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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람
이 홍사
바람은
육식성 비명을 식물성으로 전환해서 대신 울어주는 대리 울음이라고 어느 시인은 얘기했다.
식물성 울음?
인간의 절규는 바람이 순화시킨다는 생각을 늘 하던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순간적으로 전율하며 시집을 덮었다.
시집을 덮고 바람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이리도 잘 읽었을까. 그걸 어떻게 시로 승화시켰을까. 세상의 반은 바람이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데, 바람의 주소를 모른다. 아니다, 바람은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는 이유로 주소가 없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게 바람이다. 바람은 형체를 본 사람은 없어 바람을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다. 늘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린다. 바람은 역시 향기도 없다. 회오리도 바람의 이름을 지녔고 바람의 영역에 든다.
지인아!
이 공식에 대입하면 너도 분명히 바람이다.
너의 형체를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듣는다. 너를 생각할 수는 있지만, 연필로 도화지에 그릴 수가 없다. 바람 중에서 회오리라고 할까? 너는 회오리처럼 난데없이 불어서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모든 사물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아야 아름다움을 알 수가 있다고 했거늘, 너는 순간적으로 눈앞에 바짝 다가오는 바람에, 너의 형체도 아름다움도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다가온 너를 붉은 바람이라고 명명하마.
붉은 바람아. 아프면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에는 어떤 명약도 지니지 못한 자연 치유법이 있단다. 바람아. 나는 아파서 너를 사랑한다. 나에게 치유의 목적으로 산들산들 순하게 불어달라는 욕심은 부리지 않으마.
붉은 바람아!
여기는 한방병원이고 조금 전에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를 피우며 붉은 바람이 간 방향을 그리다가 내려왔다. 지난번에 있던 강성병원은 아무 치료도 해주지 않더구나. 물리치료라고 뜨끈한 찜질패드를 올리고 자외선을 멍이 든 곳에 쏘여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 한방병원에서는 아픈 부위에 사혈해서 부항으로 죽은 피를 빼내고 추나 치료라는 이름으로, 재활 운동을 시켜주니 훨씬 치유가 빠르다. 이 병원, 옥상에는 하늘정원이라고 인공으로 정원을 꾸며 놓아서 여느 옥상과 달리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 흔들리는 그네 의자도 있고, 인공 잔디도 깔아놓았고 또 나무까지 심어놓아 여느 공원이나 다름없이 보인다. 전혀 삭막하지 않다. 나는 아프다. 아파서 너를 사랑한다. 조금 전에 옥상에서, 바람을 사랑한다는 말을 지중해 연안에는 아직도 카뮈가 산책 중일까? 이런 물음으로 대신 했다. 사랑이라는 진부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이 언어가 지닌 의미를 읽어주렴. 사랑? 전혀 낯설지 않다. 언어를 채택하는데, 그 용어를 쓰는 사람과 언어 사이에 궁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이라는 말이 어쩌면 나와 궁합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붉은 바람아!
붉은 바람이라고 명명하니 무슨 색깔론이나 이념이 떠오르지만, 사랑에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다. 물론 철학도 없다. 오직 순수 그 자체뿐이다.
바람을 사랑한다?
턱을 괴고 생각해도 이건 어떤 함수를 대입해도 풀 수 없는 난해한 계산법이다. 더하면 고통의 씨앗이고 빼면 허탈이다. 그런 손익의 계산은 차치하고 바람을 사랑한다. 원래 사랑이란 손익을 계산하는 품목이 아닌 관계로 따지지 않고 덜컥, 사랑한다. 이 바람아.
그날, 붉은 바람을 처음 만나던 날.
버스에서 조느라 바람의 소개를 듣지 못했는데, 내 소개에 바람은 눈빛이 달라졌다. 그 눈빛을 분명히 읽었다.
