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加賀) 항공모함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 카가(加賀).
본래 카가급 전함의 1번함으로 건조하고 진수되었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개조했다.
본래 88함대 계획의 3번함, 4번함을 맡은 카가급 전함의 1번함으로 건조되고 있었으나, 건조중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원래는 개조되지 않고 완전해체될 예정이었으나, 항공모함으로 개장될 예정이던 아마기가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건조대 위에서 크게 파손되는 바람에 아마기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개장 재료들로 카가가 대신 개조되었다.
이 때 토사와 카가 중 카가가 선택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토사의 건조가 카가보다 빠르게 이루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사는 이미 60% 이상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려면 이미 만들어놓은 시설을 다시 대대적으로 철거하는 수고를 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카가는 토사보다 건조의 진척도가 낮아 철거해야 할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토사와 달리 카가는 기관부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건조가 더 많이 진행되었던 토사는 폐기되고, 건조가 덜 진행되어 있었던 카가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아카기와 마찬가지로 3단 비행갑판에 주포로 무장했었다. 그리고 이 둘에 앞서 건조된 호쇼급 항공모함의 수직으로 솟은 연돌 구조가 난기류를 불러와서 함재기를 운용하는데 걸리적거린다고 하여 아카기와 카가는 이를 대체하기위한 연돌 구조를 가지게 된다. 아카기는 비행갑판 아래로 휜 연돌을, 그리고 카가는...
이런 괴상한 구조의 연돌에서 나오는 열기로 인해 카가의 연돌 근처에서 일하는 수병들은 멀리 안나가고도 열대성 기후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뒤쪽으로 뻗은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오히려 착함을 시도하는 함재기의 시야를 가려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카가의 별명은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가 되었다. 함내 기온이 무려 40도에 달했다고 한다.
사실 이 방식은 일본만의 창의적인 뻘짓은 아니고 영국이 1차대전 말기 건조했던 아거스급 항공모함이 원조로 카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레인저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이 진작에 내다버린 방식을 도입한 것은 뻘짓이라고 할 수밖에, 결국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재개장을 해야 했다.
이는 3단 갑판+주포운용의 비효율성과 맞물려 결국 개장을 받게 된다.
개장은 아카기와 비슷하게 진행되었으나 속도가 아카기보다 느린 편인데, 이는 함체 자체가 전함이었다는 탓이 크다. 원래 순양전함은 속도를 중시하기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더라도 엔진이 강력하고 함체의 형상도 속도를 크게 낼 수 있어서 속도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함의 경우에는 속도보다는 방어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함체도 그렇게 만들어지며, 엔진도 배수량의 제한에 걸려서 순양전함보다 출력이 떨어지는 엔진을 장착한다. 이에따라 설계 자체가 아마기급 순양전함이 카가급 전함보다도 더 크고 빠른 함선이었다.
때문에 전함에서 개장된 항공모함은 갑판이 상대적으로 짧고 속도가 느려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본은 근성으로 카가를 개조해서 아카기보다는 느리지만 어찌되었든 주력 항공모함으로 간신히 쓸 정도로 속도를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크기의 경우에도 태생이 순양전함 베이스였던 아카기보다는 당연히 작았지만, 그나마 원본이 되는 카가급 전함 자체가 전장 234m의, 당대의 전함들 중에선 큰 편에 들어가는 함선이었던 덕분에 항공모함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이긴 했다.
개조후에는 항해시의 안정성이 향상되어 최고 속도는 떨어졌지만 대신 항속거리가 크게 상승했다. 진주만 공습을 위해 일본군의 항공모함들이 집결할 당시, 다른 항공모함들이 4일 동안 항해한 거리를 속도가 가장 느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3일만에 주파한다든가, 진주만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일본의 최신형 항공모함이었던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파도에 20도씩이나 롤링을 하는 와중에도 카가는 3도 정도 밖에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비행갑판이 높고 넓은지라 착함과 갑판 작업등이 용이해 파일럿이나 작업원들에게는 편한 항공모함으로 평이 좋았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당초 진주만 공습은 카가와 쇼카쿠, 즈이카쿠 3척만으로 행할 계획도 검토되었다고 한다. 최신형인 쇼카쿠급을 제외하면 일본군 내에서 가장 우수한 항공모함으로 평가되고 있던 셈. 그러나 아주 장점만 있던 것은 아니라서, 전함 함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최고속도가 29노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뇌장을 장착한 97식 함상공격기의 이륙이 빡셌다. 전쟁 초기부터 이런 문제가 있었으니 전쟁이 장기화되었을 경우 신형 함재기는 탑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단 추가 개장 계획도 있었던 듯하다. 남아있는 자료상으로는 다이호와 비슷한 형태. 다만 이 개장안 자체는 탑헤비 문제로 인해 채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일전쟁 당시는 일본 해군에서 가장 활약한 함 중 하나였다. 다른 일본의 항공모함들 중 아카기는 출격 없이 일본에서 한창 개수중이었고, 류조와 호쇼의 경우는 카가의 지원역였던지라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카가의 파일럿들은 일본군 내에서도 압도적으로 실전 경험이 많았다.
진주만 공습에는 아카기,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와 함께 참가하였고, 이후에도 그럭저럭 많은 전과를 올렸다. 다만 대부분의 전투가 지상기지나 비행장 공습이었고, 해전에 투입된 적이 없는지라 격침 전과는 소소한 편. 일단 진주만을 제외하면 수송함 1척의 단독격침과 구축함 1척의 공동격침 전과가 있다.
그리고 얼마 뒤...
