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삼촌
-윤동재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고 내친김에
경남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
이극로 선생 생가를 찾아갔지요
놀랍게도 거기 이극로 선생이 언제 오셨는지
돼지고기 수육 김치를 안주로 해서
조카들과 막걸리 한잔하고 있었지요
이극로 선생이 나보고도 한잔하라고 해서 넙죽 받았지요
살아서는 북한에 있느라 한 번도 오지 못했는데
죽고 나니 이렇게 맘대로 올 수 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죽을 것을
너희들도 그동안 나 때문에 괜스레 힘이 들었다고 하며
조카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꼬옥 잡아 주며 미안해 했지요
조카들은 삼촌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때로 원망한 일이 죄송하다고 했지요
막걸리 힘을 얻어 조카들 한목소리로 이극로 선생에게
삼촌은 가난한 농사꾼의 5남 3녀 가운데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지게질하기 싫어 집 나가신 것 아니냐며 놀렸지요
그리곤 그동안 지내온 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지요
이극로 선생은 조카들에게
쑥스러우나 알고 싶어하니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지요
만주 환인현 동창학교 선생 노릇 할 때
학생들과 선생들로부터 영남 사투리꾼이라는 놀림을 받아
한글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여 평생 한글 운동을 했고
중국 독일 러시아를 다니며 항일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고 했지요
해방 후 북한으로 가서 요직에 있었다는 건
조카들에게 굳이 내세우고 싶지 않다고 했지요
이름 대신 고루 또는 물불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물불이라 불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했지요
고루는 극로의 중국 발음 같기도 하고
물불은 물과 불이 사람살이에 꼭 있어야 하고
옳은 일 해야 할 일은 물불 가리지 않고 한다는 뜻도 있어
물불로 남들이 불러주면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지요
너희들도 앞으로는 나를 물불 삼촌이라 부르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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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는 말을 모으지 않고 다듬어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