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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4(화)
새벽 5시에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동유럽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나는 전날 밤에 유럽에 가게 된다는 생각에 마치 다음날 소풍을 가는 어린이처럼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2012년에 터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터키는 보스포로스 해협을 경계로 97%가 아시아에 속해 있고 3%만 유럽에 속해 있는 나라이다. 터키는 보스포로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가 나뉘어진다. 터키 사람들은 아시아에 속하고 싶기 보다는 유럽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내가 새벽에 주먹밥을 쌌다. 나는 주먹밥으로 요기를 한 후 아내와 버스에 타고 인천 국제 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솔자님과 만나는 시간이 오전 9시여서 아침 7시차를 탔다. 공항에서 아내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인사를 했다.
이번 동유럽 여행은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이렇게 네 나라를 가는데 아내를 포함해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여선생님 네 명이 같이 여행을 간다. 나이는 44세, 32세, 32세, 25세이다. 나는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꽃보다 누나>의 이승기처럼 홍일점이다. 내가 아내에게 “이번 여행의 컨셉은 꽃보다 누나가 아니라 꽃보다 여동생이네.”라고 하니까 아내가 까르르 웃었다.
공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나는 여자 네 명과 같이 다녔다. 역시 여자들이었다. 모두 화장품과 향수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지금까지 46년을 살아 오면서 피부에 스킨 로션도 별로 바른 적이 없었다. 서서 기다리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화장품 쇼핑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5명이 음료수 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음료수 값 지불은 단연히 내가 했다. 꽃보다 여인들과 가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후 1시에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다. 탑승한지 얼마 안 되어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다. 여승무원이 “European meal or Korean meal?”이라고 물었다. 출발하는 비행기는 체코 비행기이다. 나는 8일동안 한국 음식을 별로 먹어보지 못할 것 같아서 한국 음식을 택했다. 나는 “Korean meal”이라고 대답했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체코까지는 12시간 10분이 걸린다. 나는 보지 못한 한국 영화 <미스터고>,<주먹이 운다>, <고령화 가족>그리고 몇 편의 다큐 영화를 시청했다. 석식은 유럽식으로 택했다. 석식을 먹고 한국 시간으로 새벽 1시에 체코에 도착했는데, 체코는 오후 5시이다.
체코는 한국보다 시차가 8시간이 느리다. 1시에 출발해서 한국 시간으로 새벽 1시에 체코에 도착했는데 시차 때문에 오후 5시인 것이다. 영어에 time difference와 jet lag가 있다. time difference는 말 그대로 시간의 차이를 말하고 jet lag는 시차로 인한 피로를 말한다. 우리는 체코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관광 버스를 탔다.
인솔자님이 우리에게 “여러분은 상위 5%에 들어가십니다.”라고 말했다. 유럽 여행을 하려면 돈과 시간이 다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광학적으로 말하면 시간은 외적 요인이고 돈은 경제적 요인 즉 내적 요인이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안 되고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차는 우리를 중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야참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체코의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체코는 맥주로 유명한 나라라고 한다. 체코는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최대인 나라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동유럽 최고의 낭만 도시인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야경을 감상했다. 성 모양의 건물들이 많은 것이 꼭 마법의 성과 같았다. 건물들은 밤에 화장을 하는 것 같았다.
프라하의 야경을 본 후 다리를 건너서 걷는데 잠이 쏟아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고 비행기에서 잠을 안 잤고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쯤이니까 잠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녹초가 되어 샤워를 한 후 바로 꿈나라에 빠졌다.
2014. 1.15(수)
새벽 2시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이다. 모닝콜 시간은 오전 6시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 이곳에서의 기상 시간이다. 이번 여행의 참가자는 모두 32명인데 여자가 25명이고 남자가 7명이다. 학교 선생님 팀, 학술 테마 기행을 온 중앙대 대학원생 팀과 교직원, 대학생 남매, 가족 두 팀 등이다.
