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동경주재 한국영사관(대한민국 대사관 영사부)에 다녀왔습니다.
후배의 부탁으로 증명서류를 잠깐 받으러 갔을 뿐입니다.
2년전에 여권을 갱신하러 갔던적이 있고, 말하자면 이번이 두번째가 됩니다.
지난번에 친절하지 못한 직원들 탓에 불쾌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아쉬운 사람이 찾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오전 11시쯤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안내를 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먼저 말을 건네왔습니다.
[어떻게 오셨죠?]
저는 용건을 말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준 대로 용지를 작성한 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 공무원도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예상을 뒤집은 대응에 적지않게 놀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계단쪽에서(영사부는 2층에 있어서 계단으로 출입함) 서투른 일본말로 거세게 누군가에게 화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두사람의 남자가 들어오는데, 한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당황한 얼굴로 난처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 신경을 쓸 수는 없었지만, 화내는 사람은 한국인 직원이고, 당하면서 난처해 하는 사람은 일본인이라는 것을 대강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본사람은
[고등학생도 아니고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화를 낼수 있느나]
라며 마치 주위사람들에게 호소하듯 누구에게라고도 할 것 없이 말했습니다.(일본어로)
얼핏 들으니 일본사람은 영사부 위치를 몰라 연락을 한 모양이었고, 그를 위해 친절히(?) 건물 현관까지 마중을 나간 한국사람 직원은, 그가 예상보다 늦게오자 분개하며 열을 낸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키 작고 머리만 커다란 외모를 가진 직원의 인격을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조금 후 내차례가 되어 창구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 창구에서 째지는 목소리로 화를 내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번엔 또 뭔가 하고 옆을 돌아보니, 창구 여직원이 일본여권과 서류를 뭉치로 들고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난 몰라. 왜 나한테 그래. 내가 어쨌다고 야단이야!](한국어로)
보아하니 비자를 발급하는 창구인 것 같은데, 무슨 중요한 서류라도 분실했나? 하고 생각하며 유심히 지켜 보았습니다.
그러자 창구 앞에 서 있는 여학생(으로 보였음)이 어눌한 한국어로,
[여기다 노아슨니다](여기에 놓았습니다)
라며 접수대 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쎄 난 못봤대니까. 내가 일일이 그거 보고 있어야 돼? 알아서 해. 왜들 자꾸 난리야 난리는. 정말. 수입증지는 니들이 손에 쥐고 있어야지 여기 놓기는 왜놔?]
상대방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서인지, 이제는 아예 대놓고 반말입니다.
그 학생같은(첫째는 어려보였기 때문. 둘째는 보통 관광은 비자가 필요없기 때문에 영사관에 오는 사람은 장기 유학생이 많음) 일본여자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설수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다른 일본여자가(이 사람도 학생으로 보임) 차례가 되어 창구앞으로 다가갔지만, 그때까지도 그 직원의 분은 풀리지 않는 듯, 힐책과 매도의 언성은 온 사무실 안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애꿋은 다음 차례의 여성만, 두려운 얼굴로 그 직원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눈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삼십대로 보이는, 축 늘어진 살이 비대하게 붙은, 그 여직원을 도저히 직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제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습니다.
그 직원들은 아마 일제시대 왜놈 순사가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저러는가 라고 이해하려고 무척 애도 써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직원들은 일이 많아 무척 피곤할지 모릅니다.(하지만 영사관 사무실안은 그다지 붐비지도 않았습니다)
아니면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친절하게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그저 한번 잘 찾아보시죠 라는 말을 그들은 왜 건네지 못했을까?
한 두번 있는 일이 아니라 짜증이 났다면, 그렇다면 더욱더 그럴 수 있지라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작년인가 이맘때 쯤, 일본 테레비 선전에 김대중대통령이 직접 한국관광공사 선전을 한적이 있습니다.(일본사람들 많이 놀러오라고)
요즘도 가끔 한국에 대한 선전이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많은 돈을 들여 아름답게 백번을 선전한들, 이러한 몇사람의 직원들을 직접 체험한 많은 일본사람들은 한국을 아직 그저그런, 목소리만 큰 나라, 그리고 그 정도의 아량과 여유밖에 갖지 못한 국민들로 인식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한겨레신문에도 일본사람들이 주로 찾는 나라에서 한국이 중국과 유럽에 밀려 삼위로 물러났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이미지의 원인도 한 몫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침 들었습니다.
일본인을 불문하고 외국인들은 이제 하나의 자원입니다.
한국 관광은 국가에 외화를 끌어들이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하지만 위와같은 직원들이 사는 한국이라는 나라, 저라도 역시 두번이상 가기는 꺼려질 겁니다.
영사관 직원들은 한국사람의 대표격은 아닐지요.
그들의 얼굴을 통해 한국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짐작하게 되지는 않을지요.
저의 너무 과장된 상상일까요?
일이 많고 힘든 것 이해합니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그 짜증을 참지 못한다면, 부디 그 일을 그만 두기를 권합니다.
월급이 좋아서, 대우가 좋아서 그만두기 싫다면, 제발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들 그만두게좀 해 주십시요.
같은 식구라 그럴 수도 없다면, 제발 교육이라도 똑바로 시키십시요.
사실 그 사무실안에는 윗 자리에 앉아 있는 상관도 있는 듯 했습니다만, 들은 척도 안하고 나몰라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한 통속, 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 좋은 직원 교육이 존재할 리가 없습니다.
일본에 오기 전, 한국에서도 일본대사관에 몇차례 간적이 있습니다.
실은 그 곳에서도 불친절함때문에 갈때마다 불쾌함을 참기 어려웠었습니다.
그렇다면 피장파장이 아니냐고요?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불친절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일본대사관에서 저를 대해준 사람은 아쉽게도 한국인 직원들 이었습니다.
물론 저를 불쾌하게 했던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쓴웃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던지, 어느 조직의 직원이든지 제 불쾌감에는 한국사람들이 개입되어있다는 아이러니때문에.
일본에 7년간 있으면서, 사람 다투는 소리를 약 5번정도 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두 번은 저녁 늦은 지하철에서 취객들끼리 싸우는 소리.
나머지 세 번은 모두 한국 영사관에서 였습니다.
그 중에 두번은 오늘 들은 다툼(? 일방적인 공격?)입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일상처럼 그냥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이곳에 있는동안 다투는 소리에 면역이 약해져 이렇게 글까지 남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처음에 이야기 한 안내직원은 무척 친절했다는 것입니다.
그와같은 분이 많아진다면 한국의 이미지도 바뀔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지만 그 분은 아무래도 아르바이트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