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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파울로 당유란 노인 형제의 성경 강해 한국어 번역 소개.
훈자와 새생명과 관련된 내용임.
수요일
성경구절: 요 6:63; 14:17, 26; 엡 4:22-24; 벧후 1:20-21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계 1:10, 12-13).
요한이 받은 계시들
젊은 시절 요한은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성숙에 이른 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도들에게는 맡기지 않으셨던, 어떤 구체적인 위임을 요한에게 주셨다. 요한이 영 안에 있었기 때문에 천사를 통해 계시록의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요한의 뜻에 따른 것도 아니었고, 그의 해석도 아니었다 (벧후 1:20-21). 그때 요한은 그에게 계시된 모든 것을 계시록 책에 기록하도록 그 영의 위임을 받았다.
그러나 요한은 장래 일어날 일들에 관한 계시만 받은 것이 아니다. 감금되고 유배되어 있었던 이십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요한을 온전케 하셨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배웠고 또한 그 영을 통해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러므로 밧모에서 나온 뒤, 그는 많은 중요한 계시들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요 1:1, 14).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20:31) 영원한 생명을 주고 영원히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생명 주는 영(6:63), 실제의 영 (14:17), 보혜사가 (14:26) 되시기 위해 그분은 죽고 부활하실 필요가 있었다.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따르면 많은 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죽으셨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요한의 복음이 없었다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단지 피만 흘리시고 그 후 죽으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제자들이 멀리서도 보이는 흘려진 피를 보는 동안, 십자가 가까이 있었던 요한은 피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보았다. 요한은 주 예수님이 우리의 혼 생명인(롬6:6) 옛 사람을 제하기 위해 먼저는 죽으셨다는 것과 죽으신 후 피와 물을 쏟으셨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면에서 주님의 죽음이 피로 상징된 구속만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와가 아담으로부터 산출된 것처럼 또한 물로 상징된 교회 생활을 산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함에 있어 요한의 기록은 지극히 중요하다.
주님이 못 박히실 때 이루어진 사실들의 순서를 우리의 체험과 관련시켜 살펴보면 새 사람을 위해 먼저는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알게 된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매일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이러한 계시를 가능한 한 빨리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 두 번째로 우리를 죄와 모든 불의에서 정결케 하기 위해 그분의 피가 흘려졌고 (요일 1:9), 세 번째로는 죄들이 사함 받은 뒤 새롭게 되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옛 사람을 벗을 필요가 있다 (엡 4:22-24). 이 같은 새롭게 됨은 주님의 옆 구리에서 흐른 물로 상징된 하나님의 생명이 증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요한의 성숙기의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이 같은 계시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열쇠요점: 혼 생명을 부인하고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됨.
나의 열쇠요점:
질문: 요한이 받고 기록한 중요한 계시들이 무엇인가?
목요일
성경구절: 롬 6:4; 골 3:3, 5a; 벧전 1:19; 5:9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타인들의 체험을 통해 배움
성숙에 이른 요한은 주님에게 유용한 자가 되려고 그의 생애 말기에 이르러 여러 상황 가운데서 자신을 부인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 또한 우리의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성숙에 이를 필요가 있다.
젊을 때 요한이 온유하고 겸손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러하다고 여기며 혼 생명을 부인해야 함에 대하여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천연적인 우리의 장점들이 그분께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는데, 이는 부활 생명에서 비롯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러한 장점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락한 사람의 생명에서 기인한다 (벧전1:19). 여기서 중생의 중요성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새로 나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옛 사람을 제하고 땅에 속한 본성을 죽이기 위해 주님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연합되어야 한다 (롬 6:4; 골 3:3, 5a). 이것이 혼 생명을 부인하는 것이다. 더 많이 부인할수록 더욱더 신성한 생명을 얻는다.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면 천국이 나타날 때 권위의 위치를 얻게 될 것이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장점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로 자신을 부인해야 할 필요로부터 우리를 제외시키지 않는다. 이를 우리는 욥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정직하고 곧으며 악에서 떠났음에도 자신이 회개해야 함을 시인하기까지는 욥에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혼 생명이 끼치는 영향을 드러내는 여러 상황을 거치면서 그는 회개하고 옛 사람을 제하기 위해 그 영의 불을 체험했다. 요한의 경우를 보면 베드로가 겪은 체험들을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으나 베드로를 동반하였기 때문에 그는 공과를 배웠다.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자라게 함에 있어, 온 갓 종류의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만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공과를 배우기만 하면 된다.
주님이 못 박히셨을 때 우리 또한 못 박혔는데, 이는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도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형제들이 겪는 고통과도 동일시된다 (벧전 5:9). 형제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그 체험을 통해 배우려고 그 형제의 체험을 취하게 된다. 형제가 회개하고 그 영의 불을 그의 혼 생명에 적용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회개하고 그 불을 우리의 자아에 적용한다. 다른 이들이 공과를 배우는 동안 우리도 배울 수 있고, 다른 이가 불순물을 태우는 동안 우리 역시 우리의 불순물들을 태울 수 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온전케 된다.
