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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대폭 삭감에 '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 치명상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사회적 가치 지표(SVI, Social Value Index) 측정기업 모집이 오늘(13일)까지인데…' 가을철 늘어난 행사 준비 등으로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을 헉헉대며 처리하면서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한 차례 모집 기한 연장이 된 터라서 이번에도 신청하지 않으면 올해 더 이상 모집은 없을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였다. 'SVI 신청하지 않으면 앞으로 정부 사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공공 구매, 세제 혜택 등에서도 제한받는다고 했는데…' 사업 안내인지 협박인지 모르겠는 문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결국 하던 일을 멈추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모집 사이트에 회원가입하고, 신청 내용 기재하는데 이게 금방 끝날 일이 아니다. 첨부서류 작성하려면 오늘 해야 할 다른 일들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일단 첨부서류 없이 신청은 해놓고, 하다 만 일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갔다. '야, 이제 그 사회적가치 지표 만들고, 정리하고 그러려면 또 일이 늘겠네. 이거 참…' 몸은 다른 일을 하러 가면서 머릿속은 사회적가치지표에 대한 우려로 가득 차 있었다. '행정서류는 누구를 위해 생산되는가?'라는 밑빠진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예산 대폭 삭감에 '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 치명상
할 일들을 처리하고 눈 좀 붙이고 칼럼을 쓰는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반이다. 이 칼럼도 한 차례 마감 기한을 넘긴 것이니 더 미룰 수가 없다. 내가 게으르게 살고 있지는 않은데 일이 줄지를 않는다. 전생에 무슨 나라를 팔아먹은 대역죄를 지었는지, 현생에 소멸 위기의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아주 진이 빠진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이라 그런 거라고 위로해보려 했지만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을 보면 내 일은 더 늘어나거나 아니면 그 늘어남에 지쳐 일을 포기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5년마다 <사회적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하라고 돼 있고, 이미 세 차례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 발표했지만 유독 이번 4차 기본계획 발표 때에는 '육성'이라는 단어를 쏙 빼고 그냥 '기본계획'이라고만 발표했다. '육성'을 포기한 정부의 숨은 뜻이 있었다면 그 뜻대로 될지도 모르겠다. '사회적기업 혁신 전략'이라고 포장돼 발표된 이번 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을 이미 '사회적기업 방치 선언'이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이런 불길한 예감은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또 불길한 예감은 종종 틀리지를 않는다.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정부 예산안 중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대표적인 사회적경제 조직인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소셜벤처의 예산 삭감 내역을 보면 정부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할 의지가 없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보도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예산은 작년 2021억 원에서 786억 원으로 61% 삭감, 협동조합 예산은 작년 75억 원에서 7억 8천만 원으로 90% 삭감, 마을기업은 작년 70억 원에서 27억 원으로 61%가, 소셜벤처 사업은 작년 20억 원에서 올해 0원으로 100% 삭감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은 이명박 정부 때 제정된 법인데 이명박 정부 시절의 올드보이들이 많이 컴백했는데도 사회적경제 정책은 육성은커녕 계승조차 안 할 모양이다. 이렇게 줄어든 예산 속에는 현장을 지원하는 각 지역의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예산도 들어있다. 앞으로 중간지원조직이 맡았던 업무들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직접 수행하게 하겠다고 하는데, 정작 일이 늘어날 진흥원의 예산도 753억 원에서 291억 원으로 61%가 삭감됐다고 하니 중간지원이 제대로 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현장의 사회적기업들은 중간지원을 받기 어렵게 됐으니 일이 늘어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인건비 지원도 안 할 것이라고 하니 새로 늘어날 일은 결국 기존 인력이 처리하거나 포기하게 될 터, '사회적경제'인 사경(社經)은 정말 사경(死境)을 헤매게 됐다.
인건비 안 준다?…'일자리' 강조할 땐 언제고
정부의 사회적경제 관련 계획에서 읽히는 방침은 사회적경제 기업들도 일반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정책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별도의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이 특혜라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아니 솔직히 사실이 어떻든 그렇게 판단하기로 작심한 것 같다.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에서 읽히는 정부의 태도는 '사회적기업들이 그동안 사회적 가치를 늘리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인건비만 열심히 빼먹으며 예산을 축냈으니, 이제 인건비를 안 줘도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기업만을 지원하겠다' 이다. 그래서 “인건비·사회보험료 등 직접지원은 일반 중소기업과 동일하게 각종 유사 지원제도로 통합하여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일견 합리적인 예산 운용을 위한 혁신이라고 보일 수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 이런 정부의 태도는 요즘 유행어로 '드라마틱한 엑시트'다.
