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랑 봐도 언제나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이었는데…. 왠지 고향을 잃은 듯한 허전함이 드는군요."('가족오락관' 시청자 게시판 '손지수'씨),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한 진행자를 믿고 끝까지 가보는 프로그램이 존재했으면 합니다. 왕종근 아나운서를 중도 하차시키는 건, 시청자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TV쇼 진품명품' 시청자 게시판 '전병태'씨)
허참, 왕종근, 정은아 등 장수 MC들이 잇따라 프로그램을 떠나면서 아쉬워하는 시청자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방송사들은 "경영 악화에 따른 비용절감 차원"이라며 고참 MC들을 하차시키고 있지만, 훨씬 더 큰돈을 받는 연예인 보조MC, 패널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겨둔 채 이들에게만 구조조정의 칼끝을 들이대는 건 '전시효과'를 노린 얄팍한 계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광고 수익에만 혈안이 된 방송사가 중장년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수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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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용절감’이란 명목 아래 하차한 전문 MC들. 왼쪽부터 허참, 정은아, 왕종근.
◆70만원과 1000만원의 차이
'TV쇼 진품명품'을 진행했던 왕종근의 회당 출연료는 70만원선. 왕종근은 "회당 100만원 조금 넘게 받다가 작년 가을 개편 이후 30%가 줄어서 70만원쯤 받게 됐다"며 "방송사가 예산절감 차원에서 프리랜서 진행자를 교체한다고 하면 저하고는 별로 맞지 않는 얘기 같다"고 말했다. '가족오락관' 허참과 '좋은 아침' 정은아가 받는 회당 출연료는 각각 170만원과 200만원 안팎.
웬만한 연예인 보조 MC들이 500만원 안팎의 출연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액수도 아니다. 오락 프로 성패를 좌우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강호동, 유재석 등 1급 연예인 MC들의 회당 출연료는 1000만원선이다. '좋은 아침'에서도 탤런트 조형기는 정은아와 비슷한 액수의 출연료를 받지만 프로그램에 남게 됐다. 한 지상파 방송사 예능 PD는 "오락 프로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연예인이라도 수백만원씩 출연료를 받는데 이런 전문 진행자들을 출연료 때문에 교체한다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 권순우 편성국장은 "외부 진행자 대신 내부 아나운서를 쓰면 예산이 훨씬 절감된다"며 "그리고 방송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패한 '아나테이너'의 그늘
2007~2008년 우리나라 방송가에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 바람이 거셌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지피지기', '일요일이 좋다―기적의 승부사' 등 아나운서와 연예인이 동등하게 경쟁하는 오락 프로가 잇따라 탄생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바른 말, 정갈한 자태를 유지하던 아나운서들이 의외의 모습으로 망가지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 '파격'의 효력이 다했던 셈이다. 게다가 연예인과 승부를 겨룰 만한 유머 감각을 지닌 아나운서가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 방송사 아나운서들은 다시 교양 프로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전문 방송인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거라는 얘기다. 왕종근은 "교양 프로 진행을 맡고 있는 프리랜서 MC들은 대부분 위험해질 것 같다"며 "계속 버티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통을 외면하는 방송사들
가장 안타까운 건, 스스로가 쌓아 올린 역사에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 방송사들이다.
허참은 "'가족오락관' 방청을 신청한 아줌마들 모임이 엄청 많은데 이렇게 떠나야 하는 게 가슴 아프다"며 "방송사가 역사와 전통에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같은 프로그램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송종길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는 "방송사들이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왔던 전문 방송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며 "경비 절감도 중요하지만 좀 더 길고 넓은 시각으로 품격 있는 방송을 지켜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