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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보니 할아버지 개인택시입니다. 일흔 살 노인이 말도 어눌하고 운전도 답답합니다.
내리고 싶었는데 인정상 그냥 갔어요. 오늘 강변, 올림픽 도로가 말도 못하게 막힌
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더이다. 속으로 운전이나 잘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명동성당을 가려던 참인데 남대문에서 6000원 주고 내렸어요. 하루12시간씩 15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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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 돈 벌다가 일찍 죽고야 말 것입니다. 학원에 파킹하고 올 때 담배를 놓고 와서
cu에 들렸어요. 래종아이스플레소 한 갑이랑 '투 플러스 원'하는 젤리를 샀더니 주머니가
촌놈마냥 빵빵해졌어요. 보통은 담배를 피우면 군것질을 안 하는데 저는 둘 다 합니다.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고, 담배를 군것질로 끊었는데 다시 피우면서 뇌가 인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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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모양입니다. 광동에서 나온 비타민, 사각 죠스, 마이고미를 거의 매일 사먹는 것
같아요. 죠스 3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저 남대문이 어처구니없이
불에 타버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울었을 것입니다. 남대문은 국보1호가 아닙니까?
4월에 노트르담성당이 불탔을 때 프랑스 시민들이 보여준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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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문화수준차이가 나는 것 같네요. 남대문은 과거 상권1등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간 집구석 같이 텅 빈 느낌입니다. 제게도 남대문의 추억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팥죽 골목 뿐 아니라 화방, 아동복 도매시장 등등 오늘은 훨씬 오래전 추억이 떠올랐어요,
우리시대는 탁아소1년, 초등학교6년, 중학교 3년은 의무교육이었고요 고입 연합고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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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습니다. 숭실고를 갈 생각이었는데 문득 대학생이 멋져보여서
인문계를 진학했어요. 그런데 3년 내내 깡패 짓만 하다가 겨우 졸업을 했습니다. 고교3년
얘기를 쓰자면 삼국지 1권 분량은 되는데 패스할게요. 학생이 출결을 개의치 않았으니
말해 뭐합니까? 하필 질풍노도가 고1때 와서 원 없이 놀았습니다. 우리 때는 수시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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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없었고 학력고사를 본 후 대부분 전기에 원서를 넣고 떨어지면 패자부활전이
후기가 유일했습니다. 서울로 대학을 가야 하는데 도대체 담임이 원서를 써주질 않는 겁니다.
2박3일을 졸라서 경희대 한방과를 넣고, 이튿날 단국 대 도예과(한남 동)를 지원했어요.
그땐 눈치작전도, 복수지원도 모두 가능했으니까요. 2,600원 기차표, 9시간 가는 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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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로 상경했으니 성과가 있어야 하잖아요. 명동 입구 미도파 건너에 코스모스백화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세계, 롯데, 미도파, 그리고 코스모스까지 4개가 모여 있었어요. 8층
커피숍에 스튜어디스처럼 생긴 미스 박 누나가 커피숍 직원이었어요. 촌놈이 서울 심장부
고층에 앉아 처음으로 비엔나 거피를 마셨다는 것 아닙니까? 드디어 나도 인 서울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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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 니들은 다 죽었어 했어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을 죽 때렸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제 친구 원규 놈은 기억을 할 것입니다. 캄캄할 때 나와서 호떡을 사먹은
곳이 남대문 근처였어요. 당시 스물 두 살 쯤 되었을 그 누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호암아트홀이네요. 코웨이가 전세를 내고 쓰고 있었어요. 삼성 창업주 호가 ‘호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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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 덕에 오늘날 우리가 IT강국을 하고 있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신혼살림을
아현 동과 만리 동에서 했어요. 아내와 호암아트홀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는데
영사기 돌리는 외국아이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저보다 연극
영화에 관한한 문화 레벨이 더 높았어요. 진수나 유미는 결혼을 했겠지요. 가들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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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계속 하나 몰라? 대학로 콘서트나 바탕 골 뮤지컬을 돈 내고 다닌 것은 순전히 아내
덕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카르페디엠’을 히트시킨 명화 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아내와 이혼한지 2년이 넘어가는데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파킹 해놓고 하는
서울 뚜벅 이도 괜찮은 것 같아요. MB가 고가란 고가는 다 철거했는데 웬일인지 서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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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종근 당 쪽으로 한 블록가면 바로 이런 그림의 고가 밑
외딴방에 매일성경 편집장 대영이가 연신 졸업 때까지 자취를 했을 것입니다. 저기 언덕백이
‘평안교회‘도 보이네요. 시립미술관-덕수궁 길로 길을 잡았어요.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나 막다른 골목입니다. 근무자에게 출입을 물었더니 러시아 대사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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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어린이 공원 뒷길에 조형물이 있어서 한 컷 찍었어요. 오늘날 페미니즘은 이곳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길이 아닌 계단을 몇 개 건너뛰고 정동교회 앞으로 나왔어요. 감리교
아니, 우리나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예배당 중에 가장 수려한 건물이 정동교회 같네요.
