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돈은 젖어서 온다 외 1편
박원희
아내의 돈은 젖어서 온다
목욕탕 때밀이로 돈도 끝이 말려서 온다
아내의 머리카락도 젖어서 온다
눈물을 흘렸는지
눈썹도 젖어서 온다
마를 사이 없이 나에게
물 묻은 사연을 이야기 한다
오늘도 축축이 젖어서 살았다
그것이 율곡 이이든 황혼을 닮은 이황이든
이 땅의 임금이든
모두가 아내와 같이 젖어서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아내의 돈은 젖어서 온다
아내처럼 젖어서 들어와 쉽게 늘어지고
꼬부라진 채 출근을 한다
밥이란 때에 절은 사람들이 한 꺼풀 벗기고 간 추억 같은 것인지 모르지만
아내는 젖어서
눈물샘이 마르고
아내는 하혈을 일찍 끝냈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돈은 젖어서 온다
아내의 몸도 젖어서 온다
눈물샘이 말라서
배 닿은 항구
모르핀을 놓아주는 병실
우리의 통증은 멎을 수 있을까
우리의 통증은 멎지 않고 둘 다 아팠다
아내는 아파서 아프고
나는 아프지 않은데도 아팠다
아프지 않기로 한 저녁 면회시간에
모르핀은 통증을 못 느끼나요
묻는 나를 바라보던 의사, 간호사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데
아픈 마음은 슬펐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겨울이 된 밖에서
소식이 온다
모르핀을 맞던 아내는 여전히 잠들고
펜타닐로 바뀐 진정제를 맞으며
잠자고 아팠다
또 아팠다
모두 아팠다
기억은 마비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펜타닐을 맞는 병동에서
산다는 것은
아픈 그대와 내가 산다는 것은
배 닿는 항구다
중환자실이 바라보이는 대기실에서
시계만 보고 있을 때였다
― 박원희 시집, 『아내』 (한솔 / 2023)
박원희
충북 청주 출생. 1995년 《한민족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나를 떠나면 그대가 보인다』 『아버지의 귀』 『몸짓』 『방아쇠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