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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고봉준령(高峰峻嶺)에 신수도 좋다. 저 친구, 그대 토선생이 아니신가? 나는 본시 수중호걸이러니 양계에 좋은 벗을 얻고자 광구터니 오늘이야 산중호걸 만났도다. 기쁜 마음 없지 못하여 청하노니, 선생은 아모커나 허락하심을 아끼지 아니하실까 하나이다.”
하니, 토끼 저를 대접하여 청함을 듣고 가장 점잖은 체하며 대답하되,
“거 뉘라서 날 찾는고.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이 강산 경개 좋은데, 날 찾는 이 거 뉘신고. 수양산(首陽山)에 백이숙제(伯夷叔齊_원래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 은(殷)나라 신하가 되었다. 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걸주(桀紂)를 치려는 것을 만류하다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다)가 고비_고사리) 캐자 날 찾는가, 소부(巢父) 허유(許由)요임금이 허유에게 벼슬을 시키자 허유는 영천수에 귀를 씻었다. 소부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 왔다가 그 사연을 듣고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한다)가 영천수에 귀 씻자고 날 찾는가. 부춘산(富春山) 엄자릉(嚴子陵_후한(後漢) 때의 엄광(嚴光). 광무제가 동문이라 하여 벼슬을 주자 부춘산에 숨어 농사지으며 살았다. 자릉은 그의 자(字))이 밭 갈자고 날 찾는가, 면산에 불탄 잔디 개자추(介子推_중국 춘추시대의 선비. 면산에 숨은 그를 찾기 위해 진문공(晉文公)이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가지 않고 타죽었다)가 날 찾는가. 한 천자의 스승 장량(張良_중국 전한(前漢)의 공신 장자방(張子房). 유방(劉邦)의 모신(謀臣)으로 소하‧한신과 함께 한나라 창업의 삼걸(三傑)이라 칭함))이가 퉁소 불자 날 찾는가, 상산사호(商山四皓_진시황 때 상산(商山)에 숨어 산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각리선생(角里先生). 이들 모두 눈썹이 하얗기 때문에 사호라 부른다) 벗님네가 바둑두자 날 찾는가. 굴원(屈原_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멱라수(멱羅水)에 투신 자살했다)이가 물에 빠져 건져 달라 날 찾는가, 시중천자 이태백(李太白)이태백: 중국 당대(唐代) 제일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고까지 불리운 이백(李白). 현종(玄宗) 때 한림학사를 지냈으나 양귀비의 노여움을 사서 추방되어 방랑생활을 함. 태백은 그의 자(字))이 글 짓자고 날 찾는가. 주덕송(酒德頌) 유령(劉伶_중국 진(晉)나라의 시인이자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술을 남달리 좋아하여 <주덕송>을 짓기도 하였다. 백륜(伯倫)은 그의 자(字)이다)이가 술 먹자고 날 찾는가, 염락관민(濂洛關민_중국 송(宋)나라 때의 성리학자인 주돈이(周敦이), 정호(程顥), 정이(程이), 장재(張載), 주희(朱熹)) 군현들이 풍월 짓자 날 찾는가. 석가여래(釋迦如來) 아미타불 설법하자 날 찾는가, 안기생(安期生)진시황이 그에게 많은 재물을 주었으나 모두 버리고 은둔하며 장수하여 선인(仙人)이라 불리운 진(秦)나라 사람) 적송자(赤松子)신선의 이름. 신농씨(神農氏) 때의 우사(雨師))가 약 캐자고 날 찾는가. 남양초당(南陽草堂)에 제갈선생 해몽하자 날 찾는가, 한 종실 유황숙(劉皇叔_유비(劉備))이 모사 없어 날 찾는가. 적벽강(赤壁江) 소동파(蘇東坡_중국 북송(北宋)의 문인 소식(蘇軾).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가 선유(船遊)하자 날 찾는가, 취옹정(醉翁亭) 구양수(歐陽修_중국 송(宋)나라 문인․정치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호는 취옹(醉翁)임)가 잔치하자 날 찾는가.”
