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10/7)
-‘맹신’이 아니고 ‘확신’이다-
‘맹신하다’라는 말의 뜻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무작정 믿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확신’하다‘라는 말의 뜻은, 공부를 통하여 차차 믿어져서 굳게 믿게 되는 것을 말한다.
주변에서 알게 되는 성도들을 보다보면 많은 분들이 신앙을 확신하며 신앙생활 하기보다는 맹신적이고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위험한 신앙적 모습이라 여겨진다.
온전한 성경적 지식없는 맹목적이며 맹신적 신앙은, 과거 지녔던 자연종교나 이론종교들 바탕 위에 옅은 그리스도교의 지식이 복합되어 구축된, 인간 위주에서 기복과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대충 아무렇게나 믿으면 되지’ 할 수도 있겠으나, 생각해 보면, 내 자녀들이 부모를 바르게 알며 섬기지 않고 그저 자기들 생각과 뜻대로 부모를 섬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사도는 제자에게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라고 권한다.
여기서 ‘너’는 ‘디모데와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데, 이들이 하나님을 배움으로 성숙해지는, ‘믿음이 확신 가운데 자리 잡기’를 권면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거하라’는 것은 연속적이고 계속적인 것을 뜻한다.
맹신적 신앙은 결국 믿음의 주체가 ‘나’로 알고 있는 신앙이다. 내가 믿는 것이며 내가 믿음을 가진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 신앙은, 자기 생각과 뜻과 원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교회에 분쟁도 가져온다.
이러한 맹신적 신앙은 진리의 말씀에 대해 무지하여 자기 감정대로 뛰노는 신앙인데, 이러한 것이 기도원 운동이나 신비적 신앙 체험의 뿌리가 되었으며 교회에 많은 폐단을 낳게 하였다.
그러나 확신적 신앙은 시작과 끝이 주께 있으며 믿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고 따르게 된다.
진리에 의해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지식이 고상한 인격체로 되어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이는 말씀(통치) 안에서 순종과 나눔으로 교제하며 신앙이 변치 않고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된다.
무엇이든지 확신이 없으면 자신감이 결여되고 항상 다른 것들과 함께 걸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신앙 또한 확신이 없으면 믿음과 십자가의 길로 곧장 가지 못하고서 머뭇거리며 세상과 신앙을 걸치게 마련이다.
확신이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 자신을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신이 있는 신앙은 머뭇거림이 없이 오직 한 길, 곧 나의 십자가를 지고 푯대만을 향하게 된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2~24)
교회는 성경을 배우는 소중한 곳이다. 배우고 또 배워서 확신에 찬, 담대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엡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