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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 압박 조심하세요.
아,중간에 음악 트시면 더 좋으실 수도 있어요.....장담은 못해요...ㅠㅠ
소심해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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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두 눈 가득히 청남빛 천으로 몸을 곱게 가린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작은 비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녀가 팔을 벌린다.
그러자 하늘의 이슬들이 한 순간에 그녀에게로 쏟아져내렸다. 약간은 싸늘하고 닉닉한 밤 이슬이 온 몸을 적시고 그녀의 발을 씻겨 내려갔다. 모든 밤이 숨죽인 순간 그 공간에 서 있는 것은 눈을 감은 그녀와 그녀의 발가락 끝을 안간힘을 다해 잡은 작은 물보라뿐이었다.
그녀가 쓰러졌다.
그녀가 사라지자 하늘엔 밤 이슬들이 시치미를 떼며 그녀가 존재했던 텅 빈 자리를 향해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제 몸들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밤이슬이 되었다. 그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별의 무게-
-1-
“그러니까, 한상훈씨.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라고. 누가 당신을 의심하고 싶어서 의심한데?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사람이 당신이였으니 이렇게 묻고 있는 거 아니냐고. 아니, 정확히 그 여자가 그곳에 있던게 맞긴 맞아?”
“…그 여자는 별이 되었어요. 맞아, 그 여자는 별이 된다고 했어.”
이래서야 별 진척이 없었다. 최종목격자가 아무리 정신병자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수사를 방해할 줄은 몰랐다. 그는 몇 일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해 푸석푸석해진 피부를 거칠게 쓸며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온 나라는 뒤집어졌다.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던 세기의 천재 첼리스트가 고국에서 온데간데없이 그녀의 첼로와 물에 젖어 형태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종이쪼가리 몇 개만 덜렁 남겨둔 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름답고 고운 모래사장에서. 그리고 그 빌어먹을 여자 덕분에 자신은 그 현장에 그녀의 첼로와 함께 멍 하니 얼이 빠진 채 서있던 정신병원 탈출범을 심문하고 있게 된 거다. 몇 날 며칠을 물어도 계속해서 ‘그녀는 별이 되었다.’라는 소리밖에 하지 않는 이 인간을 말이다.
그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었다.
그녀의 첼로에서는 한상훈의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녀가 앉아있던 의자에서도 그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날 그 장소에게 발견된 이 남자 또한 미스터리였다.
누가 보아도 모범적인 ‘정신병자’, 이런 말도 참 우습지만 말이다, 그는 그 정도로 상태가 양호했다. 가끔 헛소리를 늘어놓긴 했지만 발작 따윈 한번 한 적 없었고, 말투도 어눌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사람이였다.
표정이라곤 웃거나 무표정하거나 언제나 둘 중 하나였고, 사람들도 어떻게 그가 그 날 정신병원 밖으로, 게다가 꽤나 멀리 떨어진 속초 앞 바다에서 발견될 수 있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라 했다. 그는 홀로 정신병원을 탈출해 바다로 뛰어 달려올 정도로 간이 큰 인물도 아니었고, 바깥 세상을 그리 그리워 하던 이도 아니었다. 이름이 조금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며칠을 붙어있다 보니 그렇게 느껴버리는 것 뿐일게다.
상훈을 심문하던 수사관은 다시 한번 찬찬히 그를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참 멀쩡한데 말이지, 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인내심을 기르는 셈 치자 자신을 다독였다. 이상하게 이 사람에겐 화내기도 아까웠다. 자신이 성을 내며 몰아붙인다 해도 반응 하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 경우엔 결국 자신이 손해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면 처음부터 물어볼게. 그날은 대체 어떻게 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
잠시 눈을 위 아래로 돌리던 상훈이 여전히 굳게 닫힌 입술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 순간 사내는 제 몸이 반 토막으로 갈라져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추한 핏덩이들을 적나라하게 상훈에게 보이고 있다 느꼈다. 그는 기겁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상훈의 눈이 지나가는 곳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추한 것들이 모조리 갈려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 했다. 마침내 상훈의 눈이 천천히 올라와 마주치자 그제야 그는 상훈이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네 따위 것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어.’
