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 소류(蒼龍)


1933년 해군군비보충계획(통칭 마루2 계획)으로 건조된 중형 항공모함미며 함명은 소류(蒼龍, 창룡)로 명명되었다. 소류(そうりゅう)는 현대의 일본어 표기법이고, 2차대전 당시에 히라가나로 표현할 경우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사우리우(さうりう)'로 쓰지만 발음은 소류로 똑같다. 그래서 착함식별부호가 シ가 아니라 サ이다. 참고로 シ는 쇼카쿠의 착함식별부호이다.
항공순양함에서 항공모함으로
초기의 안 중에는 항공순양함을 만드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 안에서는 공시배수량 17,500t에 150,000마력, 20cm포 6문이라는 중무장을 요구하는 설계로, G-6이라 불렸다. 이는 런던 조약하에서 순양함을 합계 배수량의 25%내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미국도 이런 항공순양함을 만들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양국 모두 이런 걸 만들지는 않았다. 소류의 원안이 된 설계는 G-8이라 하는데, 순양함과의 교전을 염두에 두고 15.5cm 5문 (3연장 1기, 연장 1기)를 탑재하는 설계안이었다. 이 안대로 건조가 진행되던 도중에 토모즈루 사건이 발생하고, G-8안은 복원성능의 부족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다. 이후 전면적으로 재설계를 한 G-9안으로 다시 공사가 시작되는데 재설계는 함체의 중심을 낮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소류의 함체 일부와 비행갑판, 기관부는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이렇게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제4함대사건이 터진다. 다시 함의 내구도가 문제로 부상했고, 한창 공사 중이던 소류는 다시 내응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개조가 이루어지고, 함체 구조물 전반에 채용되었던 전기용접을 리벳용접으로 바꾸는 개장이 이루어졌다. 소류는 1937년 취역해 일본 해군에 인도되었고, 다시 잔공사를 마친 후 1938년 정식으로 함대에 편입되었다.
또 소류의 동형함으로 히류가 설계되었지만 히류가 설계될 때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및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효력이 거의 없어져 있었고 그걸 고려해 히류의 설계를 고쳤다.
그 결과 훗날 구 일본 해군의 정규항모 형태가 확립되었다. 소류가 준공될 때쯔음 일본 해군의 항모운용법이 확립되어 소류는 2항전의 기동함공부태에 배속되어 함상폭격기를 가지고 적 항모를 공격하고 제공권 장악을 목표로 하는 임무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 임무는 전투중 미국 순양함과의 조우전을 고려해 결정된 사항이었다.
함선의 형태
항공모함의 가장 중요한 함교는 우현 전방부에 존재했으며 우현 중간에 아카기와 비슷한 하향식 연돌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함교는 전혀 다른 방향이기에 아카기처럼 함교에 들이닥치는 연기에 시계가 불량하다는 점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3대로 후방 엘리베이터 옆에 함재기를 올리는 크레인이 있어 카가나 류조에서 보이는 격납고 뒷쪽의 도어는 사라졌다.
격침의 요인이 된 데미지 컨트롤 능력을 제외하고는 중형 항모로써의 기능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으며 15만 마력을 자랑하는 소류의 최대 속력은 34.9Kt 이 속도는 정규항모중 가장 빠른 함선이었다.
형태의 불확실함
이전엔 비행갑판 후부에 개함식별용으로서 サ라는 문자가 쓰여져 있었지만 최근엔 기입이 없었다는 설이 급 부상하고 있다. 당시 전투에 참여한 수병의 '그런 문자는 없었다'라는 증언과 미드웨이 전투때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원래 동형함인 히류엔 ヒ의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표식이라 안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류의 피탄 구역
1938년 중일전쟁 때 광동 침공 작전에 첫 출전을 했고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습에도 참가했다. 진주만 공습에는 아카기, 카가, 히류, 쇼카쿠급 항공모함 쇼카쿠, 즈이카쿠와 함께 참가하였고 웨이크 섬 전투, 암보니아 작전에도 투입되었으며 실론 해전 당시 영국 항공모함 허미즈를 격침시키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얼마 뒤,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 카가와 함께 침몰한다.
침몰 당시 탑승 인원은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지만 소류의 정원이 1,103명으로 야나기모토 류사쿠 함장 이하 준 사관 35명 부사관 683명 합계 718명이 전사했다. 소류의 함재기 조종사의 전사는 10명이었으며 비행대장과 조종수 대부분은 구조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당시 일본 해군이 얼마나 급했던지 전투기가 나가서 싸우다가 연료와 무장이 떨어지면 귀함해서 다시 연료를 공급받고 무장을 장착하는데 적어도 1시간 30분이 소요 됐는데 이를 30분만에 완료하라고 지시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