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님의 말씀을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에 있어 교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 내용이 이치에 맞는 듯 보여도 경계해야한다는 말씀이 제 수준에서도 와닿는 바가 많습니다.
학생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계산하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한데 왜 공식대로 하라고 하는지,
이치적으로 이것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외우라고 하는지 불만을 갖곤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의 말씀이 거의 예외 없이 옳았다는 것을 알곤 했습니다.
내가 볼 수 있는 최대한의 합리성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부분적인 것에 불과해서, 전체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을 때가 많았고
반대로 불합리해 보이던 것들이 전체적으로는 합리성을 갖추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거의 주 업으로 삼아서 했었는데요.
나름 전체적인 트레이닝 체계를 갖추고 학생들한테 단계별 학습법과 그에 맞는 과제를 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체적인 맥락을 먼저 설명해주고 가르쳐도, 부분적인 불합리성에 대한 반발로 하고 싶은대로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수행에서 기법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전승의 마스터들이 정해 놓은 길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승이나 조사, 스승님들의 말씀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 상근기의 자세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방문객님께서
'한번쯤은 남이 시키는대로 그냥 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날숨에 집중하라고 하면 그냥 날숨에 집중 해야한다. 들숨이 더 편해도, 날숨에 집중해야한다.' 이런 취지로 말씀해주셨던 것 같은데요.
울림이 많았습니다.
그 뒤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우선은 시키는 대로 하고, 그 다음에 생각해보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잘 지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태도가 많은 선한 결과들을 가지고 와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체험이나 나의 합리성은 언제나 '아직 잘 모르는 나'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전승의 가르침이나 교학, 스승을 믿고 따르는 것이 수행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수행 중에 드러나는 체험과 그 내용의 합리성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 '드러나는 모든 것은 식의 대상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
- 연기의 이치를 살피려는 태도
- 의도한 바를 하고, 의도하지 않은 바를 피하는 습관
등
따라야 할 것들에 대한 예비적 학습과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할 때에는,
강렬한 체험이나 이치에 맞는 듯 보이는 현상에서 자기 확신을 얻고 그것을 허용하여 의지처로 삼는 일이 빈번할 것 같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댓글 예전에 많이 언급됐던 '교학파'와 '체험파'에 대한 얘기로 이해됩니다.
제가 그닥 똑똑하지 않다는 거는 좀 아는데요..그래서 과학 등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 권위를 잘 받아들이거든여
근데 소위 마음공부나 수행의 영역에서는.. 내 입맛에 맜는 거를 덥석 물어서 물고빨고 하다가, '아, 이거 좀 아닌듯~' 싶으면 옆 동네 걸로 갈아타고.. 이렇게 살아왔어요.
이게 소위 고수들이 다들 같은 얘기를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대종사급 네임드들도 다들 딴 얘기를 하니깐(-적어도 '그렇게 이해되니깐').. 삽질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체험파의 숙명이겠져..ㅠ ㅠ 교학파가 명문정파인거를 예전에 인지했지만서도.. 사파의 피가 흘러서.. ㄷㄷㄷ
여기저기 갈아타는 와중에도, 화엄에는 발가락 하나 걸치고 있어가지고 ㅎㅎㅎ, 완전 엄한 길로 새지는 않은게 그나마 다행일지도요~
체험파 쪽이 교학을 상당히 철저히 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무슨 파라고 붙이기에는 민망한 정도여서요..
고급 과정이나 세밀한 교학까지 접근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지만요.
그래도 불교 신도 입장에서,
수행의 주의 사항이나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한 사전 교육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이것저것 다른 길을 시도하더라도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선정도 그러한데..먼가에 자리깔고 앉거나..
보고 들리는 것에 의지하거나.. 등등이요~
저희는 화엄에서 예방 접종을 충분히 맞아 놓았기 때문에 어딜 가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