아내는 동료 선생님과 룸메이트가 되었고 나는 중앙대 교직원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나는 새벽 4시경에 깬 룸메이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6시가 되었다. 나는 씻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서양식 아침 식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컨티넨탈 브렉퍼스트(Continental Breakfast)와 아메리칸 브렉퍼스트(American Breakfast)이다. 컨티넨털 브렉퍼스트는 점심 시간까지의 허기를 달래는 정도의 가벼운 메뉴로 커피, 우유, 주스 등의 음료에 빵과 잼, 버터 등이 전부이다.
이에 반해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는 과일 주스를 시작으로 시리얼과 빵을 밥처럼 먹고 다시 커피나 우유, 홍차를 마신다. 그리고 다양한 달걀 요리와 함께 햄, 베이컨, 소시지를 곁들여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 준다.
아침은 말로만 듣던 컨티넨털 브렉퍼스트였다. 간단한 빵과 우유, 삶은 달걀 그리고 햄 그게 전부였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컵라면을 들고 컵라면에 물을 받는데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분들이 커피 포트의 물을 눌러서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어제 저녁에 야경을 감상했던 프라하의 성에 갔다. 현지 가이드님이 나오셔서 우리에게 설명을 하셨다. 이곳에서 영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이 영화를 비엔나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비엔나에서는 건물들이 150년밖에 나오지 않아서 이곳 체코에서 영화를 찍었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300년의 역사가 나오는 곳은 이곳 체코밖에 없다.
이곳에서 모차르트가 술을 마시고 골목을 배회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가이드님은 프라하의 성 왼쪽 동상 계단 아래가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김주혁이 전도연의 신발끈을 묶어주던 곳이었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을 찍으며 <프라하의 짝퉁들>을 연출했다.
프라하성은 예전부터 귀족들의 마을로 이용되었고 구시가지는 평민들의 마을로 이용되었다. 프라하의 성의 일부는 대통령 관저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프라하의 성을 관람한 후 성비투스 성당을 관람했다. 이 성당은 완성 시기가 달라서 오른쪽 맨 끝부터 왼쪽까지 색이 다르다.
이 성당의 건물은 검은 색이 많은데, 그 이유는 건물의 재료가 사암이기 때문이다. 사암은 철 성분이 있어서 비바람을 만나면 검어진다. 우리는 성당을 관람한 후 중부 유럽 최초의 석조 다리인 까를교에 갔다. 까를교는 거리 음악가들의 선율과 프라하의 낭만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유럽은 기침을 안 하는 문화이다. 유럽인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은 일면 흑사병이라고 불리워지는 페스트가 기침으로 옮겨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기침을 하면 다 도망간다.
우리는 프라하를 관람한 후 점심으로 체코 전통 요리인 스비치코바를 먹었다. 스비치코바는 달콤한 소스에 삶은 소고기와 체코식 찐빵을 찍어 먹는 요리이다. 가이드님은 인생에 두 번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라고 하셨다. 가이드님은 스비치코바를 많이 먹으면 오른 팔에는 돼지털, 왼 팔에는 닭털, 가슴에서는 감자싹이 나온다고 유머를 하셨다.
동유럽은 위치적으로 중부 유럽에 속해 있는데 이곳은 독일 문화권이다. 이곳은 음식 문화에 있어서는 지옥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헝가리로 향했다. 우리는 프라하에서 1시에 출발해서 세시 반에 휴게소에 들러 30분을 쉬고 4시에 출발해서 6시경에 잠시 쉬었다.
우리는 유료 화장실에 도착했다. 0.5 유로 우리 돈 750원이다. 유료 화장실도 가보고 좋은 경험이었다. 유럽의 화장실들이 유료인 이유는 유럽 사람들은 질병이 기침이나 감염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화장실도 감염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유료 화장실의 시초가 되었다. 우스갯 소리로 서양의 화장실은 사립 학교이다. 왜냐하면 사립 학교는 학교마다 등록금이 약간씩 다른 것처럼 서양의 유료 화장실도 화장실마다 금액이 다르다.