그가 직접 말하기라도 한 듯 며칠간 익숙해진 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맴 돌았다. 그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도끼눈을 뜨고 상훈을 바라보았지만 분명히 상훈의 입술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주름 하나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젠장,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거야.
그는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깎지 않아 제멋대로 뻗어 나온 수염들이 손을 방해했지만 그래도 그는 몇 번을 연속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 순간 상훈의 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날 불렀어요.”
“그래서 이곳을 빠져나갔다?”
“아니, 그녀가 날 불렀어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말들뿐이다. 이제야 뭔가 단서들이 좀 나오는가 싶었는데 또 이렇게 정신 나간 소리만 지껄여대니 막막할 뿐이다. 다시 원점이라는 생각에 맥이 빠져 고물 의자에 바람을 쭈욱 빼며 주저앉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신참 녀석이 약삭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한 일도 없으면서 이곳 저곳 뻐근하다는 듯 스트레칭에, 남자에겐 잊지 않고 깍듯한 인사도 보내며 간다. 허락 없이 나가버리는 신참녀석을 보며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12시가 이미 한참 전에 넘었으니 신혼인 저녀석은 아마 훨씬 전부터 가고 싶었을 거다. 그냥 그렇게 넘기기로 하며 괜시리 도끼눈을 떠버린 자신의 눈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
여전히 녀석은 자신이 먼저 질문하지 않는 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밤이 되자 팔다리가 노곤 노곤하게 풀려온다. 정말, 빌어먹게 졸리지만 녀석은 졸리지도 않는지 그 멍한 눈으로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짓무른 듯한 엉덩이를 다시 한번 의자에 부비적 거리자 그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휙 스쳐 지나갔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헛소리나 한번 들어 봐줄까. 이 빌어먹을 취조실엔 내일 아침까지 자신과 이 남자 뿐이다. 게다가 오늘이 지나면 멍청한 법 상 혐의 없는 이를 가둬놓을 수도 없게 되고. 어차피 밤이란 것이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것 뿐이라면 괜찮을 거다. 실은 어느 동화에서나 나올 법 한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의외의 카운슬러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킥킥거리며 상훈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여자가 당신을 불렀다고?”
한 발만 들여놓아도 짠 내 가득한 그 바다에 제 첼로와 뭉그러진 악보를 내팽개친 그 여자가 당신을 불렀단 말이지?
갑자기 돌변한 남자의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상훈의 고개가 기우뚱하게 꺾였다. 제법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창백하게 질린 상훈의 목만 옆으로 꺾이니 마치 시체의 목이 부러진 것 같아 보여 소름마저 끼쳐왔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상훈이 조용히 입을 떼 물었다.
“당신도 들었지?”
이제껏 제대로 된 감정을 하나 표출해내지 않던 상훈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급작스러운 상훈의 기복에 놀란 그는 그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 하지 못하고 멍청하니 상훈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상훈은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그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퍼부어댔다.
“들었어! 당신도 분명 들었어. 하하, 모른 척 시치미 떼려 하는 것 같은데 난 알지. 당신은 분명히 들었어. 당신은 질투하고 있는 거야. 별이 된 그녀를 질투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 그랬던 거야.”
“…이 새끼가 미쳤나!!!”
갑작스럽게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폭언과 상훈의 웃음소리에 자신마저도 핀이 나가버렸다. 남자는 테이블을 손바닥이 찢어져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상을 내리침과 동시에 상훈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하니 지르고 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얼마나 흥분해있었으면 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 감정을 수습하기도 전에 상훈의 표정이 지독하게 질렸다. 상훈이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손가락을 이로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눈동자가 빠르게 양 옆으로 굴러가고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해 보였다. 몇 번 숨을 고르던 사내가 상훈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그녀가 나를 불렀어, 나를 그렇게 불렀는데….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불렀던 거야. 오로지 나뿐만 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불렀는데.”
