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천 하류로
내가 한동안 살고 있는 창원은 계획도시로 출범해 세월이 흘렀다. 곳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조경수를 비롯해 수목이 우거졌다. 가로수들도 수령이 오래되어 미관으로나 소음이나 매연을 막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창원에 비해 거제 고현이나 외곽에는 공원이 적고 숲이 빈약해 처음엔 낯설고 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도시마다 고유의 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시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다. 일과를 끝내니 해가 짧아져 산행은 무리라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버스 타고 갯가 어디쯤 이동해도 좋으나 그곳까지 가는 사이 날이 어두워와 산책 코스가 제한적이다. 와실에서 가까운 연사 들녘 말고 달리 선택지가 없다. 지난 주중엔 연초다리를 건너 효촌마을로 둘러왔는데 이젠 다리를 건너 연초천 하류 고현만까지 내려갔다가 되돌아와야겠다.
연사삼거리에서 추수를 끝낸 들길을 지났다. 해가 저무는 때라 계룡산은 실루엣으로 비쳤다. 수월과 중곡의 고층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중곡지구 아파트 주민들이 즐겨 산책을 나오는 데가 연초천 하류 산책로다. 자연스런 친수 공간이 확보되고 바닥은 우레탄으로 깔아 먼지가 일지 않아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질 않아 좋았다. 낮보다 아침과 저녁에 산책 나온 사람이 많았다.
마침 연초천 천변으로 산책을 나서고 보니 올가을 들어 미세먼지가 처음 낀 날이었다. 계룡산 기슭과 고현 시가지 아파트단지들은 희뿌옇게 보였다. 그런 속에도 천변에는 산책을 나온 이들이 더러 보였다. 물때가 썰물이면서 조금이 가까워서인지 하천은 바닥을 드러냈다가 다시 채워지고 있는 즈음이었다. 쇠백로와 왜가리는 저녁먹이를 찾아 긴 목을 빼고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었다.
며칠 전 ‘연초천 하류’라는 시를 한 수 남겼다 “진달래꽃 아름답다던 / 장목 대금산 자락 / 가는 물줄기로 시작해 / 다공 죽토 지나오며 / 세를 불리고 키운 냇물 / 연사들녘 휘감고 돌아 / 더 머뭇거리지 못해 / 고현만으로 안긴다 / 썰물에 바닥 드러내고 / 밀물에 수위 높아져 / 기수역은 물때마다 / 수면이 달라지는 풍경 / 물이 물을 마중 나가 / 서로 끌어안고 살을 섞는 / 저기, 연초천 하류” 연초천 산책로를 따라 걸어 고현과 와실을 오가면서 느낀 바다.
하천 하류는 오래 전 매립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서 직강 공사가 되다 시피였다. 아파트와 인접한 천변은 데크를 따라 고현만에 이르도록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삼성중공업조선소가 들어선 고현만 역시 상당 면적 매립해 놓았다. 중곡 아파트단지 배수장에서 가던 길을 되돌아 다시 연초교를 향해 올랐다. 하천은 바닥을 드러내며 빠졌던 물이 내가 걷는 발걸음 따라 채워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니 산책로 가로등과 수월과 중곡의 아파트에선 창문에 불빛 들어왔다. 하천 건너편 소오비에서 연사로 가는 차도에는 전조등을 켠 차량이 꼬리를 물고 달렸다. 연사에서 임전으로 건너온 연초교를 다시 건너 연초 들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내가 아침마다 걸어서 학교로 향하던 그 산책로였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천변엔 모양이 특이한 보안등이 줄지어 켜졌다.
어둠 속에도 둑길에는 산책객이 간간이 지났다. 하천 어디선가 잠들려는 오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를 내었다. 연초 면소재지에서 산책을 나온 이들도 있는 듯했다. 연사리 다세대주택에서도 불빛이 들어왔다. 산기슭에 위치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교실마다 불을 밝혀 훤했다. 산책객 전용 다리로 건설된 연효교는 야간 조명이 비추어져 사장교로 드리운 쇠줄이 뚜렷하게 보였다.
연사 와실로 바로 들지 않고 연초삼거리까지 올라갔다. 내가 가끔 둘린 농협 마트를 찾아갔다. 식자재 코너에서 양파를 고르고 두부와 어묵을 챙겼다. 아침에 끓일 찌개 재료로 삼기 위해서다. 모처럼 들린 삼거리였지만 마트 외는 볼 일이 없었다. 보도를 따라 연사리로 향했다. 두어 시간 산책에 날은 완전히 어두워 차도에만 불을 밝힌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와실로 들어 불을 켰다. 19.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