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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미래 막아버린 결정, 대체 누가 왜?
유시민 작가
국회가 곧 심의를 시작할 2024년도 예산안의 최대 관심사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문제다. 내년도 정부 지출은 올해보다 2.8% 늘었는데 연구개발 예산은 16%나 줄어든 26조 원에 그쳤다. 국회가 원안을 그대로 가결하면 33년 만에 처음으로 연구개발 예산이 전년도보다 감소한다. 지난 정부 때 5%를 넘겨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정부 총지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3.9%로 급락한다.
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은 ‘국가과학기술 바로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결성해 과학기술계를 카르텔로 매도한 정부의 사과와 연구개발 예산의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국제학술지와 외국 언론도 놀라움과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신진 연구자와 학생 연구원 대량 해고와 장기 사업 중단 등 예산 삭감이 과학 기술 연구 현장에 몰고 올 충격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앞으로 과학자들이 할 것이다. ‘문과 남자’인 나는 이 문제를 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평해 보려고 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3.8.22 연합뉴스
경제성장은 노동, 자본, 기술이 결정한다
한국경제는 이미 오래 전에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누가 잘못해서 그리 된 게 아니다. 고도성장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경제이론으로도 그렇고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서유럽 선진국과 미국·일본도 산업화 초기에는 성장률이 높았다가 고도 산업사회에 진입한 뒤에는 성장률이 하락했다. 일당독재를 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베트남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라고 예외겠는가.
어떤 요인이 국민경제의 성장률을 결정하는가? 단기적으로는 화폐유통량, 정부지출과 순수출을 포함한 사회의 총수요, 경기 전망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길게 보면 노동투입량, 자본투입량, 그리고 생산기술 수준 세 가지다.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보자.
노동투입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를 나타낸다.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하고 평균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성장률은 높아진다. 박정희·전두환의 개발독재 시대 우리나라가 그러했다. 그러나 산업화 덕분에 국민소득이 올라가자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졌고 출산율이 빠르게 하락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사용자가 노동법을 무시할 수 없어져 평균 노동시간이 점차 줄었다. 노동투입량 증가속도가 현저히 둔화한 것이다. 잠재성장률(물가상승 없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경제성장률)은 지속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투입량의 변화는 저축률(투자율)이 좌우한다. 저축률은 한 해 동안 사회가 생산한 것 중에서 소비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기업이 사내 유보한 영업이익과 민간가계가 소득 가운데 소비로 지출하지 않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정부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강제저축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일익을 담당한다. 투자는 기업의 몫이지만 정부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저축률이 언제나 투자율과 일치한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틀린 이론을 편의상 받아들이자. 국민경제가 생산한 부가가치 가운데 소비하지 않은 꼭 그만큼 다음 시기에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자본의 양이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저축률이 높은 국민경제는 그렇지 않은 국민경제보다 빠르게 자본투입량을 늘려나가며 잠재성장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한국의 저축률은 예나 지금이나 30%가 넘는다. 산업화 시기에는 기업의 사내 유보가 거의 없어서 총저축은 대부분 민간가계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최근 민간가계의 저축률은 5-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저축도 투자도 대부분 기업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자본이 국경을 큰 어려움 없이 넘나드는 세계화 현상으로 인해 저축률과 자본량의 연계성이 약해졌다. 한국 기업들은 임금수준이 낮은 국가와 내수시장이 큰 선진국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다. 저축률이 여전히 높아도 잠재성장률은 하락한다.
노동, 자본, 기술 중 으뜸은 기술이다
생산기술 수준은 시간을 따라 높아지며 그 속도는 국민경제마다 다르다. 무엇이 속도의 차이를 만드는가? 연구개발 투자와 제도적 환경이다. 생산기술은 사람이 구현한다. 재능 있는 사람을 편의상 ‘영재’라고 하자. 영재가 태어날 확률은 생물학적 우연(생식세포와 수정란에서 벌어지는 유전자 재조합)이 결정하기 때문에 모든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국민경제가 생산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려면 그 사회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 재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발견해낸 새로운 과학 정보와 기술을 생산 활동에 적용하도록 북돋우는 보상체계와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외부에서 영재를 영입하거나 앞선 기술을 들여와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잘하는 국민경제는 그렇지 않은 국민경제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다. 생산기술 수준이 높으면 노동투입량과 자본투입량이 같은 경우에도 훨씬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언어로 하면, 발전한 생산기술은 ‘총요소생산성’을 높인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연구개발 예산을 계속 늘렸다. IMF 경제위기 때는 더 많이 늘렸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연구소를 설립했고 당기순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자본이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세계화 시대에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가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생산기술 향상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면 총인구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인구와 취업자 수까지 노동투입량 관련 지표가 모두 하락할 것이다.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율을 더 높인다고 해도 인구감소 효과를 상쇄하지는 못한다. 노동투입량만 보면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도래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평균 생활수준이 하락하는 건 아니다. 인구감소율이 더 크면 1인당 국민소득은 올라간다.
