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16-24)
오늘은 어떻게 설명해야 요한복음을 쉽게 이해시켜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성령께서 잘 정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을 믿고 글을 전개합니다.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도 다시 한번 새롭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요한복음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록이 됩니다.
하나는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처음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삶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와 다른 부분들이 많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서에서 ‘진리’와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다른 복음서보다 많이 사용합니다.
‘진리’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1번, 마가복음에서 1번, 누가복음에서 1번 사용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19번 사용됩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12번, 마가복음에서 7번, 누가복음에서 13번 사용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39번 사용됩니다.
심지어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다가 그 주님의 말씀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더 소개합니다.
주의 복음의 말씀을 말하는 ‘계명’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 8번, 마가복음에 6번, 누가복음에 3번, 요한복음에 6번 나오는데, 요한일,이,삼서에서는 13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요한이 강조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은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요한복음을 쓰게 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기독교가 신흥종교가 아님을 이미 밝혀진 상태이기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처럼 구약의 말씀과 전혀 연결시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바로 영지주의 사상과 싸우기 위하여 말씀을 선포합니다.
영지주의는 헬레니즘 문화에서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사상이 조화되어 나타난 이원론적 사상운동입니다.
오래된 유대 신비주의교(전영지주의) 카발라와 연관이 있으며, 이 사상운동은 그리스도교와 혼합되어 영지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로 나타나게 됩니다.
영지주의의 골자는 신의 피조물인 ‘영혼’이 악마의 창조물인 ‘물질’(육체)에 갇혀 고통 받고 있으므로, 구원에 대한 영적인 ‘앎’(gnosis 그노시스 = '지식'을 뜻하는 고전 그리스어)을 통해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도 물질에 속한 신과 영에 속한 신으로 구별하였고, 물질에 관여한 신은 하급신이고 영에 속한 신을 최고의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는 최고의 신을 ‘로고스’라고 지칭했으며, 빛에 속한 신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교회 속으로 파고 들어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급 신이고, 그리고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하급 신 중에 최하급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러한 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참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내 육체의 삶을 부정하고 신비한 영적인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가르침은 교회 속에서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을 부정하고, 영적인 신비의 신앙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흘러가게 만들었고, 삶으로 주의 복음을 실천하기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도 생활을 힘쓰게 만들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영지주의 자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당시의 영지주의는 기독교 교리와 접목한 종교로 교회를 파괴하는 무서운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쉽게 포섭하기 위하여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은 죄고, 열심히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선’이라고 가르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이 요구하는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은 힘들었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도생활은 쉬웠기 때문에 그들의 교리에 쉽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 신앙은 아직도 교회 속에 남아 있어서 성도들의 신앙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끝내는 영지주의는 교회 속으로 들어와서 ‘인간은 연약하기에 주의 복음의 말씀을 다 지킬 수 없고,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며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부족하지만 예수의 구원을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된다’는 말은 초대교회에서 영지주의 자들의 신앙의 암호와 같은 구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끝내 교회 안에서는 복음을 주장하는 목회자 보다 영지주의 식 신앙을 강조하는 목회자를 선호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도 이 거짓 복음을 추구하는 자에 대한 글을 남깁니다.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말씀이 요한삼서입니다.
가이오라는 사람은 복음의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를 축복합니다. 요한은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네 영혼이 잘됨 같다’라고 표현해 줍니다.
반면에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이단의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교회로 오는 것을 방해하며 막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복음 사역자들이 오는 것을 환영한 성도들을 탄압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를 쓰게 되었고, 그 서신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요삼 1:9-10)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사도 요한은 교회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교회를 파괴하는 영지주의 식 신앙을 막기 위해 요한복음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로고스)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주신 말씀이 진리, 구원 받은 사람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이치를 가르치는 말씀이라며, 그것을 지키며 살때에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래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로고스’(말씀)로 세상에 오셔서 진리의 말씀을 주셨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를 가르치는 말씀을 말합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에 ‘말씀으로 오셨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여야 진리라는 복음을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은 영적 신비의 신앙을 추구하는 것보다 주의 복음의 말씀인 진리, 마땅히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그 복음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참 신앙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비의 신앙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이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에베소에 있습니다.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교회가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서 어떤 삶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반응을 보면 주님께서 어떤 의미로 말씀을 주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 화목 하라, 긍휼히 여기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을 주셨더니,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한 삶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행 2:43-47)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5:1-5)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의 복음의 말씀을 전해 듣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자기의 전 재산을 사도들 앞에 내어놓았고, 사도들은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돌아보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이것을 실천해야 했음을 요한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랑을 계속해서 강조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주의 계명을 사랑으로 요약하기 까지 합니다.
끝내는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3:16-24)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이것이 요한이 에베소교회에 회복하고 싶었던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계시록에 에베소교회에 찾으라고 말한 처음사랑이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교회에 이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을 계속하여 쓰게 됩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도 소아시아교회 중에 에베소교회를 가장 먼저 언급하며 교훈합니다.
이제 글을 끝 맺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초대교회 처럼 가난 속에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돌아보는 삶과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나타난 반응이 한국 교회에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