어떤 작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소설 나부랭이나 끄적이는 사람이라고 낮추어서 소개한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알레르기성 거부반응이 인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비하하는 발언이 되기도 한다, 소설을 낮추어 자신의 위상을 격상시킨다? 어림없는 소리다. 그런 인간치고 소설을 소설답게 제대로 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 인간을 나는 경멸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런 나부랭이에게 일갈할 게 있다면 소설 나부랭이가 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소설을 구상하고 쓰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진부한 방식의 소개를 싫어하는 이유로 나는 자신을 소개할 적에 소설가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소설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어느 매체로 등단했으며 책을 몇 권을 냈다는 소리까지 자발 없이 했다. 전세버스에서 잠깐 졸다가 내 차례가 되어 일어나서 한 소개였으니 사전에 준비된 말이 아니었다. 내 소개를 창밖의 야자수들은 무심하게 듣고 버스 뒤로 흘러갔고 다른 군상들은 덤덤하게 들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너, 바람의 눈에는 순간적으로 빛이 발했다. 단순한 호기심과는 결이 다른, 말하는 사람을 전율케 하는 눈빛이었다. 그곳은 베트남의 어느 해변도로를 달리는 전세버스 안이었다.
아, 저 바람을 품을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내 가슴에 바람이 들어앉을 영역을 가늠하는데 난데없이 외할머니가 스치고 지나갔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왜 떠올랐는지 그건 나도 설명할 자신이 없다.
자박자박,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이 의성어가 귀에서 인다. 가느다란 몸피에 작달막한 키,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은 흰머리, 자박자박 오셨다가, 자박자박 조용히 가셨다. 외손자인 내가 상모동에 월세로 신혼살림을 차렸을 무렵이었으니 돌아가신 지 삼십 년 저쪽이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취학 이전에 돌아가셨으니 기억에 없다. 어렴풋이 떠올리면 키가 훤칠하고 약간의 대머리라는 것뿐, 구체적인 형상의 기억에서 오롯이 날아갔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분께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바람처럼 다니셨다.
주소가 없는 바람,
거처가 명확하지 않은 하얀 바람. 우리 집에는 당시에 사랑채에 증조부가 계셨으니 딸네 집이지만 조심스러워 자주 오시지 못한 것으로 유추되고, 하나 있는 이모는 수녀라서 그곳에 가시지 못했으니, 만만한 친정 쪽으로 떠도셨다. 외할머니의 친정, 그러니까 외외가에 가 본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외외가의 일가들과 가깝게 지낸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큰일이 있으면 찾아뵙는다. 외할머니가 그곳에 계시는 동안 철마다 찾아가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면 외할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연락을 못 받고 그런 일이 생기면 서운하지만, 날이 저물어 그 일가들과 하루나 이틀을 부담 없이 머물다 오기도 했다. 비록 외할머니는 없었지만, 그 방엔 할머니의 체취가 남아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아들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외삼촌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그곳에 계시면 방이 하나 더 있어야 했기에 친정 끄나풀이나 시가의 일가들을 찾아 떠도신 것으로 간주 된다. 그 후, 외삼촌이 신시가지에 단독주택을 짓고 나서도 그곳에 안주하지 못하시고 자박자박 떠도셨다. 성품이 워낙에 깔끔하고 조용한 분인지라 자식들이 걱정할까,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않고 조용히 옮겨 다니셨다.
엄마! 외할머니 어디 계시지?
글쎄다.
우리 모자가 외할머니에 관한 대화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외할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엄마도 모르고 계셨다. 농사철이 되면 김천의 시동생 집으로 가셔서 양파를 캐셨고, 겨울이 되면 부부가 약국을 하는 장조카의 집으로 가서 연탄을 갈고 설거지를 도왔다. 외할머니를 찾아가는 우리 모자의 발길은 철에 따라서, 날짜에 따라서 방향을 달리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외할아버지 제삿날이 되면 그날은 어김없이 외삼촌 댁에 계셨다. 그날이 되면 할머니의 부재를 의심하지 않고 외가로 갔었다.
자박자박, 하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야물게 빗어 비녀를 찌르고 보따리를 인 뒷모습은 천상, 바람이었다. 하얀 바람. 너무나 하얘서 눈이 부신 바람. 내가 지닌 역마살의 근성도 혹여 그 뿌리에서 파생된 실뿌리가 아닐까? 작달막한 키에 가느다랗고, 군살이라곤 없는 몸매, 하얀 고무신을 신고 머리에 옷이 든 작은 보따리를 이고 황톳길 신작로를 자박자박, 바람처럼 떠도셨는데 외삼촌과 외숙모는 그 점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성품이 모질지 못해 당한 불이익이 뼈에 사무쳤는지, 평생 잊지 못할 마음에 상처가 되었든지, 거센 며느리가 들어오라고 뜨락을 늘 대나무 빗자루로 쓸었다고 했다. 뜨락을 방에 쓰는 빗자루가 아닌 마당 빗자루로 쓸면 성격이 드센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걸 믿으셨던 모양이다.