우리는 드디어 헝가리에 도착했다. 체코 프라하에서부터 헝가리까지는 530km이다. 우리는 체코에서 헝가리까지 무려 7시간을 간 것이다. 유럽은 해가 일찍 진다. 나는 유럽 여행은 이동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읽을 책을 한국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헝가리 두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저녁 야경을 감상했다. 두너강은 독일어로는 도나우강이라고 한다. 나는 유람선에 탑승하여 샴페인을 주문한 후 위층으로 올라가서 도나우강 야경을 감상했다. 정말 야경이 아름다웠다. 건물들이 마치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것 같았다. 웨이터가 샴페인을 위층으로 가져 왔다. 샴페인을 마시면서 야경을 감상하는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경험한 사람만이 그 느낌을 아니까.
위층에서 도나우강을 끼고 도는 야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정말 헝가리 도나우강 야경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것 같았다. 밤에는 도시 전체가 화장을 한다더니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감상한 후 호텔로 돌아오자 샤워 후 잠에 빠져 들었다.
2014.1.16(목)
새벽 5시경에 잠이 깨었다. 이제 어제보다는 더 시차에 적응했다. 이제 3일째가 되니까 시차에도 많이 적응했다. 한시간 정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니 6시가 되었다, 나는 씻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음식이 어제보다 훨씬 많았다. 어제 조식에 비하면 진수 성찬이었다. 토마토, 오이, 콘 플레이크, 주스, 계란, 구워진 토스트 그리고 여러 종류의 빵이 있었다. 우리가 오늘 관람할 곳은 부다페스트이다.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부다는 산이 중심이고 귀족 중심의 도시이고 페스트는 신도시이고 평민 중심의 도시이다. 헝가리의 도로망은 바둑판 형태의 도로망인데 유럽의 건축 양식 중 특히 파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헝가리는 와인이 유명하고 고추도 유명하다. 우리가 요즘 잘 먹는 파프리카가 바로 헝가리 고추이다. 헝가리 세게드 의대 교수인 알베르토 센 죄르지 박사가 최초로 고추에서 비타민 C를 추출했다. 그의 딸이 비타민 C가 없는 괴혈병에 걸렸다. 그는 파프리카에서 비타민을 발견했는데 파프리카에는 100g당 비타민 C가 280mg이나 들어 있다. 무려 감귤(39mg)의 7배 가까이 된다.
우리는 오전에 고깔 모자를 연상시키는 7개의 뾰족한 탑이 인상적인 어부의 요새 전경을 보았다. 어부의 요새는 강변의 어부들이 망을 보던 곳이다. 중앙 아시아에서 575년부터 사람들이 헝가리로 이동했다. 흰 레이스를 두른 듯 아름다운 마차시 사원, 부다 언덕에 웅장하게 솟아있는 부다 왕궁,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겔레루트 언덕을 보았다.
이곳 겔레루트 언덕에는 제 2차 세계 대전 때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가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새삼 느꼈다. 이곳에는 감옥이 있었다고 하는데 독일어로 panuptikum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panuptikum은 영어의 panopticon과 같은 단어로 일망감시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한 눈에 죄수들을 감시한다는 뜻이다. 철학자 푸코가 권력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는 말이 panopticon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보는 자이고 권력의 지배를 받는 자는 보여지는 자이다.
이곳에는 베토벤 박물관이 있다. 음악가들 중에서 여자가 제일 많은 음악가가 베토벤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여인만을 사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줄리에타이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 배경지가 된 곳이 이곳 헝가리 부다페스트였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시인 김춘수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생각났다.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 보 상공으로 뛰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 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시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건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憤)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주일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으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非情)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 다 페 스 트의 소 녀여
이 시는 장편시로 연상 수법을 이용한 시이다. 김현승 시인은 이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 해방 후 우리 시단에서 생산된 사회성과 시사성을 간직한 시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백미편이다. 가장 박력 있는 표현으로 자유와 정의를 옹호한 시편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시에는 현대시의 새로운 연상 수법이 교묘히 배합되어 있다. 다뉴브강의 흐름을 한강에 잇게 하여 헝가리의 불행을 한국의 불행으로 감지케하는 수법은 보통의 시사성의 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참신한 수법이다.”
