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6. 경남 의령군.
고향 밤밭 언저리에 어머니께서 가꾸시는 골담초와 뜰보리수가 꽃을 활짝 피우니 온갖 나비와 벌들이 잔치를 벌이더군요. 벌 중에서 덩치가 웬만한 말벌만큼 커다란 어리호박벌은 공중에서 호버링하는 소리조차 무시무시하죠. 마치 장수말벌처럼. 하지만 어리호박벌은 잘 쏘지 않는 순한 벌인 걸 알면 그저 신기한 피사체일 뿐. 저는 하나도 겁을 안 내고 멀찍이서 똑딱이 줌을 당겨 수십 장을 찍었답니다. 무서워서 멀리 떨어진 건 절대 아니고 가까이 가면 벌들이 도통 앉지를 않아서... 진짭니다. 믿어주세요. ^^;;
이름이 어리호박벌이라서 야가 '어리할(어수룩할)' 거라 지레짐작하시는 분들 있으실까 봐 슬쩍 알려드립니다. 바로 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골담초 꽃잎을 벌리고 들어가 꿀을 빨기엔 선천적으로 대가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잔머리를 굴려서 강력한 주둥이로 꽃받침을 푹 찔러서 꿀을 도둑질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여름날 물봉선의 꽃에도 이런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물봉선의 가느다랗게 돌돌 말린 거(距) 안으로 주둥이를 뻗을 수 없는 뒤영벌이나 호박벌들, 심지어 꿀벌들도 이런 방식으로 꿀을 도둑질하는 걸 가끔 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