두 귀를 쫑그리고 사족을 자주 놀려 가만히 와서 보니, 둥글넙적 거뭇편편하거늘 고이히_괴이(怪異)하게) 여겨 주저할 즈음에 자라가 연하여 가까이 오라 부르거늘, 아모커나 그리하라 하고 곁에 가서 서로 절하고 잘 앉은 후에, 대객(待客)의 초인사로 당수복(唐壽福_담뱃대의 한 가지) 백통(白筒)대와 양초(兩草) 일초(日草_담배의 종류. 양초는 한 냥씩 묶은 질이 좋은 담배이고, 일초는 일본에서 수입한 아주 가는 살담배) 금강초(金剛草)며 지권연(紙卷煙_지궐련. 잘게 썬 담배를 얇은 종이로 길게 만 것) 여송연(呂宋煙_엽궐련. 담배잎을 통채로 돌돌 말아 만든 담배)과 금패 밀화 금강석 물부리_담뱃대나 궐련을 끼어 입에 무는 부분)는 다 던져두고 도토리통에 싸리순이 제격이라. 자라가 먼저 말을 내되,
“토공의 성화(聲華_세상에 드러난 명성)는 들은 지 오랜지라 평생에 한 번 보기를 원하였더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호걸을 상봉하니 어찌하여 서로 보기가 이다지 늦느뇨?”
한즉, 토선생이 대답하되,
“세상에 나서 사해를 편답(遍踏_편력(遍歷). 널리 돌아다님)하며 인물 구경도 많이 하였으되 그대 같은 박색은 보던 바 처음이로다. 담구멍을 뚫다가 학치뼈_정강이뼈)가 빠졌는가 발은 어이 뭉둑하며, 양반 보고 욕하다가 상투를 잡혔던가 목은 어이 기다라며, 색주가에 다니다가 한량패에 밟혔던지 등이 어이 넓적하고, 사면으로 돌아보니 나무접시 모양이로다. 그러나 성함은 뉘댁이라 하시오? 아까 한 말은 다 농담이니 거기 대하여 너무 노여워 하지 말으시기 바랍니다.”
하거늘, 자라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불쾌는 하지마는 마음을 흠뻑 돌려 눅진눅진이 참고 대답하되,
“내 성은 별이요, 호는 주부로다. 등이 넓기는 물에 다녀도 가라않지 아니함이요, 발이 짧은 것은 육지에 다녀도 넘어지지 아니함이요, 목이 긴 것은 먼 데를 살펴봄이요, 몸이 둥근 것은 행세를 둥글게 함이라. 그러하므로 수중에 영웅이요, 수족(水族)에 어른이라. 세상에 문무겸전(文武兼全)하기는 나 뿐인가 하노라.”
토끼 가로되,
“내가 세상에 나서 만고풍상(萬古風霜_오래오래 겪어 온 많은 고생)을 다 겪다시피 하였으되 그대같은 호걸은 이제 처음 보는도다.”
자라 가로되,
“그대 연세가 얼마나 되관대 그다지 경력이 많다 하느뇨?”
토끼 가로되,
“내 연기(年紀_대강의 나이)를 알 양이면 육갑_육십갑자(六十甲子)을 몇 번이나 지내였는지 모를 터이오. 소년 시절에 월궁에 가 계수나무 밑에서 약방아 찧다가 유궁후예(有窮后예_하대(夏代)의 임금. 활을 잘 쏘았으며, 신선세게에 올라가 불사약과 불로초를 구했다 함)의 부인이 불로초(不老草)를 얻으러 왔기로 내가 얻어 주었으니 이로 보면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_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 서왕모(西王母)의 신선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고 장수하였으므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부름)은 내게 시생(侍生_웃어른에 대한 자기의 겸칭)이오, 팽조(彭祖_요 임금의 신하로 은나라 말까지 7백여 년을 살았다는 신선)의 많은 나이 내게 대하면 구상유취(口尙乳臭_입에서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언어와 행동이 유치함을 일컬음)오 종과 상전이라. 이러한즉 내가 그대에게 몇십 갑절 할아비 치는 존장(尊長)이 아니신가.”
