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위기시 지도자의 대처방식]
-이승만 대통령: 1950년 6.25 발발 직후 서울사수하겠다는 방송만 남기고 남쪽으로 혼자 내뺐으면서, 피난못하고 생존형 부역을 일부 한 시민들을 부역자로 몰아 처형하고, 한강인도교 폭파한 최창식 공병감을 처형했다. 하지만, 처벌하려 치면, 전쟁 대비도 못하고 몇년이 걸리는 전쟁준비상황에 대해 알지도 못한 군통수권자의 잘못이 일차적이다. 다만 그런 대응을 못했다고 해도, 그의 긴급피신 자체는 전쟁으로 본다면 전체 전략상으로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전쟁예방이 일차책무인 대통령의 전체적 대응에서 치명적 하자가 있다.
-장면 총리: 1961년 5.16군사쿠데타 발발 소식을 듣고 모처로 잠적, 쿠데타세력 승리 이후에야 나타나 총리 사퇴. 최악의 선례. 역사는 장면을 기억조차 않으려 한다. 아옌데처럼, 군사쿠데타에 직접 맞서 싸우다가 죽었거나, DJ처럼 장기 옥살이의 고난을 겪었다면, 아마 이순신 동상 옆에 장면 총리의 동상이 서 있을 터.
-노재현 국방부장관: 1979년 12.12 전두환등 군사쿠데타때,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허삼수 등에 의해 체포됨(치밀한 사전준비 부족), 그런데 쿠데타군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해야 할 노재현(이 자는 국방부장관을 매우 오래 누렸음)은 국방부에 은신해있다가, 쿠데타 세력의 승리 이후 그 쪽에 도장찍어줌. 역사는 노재현을 언급하기도 싫어한다. <서울의봄> 영화에서도 가장 야비, 얄미운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190명의 국회의원: 2024년 12월 3일 윤의 계엄쿠데타에 대응하여, 의원들은 여러 길이 있었다. 신변 위협으로 잠적하든지, 국회 주변에 보이지 않게 어슬렁거리든지, 폼나게 "이거 뭐하는 겁니까" 카메라 앞에 항의하든지...그런데 체면이고 염치고 잠시 옆에 두고, 우원식 이학영 의장단은 담을 넘고, 다른 의원들도 담을 넘고, 이재명은 유튜브 생중계하면서 국회 와 달라고 했다. 어슬렁거리다가 국힘 당사로 가서 TV나 보고 있던 의원들도 있고...하지만 야당 전체와 국힘 18명 총190명은 국회로 최단시일내에 달려와 계엄의 해제요구결의를 해냈다. (한동훈의 SNS...에서 저지하겠다는 선언은, 그가 정치세계 들어와, 처음으로 잘 해낸 업적이다.). 190명의 의원들은 헌정수호자로서의 소임을 찐하게 잘 해냈다. 아마 한국 국회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190명의 명패를 국회 로텐더 홀에 새기고, 각종 월담 지점을 historic site로 명기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위기시 대처방식과 능력에 따라 정치인의 지도자 점수를 정확히 매겨야 하고, 반면교사와 모델사례를 대비시켜서 바람직한 모델을 추후 학습자료로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