이 시는 헝가리에서 일어난 자유의 물결을 억압하는 소련의 비휴머니즘적 행위를 하는 소련에 비판을 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점심으로 헝가리 전통 요리인 굴라시를 먹었다. 굴라시는 소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인 수프로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비슷한 음식인데 가이드님이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똑같은 맛은 안 나기 때문에 굴라시의 한국식 이름이 오개장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3시간 반을 이동해서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의 분위기는 체코, 헝가리와는 사뭇 달랐다. 이 나라의 분위기는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갔다. 나는 호텔에서 샤워한 후 룸메이트와 소주 한잔 하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잠이 들었다.
2014. 1. 17(금)
우리는 아침을 먹고 현재 비엔나에서 19년째 살고 계신다는 가이드님을 만났다. 오스트리아의 학제는 초등 학교 4년, 김나지움 8년이다. 기술 학교에 다닐 경우에는 이틀은 이론을 배우고 3일은 회사에서 실무 수업을 배운다. 서울에는 25개의 구가 있는데 비엔나에는 23개의 구가 있다. 비엔나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w가 있는데 w는 비인의 약자이다. 유럽은 독일 문화권이어서 독일어를 쓰는 나라가 많다. 독일어에서는 w를 v로 발음한다. 우리는 wi-fi를 와이파이라고 발음하지만 독일어에서는 바이파이라고 발음한다.
비엔나는 독일어로 웨스터 라리히라고 부른다.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가이드님이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손님 중 세분이 빈에서 이런 대화를 하셨다고 한다.
A: 나는 비엔나에 가고 싶은데....
B: 나는 빈에 가고 싶은데.....
C: (가이드님에게 질문하며) 비엔나에서 빈까지 몇 km인가요?
비엔나에서 빈까지는 서울에서 한양까지의 거리와 같다. ㅎ 빈에서 유명한 대학은 빈 대학이다. 이곳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14명이 배출되었다. 이곳에서 1365년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 공민왕 때 빈 대학이 설립되었다.
우리 나라는 왕조의 이름이 있는 대학이 많다. 고려대, 조선대, 가야대, 백제대, 신라대 등이 있는데 참고로 신라대의 교가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현인 선생님께서 잘 부르신 신라의 달밤이다. 최근에 나주에 고구려대가 생겼다. 앞으로 쓸 수 있는 왕조대는 발해대이다.
빈 대학은 방학이 많다. 그래서 우스갯 소리로 학교가 비어 있어서 빈 대학이라고 한다. 넌센스 퀴즈 빈 대의 반대말은? 채운 대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공부를 언제 하는가? 틈틈이 한다. 가이드님은 오늘의 설명을 짧은 비엔나, 긴 여운으로 정하셨다.
우리는 먼저 함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이며 아름다운 분수라는 뜻의 쉔부른 정원에 갔다. 이곳은 마리아 테레지아와 관련 있는 곳이다. 그녀의 별명은 출산드라이다. 그녀는 5남 11녀를 낳았는데, 5남중 황제가 두명이고 11녀중 왕비가 네 명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아 앙뜨와네뜨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다. 이곳은 에전에 신성 로마 제국이었는데 이 당시에는 황제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전쟁을 많이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1월인데 가이드님이 우리에게 “이곳 정원이 가장 허접할 때 오셨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나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몽환적 색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의 내부를 관람했다. 벨베데레의 뜻은 라틴어로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원래 오히겐 장군의 별장이었다. 그가 그림들을 소장하고 저녁에는 파티를 열었다. 이곳은 그의 사후에 여자 조카 Victoria에게 상속되었는데 그녀가 돈을 흥청망청 써서 함스부르크 왕조에게 헐값에 이 땅을 팔았다.