자라가 가로되,
“그대의 말이 참 자칭 천자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도다. 아모커나 나의 이왕한 일을 대강 말할 것이니 좀 들어 보아라. 모르면 모르거니와 아마 놀래기가 십상팔구 될 걸. 어찌 그러한고 하니, 반고씨(盤固氏_천지개벽 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전설상의 천자) 생신날에 산곽(産藿)해산(解産) 미역) 진상 내가 하고, 천황씨(天皇氏_중국 태고시대(太古時代)의 전설적인 인물. 삼황(三皇) 중의 한 사람이요 으뜸이다) 등극하실 때에 술안주 어물진상 내가 하고, 지황씨(地皇氏)의 화덕왕(火德王_불을 담당한 신령. 화덕진군(火德眞君) 또는 축융(祝融))과 인황씨(人皇氏)의 구주(九州_중국의 행정구역을 아홉으로 나누었던 데서 중국 전역을 이르는 말)를 마련하던 그 사적을 어제까지 기억하며, 유소씨(有巢氏_새가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 집을 짓는 것을 가르쳤다는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인물)의 나무 얽어 깃들임과 수인씨(燧人氏_복희씨 신농씨와 함께 삼황 중의 한 사람으로, 인간에게 불의 사용법을 가르쳤다는 전설상의 인물)의 불을 내여 음식 익혀 먹는 일을 나와 함께 지내였고, 복희씨(伏羲氏_중국 고대에 삼황오제의 우두머리며 팔괘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인물. 그가 재위하는 동안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고 한다)의 그은 팔괘(八卦)로 용마(龍馬) 하도수를 나와 함께 풀어냈고 공공씨(共工氏_요임금 때 물을 다스리던 관리)가 싸우다가 하늘이 무너져서 여와씨(女와氏_중국의 전설상의 인면사신(人面蛇身)의 여신. 오색 돌을 빚어서 하늘의 갈라진 곳을 메웠다고 함)가 오색 돌로 보첨(補添_보첨: 보충하여 덧붙이는 것)할 제 석수 편수 내가 하고, 신농씨(神農氏_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으로 삼황의 한 사람. 백성에게 경작을 가르친 데서 신농이라고 하며 불의 덕으로 왕이 된 데서 염제(炎帝)라고도 함)가 장기 내고 온갖 풀을 맛보아서 의약을 마련할 제 내가 역시 참견하고, 헌원씨(軒轅氏_가 배 지을 제 목방패장 내가 하고, 탁록(탁鹿) 들에서 치우(蚩尤_중국의 전설상의 인물. 난리를 일으켜 황제(黃帝)와 탁록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잡혀 죽었다 함)가 싸울 적에 돌기를 내가 천거하여 치우를 잡게 하고, 금천씨(金天氏_금덕왕(金德王) 소호(少昊)의 다른 이름)의 봉조서(奉調書)와 전욱씨(전頊氏_중국 전설에 나오는 오제(五帝)의 하나. 황제(黃帝)의 손자로 고양(高陽)에서 나라를 일으킴))의 제신(制臣)하던 술법 내가 훈수하고, 고신씨(高辛氏)의 자언기명(自言其名_제가 자신의 이름을 말함)하던 것을 내 귀로 들어 있고, 요임금의 강구(康衢)노래_요임금이 미복잠행(微服潛行)할 때 길을 지나다가 들었다는 동요와 격양가(擊壤歌)) 지금까지 흥락하고, 순임금의 남풍가(南風歌_순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고 지었다는 노래.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온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는 내용임)는 어제 들은 듯 즐거워라. 우임금의 구년 홍수 다스릴 제 그 공덕을 내가 찬성하고, 탕임금의 상림(桑林_탕임금이 즉위한 후 칠년간 가뭄이 들자 비를 빌던 숲) 들에서 비 빌던 일이며, 주나라 문왕 무왕과 주공의 찬란하던 예악문물이 다 눈에 역력하고, 서해바다 태평양에 유갔다가 굴원이 명라수에 빠질 적에 구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유한(有恨)이라. 이로 헤아려 보면 나는 그대에게 몇백 갑절 왕존장(王尊長)이 아니신가? 그러나 저러나 재담은 그만두고 세상 재미나 서로 이야기하여 보세.”
