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평형수 / 신기정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다. 생소했던 외국인과의 길거리 대면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대상도 넓어졌다. 오랜 기간 이어온 군인, 선교사 등 미국인 중심에서 벗어나 이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든 이들로 넘쳐난다. 농촌 노총각들이 동남아나 중국, 몽골 등지에서 신부를 구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통계로도 국내 외국인 거주자수가 100만 명을 넘긴 지 이미 오래다.
국력신장에 버금가게 국내대학의 외국인 유학생도 2019년 4월 기준으로 16만 명을 넘어섰다. 지원자 감소로 폐교위기에 몰린 지방대학들이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유학생으로 인한 경제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1인당 얼추 1천만 원만 잡아도 연 1조 6천억 원에 이른다. 호주의 경우 유학은 최대 수출산업의 하나로 유학생이 60만 명에 이르고 매년 호주 경제에 350억 달러 이상을 가져다주고 있다. 미래 주역들의 교류가 늘어나면 서로 이해의 폭도 넓어져 지구촌 공존공영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폭넓은 교류가 무조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선박평형수Ballast Water가 그중 하나다.
화물을 내려놓은 빈 배는 무게 중심이 높아져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자연히 프로펠러가 수면에 노출되면서 운항에 지장을 받고 가벼워진 탓에 뒤집어질 위험도 커진다. 안전을 위해 빈 배에 바닷물을 채워 가라앉히는데 이 물을 ‘선박평형수船舶平衡水’라 한다. 2007년 12월에 제정된 ‘선박평형수 관리법’에는 ‘선박평형수란 선박의 중심을 잡기 위하여 선박에 실려 있는 물(그 물에 녹아 있는 물질 또는 그 물속에 서식하는 수중생물체·병원균을 포함한다)을 말한다.’고 정의 되어 있다.
보통 25만t 규모의 화물선에 10만t 정도 채워져, 해마다 100억t 이상의 바닷물이 전 세계를 오가는 것으로 추정한다. 해상운송이 세계 물류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그 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이 물을 도착지 연안에 버리면서 약 7천여 종의 생물체가 함께 옮겨지는 것이다. 그중 약 3% 정도만 남고 대부분은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멸한다. 그러나 일단 정착하면 현지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외래종은 토종 포식자에게 낯설어 외면받기 때문에 생존확률도 높고 더 급속히 퍼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1950년대 유입된 지중해 담치가 토종 홍합을 밀어냈다. 가까이는 유령멍게, 뚱뚱이짚신고둥, 힘센 다시마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유령멍게는 2017년 해양생태계 교란생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유입된 해양생물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40여 종에 이른다. 급속한 온난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이주생물들의 세력 확대가 예측된다. 반대로 아시아에서 독일과 미국으로 건너간 참게는 쌀농사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국 동부 체서피크 만에는 한국 등 극동지역의 피뿔고둥Purple whelk이 굴과 조개양식장을 황폐화시켜 수억 달러의 피해를 주고 있다. 호주의 포트시에서는 일본산 아무르불가사리가 주요 관광자원인 가리비와 전복, 굴 등을 초토화시켰다.
물론 모든 외래종이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드물게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정착한 종은 생물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외적인 이점보다는 자생종을 몰아내거나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여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훨씬 크다. 최악의 상황은 우리나라에 없는 새로운 병원체를 퍼트리는 것이다. 그 파괴력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사태에서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피해가 커지자 호주는 2001년에 선박평형수를 영해 20마일 밖에서 전부 교환해야만 입항을 허용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2004년 ‘선박평형수 관리협약’을 채택하였다. 골자는 선박평형수 처리 및 교환 설비를 갖춘 선박만 국제항해를 허용하는 것이다. 수생생물 및 병원균의 이동으로 인한 해양생태계 오염 및 파괴 문제를 막거나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해당 협약은 2017년 9월 8일 부로 발효되었으나, 비용문제 등 나라별 사정에 따라 적용이 조금씩 미뤄지고 있다.
해상운송이 가장 많은 미국은 IMO의 협약 발효에 앞서 2012년 6월 입항하는 모든 배에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효했다. 이에 따라 2013년 12월부터 새로 만들 선박에 미국 해안경비대USCG의 승인을 받은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고, 기존 선박들도 2014년 1월 이후에 수리할 때 해당 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 업계에선 향후 관련설비의 시장 규모를 80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 선박평형수의 생물체 처리에 화학약품을 썼으나 바다 오염이 문제가 되었다. 현재는 여과장치, 전기분해, 자외선살균, 오존살균 방식 등이 주로 이용된다. 다행히 세계 1위 선박수출국답게 우리나라가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의 연구개발에도 앞장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돌아보면 역사적으로도 지리상 발견이나 새로운 교류에서 항상 유형 문물보다 몰래 따라온 병원균이 먼저 사람과 친해졌던 선례들이 많았다. 보이는 것만도 버거운데 새로 관리할 안 보이는 곳의 일까지 늘어나니 글자그대로 ‘세상은 참으로 넓고 할 일도 많은 곳’이다.
[신기정] 수필가. 2008년 《대한문학》 등단.
행촌수필, 대전문협
새로운 소재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해송운송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습니다. '선박평형수'에 의한 이주생물이 해양생태계 교란을 일으켜 세계 각국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군요. 지구는 넓지만 크게는 한 울타리, 지구촌이 맞네요.
선박 수주 세계1위, 선박선진국답게 '선박평형수' 처리에 대한 연구개발도 세계시장에서 선도하고 있다니 자랑스러운 한국입니다.
첫댓글 선박의 세상도 참 많이 넓어졌군요
처음으로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