"적기 직상! 급강하!" - 카가의 승무원이 돈틀리스를 보고 한 말.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 항모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한 돈틀리스에 의해 침몰했다. 다른 함선들보다 카가의 경우는 진짜로 재수가 옴붙은 경우인데,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손발이 안 맞아 대다수가 카가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무려 50발의 폭탄이 카가만 노리고 떨어져 폭탄을 모두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군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명중탄은 5발.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10발 전후로 잡고 있다.
게다가 폭탄이 하필이면 함교를 직격하는 바람에 함장 이하 고위급 장교가 몰살해서 함내 지휘계통이 끊어졌다. 그래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못한 채 함 자체가 불바다로 변한 것이다. 함장 오카다 지사쿠 대좌가 전사한 후 함내의 항공장교가 함장직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비행갑판을 뒤덮은 불바다에 별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퇴함해야 했다.
이후 4시 25분 2차례의 대폭발이 더 발생했으며, 구축함 하기카제의 포술장의 증언에 의하면, 피탄 직후부터 함 중앙부에 발생했던 균열이 해수면까지 이어져 폭발이 발생해 전복되었고, 선미부터 가라앉으며 침몰했다고 한다. 다만 구축함이 자침시키기 위해 발사한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는 카가의 일부 생존자들의 주장도 있다. 나중에 나왈급 잠수함 노틸러스가 이미 숨이 간당간당하게 붙어만 있는 카가를 소류로 착각하고 뇌격을 가하긴 했으나 1발은 어뢰발사관에 걸려 발사되지 않았고 2발은 빗나갔으며 1발은 당시 미군 어뢰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불발되었다.
중일전쟁에서 활약하며 1항전의 기상을 보여주었고 아카기와 함께 태평양 전쟁의 신호탄격인 진주만 공습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그 기상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분노한 미국을 이기지 못하고 5분만에 아카기, 소류, 히류와 함께 침몰하는 것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 일본에겐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몰락을 보여주는 항공모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이즈모급 항공모함 2번함에 함명이 계승되었다.
3단갑판 시절의 중일전쟁 무렵에는 함내 군기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상급 병사들의 공공연한 갈굼은 물론이고 함내의 식량을 공공연히 훔치다 걸린 병사들이 매달리는 형벌도 흔히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문제의 개똥같은 연돌이 뿜어내는 열기가 카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정신과 도덕성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것이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개수 이후로는 딱히 이렇다할 문제는 없었던 모양.
사실 함내 군기문제는 일본 해군의 전함이나 항공모함 같은 대형함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들이다. 대형함들은 소/중형함들에 비해 인사이동이 잦았고, 어차피 조만간 안볼 얼굴들이니 서로간에 막 대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특히 전함들은 일본군 사정상 실전에 투입될 기회가 적었고, 정박지에서 강도높은 훈련만 줄창받았던터라 그 스트레스를 후임 괴롭히기로 풀었다고 한다. 덕분에 당시 일본 해군의 전함에는 하나같이 '오니', '야차', '지옥' 등의 별명이 붙어있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대형 헬기 항모 이즈모(出雲) 자매함인 카가(加賀)함을 진수했습니다. 종전(終戰) 70주년인 이번 달에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 항공모함의 이름을 따, 언제든 헬기 대신 수직 이착륙 전투기를 싣고 작전에 나설 수 있는 경항모를 띄운 것입니다.
어제 카나가와현 요코하마 조선소에서 열린 진수식에서 길이 248m, 폭 38m, 만재배수량 2만7000톤(기준 배수량 1만9500톤)의 카가함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함번 184의 카가함은 함번 183의 이즈모와 크기와 성능도 같은 자매함입니다. 여차하면 F-35B 같은 수직 이착륙기를 운용해 항공모함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이 되고 싶은 日 헬기 항모
카가함의 자매함 이즈모함은 취역 당시부터 수상한 시설들로 말이 많았습니다. 여성 간부용이라며 빈 방 90여개를 만들어 뒀는데 이즈모에 여성 간부들이 그렇게 많이 탈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함재기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주장이 파다했습니다.
80만 갤런 용량의 연료탱크에도 호사가들은 주목했습니다. 함재기용 항공유를 담을 탱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주장이랄 것도 없이 이즈모에는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가 탑재될 예정입니다. 사실상 항공모함입니다. 카가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기는 우리 해군의 최대 함정인 독도함(199m)과 중국의 항공모함 1번함인 랴오닝함(300m) 사이입니다. 독도함에는 헬기 6대, 랴오닝에는 함재기 20대 이상 싣는데 이즈모와 카가에는 헬기 14대를 탑재할 수 있습니다. 헬기나 오스프리 대신 F-35B 같은 수직 이착륙 전투기를 함재기로 채택하면 더더욱 강력한 항공모함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중국이 랴오닝에 이어 항공모함 2번함을 한창 짓고 있는데 중일 간에 대형 함정 경쟁을 벌이는 양상입니다.
함명을 왜 굳이 '카가'로…
일본 해상 자위대가 힘을 키우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런데 이름이 영 걸립니다. 헬기 항모 2번함의 함명이 뭘까 그동안 궁금증을 자아냈었는데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카가를 골랐습니다. 카가는 1942년 6월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격침당한 제국주의 일본의 항공모함입니다.
카가는 아카기, 소류, 히류와 함께 미드웨이 해전에 침몰한 일본의 항공모함 4척 중에 하나입니다. 다들 미 해군 항공모함 함재기의 폭격을 맞고 가라앉았지만 그중 카가가 제일 많이 공격당해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기억인 미드웨이 패전의 상징적인 항공모함입니다. 헬기 항모 2번함의 이름을 카가로 지은 뜻은 "종전 70주년을 맞아 당시의 패배를 잊지 말고 앞으로는 욱일승천하자"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