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종교가 무엇인지 질문할 때 "무슨 종교를 믿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에는 '종교란 곧 어떤 절대자를 믿는 것'이라는 의미가 짙게 깔려있는 말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종교인의 경우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곧 절대자를 믿고 받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력적(自力的) 실천이 강조되는 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적절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보는 참다운 종교적 삶이란 부처님을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깨달음, 그리고 믿음에 부합하는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사람은 신앙으로써 거센 흐름을 건너고 정진(精進)으로써 바다를 건넌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믿음을 갖는 것은 마치 거친 파도를 건널 수 있는 든든한 뗏목을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바른 믿음을 선택하는 것은 종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른 믿음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해탈하거나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뗏목을 타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노를 저어서 고해(苦海)를 건너 열반의 저 언덕[彼岸]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숫타니파타}는 믿음의 배를 타는 것에 머물지 말고 정진의 노를 저어 고해의 바다를 건너라고 설합니다. 이렇게 믿음 못지 않게 바른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믿고 받든다'라는 의미를 지닌 '신앙(信仰)'이라는 말보다 '믿고 실천한다'는 의미를 가진 '신행(信行)'이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화엄경』에서는 불자의 종교적 믿음과 실천에 대해 신(信)·해(解)·행(行)·증(證)이라는 네 가지 범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信)이란 부처님과 참다운 불법의 가르침과 승가를 올바로 믿는 것을 말하며, 해(解)란 불법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행(行)이란 믿고 이해한 바를 몸소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증(證)이란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을 믿는다는 것은 이 같은 경전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해행증의 체계에 따라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신해행증에서 '믿음[信]'과 '이해[解]'가 한 짝을 이루고, '실천[行]'과 '깨달음[證]'이 한 짝을 이루는 개념입니다. 불교에서 믿음이란 무조건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과 교리가 무엇인지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그 믿음은 맹목적 신앙이 될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성적 이해와 학습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그것은 무미건조한 지식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바른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의 진리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며, 종교적 이해가 지식으로 머물지 않으려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행(行)과 증(證)이란 곧 실천과 그 실천을 통한 바른 증과(證果)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설명한 신해(信解)가 믿음과 이해라는 정신적인 지혜의 문제였다면, 여기서 설명하는 행증(行證)이란 실천과 그 실천에 따른 성취에 관한 부분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투철하고 그 믿음에 대한 이해가 깊고, 경전과 교리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행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利他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믿음과 이해는 '나'라고 하는 작은 울타리를 뛰어넘는 대승적 보살행이 뒷받침되어야합니다.
{법구경}에서는 "사랑스럽고 색깔이 아름다울지라도 향기가 없는 꽃처럼 실천이 따르지 않는 훌륭한 말은 효과가 없으리라."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비록 믿음이 순일하고 교리적 이해가 깊다고 할지라도 보살행과 같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향기 없는 꽃처럼 무미 건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과 이해와 실천과 증득에 대해 {화엄경}은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찾아뵙고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구법행(求法行)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재동자는 맨 처음 믿음과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진리를 향한 보리심을 냅니다. 그리고 구법행에서 여러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뒤 마지막으로 진리와 수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선재동자의 구법행은 바로 믿고, 올바로 이해하고,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고, 마침내 깨달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신해행증의 과정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원효 스님은 "실천과 지혜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行智具備 如車二輪], 자리와 이타는 새의 두 날개와 같다[自利利他 如鳥兩翼]."라고 하셨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화엄경}의 신해행증도 지혜와 실천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원효스님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불자에게서 믿음과 실천이란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자리와 이타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첫댓글 성불하십시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 성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