토끼 가로되,
“인간 재미를 말하고 보면, 형이 재미가 나서 오줌을 졸졸 쌀 것이니 더 둥글넓적한 몸이 오줌에 빠져서 선유하느라고 헤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 아니 불쌍한가?”
자라가 가로되,
“어찌하였던지 대강 말하라”
토끼 가로되,
“심산 풍경 좋은 곳에 산봉우리는 칼날같이 하늘에 꽂혔는데 배산임류(背山臨流)하여 앞에는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요, 뒤에는 하운(夏雲)이 다기봉(多奇峰)이라_‘봄 물이 온갖 연못에 가득차고, 여름 구름이 기이한 봉우리에 많구나.’ 도잠(陶潛)의 <사시시(四時詩)>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에서 인용한 것임) 명당에 터를 닦고 초당 한 칸 지어내니, 반 칸은 청풍이오 반칸은 명월이라. 흙섬돌에 대사리짝이 정쇄(精灑)하기_매우 맑고 깨끗하기) 다시 없다. 학은 울고 봉은 나는도다. 뒤 뫼에서 약을 캐고 앞내에서 고기 낚아 입에 맞고 배부르니 이 아니 즐거운가? 청천에 밝은 달이 조요하되, 만학천봉에 홀로 문을 닫혔도다. 한가한 구름은 그림자를 희롱하니 별유천지비인간이라. 몸이 구름과 같이 세상 시비 없고 보니 내 종적을 그 뉘 알랴.
추위가 지나가 더위가 오니 사시(四時)를 짐작하고, 날이 가고 달이 오니 광음을 나 몰라라. 녹수청산 깊은 곳에 만화방초(滿花芳草_온갖 꽃과 꽃다운 풀) 우거지고, 난봉과 공작새의 서로 부르는 소리 이 봉 저 봉 풍악이오, 앵무새와 두견새며 꾀꼬리의 소리 이 골 저 골 노래로다. 석양에 취한 흥을 반쯤 띠고 강산풍경 구경하며 곤륜산(崑崙山_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중국 서족에 있다는 신성한 산) 상상봉에 흔 구름을 쓸어치고 지세 형편 굽어 보니 태산은 청룡이오 화산은 백호로다. 상산은 현무 되고 형산은 주작이라. 소상강과 팽려택으로 못을 삼고, 황하수와 양자강 무제의 백량대는 눈가에 의의하다.
적벽강(赤壁江)의 무한한 경개를 풍월로 수작하고, 아미산의 반달 빛은 취중에 희롱하며, 삼신산에 불로초도 뜯어 먹고 동정호에 목욕도 하다가 산속으로 돌아드니, 층암은 집이 되고 낙화는 자리 삼아 한가히 누웠으니, 수풀 사이 밝은 달은 은근한 친구 같고, 소나무에 바람 소리 은은하거늘 돌베개에 높이 누워 취흥으로 잠을 드니 어디서 학의 소리 잠든 나를 깨올세라. 이윽고 일어나 한산(寒山) 석경(石徑_돌이 많은 좁은 길) 빗긴 길에 청려장(靑黎杖_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을 의지하고 이리저리 배회하니 흰 구름은 천리나 만리에 덮여 있고 밝은 달은 앞 시내와 뒤 시내에 얹혔더라. 산이 첩첩하니 삼(산은 청천 밖에 떨어지고, 물이 잔잔하니 이수는 백로주에 갈라져_( ) 부분이 탈락되어 있음) 있도다. 도도한 이 내 몸이 산수간에 누웠으니 무한한 경개는 정승 주어도 아니 바꾸고 노닐러라.
동녘 둔덕에 올라 휘파람 부니 한가하기 측량 없고, 앞 시내를 굽어보며 글 지으니 흥미가 무궁하다. 오동(梧桐)에 밝은 달은 가슴에 비취고, 양류에 맑은 바람 얼골에 불어 있다. 청풍명월이 그 아니 내 벗인가. 병 없이 성한 이 내 몸이 희황세계(羲皇世界_복희씨가 다스리기 이전의 오랜 옛적 세상. 백성이 편안하고 한가로이 지내는 세상을 이르는 말임)에 한가한 백성이 되니, 중도 아니며 속한(俗漢_품격이 속된 사람)도 아니요, 오직 평지의 신선이라. 강산풍경을 임의대로 희롱한들 그 뉘라서 시비하랴.