1920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이곳을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미술관으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가치는 40조원이고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의 가치는 1조원이라고 한다.
클림트의 작품을 아르누보(new art)라고 부른다. 그는 금속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작품에서 노랑색을 즐겼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팜므 파탈 즉, 치명적 여인의 모습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에곤 쉴레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는 1890년에 태어나서 1918년에 죽었다. 29세만 살았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표현주의이다. 표현주의란 자신의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의 대표작 ‘가족’에는 아버지도 없고 출구도 없고 엄마는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의 내면적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대작 ‘절규’를 그린 뭉크는 실제로 우울증 환자였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으로 비엔나 관광의 시작점이며,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인 성 슈테판 사원을 관람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비엔나에서 짤즈 부르크로 향했다.비엔나에서 짤즈 부르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짤즈 부르크에 도착하니까 시간이 6시가 넘었다. 그곳에서 현지 가이드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짤즈는 소금(salt)이라는 뜻의 독일어이고 부르크는 성이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우리는 먼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도레미송을 불렀던 장소로 유명한 미라벨 정원을 관람했다. 이곳을 보니까 마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도레미송이 귓전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음으로 이색적인 간판들이 인상적인 짤즈 부르크의 쇼핑 번화가인 게트라이데 거리로 향했다. 이곳에는 중국 음식점도 있었고 여러 가지 종류의 물건들이 판매되고 잇었다.
내가 함께 동행한 여선생님들은 번화가만 가면 스타벅스부터 찾았다. 역시 스타벅스의 인기는 세계적이었다. 나는 여선생님들로부터 까페 라떼 한 컵을 받았다. 나는 한국에서도 스타벅스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종이컵이나 캔커피를 마시거나 커반(커피에 반하다) 등에서 커피를마신게 전부였다. 나는 한국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오스트리아 짤즈 부르크에서 누렸다.
외국에서 마시는 스타벅스 커피의 향은 너무 맛있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세기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17세까지 살았던 모차르트 생가에 갔다.
건물은 노랑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중요한 건물에는 노란색으로 페인트칠한다고 한다. 이 작은 도시에서 파원과 관측자 사이의 거리가 좁아질 때에는 파동의 주파수가 더 높게, 거리가 멀어질 때에는 파동의 주파수가 더 낮게 관측되는 현상인 도플러 효과를 발견한 도플러도 탄생했다니 참 대단한 마을이다.
나는 도플러 효과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파동과 관련된 이론이 무엇인지 묻는 주관식 문제에 정답을 포플러 효과로 썼다. 선생님은 내가 알기는 아는데 잘 못 쓴 것 같다고 맞았다고 해 주신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단연 유명 인사는 모짜르트이다. 모짜르트 호텔, 모짜르트 음식점, 모짜르트 초콜렛, 모짜르트 생가, 모짜르트 거리 등 모차르트가 안 들어가는 이름이 거의 없었다. 이 마을은 모짜르트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짜르트는 사후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리는 짤즈 부르크를 관람한 후 호텔로 향했다.
흔히들 중국 여행은 발광(발로 뛰는 관광)이라고 부른다. 나는 유럽 여행은 발차광(발로 뛰고 차에서 자는 관광)이라고 부르고 싶다. 발차광의 여파로 호텔에 들어가자 마자 샤워 후 꿈나라로 향했다.
2014. 1. 18(토)
나는 아침을 먹고 오스트리아의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소금 마을 할슈타트의 짤즈 캄머 굿으로 이동했다. 짤즈 부르크에서 할슈타트의 짤즈 캄머굿까지의 거리는 1시간 정도이다. ‘할’은 켈트어로 소금이라는 뜻이다.
