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에 심취한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침 한 방에 다 낫게 해주면 명의로 인정하고, 환자도 많이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명의가 아닌데요. 어떻게 침 한방에 병이 다 나아요"라고 되묻는다. 어쩌다 귀가 먼 환자도 고쳐보고, 눈이 안보일 뻔한 아가씨에게 광명을 찾아준 적도 있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허준이라 하면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조선시대 침술로 허준만큼이나 유명세를 떨친 명의가 있었다. 허임(許任)이다. 선조와 광해군에게 직접 침을 놓았던 인물로, '침구경험방'이란 책을 남겼다.
'황제내경'을 보면 '소금과 생선을 자주 먹는 동쪽 사람은 종기와 부스럼이 많아 폄석(砭石)으로 치료했으며, 폄석은 동쪽에서부터 왔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폄석은 침(鍼)이다. 동쪽이란 역대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동이(東夷)라고 부른 걸 보면, 우리나라가 아닌가 추측된다. 최근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더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요하문명이 발견되었는데, 고조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이때 중국으로 유입된 것이 아닌가 싶다.
폄석은 원래 질병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돌덩어리(石塊)로 안마하듯 환부를 두들기다가, 동물 뼈나 대나무, 질그릇 조각 등으로 침을 만들어 썼다. 화농 부위를 절개하거나, 피부 속 깊이 꽂아 자극을 주고, 출혈을 유도하는 등의 용도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많은 변화를 거쳐 현재는 스테인리스 재질로 된 가느다란 일회용 침인 호침(毫鍼)과 대침(大鍼), 장침(長鍼), 그리고 부항(附缸)과 사혈(瀉血)에 필요한 무통사혈침(無痛瀉血鍼)이 주로 쓰이고, 롤러침, 도장침 정도가 사용된다.
모든 한의원에서는 일회용 침과 부항컵을 사용하고 있으며 침놓는 법도 한의원 수만큼이나 많다고 할 수 있다. 침을 놓는 것을 자침(刺針), 혹은 시침(施鍼)이라 한다.
침을 맞을 때 느낌을 침자감응(鍼刺感應)이라 하는데, 시큰거리는 것은 산(酸), 저린 것은 마(麻), 무거운 느낌은 중(重), 팽팽한 느낌은 창(脹)이라 부른다.
MPS(근막통증증후군)에서는 산ㆍ마ㆍ중ㆍ창감이 있지만, 침 자극으로 근육이 움찔거리거나 저린 곳을 치료할 때는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침 맞는 동안 극도로 공포감을 느껴, 어지러움과 구토감, 탈진, 무력감 등을 느끼는 환자가 있는데 잠시 안정을 취하면 곧 바로 회복된다.
침을 맞으면 기운이 쭉 빠진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침 때문이 아니라 침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그런 것이다. 침은 순환을 촉진시켜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준다.
침을 맞을 때는 호전되었다가 밤이나 아침에 원래대로 아픈 것은, 우리 몸의 기운이 낮에는 강성해지고, 밤에는 허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주경야중(晝輕夜重)이라 한다. 대개의 병은 낮에는 호전되고 밤에는 악화되는 법이다.
그래서 밤에만 해도 '내일 꼭 한의원에 가야지' 하다가도 아침에는 참을 만해 치료를 미루고, 병을 키우게 된다. 침을 맞을 때는 침의 효과가 발휘되는 반나절 정도 일을 쉬고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과로하거나, 목욕이나 흘린 땀으로 침 맞은 곳에 나쁜 기운이 들어가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뇨병이 있거나, 뇌경색으로 아스피린을 장복하면 상처 부위가 잘 아물지 않으므로 사전에 알려줘야 한다. 또 침에 대한 공포가 있거나, 금속 알레르기 등 피부가 예민한 사람은 발진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미리 알려주는 게 좋다. 침을 맞은 뒤 너무 아픈 경우는 반드시 해독침을 맞고 가는 게 필요하다.
침의 효과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의서에 나온 대로 말하면 경락의 기운이 막힌 것을 뚫어줘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키면 우리 몸이 정상상태로 회복된다고 믿는다.
우리 몸이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인체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뇌가 무너진 방어선을 복구하기 위해 기혈(氣血)을 보낸다. 그래서 일시에 몰린 피와 진액 때문에 아픈 부위가 붓고, 열이 나는 것이다. 아시혈 요법은 바로 아픈 부위에 침을 놓아 치료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아픈 곳과 거리가 먼 곳에 침을 놓아 치료하는 원위취혈(遠位取穴) 기전은 앞서 말한 경락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한의학적 경락원리로 침을 맞고 호전되니 과학적이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참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