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FDA, 동물 복지 등 이유로... 인간 세포 활용 등 신기술들 대안으로
헬스조선DB
신약을 개발할 때, 실제 사람에게 사용하는 임상 시험 전에는 반드시 동물 실험을 먼저 거쳐야만 합니다. 제약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도 알고 있는 꽤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얼마 전 미국 식품의약구안전처(FDA)에서 이런 상식을 뒤집는 엄청난 발표를 했습니다. 의약품을 허가받으려면 생쥐 등 설치류 한 종과 원숭이나 개 등 비설치류 한 종으로 독성 시험을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80년만에 없앤 겁니다.(FDA 식품의약품화장품법) 이제 동물실험 없이도 안정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신약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FDA 선언과 함께 전 세계에서 동물 실험을 대체하는 시험법, 바로 동물대체시험법을 찾는 움직임이 바빠졌는데요. 정말 동물 실험을 없애도 되는 걸까요? 유망한 동물대체시험법으론 어떤 게 있을까요?
◇동물 실험 통과 물질 10개 중 9개, 임상 시험 실패
FDA에서 동물 실험 의무 규정을 없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동물 복지 논란 ▲효용성 논란 때문입니다. 먼저 약물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실험에 쓰이는 동물 수도 늘어났습니다. 2021년 실험에 쓰인 동물은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무려 488만 252마리에 이릅니다.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E등급 실험에 동원된 동물이 이중 무려 44%나 됩니다. 전 세계적으론 연간 5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연구실에서 희생되고 있습니다. 이 실태에 국제 동물보호단체 등 여러 단체가 지속해서 반발에 나섰는데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2003년 네덜란드는 연구용 영장류 실험 금지 법안을 제정했고, 유럽연합(EU)는 화장품 관련 동물실험 금지 규제 법안을 제정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전자 연구소인 영국 생어연구소도 2019년 동물실험 시설을 폐쇄했습니다. 동물권만 문제가 된 건 아닙니다. 효용성도 생각보다 떨어집니다. 동물 실험에 성공한 신약후보 물질 10개 중 무려 9개가 최종 임상시험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물과 사람 사이 대사, 생리, 병리학적 차이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데요. 그래서 점점 동물 실험을 대체할 인체 세포를 이용한 기술들의 개발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유망 동물대체시험법은?
FDA가 개정안에서 제시한 동물대체시험법 예시도 인체 세포를 이용하는 기술들이 대다수입니다. FDA는 ▲세포 기반 분석법(Cell-based assays), ▲장기 칩(Organ chips)·미세생리시스템(Microphysiological systems) ▲컴퓨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 등을 제시했는데요. 하나하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세포 기반 분석법
세포 기반 분석법은 생명과학연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실험법으로,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인체 세포를 배양해 생화학·생리학 특성을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다양한 의료기기 개발과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고대구로병원 의료기기 사용 적합성 테스트센터 박일호 센터장(이비인후과 교수)은 "세포 기반 분석법은 크게 세포주 시험과 개별 환자 샘플을 얻어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며 "보통 세포를 체내에서 떼어 외부로 꺼내면 다른 세포로 변하는데 한 사람에게서 죽지 않고 계속 본래 특성을 유지하는 특정 세포를 떼어와 신약후보 물질의 효율성이나 독성, 안정성을 확인하는 실험이 세포주 실험으로 보통 동물 실험 전에 진행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근에는 사람마다 다른 맞춤형 유전자 변이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하는 실험에서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정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할 때 사람마다 다른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세포를 대상으로 변이를 유도한 다음 약물 효과를 확인하는 식입니다. 다만 세포 자체만 이용한 실험이기 때문에 복잡계인 인체 작용 전체를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바이오프린팅
바이오프린팅은 잉크가 세포인 3D 프린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바이오프린팅으로 줄기 세포 여러 개를 배양 배지에 증식시키고,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면 실제 장기처럼 생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장기를 뜻하는 Organ과 유사함을 뜻하는 접미사 ~oid가 합쳐진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부르는데요. 기존 세포로만 했던 실험을 여러 세포를 모아 실제 사람 장기처럼 만들었을 땐 어떤 특징을 보일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부 세포 여러층을 쌓아 피부 실험 모델을 만들거나 허파 꽈리가 실제로 들어찬 폐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식입니다. 바이오프린팅 스타트업 팡세 이성준 대표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형상과 관련해 새로운 실험과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며 "예를 들어, 뇌질환 치료제는 혈뇌 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통과할 수 있는지 신뢰도 높게 예측할 수 있고, 경구 투여용 신약을 개발할 때 약 성분이 위장관 벽을 통과해 목표 기관에서 혈관벽을 넘어 전달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바이오 프린터의 선폭과 속도입니다. 뽑아낼 수 있는 가장 가는 선이 50~100마이크로 미터라 모세혈관 등 미세 구조를 구현하기엔 부족합니다. 또 혈관을 삽입할 수 없어 세포들이 오래 살지도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만들 수 있는 기관이 실제 기관에 비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조그맣습니다. 아직 인체, 심지어는 동물을 대체하기엔 정밀도가 떨어지는 겁니다.
