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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행자들이 밭에 나오기 전에 앞밭에 가서 잘 익은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를 수확해왔습니다.
“서울 공동체 행자들 갈 때 가져가라고 수확을 해왔어요.”
스님은 연장을 챙겨 산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어제에 이어 서울공동체 행자들과 함께 도라지밭에 풀을 맸습니다.
어제보다 더욱 흐드러지게 핀 도라지꽃 아래에서 호미로 풀을 삭삭 긁었습니다. 도라지는 땅 아래에서 3년째 묵묵히 자라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야, 도라지꽃 좀 보세요. 일하는 게 아니라 꽃놀이하는 것 같네요.”
올해 심은 도라지밭은 풀을 매니 아주 작은 싹이 드러났습니다.
양떼같은 구름이 점점 흩어지더니 햇살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가 미리 날씨를 보고 여러분을 불렀어요. 어제오늘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리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해가 나네요.”(웃음)
스님과 행자들은 햇살을 등지고 앉아 계속 풀을 맸습니다.
7시가 넘었습니다.
“저는 8시부터 즉문즉설이 있어요. 오늘 논 피뽑기를 하러 거사님들이 와서 잠깐 인사도 드려야 해서 먼저 내려가 볼게요. 서울 갈 때 가져가라고 채소를 수확해 뒀어요. 잘 챙겨 가세요.”
“네, 스님. 고맙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팽나무 아래에 봉사자들 70여 명이 논매기를 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이 긴급히 도움을 요청하여 대구경북지부에서 40여 명, 부산울산지부에서 30여 명이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하여 모인 겁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논에 피가 너무 많아서 급히 도움을 요청했어요. 가장자리에는 피를 많이 뽑아서 좀 적은 편인데, 가운데에는 아직도 피가 정말 많아요. 모를 빼고는 전부 피예요. (웃음) 저는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 생방송이 있어서 끝나고 나서 같이 결합할게요. 먼저 가서 일하고 계세요.”
이어서 묘당 법사님과 향존 법사님이 피를 구분하는 방법과 노하우를 알려준 후 다 함께 논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8시 정각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전 세계에서 3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지난 한 주 동안 스님이 농사일을 하는 모습을 영어 자막이 들어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요즘 아침 6시부터 8시 반까지 울력을 합니다. 낮에는 더워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녁에는 주로 한 4시 반부터 7시 반까지 일을 하고 있어요. 7시 반부터는 주로 온라인으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들과 비교하는 열등감과 우월감 때문에 힘들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I'm a Korean Australian currently based in Sydney Australia. Struggling with constant feelings of inferiority or superiority over other people, based on a number of factors (e.g., their appearance, job, personality, education). I can’t stop comparing myself to others in this way, and ranking myself against them. This also tends to affect how I act/talk to people - being more confident with people I consider ‘less than’ while feeling socially anxious around people I consider ‘better than’ me. What can I do to stop this way of thinking/living?"
(저는 현재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호주인입니다. 저는 외모, 직업, 성격이나 학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서열을 매기는 것이 멈춰지지가 않아요. 이점은 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보다 조금 못한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자신감이 있고, 저보다 조금 나은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불안을 느낍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질문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질문자가 조금 심하네요. 우리는 사물을 구분할 줄 압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덜 진화됐을수록 사물을 구분하는 능력이 약해요.
예를 들어 구더기는 접촉에 따른 감각만 있습니다. 그래서 구더기는 앞에 장벽이 있어도 가서 부딪혀봐야 알아요. 물고기는 대부분 맛으로 구분을 합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먼 북태평양까지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물맛을 따라와요. 개는 후각과 청각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시각이 가장 발달했습니다. 우리가 ‘안다’와 ‘본다’는 말을 함께 쓰는 이유는 시각을 통해서 대부분의 정보가 들어오기 때문이에요. 또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6가지 감각 작용입니다.
육체적 감각을 대표해서 손, 입, 코, 귀, 눈, 그다음에 머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형이라도 이 순서가 바뀌는 법은 없습니다. 기능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생기는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는 없어요. 인간은 다섯 가지 직접적인 정보와 그것을 종합하는 생각으로 사물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색깔도 세세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개는 두 종류의 원추세포가 있어 노란색, 파란색, 회색까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해요. 인간보다는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인간은 시각에 장애가 생기면 대신 청각이나 촉각이 매우 발달하게 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어요.