열쇠요점: 형제들의 체험을 통해 배움.
나의 열쇠요점:
질문: 어떻게 다른 형제들이 겪는 고난의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가?
금요일
성경구절: 마 9:36; 24:14; 히 2:5-9; 계 22:12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8).
적극적으로 주님과 동역함.
요한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그의 복음서, 21장에 기록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젊었을 때에는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하였다고 말씀하셨다(21절). 주님은 베드로의 물리적 연령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연령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 같다. 베드로가 성숙하면, 즉 그의 삶 속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뒤에는 더는 그렇게 행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베드로는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이 공과를 배웠고, 요한도 베드로의 고통과 동일시됨으로써 베드로와 함께 배우게 되었다.
장차 올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길 원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로 이것이다. 히브리서 2장 5~8절에 따라 주님께서 장차 올 세상을 사람에게 주시리라는 계시를 받은 우리는 두 가지 일, 곧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자람과 사역의 일에서 온전케 되길 추구함으로써 예비되어야 한다.
천국의 나타남이 가까워졌고, 주님은 왕국에서 우리가 그분의 동역자들이 되길 바라신다. 우리가 자라길 기다리신다. 더 나아가, 끝이 오기 전까지 사람이 거하는 온 땅에 왕국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마 24:14). 사실상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돌아오셔서 상 주시기 맡기신 위임을 우리가 수행하기를 그분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마 24:14). 이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다림은 능동적인 기다림이 되어야 하는데, 즉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믿음을 가져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가야 한다 (마 9:36).
복음을 전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 도달해야 할 목표를 사전에 정한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많은 사람에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복음전파를 위한 팀을 구성하고 동네에서는 천막 기도장소를 준비한다면, 더욱 더 능동적인 방식으로 동참하고 주님의 일의 전진을 위해 더 많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 집회에서나, 대 집회에서 그리고 모임에서 주님을 누린다는 사실이 우리가 승리자로서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교회 집회에서 찬양하고 찬미하며 우리의 영을 해방하는 것이 누림이 있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한 방면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전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가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하신 바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체험들이 되어 우리를 부유케 하고 온전케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열쇠요점: 왕국복음을 전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재촉함.
나의 열쇠요점:
질문: 장차 올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리려면 어떻게 예비해야 하는가?
토요일
성경구절: 마 6:10; 7:21b; 24:45-47; 막 16:15; 야 1:22; 계 20:6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24:46-47).
이상과 실행
하나님께서 주신 이상은 실행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많은 재난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재난들은 주님이 다시 오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나, 그분이 다시 돌아오시기 위해서는 장차 올 세상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신성한 생명이 자라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자들의 표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 생 혼 생명을 부인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다른 면에서 우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막 16:15). 이로써 첫 번째 조건인 신성한 생명을 갖게 될 것이고 두 번째 조건인 사역이 온전케 됨, 즉 우리의 사역도 온전케 될 것이다. 누림을 위해 주일 집회에만 참석하는 안락한 교회 생활로는 충분치 않다. 또한, 단지 좋은 형제나 좋은 자매, 혹은 좋은 인도자가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착하고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속에 그분의 위임이 불처럼 타고 있는 형제들이 되어야 한다 (야 1:22).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는 두 부류의 승리자들이 있다. 마태복음 25장은 지혜로운 처녀들과 달란트를 증가시킨 종들로 예표된 승리자들을 제시하며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착하고 충성된 종아” (21, 23절).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에는 어떤 것이 더 추가되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다 (45절).
우리의 목표는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것이다 (계 20:6). 이를 위해 우리를 두 가지 방식으로 예비되게 하신다: 혼 생명을 부인함으로써 생명 안에서 자라도록 우리를 교회 생활 안에 두시고 또한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을 갖도록 체험을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이는 장차 올 왕국에서 우리가 사람들을 돌봄으로써 주님과 함께 통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종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각각의 상황들을 해결하는 것이며, 이것은 교회 집회에 참석하는 것 이상의 일들이다. 참석함으로써 지혜를 좀 얻게 되긴 하나, 이러한 삶은 모든 방면에서 우리를 예비시키지는 못한다. 지혜로운 종이 되기 위해서는 나가서 사람이 거하는 온 땅에 왕국의 복음을 전하고, 함께 종된 자들을 먹일 필요가 있다. 사람이 거하는 곳이라면 우리는 가야 한다. 주택가에서는 집집마다 방문하고, 상업 지역에는 가게마다 가고, 또한 그리스도인 그룹마다 방문해야 한다.
