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중반의 한반도를 묘사한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변진한조에 변진구사국(변진구야국으로 읽기도 함)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위치는 현재의 김해지역으로 추정됩니다. 만일 김해가 변진구사국이 맞다면, 3세기 후반의 김해는 대성동고분군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동북아 최강의 유목민족 기마군단을 가진, 당시 신라를 월등히 압도하는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가야사를 기록한 우리 사료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료에는 변진구사국이 안 나옵니다. 반면에 삼국지 동이전에는 '가야'나 '가라'자가 들어간 나라는 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사료가 정확히 일치하는 이유는 삼국사기에서 가야(가라)가 모두 사라지는 3세기 초에서 5세기 중반 사이에 변진구사국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도 잘 보면 역시 동일하여 모든 문헌 사료가 모순 없이 일치합니다.
만일 사학과 한국고대사 시험문제에 다음처럼 나오면 어떻게 답안을 작성합니까?
1. 변진구사국은 누구에 의하여 언제 어떻게 건국되어, 언제 어떻게 왜 사라졌습니까?
2, 변진구사국 통치차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 명이라도 좋으니 이름은 무엇입니까? 왕통이 바뀐 적이 있다면 언제 왜 누구에서 누구로 바뀌었습니까?
3. 변진구사국의 정치(통치제도), 경제(무역 등), 사회(법률과 신분제 등), 문화(궁궐과 고분 등), 군사, 외교는 어떻게 됩니까? 삼국지 동이전은 변한의 지배층에 대하여 체격이 크고, 법률이 엄격하고, 소매가 긴 옷(승마복)을 입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근거가 있습니까?
첫댓글 반갑습니다. 과거와 미래님.
변진구야국(금관가야의 전신)에 대한 질문에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답변해 드립니다.
1. 변진구야국의 건국과 소멸
건국 (1세기 중엽)
변진구야국은 기원 전후부터 낙동강 하구의 자생적 집단들이 결합하여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다 3세기 후반 어떤 세력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즉 변진구야국을 무너트린 정치세력은 금관가야라고 할수 있습니다.
변진구야국이 3세기 후반에 멸망했다고 하셨는데 고고학적으로 이때(280년 전후)부터 4세기 말까지가 유목민족 문화를 보이면서 가야지역의 고고학적 전성기입니다. 3세기 후반부터 전성기가 왔다는 뜻은, 3세기 중반에 강력한 유목민족이 남하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늙어 죽어 한 세대가 지난 280년 경부터 유물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3세기 후반에 변진구야국은 망하는 것이 아니고 전성기를 맞습니다.
광개토왕비문을 보면 400년 경에 변한지역에는 임나가야 뿐입니다. 대가야나 금관가야 등 다른 가야는 없습니다. 임나가야는 금관가야가 아닙니다. 삼국사기에서 212년에 사라진 금관가야가 다시 출현하는 것은 481년입니다. 유명한 내용입니다. 400년 경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 가야지역에 내려올 때 임나가야 외에 금관가야가 존재했다는 문헌사료의 증거를 하나만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금관가야 10왕의 왕력이 나옵니다. 이 왕들의 재위기간을 정확히 합리적으로 복원하여 주실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전기가야 마지막 기록인 212년은 금관가야 어느 왕 몇 년이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과거와 미래님의 지적과 고고학적 해석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3세기 후반 기마민족의 남하설이나 묘제 변화(목곽묘의 출현)를 전성기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은 가야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정(400년) 당시 문헌상 '금관가야'라는 명칭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역사학계에서도 뜨거운 논의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문헌사상 '금관가야'라는 구체적 명칭은 후대에 정립된 것이지만, 비문의 임나가라가 김해의 세력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고고학적 유물(대성동 고분군 등)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용을 종합하면
ㅡ40년대 구야국
ㅡ280년대 임나가라
ㅡ407년대 금관가야
이런 식으로 변경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각 시대마다 지배층은 변경됩니다.
변진구야국은 삼국사기에서 가야가 사라진 기간인 237년에 목지국에 의하여 남가야에서 국명이 강제로 변진구야국으로 변경되어, 63년 존속하다, 300년에 변한왕이 변한지역을 통일하자 사라진 나라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로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를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부산의 임나가야와 김해의 남가야(후대의 금관가야)와 고령의 대가야가 어떻게 다른지도 다음에 설명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