과학 기술에 국가가 앞장서는 이유-불확실성과 외부효과
자본투입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노동력과 달리 자본에는 사실상 국경이 없다. 저개발 국가들은 저임금으로 자본을 끌어들인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소비시장의 매력으로 자본을 불러들인다. 한국은 어느 경우도 아니다. 발전한 생산기술 말고는 자본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다. 높은 수준의 생산기술을 확보하는 것 말고는 경제성장률을 높일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정부는 생산의 주체가 아니다. 생산기술을 원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연구개발 사업에 돈을 쓰는가? 연구개발 사업의 불확실성과 외부효과 때문이다. 과학 기술은 어떤 연구가 어떤 성과를 낼지, 성과를 낼 경우 그것이 어떤 산업에 어떤 기술 향상 효과를 가져다줄지 미리 알기 어렵다. 그래서 민간에만 맡겨둘 경우 연구개발 투자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산기술을 혁신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성과를 내는 경우 그 혜택은 연구자와 해당 기업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한다. 그래서 모든 문명국의 정부는 고등교육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는다. 대학의 기초과학 분야 연구 활동과 교육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한다. 산학협동연구에 기업과 함께 돈을 대고, 가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 지적 재산권을 국유화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특허를 획득하고 기업을 세우도록 지원한다.
미래 설계에서 과학자를 통째 들어내는 예산 삭감
연구개발 예산을 과격하게 줄이면 현장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 극단적인 경우 진행 중인 연구 사업을 멈추어야 한다. 시작하려고 준비한 연구를 접어야 한다. 신규 연구인력 채용을 포기해야 한다. 기존 연구원을 해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연구사업단에서 학습과 학위 취득 과정을 병행하는 대학원생과 학부생도 내보내야 한다. 대학과 국가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민간 연구기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수학과 과학에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과학이나 공학 분야가 아닌 의과대학에 몰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의대 졸업생은 대부분 의학 연구가 아니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된다. 사회적 가치가 충분한 일이지만 생산기술과 국민경제를 발전시키는 외부효과는 매우 적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되려는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살지 선택할 권리는 각자에게 있다. 그러나 어쨌든 소위 ‘의대 집중’이 과학기술과 국민경제의 발전 가능성을 크게 제약하는 사회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과격하게 삭감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계를 홀대하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생산기술은 사람이 체현한다. 정부안 그대로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한다면 과학기술 연구 인력은 줄어들고 연구 성과는 빈약해질 것이다. 그로 인해 생산기술의 발전 속도가 둔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경제 효과는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중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퇴임하고도 한참 더 지난 뒤에야 비로소 현실로 드러난다.
간첩이 만든 예산안?
정부는 어느 사업 예산을 얼마나 삭감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전례가 있으면 누가 말해주면 고맙겠다. 과학기술계를 ‘사익 카르텔’이라고 비난한 대통령의 발언 말고는 지금까지 어떤 사유도 알려진 바 없다. 연구과제 선정이 불합리하게 이루어지거나 연구개발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인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불성실한 연구자가 예산을 횡령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계 전체를 카르텔이라 비난하면서 연구개발 예산을 난도질해서야 되겠는가.
과학기술계는 현장 연구자들을 통해 예산 삭감 세부내역 관련 정보를 모으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위시한 여러 부처의 예산 담당 실무자들은 어느 사업 예산이 얼마나 어떤 경위로 잘려나갔는지 알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업 예산이 절반 넘게, 심지어는 90퍼센트 깎인 사례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예산을 절반 넘게 깎으면 사업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예산 81.6퍼센트를 삭감한 보건복지부의 백신개발 관련 사업을 비롯해 인공지능반도체, 양자컴퓨팅, 디지털콘텐츠산업 관련 예산이 집중 타격을 받은 듯하다.
흥미로운 일이다. 바이오‧인공지능‧양자컴퓨터‧디지털콘텐츠 산업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영역이다. 하필이면 왜 그런 분야를 집중적인 예산 삭감의 표적으로 설정했을까? 누가 이런 짓을 할 동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한국경제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 말고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누가 그런 것을 바라겠는가. 외국 간첩이라면 모를까.
간첩이 아니라면 천공이?
야당이 대정부 질문과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를 통해 이런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경위를 밝혀 주면 좋겠다. 장관과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했는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는지 확인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지시해서 그랬다면 어느 참모가 건의했는지, 대통령이 혼자 판단해 참모들한테 지시했다면 누가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그래야 천공이 시켰다는 등의 믿기 어려운 ‘유언비어’를 잠재울 것 아닌가. 지금 항간에는 그런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
근거가 아주 없는 소문은 아니다. 천공은 올해 초 업로드 한 유튜브 <천공정법> 12709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의 앞뒤가 분명하지 않아서 발언 취지를 그대로 두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정리했다. “우리나라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 과학은 연구하지 않고 보기만 하면 된다. 서양에서 열심히 연구해서 올려놓은 보고서를 보면 벌써 과학자다.” 가짜뉴스라고 할지 몰라서 덧붙인다. 정확하게 4분 5초부터 4분 20초까지다. 영상을 보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알고자 이처럼 헛소리 가득한 영상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공산전체주의 국가도 아닌데 어째서 용산 기자실에는 국민 대신 물어보는 기자 한 사람이 없는가? 있는데도 내가 몰라서 한 말이라면 미리 용서를 청한다. 기사로 확인할 수 없기에 하는 한탄이다.
출처 : 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수수께끼 < 유시민 관찰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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