어제 밭에서 풀을 맸는데, 풀을 뽑는 날카로운 도구를 새로 구입했습니다. 모두들 써보고 도구가 좋다고 좋아했습니다. 근데 한 사람이 그 도구로 손을 찍어서 인대가 끊어지고 손가락에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사물에는 양쪽 측면이 있습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예요. 날카로운 도구는 풀은 잘 베어지는데 다칠 위험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 작용도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색깔을 잘 구분하는 건 좋은데 흰색이 검은색보다 더 좋다고 인식하는 건 문제예요. 모두 다를 뿐인데 어떤 것은 우월하고 어떤 것은 열등하다고 잘못 인식합니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에요. 인간은 동물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데, 잘못된 인식 때문에 동물보다 훨씬 괴롭게 살아요. 구분해서 인식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것은 우월하고 어떤 것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
지금은 다르지만 옛날에는 살이 찐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우월한 사람이고, 자기보다 여윈 사람이 열등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돈을 중요하게 여기면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위축되고, 나보다 돈이 적은 사람 앞에서는 거만해집니다.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면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는 교만해져요. 이렇게 자기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생깁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다.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모두 서로 다를 뿐이다.’라고 하셨어요. 이것을 ‘공(空)’이라고 합니다.
종교도 서로 다를 뿐입니다. 좋은 종교 나쁜 종교가 있는 게 아니라 종교는 각각 다르고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다고 보면 됩니다. 서로 다르다는 인식만이 객관적 사실이에요. 그것이 좋고 나쁘고, 높고 낮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인식입니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게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에요. 태어나자마자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형성된 습관이에요. ‘공부를 잘해라. 돈을 많이 벌어라. 출세해라’ 질문자도 살면서 이런 가치관이 주입된 거예요. 학교에서도 그렇게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를 잘하면 자기가 굉장히 잘난 줄 알고 마치 옛날 귀족 같은 우월의식을 갖게 되는 거예요. 공부를 못하면 마치 옛날 노예처럼 열등의식을 가져요. 옛날에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서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인식이 심어졌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성적을 매겨서 심리적으로 우월, 열등의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질문자도 자라온 환경에 의해 인식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르다’는 관점에 서야 됩니다. 피부 색깔을 다 다를 뿐인데 어떤 색은 우월하고 어떤 색은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성차별도 성은 다만 다를 뿐인데 차별하는 거 아닙니까? 인도에는 아직도 계급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 IT 회사에 근무해도 인도계 사람들은 높은 계급과 낮은 계급이 식사를 같이 안 한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그만큼 관습이 무섭습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미 태어남에 의해서 인간은 차별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잘못 인식하기 때문에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기고 비굴해졌다가 교만해졌다가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잘못 인식하는 것은 자기 잘못은 아니고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을 지속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이건 서로 다를 뿐이구나.’ 하는 관점을 가진다면 우월의식과 열등의식, 비굴과 교만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쉽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 이해는 되는데, 무의식 세계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그렇게 인식하는 습관이 형성됐기 때문에 사물을 딱 보면 우월해지거나 비굴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늘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해요.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면, ‘내가 지금 잘못 인식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립니다. 비굴한 마음이 일어나면 ‘내가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잘못 인식해서 비굴한 마음이 일어나는구나’하고 알아차리면 돼요. 마음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마음을 붙잡지 말고 바로 알아차려서 내려놓는 연습은 필요합니다. 내가 외모에 대해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을 느낀다면 ‘내가 외모에 집착하고 있구나’ 이렇게 바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실제로 잘 안 되는 이유는 마음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을 살피라고 하는 거예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움켜쥐면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바로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우리는 형성된 습관으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I was very nervous about asking the question today but I'm glad that I did. I think it'll be very difficult for me to be mindful of my habits because I sometimes enjoy feeling better when I feel like I'm better than others and I get too nervous when I'm feeling inferior compared to other people but I guess I'll just have to try my best. Thank you.”
(오늘 이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긴장되었었지만 질문하기를 잘했다 싶습니다. 제 습관에 깨어있는 것은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가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나은 것 같을 때 좋은 기분을 즐기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해 보이면 너무 불안하거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많이 즐기세요. 나중에 과보도 당연히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없습니다. 근데 과보가 따를 때 ‘내가 즐긴 과보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지, 남을 원망하거나 실의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서 한 사람이 더 질문을 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별 거 아니에요. 여러분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시험성적이 올랐든 떨어졌든 그게 지금도 중요합니까? 제가 어릴 때 구슬치기를 잘해서 구슬을 참 많이 땄는데, 구슬을 따든 잃든 지금 돌아보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지금 자기가 남보다 잘났다, 못났다 하는데 죽을 때가 돼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자살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인생은 자살할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사는 게 자살하는 것보다 쉬워요.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쉬워요.
쉽게 살지 왜 자꾸 어렵게 살려고 합니까? 살아있을 때는 죽으려고 하고, 죽을 때가 되면 또 살려고 하니까 일이 복잡하잖아요. 살아있을 때는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살아있는 김에 좋은 일도 좀 하고 살아보세요.
천국이 있거나 극락이 있다면, ‘나 빼놓고 천국에 갈 사람 누가 있어?’ 이 정도로 자신감 있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누가 보내줘서 가는 게 아니에요.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면 가는 거죠. 또 그런 세계가 없으면 어때요? ‘지금’에 충실하게 살 때 현재도 좋고 미래도 좋습니다. 그렇게 현재도 미래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다음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논으로 향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논 한가운데에서 피를 뽑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크게 소리쳐서 알렸습니다.
