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서귀포시 강정동 4040-3번지. 용흥마을회관 앞, 강정동 3921-4번지
용흥동은 1660년경에 파평윤씨 입도 12대 후손인 시번이 내팥에 거주하기 시작,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918년에는 강정2구가 되었다. 1928년께는 마을 이름을 신흥리(新興里)라 부른 적도 있었다. 4·3 때 강정리로 소개했다가 진압 후인 1952년 인근의 작은 자연부락들인 천외동, 염둔, 월산동, 기목동, 궁산동, 엉커리 등의 이재민들을 포함, 복용동산 뒤에 재건하였다.
설촌 이후 이 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북쪽에 천년송(千年松), 남쪽에 만년(萬年)팽나무를 심어 마을을 지켜왔다. 당시 마을을 세운 사람이 발전과 평안을 위하는 마음에서 제주도 전역을 수소문하여 신안을 찾아 지세를 관찰하게 하였더니 마을형국은 금계포란형이므로 아주 부할 형국이나 남과 북이 허하다고 하여 남에는 만년폭(팽나무), 북에는 천년송(소나무)을 심으라 하여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소나무는 천년을 살고 팽나무는 만년을 산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만년폭(폭낭)은 마을회관 앞에 3그루를 심었었는데 2그루가 죽어 버려서 다시 2그루 심었는데 1그루는 집주인이 대문을 내면서 잘라 버렸고 다른 1그루도 고사해서 현재는 1그루만 남았다. 지금은 만년폭(팽나무)이 매우 무성하여 마을 자체에서 보호하고 있으며, 서귀포시가 1982년 10월 보호수로 지정했다. 지정 당시 수령은 390년, 수고 19m, 흉고 둘레 2.8m로 기록되어 있다.
천년송은 마을의 북쪽 강정동 3921-4번지에 적송을 심었었는데 설촌 후손 입도 10대가 벌채해 강정포로 운반하여 배를 지어 해상으로 진출하다가 2일만에 ‘신목동티’로 급사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다시 심은 소나무도 2013년 재선충으로 죽어버려서 그 자리에 마을 정자를 세웠다. 정자 앞 먼나무 자리가 소나무가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2021년 도로확장 공사로 정자도 먼나무도 없어졌다.
《작성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