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던 옛집
이재무
마당이 있고 뒤꼍이 있고 장광이 있고 굴뚝이 있고 병풍 같은 대숲을 거느린 집
조석으로 참새 떼가 지저귀고 마당귀 돌확 속 괸 빗물에 낮에는 구름이 다녀가고 밤에는 별들이 내려와 시문을 짓던 집
뜰팡에 달빛 앉았다 가고 엄니 고무신에 개구리 울음이 고이던 집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와서 울던 집
돼지울과 닭장과 소 우리가 사이좋게 이웃해 있던 집
비 오는 날 워낭 소리가 음악처럼 은은하던 집 마루 밑 누렁이가 오수를 즐기던 집 할머니 잔소리를 유난히 반기던 가축들이 살림을 내던 집
오월이면 텃밭에 노란 장다리꽃들 꿀의 주막을 열고 인근 한량들인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이던 집
방물장수가 묵었다 가고 돈절한 인척이 불쑥 얼굴을 내밀던 집
한밤중 밤새 소리가 첨벙첨벙 방 안으로 떨어지고 여름이면 바람이 신발도 안 벗고 이 방 저 방 드나들며 발자국을 남기던 집
가장 일찍 해가 찾아오고 가장 늦게 저녁이 당도하던, 키 작은 동향집
그 집에 가고 싶다.
- 이재무 시집『당신은 슬픔마저도 자랑이었다』 (천년의시작,2026, 7.31) 92/93쪽
첫댓글 히야~~~~
"여름이면 바람이 신발도 안 벗고
이방저방 드나들며 발자국을 남기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