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약 60 년 전의 이야기 같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 가니,부모님게서 '앉은뱅이'책상을 사 주셨다.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니, 이제는 으졌한 검정 교복을 입고
모자에는 하얀 2 개의 줄과 학교의 표시가 있는 모표든가(?)
그리고 검정교복에는 뺏지를 달고,어린티가 벗어 난 으졌한 중학생이 된 것이다.
위로 누나 3 분이 계시지만 어머니의 45세에 늦둥이로 얻은 자식이 이제는 어린
티를 벗어난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으니, '앉은뱅이' 책상을 사 주신 것이다.
책상은 안방의 위에 놓았다.
원래가 초등학교때도 공부를 좀 잘 하던 사람이라
이제 중학교에 들어 갔으니,초등학교때에는 주로 식사를 하던 '상'(床)위에서
책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지만,
교과서는 집안이 가난하여, 이웃 마을의 선배님의 교과서를 싼 값에 서로 흥정을
하게 되어 구입을 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거 초읃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니, 영어라는 과목이 제일 신기하고
재미도 있고,공부를 하는데 즐겁기도 하였다. 그리고 물리,수학, 국어도 그렇고
초등학교에서 보다 공부가 더욱 어렵고,이해도 않 되고 하여도 그래도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농촌학교라 '농업'이라는 과목도 있었다.
맨날 닭의 종류가 어떻고 돼지의 종류가 어떤 것 들이 있으며, 배 나무를 작목하는 방법은
어떻고,꽃들은 어떤 종류가 있으며,어떻게 온실에서 기르는가?
나주에는 특히 배를 가꾸는 산지이기때문에 '배'(梨)를 가꾸는 실습이 특히 많았다.
여름에는 풀을 베어서 학교에 제출하여 '퇴비증산'이라는 것을 아주 힘들게 하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여름에 날씨는 더운데, 가방을 가지고,풀을 베어서 모은량을 양어께에
메고 무려 4Km이상의 거리가 먼 학교까지 가지고 가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다녔던 추억이
잊을수가 없다.
학교 공부는 항상 상위권에서 놀았다.
특히 영어시간에 영어공부를 하는데 영어선생님이 질문을 느닷엇이 질문을 하다.
그러니 1학년때이니,영어에 얼마나 흥미가 있어 ......
영어단어를 줄줄 외우고 항상 영어 노우트에 영어 글씨를 열심히 쓰고 하는데
질문의 요지는 " 발음은 똑 같은데 , Here 와 Hear 를" 그 뜻을 갑작히 질문을 한다.
"여기에 대해서 답변을 할수있는 사람은 손들어" 하신다.
아무도 손을 드는 학생은 없고 유일하게 이 죽곡서생이 손을 들어 답변을 하였다.
그랬더니,수첩을 꺼내더니 내 번호 이름을 대 란다. 그리고 수첩에 적으셨다.
한디로 농촌학교에서도 이 죽곡서생이 공부를 좀 하였다.
중학교3학년을 올라가는데,항상 공부를 하는데,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학교를 휴학을
하였는데.....
이유는 그때 농촌에서 먹지를 못하여,함참 성장할 나이에 못 먹고 자라서 기운도 없고 힘도
쓸수도 없는 준 기아(飢餓)상태가 된 것 같다.
그래서 3학년을 휴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그냥 놀릴수가 없어서 '서당(書堂)'을 다니란다.
그래서 중학교때 휴학을 하면서 한문 '천자문'을 마스터 하였다.
물론 붓글씨도 아주 잘 썼다. 선친께서 선비이셔서 한문을 잘 쓰신다.
내 붓글씨를 보시고 늘 칭찬을 하여 주셨다. 연이어 '지방'이라든가 제사지낼때 사용하는
'축문(祝 文)'을 잘 쓸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현재 한자1급(한자3천5백자)을 확보하여 고전문학을 할수 있는 학문적 기반이
이미 이 때부터 서서히 확립 되었나 보다.
그래서 그 추억의 '앉은뱅'이 책상에서 중학교 과정을 공부를 잘 하여 시골의 농촌학교
이지만 전체 약4백명의 학생중에 10등안에 들 정도 공부를 잘 하였다.
그 앉은뱅이 책상을 사주시는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열의로 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로 와서
공부에 대한 개척을 부단히 하여 내 인생을 살어 온 것 같다.
이 가을에 ...........
앉은 뱅이 책상의 추억를 이 아침에 생각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멀지 않은 추석(秋 夕)이 다가 오는데,
부모님의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
첫댓글 추억의 물건 중에
앉은뱅이 책상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유년의 삶 절반을 함께 하던
앉은뱅이 책상.
씹다붙여둔 껌 몇개도.
모두 그립습니다.
난 사과상자. 위에 비료포대. 종이를
깔고 공부했는데. ㅎ
잘보고 갑니다.
그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를 하여서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하엿튼 부럽습니다.감사합니다
제 어릴 때 단칸방에도 앉은 뱅이 책상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전 엄마의 매질에 못이겨 늘 그 작고 좁은 곳까지 기어 들어갔던 기억밖에 ..
학교를 못다녀서 책상과는 인연이 없지만
옛날 수많은 학생들의 배움의 받침 역할을 했던
앉은 뱅이 책상의 단상은 많은 이들이 공유할것 같습니다
그때는 좋은지? 어떤지는 몰랐는데
나이를 들어가니, 부모님이 무척이나 생각을 하여서 사주신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공부를 열싱히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지금도 앉은뱅이책상을 애용한답니다
그 옛날 향수 때문인지 그 책상에 앉으면 고향집에 온 듯
편하더군요..^^
지금도 사용하신다고요?
저는 서울로 이사올때 큰누나가 가지고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련합니다 ㅎㅎ
글을 봐야 생각날 만큼요
이 가을 행복하고 건강하십시오
아련한 중학교때 추억입니다
감사합니다
앉은뱅이 책상에서 열공 하든 그때 그시절이 엊그제 같네요 ^.^
그래도 열심히 공부를 한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이야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그 까지 것 쯤이야 하지만
그 당시에 앉은뱅이책상이라면 수준급으로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뭐 수준급이야 되겠습니까?만
부모님의 정성이 오늘날의 내가 공부를 할수 있는 발판을 ......
감사합니다
한자공부..
저는 학교마치고
일본어 공부하면서 부터 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공부 별로 안하는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