“피를 뽑자마자 바로 던지지 말고, 물에 헹궈서 진흙을 떨군 후에 던져 주세요. 아까운 진흙을 밖으로 다 버리게 되거든요. 저는 손님이 와서 얼른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스님은 울력 상황을 둘러보고 다시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불교 봉사단체인 사단법인 미소원 장유정 대표님이 찾아왔습니다. (사)미소원에서는 10년 넘게 해마다 JTS에 해외 결핵환자 의료비 지원과 우물 파기 사업에 후원금을 전달해 오고 있습니다.
“스님 맨날 풀하고 들꽃 보고 사시는 것 같아서 들꽃 시집 한 권에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스님의하루를 보니 농사를 너무 무리해서 지으시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스님은 미소원 대표님과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봉사와 환경위기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논으로 갔습니다.
거사님들은 논장화가 부족해서 농사팀이 준비한 스타킹을 신고 논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타킹을 신어 본 거사님들이 많았습니다.
“이거 새 거네요. 그러면 오늘 스티킹 값이라도 하고 가야 할 텐데...” (웃음)
봉사자들은 나란히 줄을 서서 한 발 한 발 전진하며 피를 뽑은 후 릴레이 방식으로 피를 전달하여 논 밖으로 피를 던졌습니다.
처음 피를 뽑는 봉사자들이 하기 어려운 가장자리에 피를 쭉 뽑았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허리를 숙여 피를 뽑던 스님은 올라올 때마다 휘청 거렸습니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스님은 가장자리 한 편에 피를 뽑고 나와 땀을 닦으며 잠시 쉬었습니다. 곧 다시 모자를 쓰고 거사님들 대열에 합류해 피를 함께 날랐습니다. 아버지를 따라온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작은 거사도 왔네요.”
어린이도 스님과 함께 피를 날랐습니다.
“이제 정말 5번 남았습니다!”
피를 전달하는 선두에서는 끝없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피는 계속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피뽑기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봉사자들은 만세를 부르며 논을 나왔습니다.
새 스타킹은 어느새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타킹을 벗고 논물에 다리를 씻었습니다.
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사용한 도구를 깨끗이 씻어놓았습니다.
논매기를 마치고 다 함께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농사팀에서 준비한 시원한 수박을 한 입 먹고 나서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힘들었죠? 여러분들을 일하게 하려다 보니 저도 놀 수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요즘 봉사자들에게 일을 시키려니까 제가 힘들어서 죽겠어요. (웃음)
유기농을 한다고 피약을 안 쳤더니 전부 피로 다 뒤덮이게 된 겁니다. 피가 어릴 때 뽑았으면 훨씬 수월한데 이 일 저 일 바빠서 미루다 보니 시기를 놓쳐서 피가 그만큼 자란 거예요. 여러분 덕분에 겨우 수습을 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부터 ‘아시밭 맨다’라고 하듯이 풀을 어릴 때 매면 일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때를 아소서’ 이러셨잖아요. 그런데도 저희는 때를 놓쳐서 일을 두 배 세 배로 만들어놓고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거사님들은 농사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논 한 마지기 정도는 옛날식으로 이렇게 논농사를 지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스님도 이에 호응을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모를 심을 때도 옛날처럼 줄을 딱 치고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 거예요. 대신에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만 전부 와서 함께 하기로 약속하면 가능해요.”
30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큰 박수와 함께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지부별로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어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농사팀에서 갓 수확한 농산물을 나눠주었습니다. 다들 깻잎, 브로콜리, 컬리플라워를 한 아름 씩 안고 돌아갔습니다.
오후 3시 10분부터는 지난 2박 3일 동안의 온라인 명상수련 회향식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명상을 해 온 참가자들은 화상회의 방에 모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먼저 소감문 발표를 했습니다.
스님은 소감문 발표를 경청한 후 회향 법문을 했습니다. 왜 명상을 하는지,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한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 30분이 되자 스님은 다시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17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오늘 오전 내내 진행된 논매기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산골에 논이 하나 있는데 유기농을 하느라 농약을 뿌리지 않았더니 피가 모보다 더 많이 나서 뽑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희 공동체 성원들이 며칠 째 피를 뽑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오늘은 봉사자 70여 명이 함께 피를 뽑았습니다. 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네 시간이나 하게 되면서 어지럼증이 생기고 탈수 현상도 생겼어요. 옛날에는 농사일 중에 제일 힘든 일이 논매기였는데, 저희는 옛날식으로 논을 매고 있습니다.” (웃음)
이어서 지난주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명상을 했습니다.
탁, 탁, 탁!
명상을 마치고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들을 스님이 직접 읽어준 후 온라인 명상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과 저녁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경전대학 학사일정 회의와 인도 성지순례 준비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