잘근 잘근 잘근
“그런데 당신은 늦었잖아. 나는 그 모습을 봤어. 그녀가 별이 되는 광경은 나만 본거야. 결국엔 아무도 듣지 못했어. 오로지 나만…. 오로지 나만, 나만이….”
잘근 잘근 잘근 잘근
상훈은 이제 제 손가락을 모조리 씹어 삼킬 기세로 물어뜯어내고 있었다. 제 손끝에서 찝찔한 핏물이 흘러나오는 것도 모른 채 손끝을 물고, 뜯어낸 그 살을 족족 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순하게 비정상적임을 넘어 괴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상훈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오로지 나 뿐이다. 그녀를 이해했던 것은 나 뿐이다. 하지만 당신도 들었다 이거지? 들었으면서도 모른 척 했다는 거지?
이제는 봉숭아 물을 들인 것처럼 붉게 물들여진 상훈의 손에서 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만 같다. 역겹다. 그는 자신이 단순한 피 몇 방울이 역겹다고 생각했다는 것에 놀랐다. 역겹고 게걸스럽다. 생에 단 한번도 누군가가 ‘갈구’라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건만 지금 눈 앞에 앉아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제 손끝을 물어뜯어먹는 정신병자 자식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지독한 갈구뿐이었다.
대체 저 광기 어린 갈구는 무얼 위한 것 일까. 그 여자의 단 하나가 되고 싶다는 뜻 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자기 하나라 믿고 싶은 것일까. 둘 중 어느 것이 맞건 이 자식은 미친 놈이다.
결국 그는 다시 한번 똑 같은 말을 씹어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미친 새끼….”
그가 자신을 벌레 보듯 하건, 역겹다는 기분을 하나 숨기지 않건 상훈은 개의치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우르르 쏟아냈다.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끝이야!!”
그 의미 없는 개소리가 어째서 가슴 한 구석을 후벼 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침은 왔다. 상훈은 그가 속해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다시 조용하고 얌전한 모범수의 모습으로 변해서. 하지만 어제 있었던 일이 절대 꿈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훈의 손 끝이 증언하고 있었다. 상훈의 뒤편에서 담배만 뻐끔뻐끔 태우던 그는 끓어오르는 가래침을 탁 뱉으며 무의식적으로 제 품 속에 접어놓은 그녀의 손으로 쓰여진 악보 종이 끝을 매만졌다.
그래, 그렇게 따지자면 나도 들은 건가.
“하지만 그 것으로 끝이라….”
무심결에 움켜쥔 종이가 비명소리를 질러낸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쓴 웃음을 흘렸다.
-2-
뉴스에 대서특필이 되었다. 새파아란 바닷물과 백색에 가까운 모래사장 위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차미향, 낡아빠진 나무 의자와 자신의 첼로를 덩그러니 내버려둔 채 실종. 현재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첼리스트 차미향의 실종은 모든 사람에게 한 유명인의 자살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뉴스 어느 곳에도 그 바닷가에 있었던 정신병자 한상훈과 그 의자 아래 널브러져 있던 물에 젖은 악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는 코웃음 치며 담배 연기를 한번 뿜어냈다.
그녀의 실종 소식 이후엔 그녀의 생전 이미 잡혀있던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콘서트가 내일로 다가오자 뉴스에선 그녀의 콘서트가 추도식이 될 줄은 몰랐다 우는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그녀의 죽음을 듣고 해외의 팬이 그녀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구조작업에 동참한 사람도 있다는 소식도 전해준다. 탁자 위에 발을 떡 하니 올려놓고 앉아 DMB로 뉴스를 보고 있던 그는 어느새 잿더미가 되어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놓으며 낄낄거렸다.
사람이란 것이 참 웃기다. 세계에서 한국을 알리는 것은 좋지만 한국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여자가 한국 사람이냐고 뒤에서 조잘거리던 것이 언젠데 사라지고 나니 완벽한 음악인, 한국의 자랑스러운 별이 졌다는 식으로 떠들어댄다.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3일 뒤에 있을 추도식 무대 위엔 그녀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의자와 바닷바람을 머금은 첼로를 올려놓는다 했다.