그 말을 어머니에게 들었다.
그러나 며느리인 외숙모도 성격이 드세지 않고 양순한 걸 보니, 그런 속설은 당최 믿을 게 못 되는 모양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외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그렇게, 자박자박, 떠도셨는데 우리 집 사랑채의 증조부가 돌아가셔도 우리 집에는 발걸음을 자주 하시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뒤에 세우고 요절하셨기 때문이다. 딸이 없는 딸네 집. 사위인 아버지를 보시기가 얼마나 민망하고 껄끄러우셨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 일이다.
외할머니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잠시 숙연해졌다.
붉은 바람에 관해 얘기하다 말았지.
베트남 여행에서 붉은 바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어쩌면, 일행들의 눈치가 무서워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서운하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불특정 다수의 눈치를 너무 보고 사는 데 길이 들여진 게 아닌가?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의 눈치를 지나치고 보는 민족성 때문이라고 할까. 아무튼, 적절한 장소에서 마음에 든 이야기를 풀어놓지 못했다.
이틀째 날이었던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느끼한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일행들이 술판을 벌일 적에 담배를 피우러 나오니 바람이 그림자처럼 따라서 나왔다. 바람이 그 식당의 계산대 앞에서 빼 온 종이컵 커피, 두 잔! 그게 왜 그리 반가웠든지.
식당 앞 시멘트 계단에 걸터앉아 마시며 잠시 내가 쓴 소설에 관해서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누구 말마따나, 홀짝이던 커피 맛보다 컵 언저리에 처발라 준 진한 손맛을 탐하고 있을 적에, 먼저 얘기를 꺼낸 건 바람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바람은 어느 사이트에서 찾았는지 내 소설을 이미 몇 편 읽었고 내 프로필마저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호텔에서 바람은 방을 혼자 썼으니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자기 전에 검색했겠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밤에 쓴 글은 아침에 읽으면 수정을 요구한다. 인간의 감정과 사색의 영역은 밤과 낮이 다르다. 뭐 그런 얘기를 했던가? 그리고 바람은 내 소설과 내용이 흡사한 영화 이야기를 잠시 했던 것도 같다. 그것도 일행들이 우르르 나오는 바람에 이야기를 흐지부지 중단하고 바로 호텔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여행하는 내내 바람과 시간을 가질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여 바람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스치면 말을 못 하는 내 속은 후덥지근했다. 역시 베트남은 후덥지근한 곳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붉은 바람! 바람에도 붉은 색깔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순수를 전제로 살다 가신 외할머니는 하얀 바람이었지만, 열망과 갈증은 붉음이다. 절규 또한 붉음이다. 바람에 대한 열망과 절규를 나는 붉게 토해내고 있었다. 바람은 붉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색깔을 읽었느냐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뉘앙스라는 게 있지 않은가. 바람은 내내 붉음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도록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짜릿한 순간을 탐했지만, 끝내 그런 찰나를 구하지 못하고 서로가 눈치만 보다가 여행이 끝났다. 여행사의 가격경쟁력 때문에 그런 항공기를 예약했겠지만, 베트남시간으로 자정을 넘긴 시간에 이륙해서 아침 시간에 대구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였다. 늦은 시간인지라 공항은 한산했다.
바로 앞뒤로 줄을 섰으니 비행기도 옆좌석을 주려나.
공항으로 나와 탑승 수속을 하며 바로 내 앞에 선 바람이 나를 돌아보며 혼잣소리를 했다. 뜨거운 수증기를 쐰 것처럼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거렸다. 붉은 바람의 속은 이렇게 뜨겁구나, 솔직함이 감미로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비행기를 타고 옆좌석에 앉지 못하면 다시는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걸 바람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같은 좌석에 앉지 못하면 내릴 적에 상당한 시간 차이로 내리고 아침에 입국 신고를 하면서 일부러 기다리지 않으면 조우 되기는 힘들다. 아침 시간에 대구 공항이 얼마나 붐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친구! 전화번호는 알려줘야지.
좀 떨렸지만 덤덤하게 말했다. 물론 주위에 조잘거리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도 없지만, 그 말을 하고 기습적으로 전화기를 펼쳐서 바람 앞에 내밀었다. 바람은 엉겁결에 그랬는지,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는지,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기에 바람이 손에 들고 있던 전화번호를, 희고 가냘픈 검지로 톡톡, 눌러주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았든지.