꼬맹이들이 성지순례를 왔는데 목에 이름표를 걸고 한 무더기가 모여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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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세 노래 중에 정동 교회당이라는 가사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국인 아펜젤러가
세웠을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교회 중에서 성공회 다음으로 감리교가 가톨릭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은데 바로크식 건축물도 상당히 비슷합니다. 돌담길 로터리 출구 쪽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립미술관은 건너뛰어야 할 것 같아요. 에스더 서울 예고 붙고 교복 맞추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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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70만원과 돈 바꾼 맞춤집을 찾아봤는데 못 찾았어요, 그때 교복 맞추고 나오면서
샤갈 전을 시립 미술관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도록도 샀어요. 정동 극장에 ‘장 녹수’ 전
입간판이 붙어있어서 팜 플랫을 보았더니 시간이 맞지 않았어요. ‘이길 따라 한 걸음씩
나와 함께“ 고고싱! 정동 극장 뒤편으로 ‘중명 전’을 개방하고 있어서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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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 전은 덕수궁에 딸린 별전으로 원래 이름은 ‘수옥 헌‘이었으나 1904년 덕수궁 화재
사건 때 고종이 이 곳으로 기거하면서 중명 전으로 개명하였어요. 대지 727평, 236평의
별전이며 덕수궁 본궁과는 돌 담 벽 사이로 떨어져있는 곳입니다. 일부러 곳 발을 세워
담 넘어 본궁을 찍긴 했는데 잘 안 나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선교사 숙소로 지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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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소실되자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틴(Sabatin)의 설계 감리 하에 2층 벽돌 건물로
재건되었고 고종이 기거하면서 중명 전이 되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고 을사오적에 의해 조약이 이 곳에서 강제 체결되면서 을사늑약으로 인한 망국의
장소로 비운을 겪게 됩니다. 기념관에 전시된 피규어가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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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이후에는 덕수궁의 궁역 축소화에 따라 덕수궁 궁역에서 제외되어 경성구락부가
민간으로 인수하여 외국인들의 사교목적의 건물이 되었고 1925년에는 구락부 조리실의
화재사고로 외벽을 남기고 모두 전소되었다가 이후 재건하게 되었는데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국유재산으로 편입되어서 국가가 관리하였고 1950년 6.25 전쟁 당시에는 서울을 함락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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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과 공산당의 기지로 사용되었다가 수복 이후 다시 대한민국 국유로 복귀됩니다. 헐.
숨이 찰만큼 버라어티한 역사입니다. 1963년에는 박대통령이 영구 귀국한 영친 왕과 이 방자
부부에게 중명 전 사용권을 이양하여 영친 왕 부부 소유지가 된 적도 있어요. 영친 왕이 사망한
이후 다시 민간에게 위탁, 매각되면서 점차 역사성을 상실하며 일반점포 및 소유지로 전락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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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과정에서도 추문이 끝이지 않았고 심지어 앞뜰이 주차장으로 쓰였다니 주인을 잘못만나
한 많은 건물이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고종의 모조 옥쇄를 만져보고 박물관을 빠져나왔습니다.
예원학교 건물이 보입니다. 제가 에스더를 예원을 보내지 않고 예고를 보낸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인즉 돈 때문입니다. 서울예고 입학이 당시에 예원에서 70%를 받고 특차포함30%가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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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을 했기 때문에 인문계에서 서울예고를 입성하기란 서울 대 가기보다 힘들었는데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8수를 하는 동안 에스더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지만 오늘날
경쟁력은 8수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예주가 ‘배화여고‘출신이라 위치를 신경 쓰고 있는데 배제
학당 터만 있고 배화는 보이질 않네요. 이화여고 건물은 학교가 박물관입니다. 수위가 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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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지 말라고 깐깐하게 굽니다. 요새는 수위라고 하면 욕먹습니다. 보안 실 근무자라고
해야 됩니다. 남아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고급 카페들이 가을 정취를 살려주고 있네요.
덕수궁 돌담길에서 연애를 하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가정법원 때문이라고 하던데 정말일까요?
이 문세 말고 윤아 버전으로 추억을 소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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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바람 날씨 체크완료
가벼운 옷차림 이미 준비완료
주말에 데이트 할래?
벌써부터 맘이 설레
이번 주는 내가 준비 할게
보고픈 맘으로 이미 떨리는 중
설레는 맘으로 온종일 검색 중
덕수궁 돌담길 어때?
날씨도 참 좋다는데 빨리 만나고파
기분 어때 My girl my girl my girl
너랑 같애 My love my love my love
함께 이 길 두 손 꼭 잡고 걸어 간대도
절대 헤어지지 않아
덕수궁 돌담길
완벽해, 완벽해
Oh my love oh my love only u
달콤해 상큼해 너는 사탕 같아
짜릿해 아찔해 롤러코스터 같아
이쯤 해서 파스타 어때?
그리 멀지 않을 텐데
지금 바로 갈까?
기분 어때 My girl my girl my girl
너랑 같아 My love my love my love
함께 이 길 두 손 꼭 잡고 걸어간대도
절대 헤어지지 않아
덕수궁 돌담길
지금 내가 하려는 말
누군가에겐 식상한 말이겠지만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그 말
너를 사랑해
따뜻하게 내게 내게 기대
부드럽게 내게 내게 말해 널 사랑해
파란 하늘과 저 햇살처럼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기분 어때 My girl my girl my girl
너랑 같애 My love my love my love
함께 이 길 두 손 꼭 잡고 걸어간대도
절대 헤어지지 않아
덕수궁 돌담길
사랑해, 사랑해
Oh my love oh my love only u
함께 이 길 두 손 꼭 잡고 걸어간대도
절대 헤어지지 않아
덕수궁 돌담길
2019.10.20.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