그는 새 담배를 꺼내 입술에 물곤 제 품에 고이 접어놓은 그 여자의 악보를 툭툭 손바닥으로 토닥였다. 손으로 쓰여진 악보, 어릴 적 작은 학원에서 현악기를 가르치던 어머니 덕분에 악보는 술술 읽어낼 수 있었다. 비록 이 빌어먹을 콩나물 대가리들을 본 것이 몇 십 년 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미련 없이 휴대폰의 전원버튼을 누르고 컴퓨터 키보드로 손을 옮겼다.
“한상훈, 한상훈이라….”
이름이 귀에 익다. 검색창을 켜 놓고서도 그는 쉽사리 한상훈의 이름을 치지 못하고 손가락만 키보드 위에서 달그락 달그락거렸다. 한상훈, 한상훈이라. 잠시 후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이름을 쳐 검색을 해보았지만 나오는 것이라곤 죄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상훈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던 자신에게 짜증이 나 맥이 빠진 채로 기사들을 하나하나 눌러보고 있던 그는 아주 오래된, 자그마치 10년이 넘은 음악 콩쿠르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콰르텟 블뤠의 남매: 한상훈, 한상은]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기사를 빠르게 클릭했다.
<대학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콰르텟 블뤠는 이미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의 단독 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유명 작곡가 란츠 호바네는 이들 콰르텟을 일러 ‘그들에게 2년을 준다는 것은 평범한 이들에게 20년을 주는 것과 같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중략)
누나 한상은(24)의 감성적인 첼로소리와 동생 한상훈(22)의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그러나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는 듀엣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후략)>
기사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을 보며 그는 저도 모르게 물고 있던 담배를 떨굴 뻔 했다. 분명 남녀 일란성 쌍둥이는 불가능 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진 속 남매의 웃는 모습은 기가 막힐 정도로 판박이였다. 모니터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져다 대고 보니 그제야 둘의 다른 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둘의 웃는 얼굴을 보았을 땐 한치 의심 없이 ‘쌍둥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멀쩡했구만.”
양복에 바이올린을 들고 누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참 멀끔하게도 생겼었구나 싶었다. 그런 녀석이 어쩌다 그 꼴이 되었는지.
“세상사 모를 일이라고.”
자조적인 한숨을 쉬며 또 다른 기사를 찾아 다섯 페이지 정도를 넘겼다. 이 기사 저 기사를 눌러보아도 달랑 그 기사 하나 외에는 쓸만한 것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져 턱을 괴고 기사가 아닌 카페라던가 블로그에서 글을 슬렁슬렁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 짓을 하고 있었을까, 밥 먹으러 안 가냐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아침 나절 내내 한 정신병자의 과거를 뒤지려 공문서도 아닌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해져 창을 끄고 저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의 눈에 한 사진이 걸렸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그 사진은 고개를 푹 숙인, 하지만 사진 속 사내가 한상훈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가 한 여자의 사진을 들고 주변 사람의 부축을 받은 채 겨우겨우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아래 적혀있는 글을 보려 황급하게 마우스 휠을 돌린 순간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가 핑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그가 짜증스럽게 쌍 욕을 뱉어내자 뒤에 서 있던 경감이 그의 머리를 후려치며 쏘아붙였다.
“이 새낀, 여기가 피씨방인줄 아나.”
“아, 머리를 때리긴 왜 때려!”
“야 이새끼야, 내가 니랑 나이는 같아도 상관이야. 에라이 문디자슥, 밥이나 먹으러 가자.”