전화기를 받아서 눌러주는 번호에 바로 발신 버튼을 눌렀다. 바람과 소통의 끈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바람의 손에 부르르 진동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바람은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 폴더를 열어서 들여다보았다.
그게 내 번호예요.
전화기를 보고 있는 바람의 목덜미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바람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진동을 종료시키고 내 이름을 저장했다. 그리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낮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나도 남자친구 생겼다. 호호호.
바람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일행 중의 공인중개사라는 여자가 들으라고 한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탑승권을 끊어서 나오는데 줄을 서 있던 누군가가 지나가는 내 팔을 붙들었다.
어? 이게 누구야?
회장님! 여기에 웬일이십니까?
김천의 골동품 경매장 손 사장이었다. 그는 꼭 나를 두고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회장이라면 다니는 작은 암자에 신도회장에 불과한 나를 두고. 골동품에 관심이 있는지라 시간이 허락하면 가끔 가서 구경도 하고 커피를 마시고 하는 사이인데 외국 공항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손 사장은 물건을 구하러 베트남에 왔다고 했다. 침향,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침향을 구하러 왔노라고 했다. 그의 탑승 수속을 기다려 같이 검색대를 통과했다.
붉은 바람의 바로 뒤에서 탑승 수속을 했지만, 옆자리에 배정되지는 않았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어가니 자정이 넘었지만, 면세점은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베트남의 지방 공항이라 그 시간대에 뜨는 비행기는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뿐인데도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승객이 주는 바람에 그동안 못한 장사를 이제 맛보기로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바람은 면세점을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나는 손 사장과 같이 있었지만, 눈길은 바람을 따라다녔다. 가까이 다가가서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 같이 움직이기가 다소 불편한 분위기였다. 그런 관계로 멀찍이서 손 사장과 대화를 나누며 바람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내 눈이 바쁜 지경이었다.
탑승구에 앞에 기다리는 바람에게 말은 건네지 못하고 물 한 병 건넨 게 고작이었다. 물론 물은 손 사장이 산 것이었다.
탑승구 앞에 기다리던 승객 중에서 내가 가장 늦게 비행기를 탔다. 이유는 내게 배당된 자리가 뒷자리이기도 했지만 바람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바람보다 더 앞자리라면 내리면서 천천히 내릴 것이고 뒷자리에 있다면 빨리 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람아, 사랑은 본래 이렇게 치졸하고 유치한 것이다. 비행기를 통로로 들어가며 바람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확인했는데 바람은 어중간한 자리에 앉아서 내게 눈인사를 했다.
예상대로 대구 공항에 도착해서는 바람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바람은 정말 바람처럼 사라졌지. 다소 서운했다. 그러나 바람과의 소통을 끄나풀이 있다는 사실과 같은 소도시에 살고 있다는 위치성을 위안으로 삼았다.
집에 도착해서 연락처를 다시 보니 카톡에 새로운 친구라고 바람의 이름이 붉게 떠 있었다.
아, 이렇게 소통하는 방법이 있구나.
어디에 머물고 있을지 모르는 바람을 향해 나는 잽싸게 카톡을 날렸다. 나와 궁합이 맞는 자음과 모음을 쪼아 그리움이 묻은 문장을 만들었고 그 문장을 물어다 카톡에 실었다. 그리고 바로 날렸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져서 서운하네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유려함을 지니지 못한 짤막한 문장이었지만 애틋한 내 마음과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는 언어가 함축된 문장이었다. 그렇게 카톡을 날리고 답장이 안 오면 어떤 전략을 짜야 하나 걱정을 했었다. 붉은 바람은 내 카톡을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바로 바람처럼 날아왔다.
그러게요.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들어 보셔요.
그리움으로 붉게 물든 답장은 짜릿했다. 카톡이 그만큼 편리한 통신매체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평소에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카톡에 매달리게 되었다. 만날 기회를 어떻게 만들어 볼까?
잠깐!
이런 말을 할 때는 담배를 한 대 피워야 하는데, 쩝!
