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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사라지지 않아'…미국 노동운동 부활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 주도에 자동차 가세
긴 호흡 노동운동 위해 새로운 상상력 필요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미국에서 파업의 물결이 거세다. ‘코로나 19’가 끝난 지난해, 미국은 12만 6000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해 220만 일에 가까운 파업 손실일수를 기록했다(마국연방노동통계국). 3년 만에 되살아난 파업이었다.
하지만 올해에 들어서는 이미 9월 말에 72만 8000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해 파업손실일수만도 1100만 일을 넘고 있다. 이 수치만으로도 2000년 이래 최대 규모다.
게다가 9월 15일 시작한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UAW)의 파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10월초 7만 5000명이 참가한 보건의료파업은 이 수치에 들어있지도 않다.
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이 위기에 빠졌다거나 침체됐다는 진단은 새삼스럽지 않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노조의 조직률은 급전직하로 떨어져 지난해에는 10%를 갓넘겼을 뿐이다. 전후 50년대와 60년대에 30%를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자유낙하(free fall)라고 표현할 정도다. 노동조합은 ‘흘러간 시대의 공룡화석’으로 남았으며 노동운동은 사라질 거라는 예언(?)까지 등장했다(둘리엔 외, 2012).
하지만 노동운동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일깨우며 미국의 노동운동은 되살아나는 저력을 보인다. 미국에서 노동의 부활(labor resurgence)을 주도하는 것은 서비스부문의 저임금노동자들이다. 아마존과 스타벅스에서 노조가 조직되는가 하면 지난 7월부터는 헐리우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16만 명의 조합원을 끌고 파업에 들어갔다(파업은 아직도 진행 중). 이에 앞서 5월부터는 헐리우드 방송·영화작가 노동조합(WGA)에 소속된 1만 1500명의 스크린 작가가 153일 간 파업을 진행했다. 서비스부문이 노동운동을 주도한다고 해서 전통적인 제조업의 노동운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UAW의 파업이 단적인 사례다.
전미자동차노조(UAW) 지부 노조원 862명이 12일 미국 루이스빌에 있는 포드의 켄터키 트럭 공장 바깥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2023 10.12 [AP=연합뉴스]
자유낙하로 추락한 미국의 노동운동, 그리고 UAW의 양보교섭
한때는 노동조합의 성채였던 제조업, 그것도 전략산업인 자동차산업을 조직해 미국의 노동운동을 주도한 조직이 UAW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UAW는 미국 노동운동의 침체를 상징하는 노동조합이자 이른바 양보교섭의 대명사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내부 비리까지 터져 14명이나 되는 노조 간부와 스텔란티스 임원 3명이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이는 지도부 직선제를 도입하는 빌미가 됐다). 그런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다시금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9년 GM을 대상으로 목표파업(target strike)을 진행한 지 4년 만이다(미국에서 임금협약의 유효기간은 4년이다).
자동차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공통적인 사실은 자동차산업 노동자를 조직한 노동조합이 해당 나라의 노동운동 지형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조합원의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동차산업이라는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크고 생산의 통합도(JIT)가 높아 한 사업장에서의 파업은 공장 전체는 물론 다른 기업들의 조업까지 중단시킬 수 있다. 미국의 UAW가 전면파업이 아닌 부분파업(목표파업) 전술을 택하는 것도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속성 때문이다.
목표파업 전술을 바탕으로 UAW는 핵심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을 맺고 이를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하는 패턴교섭(pattern bargaining) 방식을 사용한다. 산업 차원의 고용조건을 평준화하는 ‘비공식적인 집권화 기제’인 셈이다(이병훈, 2011). 지금까지는 주로 GM을 타겟으로 삼았지만 이번에는 ‘최초로’ 완성차 빅3(GM, 포드, 스텔란티스)를 교섭당사자로 지목하고 세 업체의 핵심 사업장을 한 곳씩 골라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완성차 사이의 경쟁을 활용하고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번 UAW의 파업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조합원의 전투력을 바탕으로 저하된 실질임금을 회복하고 과거의 양보를 복원하겠다는 집행부의 의지다. 실제로 1980년대 이래 UAW의 침체과정은 조합원 수 감소와 양보교섭으로 특징된다. 1979년 150만 명에 달했던 조합원은 오늘날 그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40만 명에 그치고 있다. 외국 자동차회사에서의 조직화 실패, 경기침체로 인한 공장폐쇄와 해외 이전, 그리고 생산과정의 자동화 등이 직격탄으로 지목되었다. 이는 UAW가 맺은 패턴협약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UAW의 약화된 협상력은 ‘이례적인 단체협약’(김성훈, 2007)으로 나타났다. 합의된 임금인상을 포기하는가 하면 조기 퇴직제를 수용하기도 했다. 또한 1950년대 이래 임금인상의 주요 결정공식이었던 생활비연동원칙(cost-of-living adjustment, COLA)을 중단하고 심지어 신규조합원에게 낮은 임금과 후생복지를 용인하는 이중임금제(two-tier wage system)를 받아들였다. 생계비 보장원칙은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까지 폐기한 셈이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노조 내부의 관료주의가 노사협조주의로 기울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했다. 집행부가 조합원과 떨어지면서 오히려 조합원의 동력을 통제하려고 든 것이다. 이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이 지난 3월 실시된 첫 직선제 투표에서 무명의 숀 페인(Shawn Fain)을 깜짝 당선자로 만들었다. 스텔란티스의 전기공 출신인 그는 노사의 원만한 관계를 쓰레기통에 던질 것이라며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돌입한 파업 첫날인 15일 디트로이트 중심가를 행진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일어서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기업의 탐욕에 맞서"라고 적혀 있다. 2023 09.15 [AFP=연합뉴스]