결국 그는 꺼져버린 모니터를 짜증스럽게 훑어본 뒤 뒤통수를 그러쥐고 나이상으로는 제 친구인 경감을 쭐레쭐레 따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3-
9월 3일, 그녀의 추도식이자 마지막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다. 전국이 떠들썩해졌다. 평소엔 음악에 관심 하나 없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9월 3일이 천재 첼리스트 차미향의 추모 콘서트라는 것을 귀가 따갑도록 들을 정도였다. 역시 사람은 죽어야 이름을 남기는 군, 이라고 빈정대며 그는 청장의 명 때문에 관심 하나 없는 콘서트 홀로 향했다. 사람들 이목이 뭐라고 그나마 평소 입고 다니는 낡아빠진 자켓이 아닌 양복 비스무레 생긴 것을 입고 나왔다. 여전히 걷는 폼새나 짜증 가득해 보이는 그 특유의 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옷이 얌전해지니 행동거지도 전보다는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그의 손에 덜렁덜렁 들려있는 팜플렛엔 살아 생전 그녀의 모습이 떡 하니 박혀있었고 그 뒤로는 추도식을 이끌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모여든 음악인들이 그녀의 콘서트 시간을 채우기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법한 수많은 이들이 전국에서, 전 세계에서 온다. 오로지 그녀가 남겨놓고 간 철로와 낡은 의자를 보기 위해서!
‘이 티켓으로 돈 받아 쳐먹는 놈들도 있겠지.’
보아하니 홀도 바뀌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를 두 번째 홀 밖에 주지 않았으면서 그녀가 죽고 나자 가장 큰 홀을 내어준다. 정말 웃지 않을래야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홀 입구에까지 오자 저 편에 몰려 앉아 있던 기자들 중 꽤 눈에 익은 아가씨가 그를 보며 소리쳤다. 저 사람이다! 하는 소리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제 머리통만한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분명 네가 맡은 일이니 끝까지 네가 책임지라는 말을 듣고 내쫓기다시피 해 온 곳이라지만 기자들까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쩐지 유난하게 굴더라. 어차피 여기서 꼴사납게 도망쳐 들어가봤자 기자들은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일찍 끝내버리는 편이 좋다.
우르르 몰려온 기자들 중 몇은 마이크를 들이대고 몇은 플래시를 펑펑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밝은 플래시들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처량하게 울고 있던 상복 차림의 한상훈을 떠올렸다.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도 찬사를 받았던 바이올리니스트가 정신병자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걸 마저 보고 왔어야 하는건데. 미련이 남는다. 경감 그 자식이 데려간 점심 식사가 청장과 만나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그 사진에 대한 의문점을 풀었을텐데. 팔자에도 없는 인터뷰라니, 상황도 이런 거지같은 상황이 어디 있는가.
그가 머릿속으로 경감을 탓하고 있는 와중에도 질문 공세는 끊임없이 퍼부어졌다.
“차미향씨의 시신을 경찰이 은폐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목격자는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까?”
“유서 하나 없었나요?”
“차미향씨가 평소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찍찍찍찍찍-
먹이를 노리는 쥐 새끼들처럼 찍찍거린다. 참다 참다 계단을 오르던 그는 눈 앞에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짧게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상관 없었다. 그 한마디로 차미향 실종설을 사망설로 기정사실화 시켜버린 그는 그 말 한마디가 어떤 후 폭풍을 일으킬지 눈곱만큼도 생각 않고 당황해 하고 있는 기자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사람은 죽은 이를 기억한다. 살았으되 죽은 이는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 꼴같잖음에 품 속에 아무도 모르는 채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남긴 종이 쪼가리를 우기며 마지막 콘서트에 입장했다.
그녀의 음악 없는 그녀의 콘서트, 마치 설 자리 없는 어머니의 음악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이 막힌다.
자리는 특등석 그것도 무대 정 중앙 두 번째 줄이었다. 유가족 다음이란 소린데 그는 자신이 이 자리를 받을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해보았지만 그럴만한 짓은 하나 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고인의 마지막 유품이라 할 수 있는 손 악보를 제 품에 숨기고 있다면 모를까. 그는 쓴 웃음을 뱉으며 조명이 켜지기 직전인 무대를 쳐다보았다.