▶장기 칩· 미세생리시스템
장기 칩은 전자회로를 놓은 칩 위에 사람 장기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입니다. 칩 위에 장기 세포를 올려 두고 장기 내에 일어나는 생리현상을 구현해주는 건데요. 혈관 역을 대체할 수 있는 미세 유관으로 세포를 연결해 영양, 혈액 등을 공급하며, 각 장기 세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의 유효성과 독성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가노이드는 혈관없는 세포 덩어리인데요. 이 오가노이드를 장기칩 위에 올리면 세포끼리 연결돼 세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도 볼 수 있습니다. 장기 칩 개발 회사인 에뮬레이트에선 사람 간을 모사한 장기칩에 27개 신약 후보 물질을 대상으로 실험했더니 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을 거의 100% 정확도로 골라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간, 신장, 척수, 심장 등 15가지가 넘는 장기 칩이 개발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계는 분명합니다. 작은 칩 위에 여러 오가노이드를 정밀하게 놓아야 하는 만큼 바이오 프린팅 기술이 여기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묘사할 수 있는 세포 덩어리가 마찬가지로 매우 작아, 동물 실험 없는 임상에 이용하기엔 아직 부족합니다.
▶컴퓨터 모델링
컴퓨터 모델링은 인체나 세포를 디지털 단위로 바꿔 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세포 속 생리, 병리, 약리적 특성을 데이터화해 수학적 모델링을 만든 후 약물의 영향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예측하는 겁니다. 실제 인체 세포나 장기는 일체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복잡한 생리현상을 정밀하게 구현하지는 못해 후보 물질을 찾는 수준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일호 센터장은 "기존엔 어떤 표적이 수용체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물질을 찾기 위해 화합물 라이브러리에 있는 몇십만건의 물질을 하나하나 실험으로 확인해야 했다"며 "지금은 효과가 가장 좋을 거라고 예상되는 물질 몇 개를 컴퓨터 모델링으로 압축해서 뽑아낼 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동물 실험 없이 사용하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현재는 신약 연구 극 초기단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모델링으로 후보 물질을 도출한 후, 이 물질로 세포 실험을 진행하고 동물 실험을 진행해 확인이 되면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겁니다.
◇기술 병용으로 임상 실패율 줄이는 것 먼저
보통 신기술은 기술이 앞서가고 제도가 뒤따라가던 것과 달리, 동물대체시험법은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시험대체법에 대한 연구 개발과 상용화가 촉진될 수 있도록 여러 제도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번 FDA의 동물대체시험법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도 동물실험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적, 합리적으로 유효성과 안정성이 입증되면 신약 허가 신청을 낼 수 있습니다. 더불어미주당 한정애 국회의원은 지난해 12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제도들에도 불구하고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실제 임상실험을 주도하는 의학계에서는 동물실험 없이 임상실험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박일호 센터장은 "아직 동물보다 훨씬 단순한 형태의 오가노이드 등 기술을 신뢰하기는 어렵다"며 "분명 언젠간 대체가 가능하겠지만, 한동안 동물 실험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용에 대해선 긍정적 이었습니다. 가천대 의대 뇌과학연구원 정준영 교수는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어렵지만 오가노이드 등을 병용해 활용하면 임상 실패 가능성을 줄 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임상 시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면, 신약 개발 비용 절감도 기대할 수 있어 이용 자체는 활발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 표준화도 하나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기술이 구현될 때마다 각 연구소마다 가지고 있는 기능에 차이가 있어 같은 약물에도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모든 오가노이드 등 기술로 약물 유효성과 안정성을 평가할 때 각 기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준점 표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슬비 기자