이화 도화 만발하고 푸른 버들 휘여진대 동서남북 미색들은 시냇가에 늘어 앉아 섬섬옥수를 넌짓 들어 한가로이 빨래할 제, 물 한 줌 덤벅 쥐어다가 연적같은 젖통이를 슬근슬쩍 씻는 양은 요지연(瑤池宴_요지에서 벌어진 잔치. 요지는 중국 곤륜산에 있다는 연못)과 방불(彷佛)하고, 어진 오월이라 단오일에 녹음방초 우거지고 녹의홍상(綠依紅裳) 미인들이 버들가에 그네 매고 짝지어 추천하는 모양 광한루(廣寒樓_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누각.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가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경개가 완연하다. 풍류호걸 이 내 몸이 저러한 절대가인(絶對佳人)절세미인. 당대에 견줄만한 인물이 없는 미인) 구경하니 아마도 세상 재미는 나뿐인가 하노라.”
자라가 이르되,
“허허 우습도다. 우리 수궁 이야기 좀 들어보소. 오색 구름 같은 곳에 진주궁과 자개 대궐 반공(半空_그다지 높지 않은 공중에)에 솟았는데 일월이 명랑하다. 이 가운데 날마다 잔치요, 잔치마다 풍류로다. 연꽃 같은 용녀들은 쌍쌍이 춤을 추며 천일주와 포도주며 금강초 불사약을 유리병과 호박잔에 신선하게 담고 담아, 대모소반(玳瑁小盤_거북의 등껍데기로 만든 작은 밥상) 받쳐다가 앞앞이 늘어놓고 잡수시오 권할 제 정신이 상활(爽豁)하고_상쾌하고) 심정이 황홀하니 헛장단이 절로 난다. 아미산에 반 바퀴 달과 적벽강의 무한한 경개며, 방장 봉래 영주산을 역력히 구경하고 선유하며 돌아올 제, 채석강, 양자강, 소상강, 동정호, 팽려택, 대동강, 압록강을 임의로 왕래하니, 흰 이슬은 강 위에 비껴 있고 물빛은 하늘을 접하였도다. 한들한들한 돗대는 만경창파를 업수이 여기는 듯, 떨어진 노을은 외따오기와 같이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일세.
삼강(三江)으로 옷깃 삼고 오호(五湖)로 띠를 하니 오나라 초나라도 동남으로 터져 있고, 만형을 당기우고 구월을 이끄니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 평평한 모래에 기러기는 떨어지고 흰 갈매기 잠들 때라. 지극히 슬픈 퉁소로 어부사(漁父詞_중국 초(楚)나라 굴원이 지은 글로, 굴원과 어부와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짐)를 화답하니 깊은 구렁에 숨은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를 울리는도다. 달이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데 가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간다.
이 적에 순임금의 두 아내 아황(娥皇_중국 고대의 요(堯)임금의 딸. 동생 여영과 함께 순(舜)에게 시집가서, 순이 죽은 뒤에 상강(湘江)에 빠져 죽어 상군(湘君)이 되었다 함) 여영(女英)의 비파 소리는 울적함을 소창(消暢_갑갑한 마음을 풀어 후련하게 하는 것)하고 길 건너 장사하는 계집아이의 부르는 후정화(後庭花_중국 진(陳)나라 선제(宣帝)의 아들인 진후주(陳後主)가 지은 악곡(樂曲)의 이름) 곡조는 이 회포를 자아낸다. 한밤에 은은한 쇠북 소리 한산절이 그 어디며, 바람편에 역력한 방망이 소리는 강촌이 저기로다. 초나라 강과 오나라 물에서 고기잡는 어부들은 애내곡(애乃曲_어부가 부르는 뱃노래)을 화답하고, 금못과 옥섬에 연 캐는 계집들은 상사곡(相思曲_남녀 사이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을 노래하니, 아마도 별건곤(別乾坤_별세계, 별천지)은 수부(水府)뿐이로다.