새카맣다. 이 곳은 어머니가 사랑하던 무대였다. 이 곳에 오케스트라로라도 오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던 그 무대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서 있고 싶어했던 무대를 오늘은 죽은 사람의 첼로와 어디서 굴러 들어온 지 모를 나무 의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죽은 차미향이라는 여자에 대한 감정이 미묘하게 뒤틀려져 있었다.
천천히 노오란 조명 불이 하나 둘 씩 켜진다. 뒤에서부터 앞으로 무대까지 천천히 느릿하게 켜져 왔지만 그 곳에 모인 이들 중 아무도 그 속도를 탓하는 이 없었다. 그렇게 촛불 같이 흔들리는 벽 조명등이 켜진 뒤, 무대 위는 하늘이 부서지는 듯 차미향이 연주했던 첼로 곡이 구슬프게 울리며 금빛 커다란 빛무리가 쏟아져 내려왔다.
그 아래에 있는 것은 그녀의 첼로와 금방이라도 부서질것만 같은 나무의자가 전부였지만 그것이 빛 무리 안에 가둬지자 온 홀이 숙연함에 휩싸였다. 침묵의 바늘이 모두의 입술을 찌르고 도망가버린 듯 했다. 점점 음악소리가 커진다. 빛이 더욱 밝아지고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한 여자의 흐느낌이 발화점이 되었다. 음악 소리가 커짐과 동시에 하나 둘씩 입술에 박혀있던 침묵의 바늘이 뽑혀나갔다. 때마침 위에서 그녀의 마지막 공연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첼로 위에 쏘아 보낸다. 그러자 몇 초 전보다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배로 늘었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를 보고 위를 보고 앞을 보았다. 다들 뭐에 취하기라도 한 듯이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거나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거나, 혹은 소리까지 내며 엉엉 울고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위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그렇지 않아도 큰데 이젠 코 훌쩍이는 소리가 더 크게 되어버렸다.
남자는 황당함에 입도 다물지 못했다. 유족들이야 이해한다. 그들이 무대 앞으로 달려나간다 해도 백 번이고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남들이 분위기 잡아주는 대로, 그저 누군가가 죽었으니 슬프다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울고 있는 것인가. 자신들이 상술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면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있다. 그는 울음대신 웃음을 터트렸다.
개판이구나. 개판.
그 아수라장에 흰 옷을 입은 누군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내를 알아본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흰 천 쪼가리에 낙인과 같은 푸른 줄무늬가 그어져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내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단 하나였다.
‘한상훈!!!!!!!!’
분명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질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의 입술은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첼로를 곱게 쓰다듬고 있는 한상훈의 모습에 기가 질려 얼어붙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자리에 앉아 첼로를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한상훈의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유연한 손목이 활을 현에 그으며 바디에 귀를 가져다 댄다. 홀에 울리는 단조로운, 하지만 기계음 하나 섞이지 않은 진짜 첼로 음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무대 위로 꽂혔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첼로를 제 온 몸으로 감싼 상훈은 미간까지 살짝 찌푸리며 완전히 나간 첼로의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위에서 조명을 맡고 있는 팀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는지 모든 조명의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덕분에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혼란은 더욱 커졌다. 십 분의 일 정도 되는 사람만이 무대 위에 올라온 이를 힐끔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시야를 가리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 다수일테다.
‘대체 뭘 어쩌려는 거냐….’
현악기라는 것이 줄을 연주한다는 공통점으로 이어져있고 하나를 완벽하게 할 줄 안다면 다른 것도 웬만큼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바이올린을 하던 사람, 그것도 십 년 전에 하던 이가 첼로를 잡는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스피커에서 틀어져 나오는 CD음악보다 더 깔끔하게 무대에서 튜닝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튜닝 시간이 끝난 뒤 그 어둠 속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도리어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기계적인 결함이 있어 잠시간 불빛이 없는 것뿐이라 생각한 것 일게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간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는 단 한 순간도 무대에서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무대 위에서 한 줄기 음이 길게 뽑아져 나왔다.