전투성으로 과거의 양보를 복구하려는 UAW의 투쟁
UAW는 2023년 단체교섭에서 실질임금의 인상과 함께 생계비연동조항(COLA) 및 전통적인 연금제도의 복원, 그리고 차별적인 임금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기차 전환에 대비해 미래의 일자리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주 32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린 경제(green economy)를 지원하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행성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동차 조립 노동자와 배터리 노동자는 과거 자동차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과 복지를 보장받아야 한다”. 숀 페인의 말이다.
장기투쟁에 대비해 노동조합은 8억 2500달러(약 1조 1천억 원)의 파업기금을 확보하고 있다(파업조합원과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되어 일시해고된 조합원들은 매일 100달러, 주당 500달러를 지급 받는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필요한 사업장을 타격해나갈 것이다”(위원장). 파업이 한 달을 넘기면서 UAW가 포드의 세계 최대공장(켄터키 픽업트럭공장)을 셧다운시키는 등 파업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물적 토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UAW 위원장이 “UAW는 투쟁으로 되돌아왔으며 단결하여 경제·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노조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환경변화도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억눌렸던 임금인상 욕구가 인플레이션과 맞물리면서 조합원들의 전투성을 부추겼다.
탈세계화에 따른 미중 갈등의 심화, 동맹 간 냉전체제의 형성,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 그리고 고금리정책은 물가인상을 초래했다. 미국 우선주의 혹은 보호주의 정책은 제조업을 되살려 인력부족 현상을 부추겼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고용불안도 파업찬성률을 92%까지 끌어올린 요인이 되었다.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국민의 61%가 찬성하는 데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노동자들과 함께 피켓라인에 섰다. 그리고선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물러서지 말라”(Stick with it)고 촉구했다. 조합원들은 “협약 없이 자동차 없다”(No deal, no wheels)로 화답했다.
파업은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1만 2700명으로 시작한 파업노동자의 수를 2만 5300명으로 늘리며 사용자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파업이 앞으로 미국 노동운동의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는 미지수다. 자동차노조가 얼마만큼 ‘과거’를 복구할 수 있을지도, 얼마나 외국인 자동차회사와 남부의 그린필드(노조 무풍지대)를 파고들 수 있을지도 관심있게 볼 부분이다. 하지만 UAW의 파업에서 보듯 미국의 노동운동이 오랜 침체를 딛고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 미국 미시간주 벨빌의 GM 물류 센터 바깥에서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9. 26 [AFP=연합뉴스]
긴 호흡의 노동운동 위해 새로운 상상력 필요
우리의 시각에서 이번 UAW의 파업은 여러 면에서 낯설다. 미국과 우리 사이에 노사관계제도와 이를 둘러싼 경제사회의 토양이 많이 다른 탓이다. 낯설다는 느낌은 자신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사실, 즉 비교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무슨 시사점이나 교훈을 끌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섣부르게 미국을 배우자는 말도 무용하다. 다만 다른 제도, 다른 관행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상상력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UAW가 이번 파업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사실은 노동운동은 긴 안목으로 낙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것은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람시의 말이다. 실패하기로 작정한 정권이 권위주의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한다고 해서, 그래서 노동운동이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고 해서 노동운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때가 되면 노동자들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설 것이다(김수영, 「풀」). 그게 노동운동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그렇다. 다중위기의 시대, 전환의 다리를 건너면서 그런 때는 뜻밖에 빨리 올 수도 있다.
출처 : 전미자동차노조 파업이 새삼 일깨운 평범한 진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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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고 해서
노동운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때가 되면 노동자들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설 것이다
(김수영, 「풀」
절대로 사라지지 않죠. 자본가는 노동자의 피를 빨아 먹고 사니까요.
죽으면 안되니까. 먹고 살고 연명하게끔 만..
비정규직화하는 것도 그 일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