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에서 30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모든 역사학자들의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28개 역사학회가 참여한 성명은 역사학계에서 역대 최대 규모다. 역사 전공 교수·연구자들이 역사학자의 이름으로 고강도의 국정교과서 불복종을 결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역사학대회 바깥 14개 학회도 참여
30일 서울대 중강당에서 시작된 58회 전국역사학대회 1부 강연이 끝난 직후 대회장인 양호환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가 성명문을 낭독했다. 28개 학회는 성명에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며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정화를 “헌법정신과 충돌하는 비민주적 제도로 민주화와 함께 극복됐던 구시대의 산물”로 규정하고 “창의적 민주시민 교육에 부적합하고, 세계 보편적 기준이나 추세에도 뒤떨어진 제도”라고 비판했다.
양호환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가운데)가 30일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린 서울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요구 및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 촉구’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강대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16개 학회가 정부의 국정화 움직임을 경고·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으나, 올해 대회에선 역사학대회 바깥에 있는 학회 14곳도 성명에 참가했다. 양 교수는 “대회를 앞두고 성명을 내자는 뜻이 자연스럽게 모아졌다”면서 “협의회 바깥에서도 여러 학회가 성명 참가 의사를 먼저 전해왔다”고 말했다.
■“국정화 논의는 역사교육 질식”
양 교수는 대회사에서 “국내 역사학자들의 인식이 매우 다양하고 또 다른 역사인식이 역사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역사학자의 몇 프로가 좌파다’라는 발언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과거의 잘잘못을 냉정하게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서 포폄(褒貶·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은 회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에서도 국정화 비판이 이어졌다. 송상현 공주교육대 교수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권의 정치적인 개입이나 이념적인 재단”이라면서 “국정화 논의는 역사교육의 질식 사태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이진모 한남대 교수는 “독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이른바 단일한 정체성을 추구했던 시기는 극단적인 전체주의를 표방하다 패망한 나치 시대와 동독 시절뿐”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발표문은 올해 초부터 준비했는데 갈수록 국정화 시국이 심각해져 현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지난해 대회 때도 성명에 참가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이 정도로 사안이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행사 방해 보수단체와 몸싸움도
대회 측과 보수단체 회원 간 충돌도 빚어졌다. 대회 시작 후 20여분이 지난 오전 10시쯤 대회장에 들어와 앉은 구국채널·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20여명은 1부 강연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국정화 교과서 지지한다” “종북교수들은 북한으로 보내라” 등 구호를 외쳤다. 이어 대회장 바깥으로 나와 성명문 낭독을 저지하려다 이를 막아선 대회 참가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최대 규모의 공동성명에 이어 31일 오후 ‘만인만색 전국역사인대회’라는 이름으로 거리행동에 나선다. 성대경·이이화·윤경로·안병욱 등 역사학계 원로들과 대학 교수 및 교사, 대학원생, 역사학계열 대학생·졸업생들까지 나서 서울역사박물관부터 청계광장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31일까지 이어지는 전국역사학대회 참가자들도 이날 거리행동에 개별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부별 발표와 토론 시간을 줄이고 거리행동에 참가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정화 반대 선언 참여한 28개 역사학회
<학회> 경제사·도시사·만주·백제·부산경남사·역사교육·역사와교육·역사·웅진사·조선시대사·중부고고·한국교육사·한국고대사·한국과학사·한국근현대사·한국냉전·한국민족운동사·한국목간·한국사상사·한국사학사·한국서양사·한국역사교육·한국역사민속·한국중세사·호남사<연구회> 역사교육·한국사·한국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