옥상에 올라가면 환자복을 입은, 중풍에 걸린 칠십 대가 손을 벌벌 떨면서 담배를 요구하고, 자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말을 거는 바람에 그곳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
웅얼거리는 시원찮은 발음을 유추와 짐작으로 해독하니 자신은 전직 공무원이고, 삼십칠 년 몇 개월을 시청에 근무했다는 말을 웅얼거렸다. 그걸 자신의 훈장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듣기가 불편했는데. 몸이 아프면 역시 신경도 날카로워지는 모양, 담배 한 개비 드리고 말을 들어주는 게 그분에게는 마음의 위안이 될 터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 불확실한 언어를 듣는 자체가 싫어서 담배를 참겠다. 아니다. 어쩌면 옥상에서 이미 그 양반은 자신의 병실로 돌아가고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배는 참기로 하자.
자주 만날 기회를 어떻게 만들까?
사고가 나기 전, 아둔한 머리로 그 궁리를 이틀이나 했다.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여행지에서 찍은 바람의 사진을 카톡으로 날려주고 언제 찍었는지 내 사진을 바람이 나에게로 날렸다. 들에서 소일거리로 밭일을 하다가 부부싸움을 하시는 구순이 넘은 부모님의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고, 밭에서 자라고 있는 호박꽃과 오이의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어떻게 만날까? 만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바람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내일 우리 카페에서 고전 독서 모임이 있는데 참석해도 괜찮다는 문자였다. 덧붙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작가인 그대가 와도 껄끄러울 게 없다는 전갈이었다.
우리 카페가 어디일까?
그게 궁금해서 문자를 보냈더니, 도립공원 입구의 무슨 카페라고 지도를 보내왔다. 찾기는 수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커피전문점의 주인이 바로 붉은 바람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커피점이 아니고 그 건물과 땅의 주인이었다. 커피전문점은 세를 놓고 이 층의 공간은 붉은 바람이 쓰고 있는 듯했다.
가 보니, 주차장이 넓고 이 층에 모임을 할만한 공간이 있어 언젠가 문학 행사에 참석해서 한 번 가 본 커피전문점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아무래도 인사차 책을 몇 권 가지고 가는 게 좋을 듯했다.
고전 독서 모임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호기심을 충분히 발동하게 할만한 모임이었다. 예닐곱이 모여서 하는 모임이겠거니 하고 최근에 나온 몇 가지 책을 일곱 권씩 준비했다. 지도를 따라서 가 보니 언젠가 한 번 가 본 주차장이 넓은 그 카페였다.
아, 여기구나,
이 층으로 올라가자 이미 모임은 시작되었다. 창으로 보고 있었던지 붉은 바람이 내가 온다는 걸 알고 비워둔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면서 머그잔에 커피를 따라주었다. 모임은 토론방식이 아니라 읽은 것을 초청한 선생님께서 해설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고 해석해주고 있었는데, 내가 거들 말은 없다. 아니, 옆에 앉은 붉은 바람을 훔쳐보느라 책을 볼 짬이 없었다. 붉은 바람은 붉은색 계통의 블라우스를 입고 헐렁한 바지에 슬리퍼를 꿰고 있었는데 우아하게 보였다. 훔쳐보다가 바람이 웃으면 볼에 보조개가 생긴다는 걸 알았는데 참 매력적이었다. 역시 매력은 가장 강력한 지배 수단이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매력?
매력덩어리!
붉은 바람을 곁눈질하다가, 가져온 책이 모자라지 않으려나? 인원을 확인하니 붉은 바람을 포함해서 열 명이었다. 생각하니 차 트렁크에도 책이 몇 권 있을 것이다.
해설이 끝나고 그리스 로마신화를 내가 쓴 책에도 인용했다고 하면서 책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붉은 바람이 소설가라는 소개를 하고 자연스럽게 차에 있는 책을 옮길 수가 있었다. 트렁크에도 몇 권이 있어 종류는 다르지만, 책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었는데 붉은 바람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내가 쓴 책, 몇 권을 주문했다고 했다.
그 모임을 마치고 매주 수요일이면 독서 모임을 하니 참석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해설 모임보다 붉은 바람을 일주일에 한 번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러나 그다음 주 모임에 가지 못하고 나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뉴스를 보니 다음 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단다.
열흘이 넘게 병원에 갇혀 있으니 철이 가는 줄을 몰랐는데, 아침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잠깐 훑어보다가 장마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마? 지금이 장마가 올 철인가? 아, 그렇구나. 내가 철이 없었구나.
사고가 난 건 집 앞 사거리였다.