그러나 나의 말은 다 정말이어니와 그대 하는 말은 백 가지에 한 가지도 취할 것 없이 흉한 말은 감추고 좋은 말만 자랑하니, 그 형식으로 꾸며냄을 내 어찌 모르리오. 그대 신세 생각하니 여덟 가지 어려움을 면하기 어렵도다. 두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 보라.
동지섣달 엄동(嚴冬)절에 백설은 흩날리고 층암절벽 빙판되며 만학천봉 막혔으니 어디 가서 접족(接足)할까. 이것이 첫째로 어려움이오.
돌구멍 찬 자리에 먹을 것 전혀 없어 콧구멍을 핥을 적에 냉한 땀이 질질 흘러 사지(四肢)가 불평할 제 팔자타령 절로 나니 이것이 둘째로 어려움이오.
오뉴월 삼복 중 산과 들에 불이 나고 시냇물이 끓을 적에 산에서는 기름내고 털끝마다 누린내라. 짧은 혀를 길게 빼고 급한 숨을 헐떡일 제 그 정상이 오죽할까. 이것이 셋째로 어려움이오.
춘풍이 화청한 때 풀잎이나 뜯어 먹자 하고 산간으로 들어가니 무심 중에 독한 수리_독수리. 산악이나 평야에 사는 맹금) 두 쭉지를 옆에 끼고 살 쏘듯이 달려들 제 두 누에 불이 나고 적은 몸이 솟구쳐 바위틈으로 들어갈 제 혼비백산 가련하다. 이것이 넷째 어려움이오.
천방지축 달아나서 조용한 데 찾아가니 매 쫓는 사냥꾼은 높은 봉에 우뚝 서서 근력 좋은 몰이꾼 시켜 냄새 잘 맡는 사냥개를 워리 하고 부르면 동에도 가며 서에도 가며 급히 쫓아올 제, 발톱이 뭉그러지며 진땀이 바짝 나니 이것이 다섯째 어려움이오.
죽을 뻔한 후에 사냥 포수 일자총_한 방으로 바로 맞히는 좋은 총)을 들어메고 길목에 질러 앉아 잔철 탄환 장약하여 염통 줄기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길 적에 꼬리를 샅에 끼고 간장이 말라지며 간신히 도망하여 숨을 곳을 찾아가니 죽을 뻔한 댁이 그대 아닌가. 이것이 여섯째 어려움이오.
알뜰히 고생하고 산림으로 달아드니 얼숭덜숭한 천근 대호(大虎) 철사 같이 모진 수염 위엄있게 거스리고 웅크려서 가는 거동 에그 참말 무섭도다. 소리는 우뢰같고 대가리는 왕산(王山_큰 산))덩이만하며 허리는 반달 같고 터럭은 불빛이라. 칼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두르면서 주홍 같은 입을 열고 써레 같은 이빨을 딱딱이며 번개같이 날랜 몸을 동서남북 번뜩이며 좌우로 충돌하여 이 골 저 골 편답하며 돌도 툭툭 받아 보며 나무도 똑똑 꺾어 보니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도 씩씩하여 당당한 산군(山君)이라. 제 용맹을 버럭 써서 횃불 같은 두 눈깔을 번개같이 휘두르며 톱날 같은 앞발을 떡 벌리고 숨을 한 번 씩하고 쉬면 수목이 왔다 갔다 하고 소리 한 번 응하고 지르면 산악이 움죽움죽할 제정신이 아득하니 이것이 일곱째 어려움이오.
죽을 것을 면한 후에 평원광야로 달아 드니 나무 베는 목동이며 소먹이는 아이들은 창검과 몽치를 들고 달려들어 제잡답(除雜談)하고 치려할 제 목구멍에 침이 말라 지향 없이 도망하니 이것이 여덟째 어려움이라.
이렇듯 궁곤(窮困)할 제 무슨 경황에 삼신산에 가 불로초를 먹으며 동정호에 가 목욕할꼬. 그대의 말은 다 자칭 왈 영웅이라 함이니 그 아니 가소로운가. 아마도 실없는 중 땅강아지 아들 자네로세. 그러나 이것은 실없는 농담이니 과히 노여워 하지는 말으시오.”
토끼가 다 들은 후에 할 말이 없어 하는 말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