단 몇 개의 음만으로 온 홀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그 비현실적인 일에 그가 헛 숨을 내뱉으려 할 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명팀이 천천히, 가장 처음 등을 켜 올렸던 것처럼 어두운 빛 한 덩이를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내려 보냈다. 한상훈의 백의가 그 빛을 곧장 반사시켜 뒤편에 앉아있는 이들은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의 연주는 지금 막 시작되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No.2 D minor, 그 곡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팜플렛의 가장 위, 첫번째 곡명이었으니까.
-4-
현이 그어질 때마다 첼로 특유의 찾은 음이 온 홀을 돌아 다시 상훈의 팔에 잡혀있는 활로 되돌아왔다. 그건 마치 객석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을 옭아매는 마법과도 같았다. 보이지 않는 실이 온 몸을 옭아매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든다. 눈동자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프렐류드가 끝날 때까지 남자는 옆 사람의 숨소리 하나 들을 수가 없었다. 온 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상훈이 켜고 있는 첼로 소리뿐이었다.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악보조차 보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첼로 바디에 귀를 가져다 대다시피 한 그 모습은 어딘가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웅크리고 있는 그의 등 뒤에서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상훈의 백의가 점점 더 밝아지고 곡의 절정이라는 사라반드가 시작되었다. 첼로가 떨릴 때마다 상훈의 손가락이 더욱 거칠게 핑거보드 위에서 꺾였다. 첼로가 노래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연주하는 이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까지 객석을 몰아붙여간다.
지그로 곡을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박수도 바라지 않았다는 듯 곧장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쟈크린의 눈물’이라 불리 우는 곡은 천재 여 첼리스트 쟈클린 뒤 프레를 기리기 위해 지은 곡이라고 하는데 그 끔찍할 정도로 애절한 곡이 끝나고 그 뒤로 장장 1시간 동안 이어진 모든 곡들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눈 한번 감지 못하고 붙박이처럼 앉아있던 이들은 상훈의 팔이 활을 바닥으로 늘어뜨리자 그제야 다들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곳곳에서 숨 소리가 들리고 멀뚱하니 지금까지 자신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던 이가 누구였는지 확인하려 무대 위로 시선을 올린다. 그 곳엔 활을 추욱 늘어뜨리고 죽은 듯이 첼로 몸을 기대고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 갑자기 가장 첫 줄에 앉아있던 차미향의 어머니가 일어나 오열하며 무대로 달려갔다. 차마 무대 위로 올라가진 못하고 상훈의 발끝 만이라도 닿게 손을 애처롭게 뻗었다. 미향아, 미향아, 미향아. 계속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애통했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여자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상훈은 죽은 시체마냥 첼로에 얼굴을 박고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땅바닥에 닿은 활 끝, 그 것을 발견한 어머니는 더더욱 애호했다. 미향의 습관과 똑같았던 것이다. 모든 연주가 마치고 나면 그녀는 항상 활 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때문에 레슨 하는 선생님들에게 하루에도 수 십번 혼이 났지만 단 하나 그것만큼 고치지 못했었다. 왜 그러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어린 미향은 혼이 나 울다 베시시 웃으며 말했었다.
‘그래야 다 끝난 것 같아요.’
다 끝났다. 그녀의 첼로가 들려줄 수 있는 모든 곳이 끝나버린 것이다. 계속해서 미향의 이름을 부르짖는 어머니를 두 아들이 나와 모셔갔다. 무대 중앙으로 쏟아지던 조명이 서서히 약해진다. 이제 모든 공연이 끝났다고 알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신 들어올려지지 않을 것 같던 활이 올려졌다. 상훈의 고개가 들린다. 방금 전까지의 광기는 사라지고 단단하게 굳어있던 입가엔 여유가 맴돌았다. 당당하게 치켜 들려진 상훈의 시선은 곧장 주저함 하나 없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은 마치 그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잘 들어.’
