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포 포구에서
시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다. 어제는 올가을 들어 첫 미세먼지가 끼었으나 밤새 걷혀 다행이다. 일과를 마친 늦은 오후 어디로 나가볼까 궁리하다 와실로 들어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연사 정류소로 나가 능포로 가는 11번 버스를 탔다. 연초삼거리와 송정고개를 넘어 대우조선소를 둘렀다. 두모고개 너머 장승포 수협 앞을 지날 때 내렸다. 어항 장승포 포구가 가까운 곳이었다.
주중 내가 머무는 연초 연사는 내륙이라 바다를 접하지 않은 곳이다. 이렇기에 장승포 포구로 나오면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갑갑한 마음을 달래준다. 포구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이 여러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거제 곳곳의 여러 포구를 둘러봤다만 장승포에 정박 중인 어선은 규모가 아주 커 보였다. 장승포항은 유람선도 뜨지만 멸치잡이나 장어통발 어선들의 전진기지였다.
수협공판장과 비치호텔을 지나 장승포 해안도로로 올라섰다. 내가 몇 차례 걸었던 산책로라 지형지물이 낯설지 않았다. 달포 전 가덕도 형님이 거제 아우를 찾아왔을 때 함께 걸었던 구간이기도 했다. 날이 저무는 포구 바깥은 지심도가 누웠고 바다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불을 밝혀 어로작업을 했다. 바다는 햇빛이 비치는 낮에는 검푸르게 보이나 날이 저무니 밤하늘만큼 어두웠다.
해안도로는 주택지와 떨어져도 장승포와 능포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산책로로 인기가 있었다. 차도가 확보되어 있으나 차량이 오가는 데가 아니었다. 대한해협의 바다가 탁 트였고 공기가 맑고 소음이나 매연이 있을 리 없었다. 절벽 아래는 갯바위에 철석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책로가 끝나 양지암 조작공원에서 등대까지 가는 산등선을 따라 가면 삼림욕을 할 수도 있다.
산책로엔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자라 여름이나 낮엔 그늘을 드리웠다. 철따라 꽃길이었다. 봄날 동백꽃과 벚꽃이 지면 여름엔 수국이 아름다웠다. 지난번 찾았을 땐 선홍색으로 수를 놓았던 꽃무릇이 저무는 때였다. 이젠 가을이 이슥해진 때라 꽃은 볼 수 없었다. 단풍이 일찍 물들어 먼저 떨어진 벚나무 잎이 바스락거렸다. 날이 어두워오니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해가 저물어 산책객이 드물어 호젓해 좋았다. 여름엔 매미나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을 테다. 날씨가 추워지니 가으내 밤새도록 울었을 귀뚜라미 소리도 그쳤다, 소리라고는 절벽 아래 갯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소리 뿐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가면서 눈길을 자꾸만 바다로 향했다. 날이 저물어 검은 바다로 변한 수평선에 부산 신항만으로 드나드는 커다란 배들이 불을 밝혀 오갔다.
산책로가 끝나갈 무렵 멀리 거가대교와 부산 다대포 일대 아파트 불빛이 아스라했다. 검은 바다엔 여러 척 배가 불을 밝히고 정지해 있는 듯했다. 신항만으로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컨테이너 운반선으로 짐작되었다. 장승포 해안로에서 양지암 조각공원과 등대로 가는 길이 이어졌다만 날이 어두워 그곳까진 가질 않고 주택가 언덕 비탈로 내려섰다. 장승포와 능포동 사이 옥수동이었다.
주택가가 끝나고 차도를 건너 옥수 재래시장으로 들었다. 날이 저물어 노점 할머니는 철시하고 보이질 않았다. 생선가게나 떡집은 불을 켜고 손님을 기다렸으나 나는 들릴 일이 없었다. 몇 개 점포를 지나 ‘옥수동집밥’으로 찾아 들었다. 식당은 저녁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주인은 내 인상착의에서 토박이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번에 세 번째 오는 손님이라고 정확히 기억해 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버스기사들이 더러 찾는 식당이었다. 정식을 시켰더니 추어탕에 구운 고등어가 한 조각 따라 나왔다. 맑은 술을 한 병 시켜 밥보다 먼저 잔을 채워 비웠다. 이어 주인과 면식이 있는 기사가 들려 저녁상을 받았다. 나는 모처럼 받은 특식 밥상에서 소주를 한 병 더 시켜 바닥을 보고 밥공기를 비웠다. 고현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옥포를 거쳐 연초로 향했다. 1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