할슈타트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이며 드라마 <봄의 왈츠>의 촬영 배경지였던 동화처럼 아름다운 호수 지대이다. 마을 전체가 아기 자기한 동화 마을이다. 이곳은 짤즈 부르크의 동쪽 일대에 펼쳐진 호수로 둘러 싸인 산악 지대이다. 이 지방은 소금 광산이 있어서 소금 산업으로 번영했던 곳이어서 짤즈 캄머 굿이라는 이름도 <소금의 영지>라는 뜻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치 요정의 마을레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곳에서 비엔나 전통 요리로 호이리게를 먹었다. 호이리게는 다양한 소세지와 고기 요리로 감자 등이 함께 나오는 음식이다.
우리는 식사를 한 후 유람선을 탔다. 강 바람이 약간 추웠다. 우리는 유람선에서 코코아차를 마신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서 바라본 마을 정경은 마치 내가 요정의 세계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우화등선(羽化登仙)’ 어깨에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려 한다는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유람선에서 내려 가게를 둘러본 후 츠벨프 호른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의 정상에 오르면 스위스의알프스 산맥이 보인다. 나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를 바라보니 마치 내가 구름을 타고 여행하는 손오공인 것처럼 느껴졌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산의 정상 부분으로 올라갔다. 눈 위에 ‘현종 왔음’이라는 글귀가 눈에 보인다. 한국인은 네덜란드에 가서 풍차 뒤에 ‘철수 왔다 감’이라는 글귀를 써 놓고 간다고 한다. 눈 위에 글을 쓰는 것은 괜찮지만 풍차 뒤에 글을 쓰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아래로 내려간 후 조금 쉬었다가 버스에 탔다. 우리는 체코로 향했다. 짤즈 캄머 굿에서 체코까지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조금 자다가 잠에서 깨었다. 버스는 숲 속을 지나고 있다. 앞에는 가로등 불빛도 없다.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전설의 고향을 찍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고 있다. 나는 “혹시 기사님이 길을 잃으신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우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인 체스키크롬로프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이발사의 다리가 있다. 이발사의 다리이다. 이 다리에는 슬픈이야기가 있다.
체스키크롬로프의 성주에게 후계자 없어서 영주는 루돌프라는 서자를 데리고 온다. 루돌프는 이 다리 옆에 있는 이발사의 딸에게 반해 청혼을 한다. 그리고 둘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발사의 딸이자 성주의 며느리가 자신과 루돌프의 침실에서 아침에 목이 졸려 죽는다.
루돌프는 범인을 찾는 다며 성의 주민들을 한명씩 이 다리에서 죽이기 시작한다. 그 광경이 무나 끔찍해서 이발사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했다. 그리고 이발사는 사위인 루돌프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발사는 루돌프가 정신분열증환자라는 걸 알았지만 사위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사위의 사랑을 영원히 지켜준다. 이 사실을 안 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의 중간에 십자가상을 세우고 이발사를 위로 했다고 한다.
우리는 체스키크롬로프의 상징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에서 자유 시간을 가진 후 호텔로 향했다. 이제 여행은 종점으로 향하고 있다.
2014. 1.19(일)
우리는 아침을 먹고 독일 뉘른베르그로 향했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독일 뉘른베르그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 12시에 독일 뉘른베르그에 도착했다. 독일어로 부르크는 성이라는 뜻이고 베르그는 산이라는 뜻이다. 뉘른베르그는 히틀러마저도 사랑한 도시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뉘른베르그 호프집만 가봤다. 이곳은 한국의 뉘른베르그보다 100배는 조용하다. 호프(HOF)는 광장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독일 사람들에게 맥주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마시는 물과 같다.
이곳에서 우리는 쇠창살에 잇는 황금 바퀴를 세 번 돌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중앙 광장을 구경했다. 나는 페그니츠강의 오른쪽에 있는 성 양로원도 구경했다.
나는 시간이 여유로워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켜서 야외에서 인솔자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인솔자님은 해외에 많이 다니시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본 곳이 별로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인솔자님께 “이렇게 멀리 다니면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인솔자님은 “이게 일인데요. 뭘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인솔자님과 이야기한 후 주변을 둘러 봤다.