카톡으로 붉은 바람과 싸우느라 걸으면서도 정신이 없었다.
바람을 나는 친구로 맞이하고 싶어 했고, 바람은 그냥 지인으로 여기자고 고집했다.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고 싶었다. 바람으로부터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의미를 지닌 친구. ‘친구’가 안 되면 한 계단 낮추어 ‘칭구’라도 만들어 달라고 앙탈을 부렸지만 먹히지 않았다. 보기보다는 고집이 센 여자였다.
물론 카톡으로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인도를 걸으며 바람에게 카톡을 날렸다. ‘칭구’로 등급을 올려 달라고 징징거리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황홀한 기분은 있었다.
붉은 바람과 이렇게 마음대로 카톡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니,
꿈만 같았고 구름 위에 선 기분이었다. 허공에 뜬 기분이 이럴까? 정말로 허공에 솟았다. 핸드폰에 붉은 바람이 보낸 문장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해독하며 건널목을 들어서는 순간, 몸이 허공으로 솟았다. 전속력으로 신호를 받으려고 좌회전하던 차가 나를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허공.
구름 위에 선 기분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승용차의 보닛 위로 떨어졌다. 조준을 잘못해서 머리로 승용차의 유리를 박아 박살을 내고 굴러서 아스팔트에 떨어졌는데 미처 정지하지 못한 승용차가 나를 그대로 밀고 갔다.
친구는 절대 안 된다는 고집치고는 참 고약하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붉은 바람이 아닌 웬 젊은 여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아스팔트에서 일어서려는 나를 부축했다.
어? 붉은 바람이 아니었네!
친구가 싫다구, 그럼 연인으로 할 거야?
젊은 여자에게 따지듯이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병원에 와서 다음날 카톡 답장을 보냈다.
그래 내가 졌다. 그러자. 친구 말고 지인, 지인으로 알고 지내자. 지인아! 됐니?
그 말에 대한 답장은 책 표지를 찍은 사진이 날아왔다. 내가 예전에 쓴 책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그때 가서야 도착했던 모양이다.
그날부터 나는 붉은 바람을 지인아,라고 불렀다.
지인아!
생각하니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가 없다. 지인이라는 사이에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면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계단을 뛰어넘어 연인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일찍 몰랐을까? 붉은 바람은 그걸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친구가 되는 것을 그토록 반대했을까?
붉은 바람은 어제 경주로 갔다. 병실에 지인을 버려두고 혼자서 갔다. 뭔가 생각할 거리, 고민할 거리, 숙제를 내달라고 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떠났다. 그냥 문학적이고 현학적인 용어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단어 하나만 던져주면 나는 그 언어를 붙들고 잘 노는데 야속하고 매정하게 그냥 떠난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말로는 신라의 달밤을 보러 떠난다고 했다. 신라의 달밤을 보았느냐고 카톡을 보내자, 바로 야간에 불이 켜진 첨성대를 찍은 사진을 날렸다. 그 사진에 나는 답신으로, 지인아 너를 사랑한다, 아니, 붉은 바람을 사랑한다고 보냈다. 지인아는 자기가 붉은 바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무슨 뜻으로 해석할지 모르지만, 황당한 답신이 날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어떤 답장이 날아올지 정말 기대가 된다.
아직도 내 핸드폰에는 여행지에서 찍은 붉은 바람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그 사진을 찾아서, 얼굴을 보고 붉은 바람아 너를 사랑한다고 말을 해볼까?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비가 오려는지 밖에는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병실의 커튼이 펄럭인다.
붉은 바람은 지금 어느 시대, 어느 거리를 떠돌고 있을까? 신라라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궁중에 들어앉은 건 아닐까? 당시에는 모계사회의 풍습이 남아 여왕도 존재했는데.
아, 참으로 따분한 병실이다.
분명히 사랑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프지? 아직도 화장실을 가는데 보행이 평소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을 시작하면 아픔이 치유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속설인가? 아니면 붉은 바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그건 고민해볼 문제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병실 침대에서 턱을 괴고 앉아 나도 모르게 붉은 바람을 토해냈다, 내가 토해낸 것은 한숨이 아니라 붉디붉은 바람이었다.
아, 붉은 바람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이렇게 토해내는 것인가?
세상의 반은 바람이다.
바람은
육식성 비명을 식물성으로 전환해서. 그다음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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