고도 알려졌는데
간부들은 원하고 있는데, 솔직히 본인이 강호동이라면 그 촬영을 하겠나? 당연히 힘든 일이지 않을까 싶다.
‘1박 2일’도 원래 6개월 시한부 선고를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했던 터라 타격이 크겠다
즐거울 리가 있겠나. 당연히 안타까운 마음이다.
은퇴 선언 이후 강호동과 만나거나 연락을 한 적은 있나
없다. 지금 마음도 좋지 않은데 통화를 하면 아무래도 많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매니저랑은 이야기했는데 좋지는 않은가 보다. 집 앞에 나오기도 좀 껄끄러운 상황이라고 하더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은퇴 철회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개인의 판단을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본인이 힘들고 아프다는데 ‘뭘 그런 걸로 은퇴까지 하느냐’는 시선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본다. 누구라도 이 상황이라면 괴로워서 말라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죄를 지었든 아니든, 타인은 비난받는 사람의 심정을 전혀 모르지 않나. 본인이 아니고서야 그 괴로움을 어떻게 이해하겠나. 참고로 난 강호동을 옹호할 생각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것 같나
난 아무래도 오랜 시간 같이 일을 했으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전제 하에 말하고 싶다. 강호동은 연예인으로 데뷔한 지 오래됐지만 한 번도 이런 식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다. 주변 관리를 굉장히 철저히 하는 스타일인데, 처음으로 이런 상황에 처한 거라 아무래도 면역력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10년 넘게 완벽하게 자기 관리를 해온 사람인데, 이유야 어찌 됐든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컸던 걸로 보인다. 여러 가지가 겹쳤을 것이다.
‘1박 2일’은 강호동 없이 5인 체제로 가는 것인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나도 예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호동의 일과 관련해서 기자들의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 연락을 안 받고 내가 욕을 먹는 게 차라리 낫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이상한 이야기만 나오니까.
강호동의 아내, 집 앞에서 만나보니
은퇴 선언 후 칩거 중이라는 강호동과 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갔다. 강호동의 집은 기존의 아파트 한 동 전체를 재건축한 곳. 요즘 강호동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집 밖에 거의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주민들과 상가에서 일하는 분들은 최근 강호동과 가족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요즘 기자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만나기 힘들 것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근처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오전 10시경 강호동의 아내인 이효진씨가 은색의 중형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녀는 하얀 티셔츠에 검정색의 슬림한 바지를 입고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검정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은퇴 발표 후 강호동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그녀는 “그냥 집에 있어요”라며 아파트 계단을 급히 걸어 올라갔다.
“가족들도 많이 힘드시죠?”라는 질문에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말하기가 좀…”이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은퇴를 하기 전 같이 상의를 했느냐는 말에도 묵묵부답, 그녀는 기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측근에 따르면 강호동은 원래 학동역 근처의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지만 은퇴 발표 후엔 아파트 지하에 있는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 시후도 요즘은 아빠와 집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의적 탈세인가, 절세인가
강호동은 세금을 성실히 냈다고 주장했지만, 국세청은 추징금 7억 원을 부과했다. 이는 강호동의 세무사 측과 국세청 사이에, ‘필요 경비’ 인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벌어진 것이다. 필요 경비란 연예인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의상 구입비, 스타일리스트 식사비, 차량 운영비와 같은 것이다. 보통 세금은 전체 수익에서 필요 경비를 빼고 남은 ‘실제 수익’에만 적용을 하는데, 국세청은 강호동이 필요 경비를 실제보다 지나치게 많이 썼다고 신고해서 세금을 덜 냈다고 판단을 한 것.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유명 가수의 매니저는 “솔직히 연예인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일이다. 필요 경비 부분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가 없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강호동 또한 은퇴 전 공식 입장을 통해 “변호사와 세무사가 필요 경비를 인정해 달라는 점 등 몇몇 항목에 대해 국세청에 반론을 제기했다”고 말한 점을 감안했을 때, 그가 고의적으로 탈세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 어떻게 되나
현재 강호동은 KBS ‘1박 2일’을 비롯해, MBC ‘무릎팍도사’, SBS ‘강심장’ ‘스타킹’ 등 지상파 4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강호동이 급작스레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 프로그램들은 후속 대응을 심각하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1박 2일’은 기존 멤버들만으로 종영 시점인 2월까지 방송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강심장’은 최근 후임 MC를 물색하기 위해 몇몇 스타들에게 접촉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타킹’도 일반인의 참여가 큰 프로그램인 만큼 강호동의 하차로 인해 방송을 폐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그의 공백을 메울 MC를 찾고 있다고 했다. 한편, 강호동의 존재감이 가장 큰 ‘무릎팍도사’의 경우 폐지설이 가장 강력히 나돌고 있는 프로그램. 제작진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강호동의 뒤를 이을 만한 MC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