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초백년사 편찬위원 모임이 새로 열린 사무실에 있다한다.
내가 퇴직한 후 가진 직함이라면 직함인데 영 어색하고 애매하다.
내가 맡은 학급의 문집이나 중간 관리자일때 직원들의 연수록을 편집한 적은 있지만
거창한 백년사의 편찬에 참여할 만큼 나의 공부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모교인 대서초 백년사 준비나
신병호 선생님이 과제로 주신 '마륜지' 편찬에 공부가 될까하고 마지 못해 참여하고 있다.
우체국 2층의 사무실은 폐허였던 모습과는 다르게 잘 정리되어 있다.
긴 테이블이 있는 사무실이 있고 작은 방엔 컴퓨터도 3대나 설치되어 있다.
사무실 벽엔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가고 있다.
조금 늦어 들어가니 처음 오신 송재겸 선생까지 3명이 앉아 있고
사무실에서는 사무국장 신현식이 바쁘다.
안 오셔도 된다는 송원하 회장이 오시자
병섭형이 진행을 한다.
일의 분담과 진행상황을 설명하시는데 난
노트북을 꺼내 적다가 장별로 집필 책임자를 정하고
정례모임을 가지며 조정 확인하자고 한다.
병섭 형은 자료만 있으면 편집은 쉽다고 우선 사진과 문서 등의 스캔을 하자 하신다.
경험이 많은 형의 말에 동의하고 스캔하겠다고 하면서도
난 그 기준을 잡아 쓸데없는 일을 줄이자 한다.
조응현과 송재겸은 일이 있다고 먼저 가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송회장님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병섭형과 신국장과 함께 뙤약볕을 걷는다.
난 진미상회 성철이 아버지 이영기씨한테 인사를 하는데
그 분은 날 몰라 보시다가 알듯말듯 하신다.
동강식당에 들어서자 태주 형님이 여전하시게 꼿꼿히 서 계신다.
오랜만이라며 반기는데 난 인사드린지가 오래되어 죄송하다.
주방에 계신 형수님도 건강하시다.
홀과 방에 손님들이 많다.
방에 가 넷이 앉는데 신국장이 소주와 맥주를 주문한다.
나오며 다시 반기는 태주 형님께 창래의 안부를 물으니 대전에서 지낸단다.
사무실로 걸어가며 진미상회 앞에 앉은 어른들이 회장꼐 말을 건다.
백주년에 대해 어르신들의 관심이 많다.
나도 인사를 드리니 어느 분이 얼굴이 익다고 하신다.
기념식에 대해 신국장은 내게 설명을 하는데 난 모르겠다고 한다.
점심 때 마신 커피 때문인지 낮잠도 오지 않는다.
범재등에 올라가 톱을 들고 대밭에 가 대나무를 대엿개 벤다.
고추 두둑 양쪽에 두개씩 박고 그 사이에 흰 비닐끈을 늘여 맨다.
비닐 코팅된 철사로 고추를 잡아 매니 다 맬 수도 없고 굵어진 줄기를 뚫고 들어간다.
며칠 전의 바람없는 작은 비에도 가지가 몇 개 찢어져 땅에 떨어졌다.
7월 장마가 오고 또 올수도 있는 태풍에 이 고추들은 어찌 버텨낼 수 있을까?
난 익기 전에 푸르른 고추만 따 먹으면 되지만 선아네 고추가 뿌리내리지 못했으니
내 고추도 몇 개는 빨갛게 익혀야 할 듯도 한데.
겨우 열그루씩 세 두둑을 매주며 오가니 땀에 젖는다.
처음 맨 줄은 늘어져 가지를 잡지 못하고 아래로 쳐진다.
짧은 끈으로 둘 사이를 묶어 준다.
손으로 당기니 힘이 없다. 그래 꼭 그 정도만 견뎌다오.
기역자 쇠삽을 들고 과수 묘목 옆의 풀을 찍는다.
그들은 벌써 날 비웃듯이 흙을 덮어버렸다.
줄기가 나온 뿌리 부분을 맞춰 찍어내려하지만 돌에 탁탁 튀어 오른다.
오른쪽 팔꿈치는 여전히 편치 않다. 중국 여행의 묘한 후과다.
5시가 다 된다.
얼른 산에 가야는데 늦었다.
두방산 바위 사이에 나리가 있을 것이다.
밭을 내려와 키 큰 모시풀 옆에 서 있는 차를 끌고 부지런히 당곡으로 간다.
등산로 입구에 세우고 나서니 5시 20분이 되어간다.
6시 20분에 내려와 바보의 퇴근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6시 40분쯤에 집에 간다면 아직 해질 시각은 한시간이 더 남았는데 매여 있는 내가 보인다.
백수가 일하는 이도 맞지 못하고 놀러다닌 일은 더 미안한 일이다.
완만한 오르막 경운기 길 지나 가파른 지그재그길을 큰 걸음으로 올라간다.
숨이 가뿌다. 금방 두걸음에 한뻔씩 숨을 거칠게 몰아낸다.
25분쯤 지나 해절암 암반수에 들어간다.
물은 조금 줄었다.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물은 맛있다.
얼굴에 물을 두어번 붓고 나온다.
전망대에 오르자 고흥으로 가는 4차로 도로 양켠으로 작은 동강초와 소재지가 보인다.
여자만 득량만은 흐릿하다.
몸을 돌이키는데 진황의 나리가 풀숲 사이에 보인다.
반가이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벌써 져 가고 있다.
정상으로 가는 뱌위길 사이에 작은 나리들은 시들었다.
역광으로 찍어보기도 한다.
6시가 지난다.
벌교쪽과 봉두산 너머 보이지 않은 득량도를 가늠하고 정상가기를 포기한다.
준환이네로 가는 농로가 내려다 보인다.
준환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귀나무 꽃과 엉겅퀴를 찍고 내려오는데 바보가 전화했다.
술담화에서 보낸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문자로 보냈는데 저녁에 먹자고 얼른 온댄다.
동강이라고 하다 산이라 말하고 미안해 물을 사 가겠다고 한다.
걷지 않고 뛰듯 내려온다.
차로 돌아오니 6시 20분이다.
동강 농협마트에 들러 물과 소주와 맥주를 산다.
바보는 술안주로 대구포전을 지지며 못마땅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