내가 연주하는 이 음을, 나의 목소리를. 그리고 첫 음이 시원스럽게 그어진다. 지금까지 연주해온 모든 곡들과는 차원이 다른 곡이었다. 시원스럽게 뻗어진 첫 음에 이어지는 것은 산 속에서 쪼르르 쪼르르 흘러내려오는 듯 한 시냇물이었다. 그 음이 바위 절벽에서 떨어져 꽃 잎 위로 도글도글 굴러가고 그 꽃잎의 살랑거림에 그네를 탄다. 그 누구도 첼로로 이런 경쾌하고, 동시에 잔잔한 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훈의 손목은 유연하게 물 흐르듯 쉬이 그 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의 입가가 천천히 조금씩 올라가고 머리가 흥겹게 흔들린다. 첼로가 들썩이고 바닥 또한 들썩이는 것 같다.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즐거워 보인다. 그 어느 곡을 연주할 때보다 즐거워 보여 감탄사를 흘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 평화로움에 취해갈 때 다시 한번 처음의 웅장한 음이 울렸다. 그러나 이번엔 한번이 아니었다. 정확히 세 번, 활이 움직였고 열 두개의 음이 울렸다. 그러더니 이번엔 처음과 정확하게 똑 같은 음을 전부 손가락을 떼지 않고 박자만 바꾸어 연주해간다. 분명 전과 똑 같은 음, 순서이건만 연주 기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방금 전과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처량한 울음소리가 되었다.
객석에 앉아있는 그는 자신을 쳐다보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려버릴 것만 같아 보이는 상훈의 눈에 저도 가슴이 꽉꽉 메여왔다. 그가 연주하면 연주 할수록 자신의 가슴팍에 꽂혀져 있는 너덜너덜한 손 악보가 그에 공명에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세 번째다. 이번엔 모든 음이 콜 레뇨(활대로 줄을 두들기며)로 연주되었다. 다시 한번 신나게 악기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성환의 손가락 끝에서 첼로의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줄이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하지만 성환은 아무일 없다는 듯 A현 대신 그 아래 현인 D현에서 포지션을 올려 연주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세 개의 현이 온 힘을 다해 다시 한번 울어주었고 그것을 끝으로 D현마저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곡을 끝낸 상훈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활 끝을 바닥으로 늘어뜨렸다. 그와 상훈의 눈이 마주쳤다. 상훈은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들었지?’
연주가 끝났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없었다. 다만 그 백색의 정신병원 옷을 입은 사내가 두 현이 끊어진 첼로를 들고 유유히 콘서트 홀을 나가는 동안 움직이는 사람 하나 없었을 뿐이다.
마지막 콘서트가 끝났다. 완벽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에필로그-
다음날 아침 속보가 떴다. 차미향이 사라진 그 바닷가에 흰 바탕에 푸른 줄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 시체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백사장에는 물로 우그러진 차미향의 손 악보가 그녀의 첼로에 꽂힌 채로 발견되었다.
그 뉴스를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한 사내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즈막 하게 중얼거렸다.
“너 또한 별이 되었군.”
그녀의 연주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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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의 해석??;;;;;;
짧은 단편안엔 다 표현 못해낸 것 같은데, 이 이야기는 첼리스트와 정신병자 그리고 형사?라는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아 좀 어려운 말 쓰려니까ㅠㅠ이상하네요, 이어져 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첼리스트 차미향의 갑작스런 실종과 그 옆에 있었던 정신병자 한상훈, 그리고 3자의 눈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남자. 차미향은 음악가였고 한상훈 또한 음악을 하던 녀석이었습니다. 중간에 살짝 나오지만 콰르텟을 함께 하던 누나가 죽은 이후로 완전히 돌아버린 케이스고... 형사 남자 같은 경우는 어머님이 음악가였는데 그로 인해서 피해의식?같은 것이 있는 사내입니다. 이해 가시려나 모르겠네..ㅠㅠ
중간에 사람은 죽은이를 기억한다. 살았으되 죽은 이는 기억해주지 않는다, 라는 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뭔가 있어보이지만 아무것도 없고, 뭔가 없어보이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내용의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잉...ㅋㅋ
첫댓글 잘 읽고 가요^^ "뭔가 있어보이지만 아무것도 없고, 뭔가 없어보이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내용의 글" 을 좋아하는 1人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