우리 안에 복음의 전진을 지연시키는 전통과 낡은 습관과 관념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모든 동네에서 피자집, 제과점, 약국, 가게들이 다 그 안에 북카페를 위한 공간을 내어준다고 상상해 보라. 많은 사람이 얻어질 것인데, 이는 우리가 누리는 왕국의 복음이 많은 자에게 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발전은 모든 사람으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고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기술, 통신, 교통, 모든 것이 발전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도 발전해야 하고, 이 삼십 년 동안 집회소나 성전 안에 갇혀서 왕국의 복음을 그 어떤 동네로도 가져가지 못 했던, 옛 복음 전파의 방식 안에, 옛 전통 안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새장 안에서 노래하는 카나리아 새가 된 것과 같다:“교회 생활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노래할 줄도 알고, 주님에 대해 아름다운 말들도 할 줄 알지만, “새장 안에서” 한다! 이제는 밖으로 “날아가” 모든 사람을 향해 노래할 때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주님을 필요로 하는지! 그분께서도 크고 작은 도시들을 얻길 원하신다. 큰 도시들은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동네마다 경계를 정함으로 각 팀이 일정 지역을 맡아 왕국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모든 사람에게 갈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로써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재촉할 수 있게 된다 (벧후 3:12).
열쇠요점: 듣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실행하는 자들.
나의 열쇠요점:
질문: 주님이 돌아오실 때 어떻게 해야 상을 받을 수 있는가?
주일
성경구절: 민 13:30; 마 5:16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b).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2-3).
올라가서 땅을 취하자
교회 생활 안에 주님을 사랑하고, 안에 불타는 그 영의 불을 가진 많은 형제가 있다. 그러나 불 위에는 말이 있는데, 즉 생계 문제로 그들이 염려한다는 것이다 (마 5:16). 이러한 형제들도 복음을 전하러 나가길 원하지만, 기회가 없거나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여겨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슬퍼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인도하는 형제들에게 우리가 제안하는 바는 주의 날을 복음 전파를 위해, 즉 주님 자신을 위해 헌신하라는 것이다. 많은 형제에게 주중에 나가는 것은 어렵지만, 주의 날에는 모두가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우리는 충분히 기도하기 위해 모일 수 있고, 그 후 낮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갈 수 있으며, 그리고 저녁에는 떡을 떼고 주님의 승리를 간증하기 위해 모일 수도 있다. 복음을 전한 날에 집회를 하면 그 집회는 “불탈 것이다!” 그 후 복음을 전한 뒤, 혹은 떡을 떼고 나서 다 같이 식사하러 나간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신선함과 기쁨이 충만한 교회 생활이 될 것이다
왕국 복음이 단지 한 특정 그룹에만 국한되지 말아야 하며 오늘날의 휴대전화기처럼 모두에게 이르러야 한다. 집회소나 성전에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오길 기다렸던 옛 방식으로 우리 도시 모든 동네에 왕국의 복음을 전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겠는가? 그것은 아마 전화선이 매우 비쌌던 때에, 단지 일부의 사람들만 전화선을 가졌던 시대와 같을 것이다. 주님께 감사드림은 북카페와 권서인들로 말미암아 오늘 왕국 복음은 이미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또한, 복음 전파에 체험이 있는 모든 형제가 아직 체험이 없는 두세 사람을 데리고 나간다면, “한 달란트”를 가진 모든 형제들이 나가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형제들이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이 땅에서 주님의 일은 더 신속히 확산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러 나갈 때, 계획 없이, 아무렇게나 하지 말자. 이는 그렇게 하면 같은 집에 두 번 문을 두드리거나 혹은 방문하지 못하는 집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 팀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하고, 도시의 지도를 펴고 모든 형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주여, 이 땅을 우리에게 주소서”. 이렇게 매주 나간다면 분명 그 도시의 많은 지역을 방문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집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한 면에서 그분은 모든 사람을 얻길 원하시고, 다른 면에서는 형제들이 자랄 수 있도록 모든 형제로 기능을 발휘하게 하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 부르는 것을 가르치고 영적인 서적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자에게 주어져야 하는데, 영적 서적들은 사람들이 왕국의 복음을 들은 후 생명 안에서 자라고 그들의 달란트를 온전케 하는 단단한 음식이 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장차 올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열쇠요점: 모든 자에게 왕국복음을 전할 기회를 줌.
나의 열쇠요점:
질문: 우리 도시의 모든 동네에 왕국의 복음이 이를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참고서적:
“하나님의 초점은 왕국임” – 3-4장 – 당유란.
첫댓글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믿음으로 거듭남으로 새생명을 얻음.
옛사람을 버리고 새생명이 자람으로 성숙한 신자가 됨.
혼생명을 부인함으로 자아가 점점 죽고,영적으로 순종의 사람으로 자람.
그러므로 훈련된 자아는 맞는 말이다.
새생명은 자라고,자아는 훈련되어 부인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생명은 거듭난 후 그냥 저절로 자라 성숙한 신앙인이 되지 않는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기적적으로 저절로 성숙한 신자가 되는가?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가 죽고
점점 훈련되어 거룩한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야 하는 것이다.
말씀을 배워 순종하고,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렇게
되어 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더 성숙할수록 더 많은 상이 있고,더 많은 고을을 차지하라는 비유처럼
주님과 왕노릇할 역량으로 성숙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