다 알다시피 사회적경제는 시장의 철수, 행정의 실패로 생기는 공공수요의 결핍 즉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활동이다. 정부가 사회적기업의 주요 지표로 살펴보겠다는 '사회적 가치'는 바로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활동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다. 그 가치를 민간기업의 경제활동에서 만들고 있기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가치는 추상적이고 정성적이고 성과의 측정을 위한 결과 파악에 시간이 걸린다. 해마다 성과를 정량적으로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행정의 요구에 부합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의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서, 행정용어로 '거양'하기 위해서 결국 가장 확실한 지표인 일자리 증가 지표를 만들도록 독려한 것이 정부였다. 정부가 말했듯 “「사회적기업법」시행('07~) 이후 인건비 중심 재정지원으로 사회적기업 이미지가 정부 일자리사업 수행기관으로 고착”하게 된 실상의 근본원인은 정부가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로 2022년 현재 사회적기업 인증 기업유형에 △일자리제공형: 2349(66.4%)이 다른 유형 즉 △ 사회서비스제공형: 271(7.7%), △ 지역사회공헌형: 309(8.7%), △ 혼합형: 207(5.9%), △ 기타(창의·혁신)형: 398(11.3%) 보다 압도적으로 많게 된 것이다. 정부가 인증을 하면서 계속 '일자리제공형'의 인증을 쉽게 해준다는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에 민간이 그렇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늘려 부정수급을 하는 행태들도 그런 행정의 가시적 성과 드라이브가 조장한 면이 적지 않다.
사회적가치 지표 만들고도 5년 허송한 이유
이러한 문제를 이심전심 느끼면서도 쉬쉬하던 정부와 민간이 함께 사회적가치 지표를 만들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고 사회적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한 것은 이미 2018년 <제3차 사회적기업 육성 기본계획>에도 있는 내용이다. 정부의 재정지원, 공공 구매 지원, 금융 지원 등의 심사 시 사회적 가치 지표를 사용하겠다는 발표는 이미 지난번 기본계획에 담겨 있던 것이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 그 실행은 미미했다. 왜 그럴까?
돈이 안 되고 누구도 안 해서 생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회사를 차렸다고 가정해보자. 정말 뜻 같고 손발이 척척 맞는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일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직원을 취약계층에서 고용해야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 쉬워진다. 그런데 취약계층 출신은 대체로 노동역량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일당백으로 일을 해야 할 판에 돌봄이나 배려가 필요한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더구나 대표는 인건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편법의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편법을 묵인, 방관해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민관 상생(?)의 성과지표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가치 지표가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 상황을 개선하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민관이 손잡고 지표를 만들 수 있는 여건부터 함께 조성했어야 한다. 현장의 부담을 더 늘리지 말고 중간지원을 더 촘촘히 현장밀착형으로 해서 사회적 가치 지표를 만들어 내는 일을 도와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4차 기본계획 내용은 책임 전가이고 후안무치다. 부상자에게 연고를 발라줘 상처를 치료했어야 할 정부는 그냥 폭탄을 터뜨려 버리겠다는 태도다. 둘 다 상처를 없애기야 하겠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다.
이전 나의 칼럼 내용의 일부를 다시 소개한다.
“시장경제가 철수한 곳을 메꿔주던 행정력도 재정부담으로 점점 그 역할을 해 주기 어려워진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된다. 결국 촌민은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다양한 권리, 기회, 자원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사회적 배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활동이 바로 사회적경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그 공백을 메꿔 보완해 줄 수 있는 경제활동이 바로 사회적경제 활동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 지역인 촌은 사회적경제의 기회 지역이기도 하다. 촌의 다양한 '사회적 배제' 상황은 사회적경제의 새롭고 무궁무진한 비즈니스의 기회가 된다.”(공정귀촌, 뭐 해서 먹고사나? ① 2023. 02. 21)
사회적경제 활동가들, 공정귀촌 동지 절실
소멸위기의 촌은 사회적경제가 꼭 필요한 공간이다. 수익성이 있을 만한 비즈니스가 안되는 업종의 일반 중소기업들이 떠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일반 중소기업의 월급 수준, 복지 수준을 챙겨주면서 사람을 고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나마 도움이 됐던 인건비 지원도 정부는 끊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이렇게 때려잡고 소멸위기의 촌을 어떻게 살리겠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이미 현장에서는 '악'소리가 나고 있다. 십 년이 넘어도 아직 '사회적경제 기본법'이나 '마을공동체 기본법' 등 관련 법도 입법해내지 못하는 국회에, 더구나 예산을 깍기는 쉬워도 늘리기는 쉽지 않은 예산심의 과정에서 뭔가 큰 변화가 생길 것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좋다. 이렇게 아예 바닥에서 다시 건강하게 판을 짜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 영혼이 건강한 동지가 필요하다. 위기 상황에서 일단 나의 안전을 확보하고 상대방을 돕는 것이 원칙이듯, 일단 사회적 배제 상황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 즉 사회적경제 조직을 먼저 같이 세울 동지가 필요한 것이다. 전국의 많은 소멸위기의 촌에서 일하는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이 그런 동지를 간절히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공정귀촌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공정귀촌이 일어날 수 있을까?
출처 : 사경에 처한 사회적경제와 공정 귀촌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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