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생을 간호하고 있는 한 언니가 있습니다. 침대 옆에서 언니는 대화를 계속 시도하려고 하지만 여동생은 허파의 통증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죠.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언니는 자신의 삶을 바라봅니다. 언니가 동생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죠. 그래서 그런지 문장과 문장 사이 침묵과 여백이 꽤 크고 깊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많은 것을 생각할 것 같지만, 루시아 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작은 것들,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들, 용서보다는 원망을, 후회보다는 인정을, 그리고 소소한 일화들. 어쩌면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삶을 더 정직하게 대하는 태도이겠죠. 그 뒤에 나오는 안녕. 그 뒤에 나오는 안녕은 또 다른 의미의 안녕일 것입니다. 걱정은 걱정대로. 지금 당장은 생활의 무늬와 리듬을 따라 천천히 표류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른 생각도 많이 하면서. 어차피 우린 모두 사라지는 존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