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뜨거운 햇볕이 기승이더니 오전에 구름이 낮다.
시야가 맑을 듯해 조망좋은 산을 생각한다.
할 일이 많은데 규칙적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산만 생각한다. 병이다.
점심을 차려먹고 차를 끌고 나가 선옥이 집앞에 세운다.
텃밭으로 걸어가 풀을 몇 개 찍어내고
바닥에 열린 작은 오이 하날 딴다.
2시에 다시 내려와 팔영산으로 간다.
그리 멀지 않은데도 졸음이 쏟아져 절 옆 나무 아래 세우고 잠을 잠깐 잔다.
문을 열고 나오니 비가 떨어짖고 바람이 휘감아 춥다.
정상 바위에 서서 바람을 맞을 자신이 없다.
포기하고 능가사로 들어가기 전에 부도를 본다.
염재 송선생의 글씨가 걸려있는 첨성각을 지나 하얀 석탑 주변의 차밭 미로를
천천히 걸어본다.
만트라 같은데 난 이해할 수 없다.
응진당을 보고 사적비를 한바퀴 돈다.
거북의 등 위에 태극문양을 새긴 건 불가와 유가 도가의 만남인 걸까?
진리는 모두 통하는 거겠지.
사적비 옆에 글씨가 흐려잔 만경암 중수기념비도 서 있다.
대웅전 큰 현판글씨도 염재의 글씨다.
근대 화순 출생으로 고창의 학교에서 일하셨던 분이 이곳까지 인연이 있었나 보다.
송광사에도 이 분의 글과 흔적이 많았다.
천왕문 앞엔 능엄루 누각을 올려가고 있다.
대웅전 앞의 수국을 가까이서 찍어본다.
이제 수국의 계절이다. 나 혼자서 꽃을 찾아다니기엔 바보에게 미안한 일이다.
윤제림이나 하담정, 고흥읍 국화정원의 수국도 볼만할 것이다.
해남에도 수국밭이 생겼다 하는데 가 보지 못했다.
수국이 지고 연꽃이 피면 이제 완연한 여름일 것이다.
곧 배롱나무도 꽃을 올릴 것이다.
향도 모르며 꽃을 보러다니는 것도 나의 일이라면 일이다.
천천히걸으니 비가 잦아들고 바람도 거칠지 않다.
3시 반이 다 되어 간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산에 오르자.
탑재로 올라 구름 속일지라도, 조금 추울지라도 칠성봉 두류봉만 보고 오자.
야영장엔 텐트 몇개가 서 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데크 위에 플라이를 치고 있다.
팔영산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선다.
물이 없다.
점심에 탄수화물을 섭취하였으나 내 다리엔 힘이 없다.
돌길을 종아리에 힘주며 오르자 이제 숨이 차 온다.
탑재까지 40분이 걸린다.
바로 두류봉 삼거리로 오른다.
어느 봉우리부터 갈까, 두류봉이 내 앉기는 좋은데 혹 1봉까지 갈 힘이 생길지도 모르니
칠성봉에서 두류봉으로 가기로 한다.
통천문을 지나 칠성봉에 서자 다행이 먹탕은 아니다.
해창만 뒤로 마복산이 흐리지만 나로도 쪽의 섬들이 보인다.
여수 쪽 섬들 사이에 하얀 교주들도 보인다.
바위 사이에 몸을 낮추고 먹다 만 햄버거를 크게 벌려 씹어 먹는다. 맛있다.
술이 없어도 된다.
참외 반쪽이 있으나 깍기가 싫다.
사진을 덜 찍자 맘 먹지만 비구름 찬 산야와 여자만쪽 섬을 찍어댄다.
두류봉으로 건너가 선채로 해창만으르 보고 바로 내려간다.
힘은 들지만 올라가는 것이 재미있다.
철난간의 거친 암봉 두류봉을 손잡지 않고 내려가 보고 싶지만 비가 왔으니 참는다.
유영봉은 오르지 않고 부지런히 내려간다.
6시가 다 되어 가 바보에게 안주 사갈까 전화하니 그러란다.
흔들바위르르 지나 내려오며 과역 대한수산에 두번 전화하여도 받지 않는다.
차로 돌아오니 6시가 되지 않았다.
두시간 반 만에 팔영산의 반을 걸었다. 얼마전 깃대봉에서 칠성봉까지 걸었으니 두번에 걸쳐 완주한 셈이다.
과역 자연수산에 들러 아나고회 3만원 어치를 달랬더니 없댄다.
대한수산에 가니 아나고는 없고 하모가 있댄다.
난 하나밖에 모른다.
고흥문학을 읽으며 잠깐 기다린다.
범재등에 가 아직 맛이 덜 든 고추르르 한주먹 따 온다.
광식 형수나 생현댁 며느리 보동댁은 비옷을 입고 깨를 옮기는 중이다.
3만원 짜리라 넷이 먹기엔 부족한 듯하지만 망설이다가 선아네를 불러 같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