내가 함께 동행하는 선생님들을 만나서 독일식 햄버거를 사드렸다. 원래 햄버거란 독일의 지명인 함부르크에서 온 말이다. 우리는 버스에 탄 후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감자 조림, 야채 샐러드 그리고 체코 전통 요리인 스비치코바가 나왔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근처에 호프집에 들렀다. 오늘이 이번 유럽 여행 중 호텔에서 묵는 마지막 밤이다.
우리는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주변 호프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 팀 말고도 이번 여행에서 같은 버스에 탑승하여 여행을 함께 한 분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벌써 시간이 저녁 11시가 넘었다. 그렇게 동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2014. 1. 20(월)
이제 동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로맨틱 가도의 하이라이트이자 중세의 보석 상자라 불리우는 로텐부르크로 이동했다.
뉘른베르그에서 로텐부르크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이곳에서 슈니발렌을 샀다. 슈니발렌(Schneeballen)은 망치로 깨먹는 독일 수제 과자이다.
우리는 점심때 한식당에 갔다. 메뉴는 된장 찌개와 오이 무침, 김치와 오뎅 등이었다. 일주일만에 처음 먹는 한식이었다. 나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주방 용품점에 들렀다. 나는 그곳에서 주방용 칼, 주방 가위, 도마, 손톱 깎이 등을 구입했다.
드디어 우리가 출발할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가까워진다. 처음 며칠은 시간이 좀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이 빨라진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10대때는 10km의 속도로 달리고 70대때는 70km의 속도로 달린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한 후 구입한 물건들을 다시 가방에 넣고 짐을 정리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기상 악화로 인한 한국발 비행기의 출발 지연으로 한국 출발 시간이 한시간 정도 늦어진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10유로(한화 15000원) 쿠폰을 받았다. 우리는 수속을 마치고 식당을 찾다가 볶음밥을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을 하고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한시간 정도 지나자 저녁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나는 저녁을 먹어서 비빔밤을 택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창가 쪽(window seat)으로 자리를 잡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 국제 공항까지의 비행 시간은 10시간 10분이다. 비행기를 타면 다른 나라로 갈 때에는 역풍으로 가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는 순풍을 받고 와서 비행 시간이 좀 단축된다.
나는 식사를 한 후 영화를 한 편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유럽 여행에서의 긴장이 풀렸나 보다.
2014. 1. 21(화)
잠에서 깨어보니 아침 기내식이 제공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몇 시간 지나니 드디어 인천 국제 공항이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 30분이다. 흔히들 서유럽 여행은 건축 예술이고 동유럽 여행은 음악 예술이라고 한다. 유럽 여행은 문화 탐방이다. 나는 이번 동유럽 여행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의 대부분이 동유럽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에 이런 말이 있다. "Life is a voyage." 인생은 항해이다. 나는 이번 동유럽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체코와 헝가리의 야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들 나라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야경의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느껴졌다.
짤즈 부르크의 멋진 자연과 짤즈 캄머 굿의 동화 마을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본 알프스 산의 풍경은 나를 그림에 취한 신선인 화중선(畵中仙)으로 만들어 놓았다. 독일의 안개와 음산함은 삶이 그렇게 장미꽃을 뿌려 놓은 듯한 탄탄대로가 아니라는 암시를 던지는 듯 하다. 여행은 할수록 중독에 빠진다고 한다.
이번 유럽 여행은 나에게 이소아홀라가 말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플로그가 말하는 신기성의 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은 나그네의 길이다. 이 나그네의 길을 통해서 나는 세상에 대한 유리 거울을 갖게 된다. 이 여행이라는 유리 거울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 눈 뜨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의미이다.
세계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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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여행을 하셨네요... 섬세한 여행기를 적어주셔서 읽는 동안 내내 그 곳을 여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여행을 다니셔서 이렇게 좋은 글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여행기 참 재밌게 올리셨습니다~~^.^~
와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멋진 글 감사히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