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아이들과 보성을 돌았지만 일요일까지 산에 가지 못하니
좀이 쑤신다.
바보가 간식을 챙겨놓고 출근한다.
아들들에게 인사에 관한 편지를 쓰다가 시들해져 일어난다.
범재등에 올라가봐야하는데 맘만 먹고 10시에 집을 나선다.
천자암은 승용차가 오르기엔 부담스러워 송광사로 간다.
배낭을 챙겨 무료인 매표소쪽으로 가니 11시 10분 전이다.
청량각이 선 극락교를 숲과 물 사이에서 본다.
절로 오르는 길의 공사판 소리는 그나마 조용해졌다.
불일암이 보고 싶지만 선암사를 다녀오려면 시간 여유가 없다.
절로 들어가며 담장에 핀 일월비비추가 보인다.
종무소 앞의 배롱나무엔 빨간 연등이 걸려 있다.
마다에 가득 찼던 연등이 보이지 않으니 더 보기 좋다.
커다란 구시 뒤로 보이는 전각 지붕을 보다가 범종루의 앞뒤를 본다.
월간 송광사 6월호를 한권 들고 우화루를 건넌더.
고향수와 척주당 세월각을 지나 등산로 숲으로 들어선다.
힘이 없다.
계곡엔 수량이 준 물이 흐르고 푸르른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상큼한 숲에
나의 다리는 힘이 없다.
토다리 쯤에 가면 12시가 될 것이다. 거기서 막걸리 한잔 하고 오르자.
힘을 내니 힘이 나는지 땀이 배며 걸음이 골라진다.
토다리를 지나 바위로 내려가려다 더 걷는다.
계곡의 물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돌다리를 건너도 물이 없다.
지친 몸을 끌고 20분 쯤 더 올랐을까, 물소리가 들린다.
손바닥만하게 물이 고였고 바위를 지나오는 물이 소리르르 내고 있다.
기울어진 바위에 앉아 땀에 젖은 배낭을 벗는다.
막걸리 한병 사과하나 참외 하나, 그리고 유리그릇에 담긴 전 몇 조각이 점심이다.
막걸리를 마시며송광사를 읽다가 수첩에 낙서를 한다.
송광사 굴목재 오르는 길에 점심을 먹으며
청량각 우화루 지나
목우정 앞 푸른 물에 손 씻지 못하고
땀 가득한 몸이 이끼 낀 돌 위에 앉는다.
막걸리 하나에 과일 두 개
숲 속에 두니 색깔 좋은 성찬이다.
막걸리 기울이며 혼자 박기 놀이하며
물소리 듣는데,
가느다란 모기들이 재줄 부리며 내 주위를 맴돈다.
내 성찬을 방해하는 놈들 잡으려
손휘두려다 생각하니
아서라, 내가 침입자지 너희들 불러들인 놈이 나지
모기야 내 피 조금 먹되 긁지 않도록만 해 다오.
절반을 남겨 둔다.
키가 큰 고욤나무를 올려다보는데 목이 아프다.
사람 손길 흔적 없는 송광대피소를 지나 줄 매어진 계단을 오르니 송광굴목재다.
보리밥집 아랫집은 문을 열었겠지만 윗집이 나의 단골이다.
그 집은 월 화 영업을 쉰다.
바로 큰굴목재로 오른다.
젊은 부부가 아랫집 쪽에서 올라온다.
난 힘을 내어 그들을 떨구며 잘난 척 올라간다.
쉬지 않고 바로 내려간다.
호랑이턱걸이바위를 지나 다리를 아래로 지나는데 물 위에
하얀 쪽동백인지 노각꽃인지(둘이 같은가?)가 떨어져 있다.
잠깐 내려가니 편백숲이다.
들르지 못한 암자도 두고 가게 앞에서 승선교 강선루도 두고 바로 절로 들어간다.
선암사 두 탑의 앞마당도 연등이 없으니 좋다.
대웅전 안을 무식하게 사진 찍는다.
팔상전의 수많은 부처가 그려진 불화를 보고 중수비로 올라간다.
아무도 없어 의자에서 남은 점심을 편다.
탑 앞에서 막걸리 마시는데 죄송하다.
한 사나이가 웃으며 운수암으로 걸어간다.
선암사에 자주 와도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 아직도 모른다.
선암매보고 원통전을 지나 송태회 글씨의 장경각과 구철우 글씨의 삼성각을 멀리서 본다.
대각암엔 들어가지 않고 조금 더 걷자 작은 굴목재와 비로암 오르는 길이다.
비로암을 잡고 걷는다.
작은 능선을 넘는 완만한 길이더니 금방 가파라 진다.
힘이 없다. 나의 몸은 탄수화물에 적응되어 있다
뜨거운 날 햇볕은 나뭇잎 위에서 빛나지만 내 몸은 땀이 흘러 내린다.
코로나19로 들어오지 말라는 햔수막이 다 낡아 늘어진 가느다란 샘물가에 닿는다.
물을 마시고 프랑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간다.
가파른 산록에 몇 개의 건물이 보인다.
심우당 쪽에 오는데 갑자기 '여보세요?' 말소리가 나온다.
깜짝 놀라며 예/ 하는데 또 누구세요 한다.'멀리서 CCTV를 보고 있는 ㅡ모양이다.
등산객입니다. 하고 얼른 지난다.
이 암자에도 지킬 것이 있나보다. 있겠지.
돌계단을 내려와 작은 굴목재까지 가는 길도 힘들다.
작은굴목재에서 물을 마시고 갈길을 가늠해 본다.
보리밥집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오르긴 해도 연산 사거리가 낫겠다.
그래도 6시까지 차에 도착하기 늦겠다.
장박골 오르는 삼거리에서 연산사거리가는 길은 완만하다가
막판엔 철기둥에 줄이 걸려 있다.
송광사 내려가는 길은 길다. 다행이 다리는 버텨준다.
우화루를 지나 차에 오니 6시가 넘었다.
퇴근하고 있느ㅡㄴ 바봉게 통화하며 배고프다고 엄살을 떤다.
냉장고에 있는 햄버거 가져가지 않았다고 꾸중을 한다.
내 눈은 똥눈이다.
부지런히 집에 오니 그가 삼겹살을 굽고 있다.
얼른 씻고 속이 편치 않은데 소주와 맥주를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